371화. 햄버거 상륙 (4)
개점에 앞서 개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화안 F&B 허경석 사장, 허민웅, 그리고 숀 오코너와 이동호 대표는 물론, 윌리엄 리처 주한미국대사까지 참석했다.
동호 선배는 당황했다.
“아니, 주한미국대사가 왜 와?”
“오코너 버거는 현재 미국 내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는 중이고, 그 뒤에는 컨티뉴 캐피탈이 있잖아요.”
“눈도장이라도 찍으려는 건가?”
“뭐, 계속 정치하려면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어차피 정권 바뀌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사람이니.
현 대통령은 공화당.
그런 만큼 그 역시 공화당 출신이지만, 민주당 인사들과도 원만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처 대사는 밝은 표정으로 일일이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나 역시 그와 악수했다.
50대 초반의 백인 남성은 내 손을 강하게 붙잡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오늘 이렇게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저를 아시나요?”
그는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록허트 대표와 함께 큰일을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주한미국대사인 만큼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 경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한국인이니.
리처 대사는 농담처럼 말했다.
“지난번 캘리포니아에 갔을 때 먹어보고 오코너 버거의 팬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게 되니 매우 기쁩니다. 다른 곳에서 지점이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만약 미국 대사관 앞이라면 더욱 좋겠네요.”
나 역시 농담처럼 말했다.
“대사님께서 하나 차려보시는 건 어떤가요? 언제든 가맹점 문의를 받고 있습니다.”
“하하! 그때를 대비해 미리 잘 보여놔야겠군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미국 기업의 성공을 위한 역할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이렇게 선을 대려는 걸 보니, 컨티뉴 캐피탈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 * *
개점식을 끝으로, 숀의 한국 일정은 완전히 끝났다.
“고생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휴가를 즐기기도 했구요. 이제 다시 돌아가서 열심히 해야죠.”
그는 먼저 떠나지만, 트리시는 취재 때문에 한동안 남기로 했다.
“취재는 얼마나 남았어요?”
“이제 오코너 버거 취재 끝났는데요. K-팝에 대한 취재는 물론이고, MFW와 SW게임즈에 대해 취재해야죠. 국장님에게 연락받았는데, 기사만 제때 보내주면 얼마든지 있어도 상관없대요. 출장비만 좀 아껴 쓰라고.”
이러다가 내 주변 사람들 다 만나겠는데.
숀은 나에게 말했다.
“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만 믿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재빨리 미국으로 떠났다.
왠지 나한테 떠넘긴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기분 탓인가?
* * *
한세나, 정소진, 박예진, 조유경.
오랜만에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매일 같이 연락하는 사이지만, 만나면 항상 할 얘기가 많았다.
학교 얘기, 친구 얘기, 남자 얘기, 연예인 얘기 등을 하다가 최근 화제인 오코너 버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에 오코너 버거 한국에 들어온 거 알지?”
“응응. 지금 난리도 아니래.”
“뉴스에서 봤어.”
“그것 때문에 지금 SNS도 난리야.”
무슨 챌린지가 열린 것도 아닌데, 린스타와 톡틱, 에이튜브 등은 오코너 버거 사진과 영상으로 도배가 됐다.
“다행히 우리는 LA에서 먹었잖아.”
“LA에 먹었을 때 엄청 맛있었는데.”
“그치그치. 그때 먹어서 정말 다행이야.”
“미리 먹어본 우리가 위너지.”
생글생글 웃던 것도 잠시.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고 한세나가 말했다.
“왠지 또 먹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너무 먹고 싶어.”
“차라리 그때 안 먹었으면 생각도 안 날 텐데.”
“괜히 먹은 것 같아. 오코너 버거 먹는 바람에 다른 버거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었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군침이 줄줄 흘렀다.
한세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럴 게 아니라 먹으러 가보자.”
“거기 지금 줄 엄청 길다던데.”
“에이, 그거야 다 오픈빨이지. 며칠 지났으니, 오늘은 별로 없지 않을까?”
“그럴지도.”
“얼른 가보자.”
한세나와 친구들은 바로 오코너 버거 1호점이 있는 강남으로 향했다.
줄은 유성타운을 휘감을 정도로 늘어서 있었다.
그 줄의 끝으로 가보니, 거기에는 ‘여기서부터 6시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걸 본 네 사람은 깜짝 놀랐다.
“이게 뭐야?
“줄이 길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한국인들의 햄버거에 대한 열정은 그녀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다들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안 돼.”
“기다리다 쓰러짐.”
“그냥 맥도날드 가자.”
하지만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던 한세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잠깐 기다려봐, 얘들아. 나에게 방법이 있어.”
“무슨 방법?”
한세나는 씨익 웃었다.
“오빠 찬스!”
박예진이 눈을 크게 떴다.
“오빠 찬스면……?”
조유경이 물었다.
“미루 오빠?”
한세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생각해봐. 우리 LA에서 먹으러 갔을 때도 줄 서 있는데 바로 입장했잖아. 그럼 이번에도 가능하지 않을까?”
“맞아.”
“그러고 보니…….”
박예진과 조유경은 나란히 박수를 쳤다.
“오오!”
“세나 똑똑해!”
그러나 정소진은 소리치듯 반대했다.
“아, 안 돼!”
그러자 한세나가 물었다.
“어째서?”
“그, 그게…… 미루 오빠 일하느라 바쁠 테니까. 이런 일로 방해하면 안 되지 않을까?”
“훗, 방해라니. 일하다가도 귀여운 동생의 얼굴을 잠깐 보고 가면 일이 더욱 잘되지 않겠어? 그리고 우리 오빠 하나도 안 바빠.”
“…….”
사실 그런 이유 때문에 반대한 건 아니었다.
정소진은 울상을 지었다.
‘어떡해? 친구들만 만나는 줄 알고, 옷도 대충 입고 화장도 제대로 안 하고 나왔는데. 심지어는 렌즈도 안 끼고 안경을 썼고.’
* * *
개점한 지 며칠이 지났어도 오코너 버거의 인기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만약 줄 서서 먹어야 했다면, 나도 직원들도 못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D동, 일명 컨티뉴 빌딩에 입주한 사람들은 미리 앱으로 예약해서 테이크아웃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도 언제든 손쉽게 주문해서 먹었다.
놀려고 남아 있던 것만은 아닌지 트리시는 빈자리에 노트북을 놓고 집중해서 일했다. 아까부터 손가락이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다가 잘 안 풀리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녀에게 커피를 건네주었다.
“마시면서 해요.”
“아! 고마워요. 안 그래도 커피 사러 가려고 했는데.”
우리는 잠시 쉬며 얘기를 나눴다.
“아름 씨랑 인터뷰 약속은 잡았죠?”
“네. 요즘 패션업계에서 MFW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요. 그만큼 대중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많구요.”
얘기를 하던 도중 핸드폰이 울렸다. 누군가 해서 보니 동생이다.
귀찮아서 안 받았다. 그러자 바로 톡이 쏟아졌다.
뭐지?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난 어쩔 수 없이 세나의 톡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다.
내 표정을 본 트리시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니, 동생이 친구들과 오코너 버거 먹으러 왔는데, 줄이 너무 길다고 들여보내달라고 하네요.”
“아! 여동생이 있다고 했죠?”
“네.”
내 말을 들은 트리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생은 미루가 컨티뉴 캐피탈에서 일하는 거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죠. 그런데 전에 LA에서 오코너 버거 먹으러 갔을 때 줄 안 서고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여기서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실제로 되잖아요.”
“그렇긴 하죠.”
내가 안 되면 누가 되겠는가?
“어떻게 할 거예요?”
“그냥 돌아가라고 해야죠.”
그러자 트리시는 정색하며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오빠는 여동생 부탁이면 뭐든 들어줘야죠.”
“예? 왜요?”
“왜요, 라니요? 당연한 거잖아요.”
“…….”
아니, 그런 불공평한 룰은 대체 어디서 정한 거야?
설마 ‘국제여동생협회’ 같은 데서 정했나? 이런 건 ‘세계오빠연맹’ 같은 곳에도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트리시는 노트북을 닫고 벌떡 일어났다.
“동생 기다리고 있겠네요. 어서 가봐요!”
“어! 트리시도 가게요?”
“오코너 가문의 일이잖아요. 당연히 제가 가야죠.”
“…….”
그냥 오코너 버거 먹으러 온 건데, 이게 무슨 가문의 일씩이나?
아무래도 일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것 같은데.
난 어쩔 수 없이 트리시와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오코너 버거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가운데.
그 줄의 끝에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다름 아닌 한세나&프랜즈.
미어캣처럼 목을 길게 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세나는 나를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 오빠, 여기야, 여기!”
내가 다가가자 다른 애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오!”
다름 아닌 정소진, 조유경, 박예진이다.
여러 번 봐서 그런지, 이제는 다들 익숙하다.
“안녕. 다들 잘 지냈지?”
내 동생은 금발에 똥머리, 소진이는 포니테일, 박예진은 안경에 단발머리, 조유경은 양갈래머리다.
머리 스타일만으로 구분이 쉬워서 편하다.
어째서인지 소진이는 세나 뒤에서 눈만 빼꼼히 내밀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빠.”
애가 갑자기 낯을 가리나?
왠지 전에 봤을 때랑은 뭔가 좀 달라 보이는 것 같다.
“아! 안경 썼구나.”
소진이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 그게 렌즈 사는 걸 깜빡해서요. 원래 안경 잘 안 쓰는데…….”
“잘 어울리는데.”
“예? 저, 정말요?”
“응.”
안경 하나 썼을 뿐인데, 이미지가 확 달라 보인다.
그러자 소진이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박예진은 크롭티는 아니었지만, 짧은 상의를 입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언뜻 드러나는 배꼽에서 피어싱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
우리 집 애가 저걸 보고 헛바람이 들었구나.
막상 보니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세나는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야?”
“근처에서 일하니까.”
정확히는 여기 빌딩 넷 중 하나에서 일한다.
트리시는 세나와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Hello.”
예상치 못한 백인 미녀의 등장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누, 누구야? 설마 여자친구?”
“헉!”
어째서인지 소진이가 가장 놀랐다.
난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해주었다.
“아니. WST 기자야. 미국에서 일 때문에 알고 지낸 사이인데, 이번에 취재 때문에 한국에 와서 안내하는 중. WST 알지?”
세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 몰라.”
“응. 모를 줄 알았어.”
기대도 안 했다. 내 동생은 뉴스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소진이는 달랐다.
“저 알아요. 미국의 유명한 언론사잖아요. 상속녀 사기 사건 기사를 냈던.”
“오.”
내 동생과는 다르게 똑똑하다.
“맞아. 그 기사를 처음 쓰신 분이야.”
“앗! 정말요?”
세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그렇지. 오빠가 이런 예쁜 여자랑 사귈 리 없지.”
“…….”
뭐, 인마?
트리시는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I’m Trishy Oconnor. Nice to meet you.”
그러자 요즘 들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세나가 당당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하이. 마이 네무 이즈 세나 한. 아이 하브 아 파미리, 마이 화자, 마이…….”
“거기까지.”
미국인한테 그런 발음하는 거 아니야.
난 영어(?)로 말한 세나의 자기소개를 다시 영어로 통역(?)해주며, 한 명씩 소개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