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63화 (363/529)

363화. 리메이크 (3)

진태경 대표는 한미루의 제안에 대해 고심했다.

‘설마 이런 제안을 해올 줄이야.’

이전까지만 해도 판타지아 테일즈는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한미루의 제안을 듣자 갑자기 계륵 같이 느껴졌다. 내가 가지자니 필요가 없고, 남 주자니 아깝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망한 게임을 그냥 사줄 리 없다.

‘다시 살릴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는 박수형 부사장을 불러 상의했다.

얘기를 전해 들은 박수형 부사장이 물었다.

“저쪽에서는 얼마를 얘기하던가요?”

“정확한 금액을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개발비용 정도는 불러도 될 것 같더군.”

‘만약 거기서 더 부른다면 받아들이지 않겠지.’

“파는 게 이익이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이미 운영을 중단하고 창고에 처박아놓은 게임이다. 이걸 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다.

“리메이크해서 재출시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박수형 부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들이는 돈과 시간, 인력을 생각하면, 차라리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낫습니다.”

“하지만 SW게임즈 손에 들어간다면?”

“그럼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겠죠. 애초에 강선우 팀장이 기획한 게임이고, 개발3팀 인원 상당수가 그쪽에 있으니까요. 그래 봐야 크게 흥행하기는 힘들 겁니다.”

고민하는 그에게 박수형 부사장이 말했다.

“말씀을 들어보니, 매각은 이미 정해진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팔았을 때 이익도 이익이지만, 거절할 경우 불이익이 크다.

브라더후드M은 레전드게임즈 스토어에 입점해 있고, 새로 만드는 게임은 써릴 엔진을 사용해야 한다.

박수형 부사장이 새로운 안을 내놓았다.

“판타지아 테일즈를 매각한 돈으로 게임 스튜디오를 인수하는 건 어떻습니까? 매각대금을 새로 투자하는 것인 만큼 주주들의 반발도 적지 않겠습니까?”

“흐음.”

게임 스튜디오 인수는 어차피 검토 중인 사안이다.

“인수할 만큼 괜찮은 곳이 있나?”

“예. 이번에…….”

그 말을 들은 진태경 대표는 무릎을 쳤다.

“바로 그거야!”

* * *

오늘은 서버실 점검이 있는 날.

난 선우와 함께 서버실을 둘러보았다. 폐쇄된 공간 안에는 라우터와 서버, 전원 공급 장치 등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이러한 서버를 한곳에 모아놓으면 데이터 센터가 되는 거고.

당연하게도 서버실에는 아무나 접근할 수 없다.

서버실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나를 비롯해 열 명 정도. 그나마도 카드키를 찍고 홍채 인식을 거쳐야 한다.

서버실은 빌딩 안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잡아먹는 곳.

서버는 24시간 돌아가며 뜨거운 열기를 배출했고, 이를 식히기 위해 365일 24시간 냉각 장치와 순환 장치가 가동됐다.

에이원의 직원들은 이러한 장치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했다.

점검이 끝난 뒤, 난 선우와 함께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는 직원들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 꾸며져 있었다. 여기 올라오면 유성타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빼서 벤치에 걸터앉았다.

한창 일할 시간인 만큼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난 음료수를 마시며 말했다.

“레전드덱 런칭 타이틀 말이야.”

“안 된다니까. 계획 중인 게임이 있긴 한데, 지금 개발 시작해봐야 그때까지는 불가능해.”

“기존에 만든 게임을 고치는 거라면 어때?”

“그게 무슨 말이야?”

“판타지아 테일즈 말이야.”

“그게 왜?”

“그거 사왔어.”

“……응?”

난 설명을 해주었다.

얘기를 들은 선우는 깜짝 놀랐다.

“방법이 있다는 게 이거였어?”

“응.”

설마 내가 LD스튜디오에서 판타지아 테일즈를 사올 줄은 몰랐는지, 선우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LD스튜디오가 순순히 팔았어?”

“돈 주니까 팔던데.”

“얼마 주고 샀는데?”

“500억.”

선우는 입을 쩍 벌렸다.

“뭐? 망한 게임에 500억을 줬다고?”

“게임뿐 아니라 개발 과정에서의 데이터까지 전부 넘겨받기로 했어. 개발비가 그 정도 들었다며?”

LD스튜디오 게임들의 제작비는 대략 1천억 원 정도. 판타지아 테일즈는 나름 반값으로 개발한 셈이다.

“아니, 그거 어차피 다 인건비인데.”

“거기에는 니 인건비도 포함되어 있을 거 아니야?”

그 돈을 받은 대신 게임 개발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걸 돈 주고 사온 셈이니, 딱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선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잠깐. 그런데 그거 돈은 누가 내?”

“뭐, 내가 내든지. 아니면, 벌어서 갚든지.”

어차피 나중에 지원해야 할 돈을 생각하면, 500억은 돈도 아니다.

“나보고 망한 게임을 살려보라는 거야?”

“사례가 없지는 않잖아.”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라스트 판타지 온라인.

트리오닉스가 제작한 라스트 판타지 시리즈는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명작.

이런 유명한 IP로 MMORPG를 만든다고 하자, 모두가 기대했으나…… 나온 게임은 망작 오브 망작이었다.

이대로 서비스를 종료할 거라 생각했는데, 개발진들이 이를 악물고 리뉴얼해 살려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잘 서비스하는 중이다.

“너 술만 마시면, 판타지아 테일즈는 그렇게 망할 게임이 아니라고, 대박 칠 게임이었다고 울며불며 소리쳤잖아.”

“아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왜 없는 얘기를 지어내?”

“…….”

이번에는 안 그랬을지 모르지만, 1회차 때 많이 그랬다.

“어쨌거나 이제 네 거니까 한번 니가 원하는 대로 뜯어고쳐 봐. 이게 정말로 대박 칠 게임이었는지 한번 확인해보자.”

작가나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자식처럼 아끼듯, 개발자 역시 마찬가지다.

선우는 자신이 처음으로 기획했던 게임이, 다시 자신의 품 안으로 돌아온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그런 싸구려 도발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선우는 씨익 웃었다.

“잘 아네. 이미 넘어갔어.”

* * *

강선우는 바로 LD스튜디오 개발3팀 출신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그러고는 LD스튜디오에서 판타지아 테일즈를 사들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차수연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강선우는 선언하듯 말했다.

“예. 이 게임은 이제 제 겁니다.”

개발3팀에서 일한 직원이라면, 강선우가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큰 열정을 불태웠는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발3팀은 별로 힘이 없었고, 개발하는 내내 사업팀의 간섭에 시달렸다.

콘텐츠를 다 만들어 놓았더니 축소시키거나, 기본 아이템을 랜덤박스로 만들라고 하거나, 시네마틱 영상 제작은 돈이 많이 들어가니 빼라는 것 등등.

그 고생 끝에 게임이 완성돼 출시되자 다 같이 만세를 부르고, 부둥켜안고 소리쳤다.

그러나…….

출시 1년도 안 돼 온갖 사건사고를 겪으며 운영이 중단됐다. 이 소식에 몇몇 직원은 울음을 터트렸다.

그랬던 게임이 다시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강선우는 직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판타지아 테일즈는 레전드덱 런칭 타이틀로 재출시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이 게임을 리메이크해야 합니다.”

차수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리메이크할 건가요?”

그러자 강선우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제가 처음에 기획했던 대로요. 이번에는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어떻게 하면 재밌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지입니다.”

* * *

[LD스튜디오, 판타지아 테일즈 IP SW게임즈에 전격 매각]

[LD스튜디오, 판타지아 테일즈 개발비 전액 회수!]

[SW게임즈는 어떤 회사인가?]

[판타지아 테일즈, 다시 기획자의 품으로……]

-와! 자기가 개발한 게임을 자기가 다시 사들인 거야?

-대체 돈이 얼마나 많기에? 퀵샤카 오션월드로 많이 벌었나?

-뭐, 컨티뉴 캐피탈 투자를 받았으니 돈은 넘쳐나겠지.

-그런데 이미 망한 게임을 살 필요가 있나?

-그러게. 그냥 새로운 게임 개발하는 게 나을 텐데.

-예토전생 시키려는 건가?

-망한 게임을 살릴 수가 있나?

-내놓은 게임들 대박 친 걸 보면, 실력은 있는 것 같은데.

-에이, 블록밸리 개발툴로 만든 캐주얼 게임과 MMORPG는 완전 다르지.

-어쨌거나 LD스튜디오는 망한 게임 개발비 회수한 거면, 대박 아닌가?

LD스튜디오는 판타지아 테일즈 매각에 이어, 이번에는 새 스튜디오 인수를 발표했다.

[LD스튜디오, AE에게서 GR스튜디오 인수! 인수가 약 1억 달러]

[진태경 대표, 직접 게리 리처드슨 영입을 발표!]

[게리 리처드슨, 한국 최고의 게임사와 함께하게 되어 영광……]

-말도 안 돼! 게리 리처드슨이라니!

-ㅎㄷㄷ 게임업계의 전설을 모셔오다니. LD가 이번에 제대로 칼 갈았네.

-그럼 스타스트림이 한국 게임이 되는 거야?

-미쳤다~ 미쳤어~

-오오! 이번에는 좀 믿어 봐도 될 듯!

-그게 누군데, 이 씹덕아?

-뭐야? 게리 리처드슨을 모른다고?

-게임 역사도 모르는 무식한 놈!

-공부를 하세요, 공부를!

LD스튜디오의 게리 리처드슨 영입 소식에 선우 역시 깜짝 놀랐다.

“헐! 게리 리처드슨의 스튜디오를 인수하다니.”

“그게 누군데?”

내 물음에 선우는 반문했다.

“울트라 시리즈 몰라?”

“뭐였더라?

그러자 선우는 열변을 토하듯 설명해주었다.

“명작 중의 명작, 갓겜 오브 갓겜이지. 아니, 갓갓갓겜이랄까?”

“그 정도야?”

“그럼! 현재의 롤플레잉 게임의 틀을 확립한 게임이니까. 만약 울트라가 없었다면, 지금의 RPG는 전혀 다른 모습일걸.”

롤플레잉 게임(RPG)이란 역할극이다.

플레이어는 마치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 같이 몰입하게 된다. 그러니 강한 적을 무찔렀을 때는 기뻐하고, 동료가 죽었을 때는 슬퍼한다.

“게리 리처드슨은 현실 같은 게임을 구현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지. 음식, 무기, 아이템, NPC 등등.”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그때는 80년 초반이었어. 당시 컴퓨터 성능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걸 해냈지.”

그렇게 해서 나온 울트라1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이어 나온 2와 3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때 그가 만든 유저 인터페이스(UI)와 맵 표식, 상호작용 등이 지금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그 뒤에 나온 모든 RPG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울트라1 출시 이후, 인터뷰한 걸 보면 나중에는 하나의 세계에서 전세계의 플레이어가 접속해 함께 게임을 하고, 협업해서 몬스터를 물리치는 게임이 나올 거라고 말했지.”

“그거 MMORPG잖아.”

MMOPRG의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는 대규모 다중 플레이어의 온라인 접속을 뜻한다.

“그러니까. 대단하지 않아? 그런 기술이 나오기 전부터 그런 게임을 만드는 것을 꿈꿨다는 게. 아무튼 게임 역사를 얘기할 때 미야모토 시타로나 게이브 맥렌 등과 함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야. 그야말로 전설적인 개발자지.”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떠올랐다.

“아! 생각났다.”

선우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게임업계의 전설 게리 리처드슨을 모를 리 없지.”

“…….”

그런 거야 게임 개발자나 게임 역사에 관심 깊은 사람들이야 알지, 나 같은 일반인이 알 리 있나?

내가 그를 기억한 건, 그 뒤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LD스튜디오가 욕을 먹긴 해도 돈은 잘 버는 기업이다.

확률 조작 사태 이후 브라더후드M의 매출이 반의 반토막 나고, 좀 있으면 망할 거라는 얘기를 듣긴 해도 여전히 매년 수천억씩 벌고 있다.

이런 LD스튜디오가 망한 것에는 결정적 트리거가 된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게리 리처드슨의 영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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