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리메이크 (2)
난 진태경 대표에게 물었다.
“트럭시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잘 이해는 되지 않습니다. 누가 결제하라고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
꼬우면 접으라는 건가?
“시위로 인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유저들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시위하는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 모양이다.
하기야 이딴 마인드니, 확률 조작 같은 짓거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한국 최고의 게임사인데, 대체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됐지?
믿기지 않겠지만 한때 LD스튜디오는 국산 MMORPG의 자존심으로 불리며 게이머들에게 사랑을 받는 회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LD스튜디오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은 딱 두 가지.
바로 랜덤박스와 확률 조작이다.
난 선우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잘 만든 게임이라고 해서 반드시 흥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흥행한다고 해서 반드시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한때 대한민국 PC방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지금은 한국의 민속놀이라 불리는 스타크라이스가 그렇다. 게임은 패키지로 팔았지만 듀얼넷은 무료였기에, 서버 유지비를 생각하면 이익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반면, 브라더후드M은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한국 매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확률 조작 사태 이후 랜덤박스에 대한 반감은 극도로 높아졌고, 각국 정부는 이를 도박으로 규정하고 규제에 나섰다.
나이트라이트와 블록밸리의 성공에서 알 수 있듯, 게임 시장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이제는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 내놔봐야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아마 진태경 대표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급하게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중.
이것저것 프로젝트를 여러 개 공개하긴 했는데, 진행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난 그에게 말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저도 한번 만나뵙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공매도 사태를 주도했다고 들었습니다.”
난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전 그저 직원일 뿐인데요.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별로 믿는 것 같지는 않다.
진태경 대표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제안 드릴 게 하나 있어서요.”
“어떤 겁니까?”
“일전에 LD스튜디오가 개발한 게임이 하나 있습니다. 판타지아 테일즈라고 아시나요?”
진태경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저희 회사가 재작년 출시한 게임이죠.”
PC MMORPG로 나름 기대를 안고 출시했으나, 엉망인 운영과 사건사고로 고작 1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한 비운의 게임이다.
그는 의아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대체 망한 게임 얘기는 왜 꺼내나 싶겠지.
“그 게임을 사고 싶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였는지, 진태경 대표는 살짝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IP를 사겠다는 겁니까?”
“전부요”
“전부라면……?”
“IP는 물론이고 개발 데이터까지 전부 포함해서요.”
한마디로 게임을 통째로 넘기라는 것.
진태경 대표의 눈빛은 ‘이 자식이 또 뭔 짓을 하려는 거지?’라며 경계하는 듯했다.
“어째서 판타지아 테일즈를 사려는 겁니까?”
난 그 이유를 한마디로 말해주었다.
“제 친구가 만든 게임이라서요.”
* * *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후회하는 일이 하나쯤은 있다.
나에게 프리머스 사태가 그랬다면, 선우에게는 판타지아 테일즈가 그랬다.
판타지아 테일즈는 강선우의 기획에서 출발했다.
어렸을 때부터 라이트 노벨, 웹소설,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심취해 있던 선우는 항상 판타지 세상을 만드는 것을 꿈꿔왔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게임 개발자를 택했고.
선우가 만든 첫 기획이 바로 판타지아 테일즈다.
캐릭터와 스토리를 중심으로 레이드, 던전, 탐험, 모험, PvP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게임이다.
이 기획서가 통과되며 판타지아 테일즈는 정식으로 개발이 추진됐다.
블러드앤매직을 만들었던 류명훈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그렇게 개발3팀이 꾸려지고, 강선우는 여기에 기획자이자 수석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다.
디렉터에 이은 2인자의 자리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블러드앤매직M 개발이 진행되며 류명훈 디렉터는 그쪽을 신경 쓰느라 바빠졌고, 강선우가 사실상 책임지고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갔다.
강선우가 실질적인 디렉터 역할을 맡아 진두지휘하자 개발은 오히려 더욱 탄력이 붙었다.
그러나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게임 개발에는 수백 명의 인력과 수백억의 돈이 들어간다.
개발은 개발팀이 하지만, 돈을 대는 것은 사업팀이다.
때문에 자기 돈으로 자기가 개발하는 인디 게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대형 게임사의 개발에는 사업팀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개발 중이던 게임이 엎어지거나, 개발 방향이 바뀌는 것은 흔히 있는 일.
기획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탐험과 모험 콘텐츠는 대폭 축소되거나 삭제됐고, 대신 PvP가 강화됐다.
유저들끼리의 경쟁을 부추겨야 돈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같은 MMORPG라고 해도 브라더후드와 판타지아 테일즈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게임이다.
브라더후드의 메인 콘텐츠가 PvP인 반면, 판타지아 테일즈는 모험과 탐험, NPC들과의 유대 관계가 메인이다.
그런데 여기에 온갖 브라더후드식의 BM을 가져다 붙이며 랜덤박스로 떡칠을 해놓았다.
또한 애초에 모든 콘텐츠를 무과금, 또는 소과금으로도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이걸 난이도를 조정해 과금이 없이는 상위 콘텐츠를 해금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렇다 보니 결과물은 최초의 기획과는 점점 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자체는 재밌었다. 만약 운영만 잘했다면 향후 LD스튜디오를 먹여 살릴 IP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운영진이 아이템을 복사해 팔아먹질 않나, 보상이랍시고 재화를 마구 뿌려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질 않나, 계정을 멋대로 삭제하질 않나, 신규 업데이트를 중단하질 않나…….
온갖 사건사고 끝에 출시 1년 만에 운영을 종료했다.
그렇게 판타지아 테일즈는 선우에게 아픈 손가락으로 남았다.
이게 못내 마음에 걸렸던지, 이후에도 술만 먹으면 한탄을 늘어놓았다.
‘판타지 테일즈, 진짜 잘 만든 게임이야.’
‘내가 만들어서가 아니라 정말 좋은 게임이었어.’
‘그렇게 망할 게임이 아니었다니까.’
‘아오! 운영만 제대로 했으면 대박이었을 텐데.’
‘그 뒤에 캠페인과 시나리오도 엄청 많았는데, 전부 폐기했고.’
‘캐릭터들도 진짜 좋았는데.’
‘이놈의 엘디벌롬들만 아니었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망한 개발자의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후 중국의 한 게임사가 ‘환상대륙’이라는 멀티 플랫폼 게임을 출시해 중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한국에서도 브라더후드M을 밀어낼 정도였다.
그걸 본 선우는 깜짝 놀랐다.
‘야! 이거 판타지아 테일즈 베낀 거야.’
‘아, 뭔 소리야?’
‘진짜라니까. 설정, 배경, 모션, 캐릭터까지 베낀 게 한둘이 아니야. 반쯤 복붙이라니까. 내 게임이 원래 이렇게 나왔어야 했는데!’
‘에이, 설마…….’
놀랍게도 이 말은 사실이었다.
환상대륙의 디렉터인 왕쑤웨이는 판타지아 테일즈에서 강한 영감을 받았다고 대놓고 말했다.
엄밀히 말해 환상대륙은 판타지아 테일즈를 그대로 베낀 게 아니다.
많은 부분이 비슷했지만 훨씬 더 나았다. 그리고 이는 선우가 원래 기획했던 게임의 형태와 비슷했다.
선우는 초기 기획서가 그쪽으로 흘러 들어갔을 거라 추정했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그리고…….
이 게임사는 환상대륙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나중에 몰락한 LD스튜디오를 인수한다.
* * *
난 진태경 대표를 보았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을 죽였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망할 때가 되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되겠지만.
“강 팀장…… 아니, 강 대표가 컨티뉴 캐피탈 쪽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가 사실이었나 보군요.”
“예. 중학생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설마 친구라서 투자한 겁니까?”
“비슷합니다.”
SW게임즈는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한 세 곳 중 하나로 알려졌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한 건 아니다.
SW게임즈에 투자한 것은 컨티뉴 캐피탈 산하의 사모펀드. 그리고 이 펀드의 소유주는 100퍼센트 강선우다.
이는 KNC인터내셔널 사태 이전에 나에게 투자했던 선우가 당연히 받아야 할 자신의 몫이다.
“친구가 기획했던 게임을 다시 친구에게 돌려주겠다는 겁니까?”
“비슷합니다.”
난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어차피 LD스튜디오가 가지고 있어 봐야 쓸 일은 없지 않나요?”
“강선우 대표에 손에 들어가면 다를 테구요?”
난 그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아마도요.”
판타지아 테일즈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은 강선우. 따라서 이를 고칠 수 있는 사람 역시 강선우뿐이다.
선우가 한 말대로라면 분명히 똥겜을 갓겜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레전드덱의 런칭에 맞춰 게임을 개발하라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얘기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들었던 게임을 리메이크하는 거라면?
물론 이것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긴 하지만, 지금 선우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진태경 대표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돈 없는 게임사에게 이런 제안을 던졌다면 바로 받았겠지만, LD스튜디오가 돈이 아쉬운 곳은 아니다.
LD스튜디오에게 있어서 판타지아 테일즈는 쓸모가 없다. 그동안 서비스를 접은 게임이 어디 한둘인가?
그러나 내가 필요로 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생각이 좀 달라졌겠지.
원래 버리려던 물건도 다른 사람이 원한다는 걸 알게 되면,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지기 마련.
“팔지 않겠다고 한다면요?”
난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럴 리가요. 절대 그런 말씀을 하실 리 없을 겁니다.”
“어째서요?”
“반드시 파실 테니까요.”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무조건 팔라는 강요처럼 들리는군요.”
“맞습니다.”
내 말에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뭐라구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협박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은 다르다. LD스튜디오를 상대로는 갑질 좀 해도 되지 않을까?
“전 반드시 그 게임을 살 생각입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말이죠.”
팔지 않는다면 방법은 두 가지.
LD스튜디오를 통째로 인수하거나, 반대로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거나.
바보가 아니라면, 내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지.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미 망해서 서비스를 종료한 게임을 돈 주고 팔 수 있다면 남는 장사 아닌가요?”
“하지만 LD스튜디오에서 망한 게임이 다른 게임사에서 부활한다면, 제 입장이 우스워지겠죠.”
“입장이 우습지 않을 만큼 금액은 제대로 쳐드리겠습니다.”
“얼마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
일명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인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받아보는 질문이다. 성지(?)에 핸드폰 사러 가거나, 용산에 그래픽 사러 갔을 때 등등.
망한 게임은 얼마에 사야, 잘 샀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이쪽에서 금액을 정확히 책정하기 힘들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에게 떠넘기는 거다.
“원하시는 금액을 말씀해주세요. 깔끔하게 거래하겠습니다.”
그는 모르겠지만, 난 1회차 때 홍당무마켓 매너온도 97도까지 찍은 남자다. 단 한 건의 불만족 후기도 받아본 적 없다.
하지만 혹시 몰라 한마디 덧붙였다.
“설마 터무니없는 금액을 얘기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