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68화 (368/529)

368화. 햄버거 상륙 (1)

그녀의 이름은 트리시 오코너.

숀 오코너의 동생이자, 오코너 가문(?)의 막내딸이자, WST의 유명 기자다.

아니, 이제는 WST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기자로 통했다.

토머스 모터스 행사장에서 부실을 폭로한 것을 시작으로 페이스노트의 실체를 파헤쳤고, 상속녀 사기 사건 심층 취재로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사실상 WST를 먹여 살리는 주필이라 할 수 있다.

“같이 오면, 온다고 미리 얘기해주지 그랬어요?”

“놀래켜주려고 몰래 왔어요.”

“정말 놀랐네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설마 트리시도 같이 올 줄이야.

“휴가 낸 거예요?”

“출장이에요. 오코너 버거의 한국 진출 취재,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 취재, K-팝 관련 취재 등등. 도와줄 거죠?”

“물론이죠. 뭐든 필요하면 얘기해요.”

한국으로 휴가 간다고 하니까, 회사에서 그냥 출장으로 처리해준 모양이다.

일시적 해외특파원이랄까?

트리시는 잔뜩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기대되네요.”

“뭐가요?”

“한국 오면 구경시켜준다고 했잖아요.”

“예?”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가보고 싶은 곳들 리스트 다 뽑아놨어요!”

아무래도 일할 생각보다는 놀 생각만 가득한 것 같다.

숀 오코너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혼자 오려고 했는데, 동생이 굳이 따라오겠다고 해서요.”

“…….”

어, 잠깐.

이거 어디서 들어본 말 같은데.

* * *

퍼스트 클래스라지만 비행기를 10시간 넘게 탔으니 피곤할 것이다. 게다가 시차도 있고.

난 숀과 트리시를 바로 숙소로 안내해 주었다.

두 사람이 머물 곳은 강남 JR블랙우드 호텔의 프레지덴셜룸.

“와아! 정말 여기 써도 되는 거예요?”

“그럼요.”

명목상으로는 숀을 위해 잡아준 거다. 동생이 함께 써도 문제될 건 없겠지.

트리시는 룸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역시 따라오기를 잘했네요. 여기 수영장도 있죠?”

“물론이죠.”

“나중에 해봐야겠네요. 혹시 몰라 수영복 가져오길 잘했네요.”

긴 시간 비행으로 피곤해 보이는 숀과는 다르게 트리시는 기운이 넘치는 모습이다.

숀은 그런 동생을 보며 떫은 미소를 지었다.

난 그에게 말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닙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엄청 얌전해진 거라서요.”

그도 여동생을 둔 오빠라고 생각하니, 왠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아니.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하나?

“도밍고 씨는 잘 지내고 있죠?”

“예. 저보다 더 바쁘게 지내는 중입니다. 이번에도 같이 오려고 했는데, 일 때문에 못 와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가 성장하려면 맛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맥도날드의 레이 크록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업가적인 수완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다행히 오코너 버거에서는 페르난도 도밍고가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고 있다.

“얼른 밥 먹으러 가요.”

트리시의 말에 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씻고 좀 쉴게.”

“그럼 오빠는 쉬라고 하고, 우리끼리 가요.”

“안 쉬어도 괜찮겠어요?”

“그럼요.”

트리시는 내 팔을 잡아 이끌었다.

“뭐, 먹을래요?”

“한국에 왔으니 한식을 먹어봐야죠.”

난 머릿속에 트리시와 갈 만한 곳을 떠올려보았다.

다행히 그동안 웬만큼 비싸고 유명한 식당은 한 번씩 가봤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딱 떠오르는 퓨전 한정식집이 있다.

“가요.”

우리는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 * *

유명하고 잘나가는 음식점은 예약이 치열하다.

어떤 곳은 몇 달 치 예약이 꽉 차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 음식점의 경우 VIP를 위해 예약 자리를 하나 정도는 남겨놓기도 한다. 일전에 소개로 한번 와봤던 곳인 만큼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성윤아를 따라서 왔던 곳.

트리시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 비싸지 않아요?”

“괜찮아요. 별로 안 비싸요.”

사실은 좀 비싸다.

가격 들으면 놀랄 정도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눴다.

“금방 미국에 돌아올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한국에 오래 있는 거예요? 오죽하면 제가 왔겠어요?”

“좀 바빴어요. 근데, 설마 절 만나러 온 거예요?”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튼! 설마 계속 한국에 있을 건 아니죠?”

“조만간 다시 미국에 가야죠.”

어느새 미국에도 내 생활 기반이 생겼다.

데이비드와 시드도 보고 싶고.

“트리시는 어떻게 지냈어요?”

“똑같죠. 취재하고, 사진 찍고, 기사 쓰고. 그리고…….”

“그리고?”

“음, 이건 나중에 때가 되면 말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모양.

“그럼 나중에 말해줘요.”

그렇게 말하고 계속 식사를 하려는데, 트리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예요? 정말로 안 궁금해요?”

난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사실은 궁금해요. 어서 말해줘요.”

그러자 트리시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사실은 책을 쓰고 있어요.”

“책이요?”

“예. 출판사에서 먼저 제의가 와서요.”

“어떤 내용인데요?”

“에밀리 클로에에 대해서요.”

난 연말 파티장에서 만났던 에밀리 클로에를 떠올렸다.

자신을 프랑스 상속녀라고 속이고 상류층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다녔던 사기꾼이다.

“기사로 다 쓴 거 아니에요?”

“기사는 압축적이고 객관적이잖아요. 거기에 담지 못한 이야기가 엄청 많아요. 그래서 그걸 책으로 한번 내보자고 해서요.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한다고.”

난 잠시 생각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사람들이 관심 있는 이야기죠.”

한국에는 그렇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속녀 사기 사건은 미국 내에서는 꽤 큰 이슈였다.

사람들은 상류층을 부러워하면서도 시기한다.

따라서 이들의 허상이 드러난 기사가 엄청나게 히트친 것이다. 당연히 책으로 써도 대박이겠지.

“책에 대해 에밀리 클로에랑 얘기해 봤어요?”

“이미 자료는 다 있으니 그녀의 협조를 받지 않아도 책을 쓰는 데는 별 지장이 없어요. 그래도 혹시 몰라 구치소를 찾아가 얘기는 했죠.”

“뭐래요?”

“더 유명해질 수 있을 거라고 하니,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나서던데요. 예전에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술술 하구요.”

“아…….”

상식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잘못과 범죄를 감추고 싶어 한다.

범죄 사실이 기사와 책으로 전세계에 퍼져 나가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 같은 일반인의 생각.

관종은 생각의 로직이 다르다.

에밀리 클로에는 관종 중의 관종.

만약 세계 최고의 관종을 뽑는 ‘베스트 관종 어워즈’ 같은 게 있었다면 당당하게 대상을 탔을 것이다.

상속녀로 유명해지기를 원했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차라리 상류층을 농락한 사기꾼으로 유명해지는 것을 택한 모양이다.

……대체 관종이란 뭘까?

“어! 그럼 이제 작가로 데뷔하는 거예요?”

트리시는 살짝 흘리듯 말했다.

“흠, 뭐 그렇게 되겠죠.”

작가라는 호칭이 아직은 좀 쑥스러운 모양이다.

난 감탄했다.

“이야! 이제는 오코너 기자가 아니라, 오코너 작가님이라고 불러야겠는데요. 아니, 오코너 대문호?”

내 말에 그녀는 살짝 눈을 흘겼다.

“지금 놀리는 거예요?”

“그럴 리가요. 축하해요.”

“흐응, 고마워요. 그런데 잘 팔릴지 걱정이에요.”

“걱정은요. 엄청 잘 팔릴 것 같은데.”

기사가 히트친 것으로 볼 때 책의 흥행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다.

인구가 많은 만큼 미국의 출판시장 규모는 한국보다 열 배 이상 크다.

게다가 영어권 국가의 특성상 번역할 필요도 없이 영국, 캐나다, 호주 등으로 수출도 가능하다.

때문에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잘나가는 작가들은 맨해튼과 비버리힐즈에 고가의 저택을 사고, 페라리와 벤틀리를 몰고 다닌다.

“출판사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선금이 얼마였는지 알아요?”

“얼마였는데요?”

“50만 달러요. 초판은 30만 부 찍을 거래요.”

“30만 부요?”

내가 미국 출판계는 잘 몰라도, 이 정도면 엄청난 거 아닌가?

“출판사에서는 초기 판매량을 100만 부 정도로 보고 있대요.”

“그런데 왜 30만 부밖에 안 찍어요?”

“전자책이 있잖아요.”

“아, 그러네요.”

“15개국에 동시에 출시할 예정이에요.”

“이미 외국 판권까지 다 판매한 거예요?”

“네. 한국도 포함되어 있어요.”

트리시는 자랑하듯 말했다.

“저 이제 부자예요.”

“오! 축하해요.”

말은 이렇게 해도 트리시는 돈에 큰 비중을 두는 성격이 아니다.

원한다면 기자 일을 그만두고, 오코너 버거에 합류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게 돈은 훨씬 많이 벌었겠지.

그럼에도 여전히 WST에 있는 이유는 기자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그 일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

돈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모습이 멋있다.

“사실 예전부터 책 써보는 게 꿈이었어요.”

“기자들이 책 쓰는 일이 많긴 하죠.”

“전부 미루 덕분이에요.”

“제 덕이요?”

“미루 씨가 에밀리 클로에를 취재해보라고 말해줬잖아요.”

“아…….”

1회차 때 에밀리 클로에 기사는 다른 기자가 썼다.

그런데 이번에 트리시가 이 특종을 잡은 것에는 내 도움이 컸겠지.

생각해보니…….

“이거 잘하면 드라마나 영화로도 만들어질 수 있겠는데요?”

“에밀리 클로에를 주인공으로요?”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주인공은 트리시죠.”

내 말에 트리시는 살짝 당황했다.

“예? 저요?”

“네. 기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에밀리 클로에와 뉴욕 상류층의 허상을 파헤치는 형식이 훨씬 재밌어 보이지 않아요?”

“그, 그렇긴 한데…… 제가 주인공이라니.”

트리시는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누가 보면 데뷔하는 줄 알겠는데.

당연히 트리시가 직접 출연하는 것 아니고, 연기는 전문 배우가 하겠지.

“그래서 책은 얼마나 썼어요?”

“80퍼센트 정도요.”

“어! 벌써요?”

뭐가 이렇게 빨라?

손이 느려 지각과 휴재를 밥 먹듯이 하는 작가가 들으면 부러워할 만한 집필 속도다.

“자료야 다 있으니 따로 취재할 필요도 없고, 전에 쓴 기사가 초안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가필은 대충 마무리됐고, 계속 수정하며 집필하는 중이에요. 아까 비행기 타고 오면서도 노트북으로 계속 작업했어요. 사진은 출판사에서 골라주기로 했고. 에밀리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내는 게 목표예요.”

트리시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책 나오면 가장 먼저 사인해서 선물해줄게요.”

“기대할게요.”

식사를 끝마친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트리시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 잘 먹었다.”

“맛은 괜찮았어요?”

“네. 너무 맛있던데요.”

퓨전 한정식이니, 외국인들 입맛에도 잘 맞는 모양이다. 아까 가게에 외국인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저 원래 한식 좋아해요. 뉴욕에서도 자주 즐겨 먹어요.”

“음.”

나도 미국에 있을 때 몇 번 먹어봤다.

그런데 미국에서 파는 한식이란 결국 미국인들 입맛에 맞춰 만든 것. 분명 한식 같긴 한데, 정작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메뉴가 대부분이다.

“배도 채웠겠다, 이제 어디 가고 싶어요?”

내 물음에 트리시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여의도요.”

“거기 별로 볼 것도 없는데.”

“여의도가 한국의 월스트리트잖아요. 월스트리트 타임즈 기자로서 출장 왔으니, 여의도를 가장 먼저 가봐야죠.”

그런 깊은 뜻이?

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안내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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