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햄버거 상륙 (2)
여의도까지는 금방이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같이 여의도 주변을 걸었다.
“월스트리트랑은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좀 다르네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서울은 반쯤 국제도시나 다름없다.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시선을 보내는 것은 역시나 미인이기 때문이겠지?
트리시가 옷을 캐주얼하게 입어서 그렇지, 키도 크고 늘씬하다. 덕분에 옆에 있는 나는 왠지 시샘 어린 시선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다.
“미루가 일했던 곳은 어디예요?”
“저쪽이에요.”
난 그녀를 DA증권 쪽으로 안내해주었다.
트리시는 카메라를 들어 DA증권의 전경을 찍었다.
“굳이 여기를 찍을 필요가 있어요?”
“미루한테 중요한 곳이잖아요. 잠깐만 거기 서봐요. 사진 찍어줄게요.”
“예?”
트리시는 그 자리에서 내 사진을 몇 장 찍어주었다.
“잘 나왔어요?”
내 물음에 트리시는 사진을 확인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럼요. 전문가의 솜씨인데요.”
우리는 여의도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로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트리시는 흘러내린 머리를 모아서 다시 묶으며 말했다.
“한국은 스타벅스가 많네요. 걸어오면서 세 개는 본 것 같은데.”
“서울이 뉴욕보다 더 많을걸요.”
“맞다! 기사에서 봤어요.”
참고로 1위가 서울이고, 2위가 뉴욕이다.
“한국에서의 계획은 어떻게 돼요?”
“일단 오코너 버거 한국 론칭 기사를 쓰고, K-팝 특집기사를 쓸 예정이에요. 알다시피 요즘 미국에서 K-팝 인기가 엄청 나잖아요.”
미국에서 외국 가수의 노래가 인기를 끄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영어로 된 노래고, 그 외의 언어로 된 노래는 반짝 인기를 끌고 사라지는 식이다.
지금처럼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된 노래가 장기간 인기를 끄는 것은 처음 있는 현상이었다.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K-팝은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K-팝 인기 분석을 위해 아이돌과 기획사 관계자들을 인터뷰했으면 해요.”
“그럼 잘 찾아왔어요. 동호 선배…… 아니, 이동호 대표한테 얘기해 놓을게요. 얘기만 하면 취재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꼭 인터뷰하고 싶은 가수가 있어요.”
“누구요? 남자 아이돌이에요?”
“아니요. 지유라고.”
그 말에 순간 당황했다
“예? 아니, 지유는 왜요?”
“미국에서 인기 있는 K-팝 가수는 대부분 아이돌인데, 혼자 솔로 가수잖아요. 그리고 이번에 올리버 페이지 감독 영화에 나오기도 하고, 세븐 라운드에도 중요 배역으로 출연한다고 하고.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노래를 좋아해서요.”
“아…….”
내 표정을 본 트리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지유의 소속사인 레인보우 레코드에도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하지 않았나요? 혹시 안 되나요?”
“아, 아니요. 안 될 건 없죠.”
기사 나가면 지유한테도 좋은 일이니.
그런데 어째서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걸까?
“오코너 버거 한국 론칭 계획은 어떻게 돼요?”
“지금 계획 중인 이벤트가…….”
내 얘기를 들은 트리시는 손뼉을 쳤다.
“어! 재밌겠는데요.”
“그렇죠?”
얘기를 하는 사이 어느새 커피잔이 비었다.
트리시는 갑자기 피식 웃었다.
“왜 웃어요?”
“미루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서요. 그때도 스타벅스였던 거 알아요?”
“당연히 알죠.”
난 그곳에서 데이비드 록허트와 계약을 했고, 트리시는 노트북으로 기사를 쓰고 있었다.
난 회귀 직후 많은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대로 사람을 만났다.
유재호 회장, 데이비드 록허트, 필립스 상원의원 등등.
그러나 그녀와의 만남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만약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오코너 버거에 투자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인생은 아무리 계획을 해도 계획대로만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뉴욕의 스타벅스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만 해도, 우리가 서울의 스타벅스에서 마주하게 될 거라고는 둘 다 생각지 못했겠지.
“만약 그날 그곳에서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글쎄요. 상상이 잘 안 되는데요.”
트리시는 생긋 웃었다.
“그날 미루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요.”
* * *
늦은 저녁.
난 호텔 바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어이, 브로.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요?”
“그럼. 형이 항상 니 생각하고 있는 거 알지? 밥은 잘 먹나, 잠은 잘 자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안 해도 되니, 술이나 마시죠.”
평소에 가끔 연락하긴 하지만, 만나는 건 오랜만이다.
오늘 만난 이유는 일 때문.
“오코너 대표님은 한국에 잘 도착하셨지?”
“예.”
우리는 술을 한 잔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화안 F&B는 어때요?”
“만세를 부르는 중이지. 설마 한국 사업권을 따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미국에서 인기 있는 프랜차이즈를 한국으로 들여오면 성공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오코너 버거의 한국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많은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여기에는 대기업도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쟁쟁한 상대를 물리치고 화안 F&B가 한국 사업권을 따낼 수 있었을까?
그야 당연히…….
“진짜 고마워. 너 없으면 형 어떻게 살았냐? 형이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나와의 친분 때문.
사실 사업에 있어서 인맥의 힘은 무시 못 한다. 괜히 대기업들이 비싼 돈 들여 로비스트를 고용하는 게 아니지.
표면적으로는 화안 F&B를 한국 프랜차이즈 파트너로 삼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좀 더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다.
허민웅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한테 이렇게 고마워하는 거고.
“신세기그룹도 막판까지 달렸다며? 민기진 전무가 애썼다는 얘기도 있고.”
“가장 적극적이었죠. 본사에도 여러 차례 연락했고.”
신세기그룹은 백화점은 물론이고, 마트와 쇼핑몰을 보유한 유통업계의 강자.
민기진 전무는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강한 러브콜을 보냈다.
백화점과 쇼핑몰이 있으면 직영점 확장에 유리한 만큼, 괜찮은 파트너였다.
“그쪽은 아름이 통해서 너한테 얘기 좀 하지 않았어?”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죠. 만약 아름 씨가 정식으로 부탁했다면 들어줬을 거예요. 예전에 빚진 게 좀 있어서요.”
“빚? 뭔데?”
“그런 게 있어요.”
“흠, 그래서?”
“그렇게 말하니까, 그냥 얘기만 전해준 거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던데요.”
내 말에 허민웅은 웃었다.
“역시 아름이가 똑똑하네.”
“맞아요.”
예쁘고, 현명하고, 눈치도 빠르다.
인생 대충 살려는 동호 선배에게는 이런 여자가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
“그나저나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요?”
허민웅은 생색내듯 말했다.
“완벽해! 그동안 비밀 유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알겠지만 세상에서 입단속이 제일 힘든 일이야.”
“고생했어요.”
다시 말하지만, 프랜차이즈는 음식의 맛만큼이나 이미지가 중요하다.
오코너 버거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핫한 햄버거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니 이 이미지를 한국에 제대로 각인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이벤트를 준비했다.
뉴욕의 펍에서 팔던 오코너 버거가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푸드트럭 덕분.
실리콘밸리의 첨단 유행을 선도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
따라서 첫 이벤트는 푸드트럭으로 기획했다.
공개하면 다들 깜짝 놀라겠지?
* * *
나이트라이트와 블록밸리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 두 게임은 이미 게임을 넘어서 새로운 문화적 현상이라 불릴 정도였다.
나이트라이트는 20~30대, 그리고 FPS와 TPS 이용자들을 끌어들였고, 블록밸리는 아예 10대들의 소셜 네트워크로 자리 잡았다.
이 두 게임에서 한국인 유저들을 대상으로 미션을 수행하면 랜덤박스를 주는 이벤트를 벌였다.
랜덤박스에서는 감자번, 스크램블 에그, 패티, 치즈 등이 랜덤으로 나왔다.
이를 다 모으면 햄버거를 만들 수 있다.
일종의 컴플리트 가챠인 셈이다.
하지만 공짜인 데다가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아이템인 만큼, 다들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유저 한 명당 한 개의 햄버거만 만들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자 완성된 햄버거를 제외하고 나머지 재료는 전부 사라졌다.
유저들은 이를 하나의 깜짝 이벤트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공지가 떴다.
[내일부터 한국에 오코너 버거 푸드트럭이 열릴 예정입니다. 가지고 계신 햄버거를 오코너 버거로 교환해 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벤트 기간은 사흘.
전국에 열다섯 개의 푸드트럭이 사흘 동안 장소를 옮겨가며 연다.
일반 구매자들은 줄을 서야 하지만, 햄버거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앱을 통해 예약하고, 현장에서 QR코드를 보여주면 바로 수령할 수 있다.
이 소식에 유저들은 난리가 났다.
-뭐야? 이거 진짜야?
-진짜 오코너 버거를 먹을 수 있다고?
-아니, 저걸로 오코너 버거를 먹을 수 있는 거면 진작 말해줬어야지!
-게임 속 햄버거가 진짜 햄버거가 될 줄이야!
-아악! 나도 미션할 때 받아놓을걸 ㅜㅜ
-ㅅㅂ 패티 한 장이 모자라 못 만들었는데…….
-그래서 이게 그냥 이벤트인 거야? 아니면, 오코너 버거가 한국에 들어오는 거야?
-정식 론칭 전 행사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버거 하나 먹으러 미국까지 갈 수는 없잖아 ㅎㅎ
-난 LA에 갔을 때 한 시간 기다려서 먹어봤는데, 진짜 인생 햄버거였음. 있지도 않은 암이 낫는 기분이었음.
-ㅋㅋㅋ 햄버거 먹고 암이 대체 왜 나음?
-가격은 얼마야?
-단품이 9달러에 세트 15달러니, 대략 1만 원, 1만 7천 원 정도 하지 않을까?
-그렇게 비싸진 않네. 그럼 그냥 돈 내고 사 먹으면 되겠네.
-ㅋㅋㅋ 과연 돈 낸다고 사 먹을 수 있을까? 다 똑같은 생각을 하며 몰려올 텐데.
-새벽부터 줄 서면 저녁에 받아먹을 수 있을걸. 아니면, 그전에 재료가 다 떨어졌다며 마감하거나.
-다섯 시간 이상 줄 설 자신 있으면 도전해보든지.
* * *
[오코너 버거, 한국에서 푸드트럭 이벤트 열어!]
[사흘 동안 전국 열다섯 곳 푸드트럭에서 오코너 버거 판매!]
[일시적 이벤트인가, 한국 진출을 위한 포석인가?]
서울 두 곳을 포함해 전국 열다섯 곳에서 일제히 오코너 버거 푸드트럭이 열렸다.
미국의 유명 햄버거를 한국에서 판매한다고 하자, 햄버거 매니아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반드시 먹는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미국 가서 먹어야 할지도 몰라.”
“미국 매장도 여전히 줄 서고 있다는데.”
“이거 먹으려고 연차 냈다.”
“오코너 버거 먹으러 가즈아!”
정확한 장소를 하루 전에 공지했음에도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줄 서는 인원을 30명으로 제한했다. 나머지는 현장에서 핸드폰 번호를 등록해 이후에 줄을 설 수 있도록 했다.
운 좋게 오코너 버거를 받은 사람들은 먼저 인증샷부터 찍어서 올린 다음, 포장을 벗기고 먹었다.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오! 오코너 버거.”
“실리콘밸리의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이게 바로 미국 자본주의의 맛인가?”
“양키 놈들. 이런 맛있는 걸 지들만 먹다니.”
예약 대기조차 개점 30분 만에 마감되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늦게 온 사람은 냄새조차 맡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벤트 기간은 고작 사흘에 푸드트럭의 위치는 매일 바뀌는 만큼, 기회를 잡기는 더욱 힘들었다.
-아니, 아침 일찍 갔는데, 몽땅 매진이면 어쩌라는 거냐?
-이거 먹을 수 있는 방법 없나?
-나이트라이트와 블록밸리에서 햄버거 아이템을 획득한 사람은 바로 앱으로 신청해서 현장 수령하면 됩니다.
-그거 QR코드만 있으면 돼요.
-누구 햄버거 쿠폰 양보해주실 분 없나요? ㅜㅜ
-오코너 버거 먹고 싶어서 암 걸릴 것 같습니다…….
-햄버거 아이템 삽니다~ 두 배 가격 드릴게요~
-두 배 같은 소리 하네. 따따블! 네 배 드립니다!
-따따따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