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Computer Graphics (10)
[(WST) 레전드게임즈, 써릴 스크린 공개!]
[탐 스콧 CEO, 써릴 엔진과 LED 스크린을 결합한 신기술 발표!]
[써릴 스크린, 향후 그린 스크린을 대체할 것……]
-와! 미쳤다! 저런 그래픽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한다고?
-써릴 엔진5 성능이 저 정도야?
-그럼 앞으로는 실사 같은 그래픽 게임도 만들어진다는 거잖아.
-오오! 레전드게임즈!
-저런 게 있으면 혼자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나?
레전드게임즈의 발표는 로키의 공개 이상으로 할리우드에 큰 충격을 안겼다.
크로마키(Chroma Key) 기법이 탄생한 이후, 수십 년 동안 할리우드는 그린 스크린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촬영하고, 이후 배경을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현실의 장면은 물론,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면까지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린 스크린은 모두가 쓰는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린 스크린이 만능은 아니었다.
잘하면 자연스러운 영상이 만들어지지만, 잘못하면 인물과 배경이 따로 놀게 된다.
그럼 다시 영상을 찍고, 다시 CG 작업을 해야 한다. 이는 제작비를 키우고 제작기간이 길어지게 하는 주범이었다.
그리고 ‘그린(Green)’ 스크린인 만큼 촬영시 초록색을 배제해야 하고, 피부에 비치는 빛이나, 눈동자에 비치는 배경, 빛을 반사하는 물체 등은 다시 일일이 CG로 작업해야 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바로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하기 힘들다는 것.
기계 인간들과 육탄전을 벌이는 주인공은 알고 보면 그린 스크린을 배경으로 혼자 몸부림치고 있을 뿐이고, 장엄한 우주를 바라보는 주인공 역시 그저 그린 스크린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실제 배경에서 연기할 때에 비해 연기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린 스크린을 사용하면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현장 촬영을 고집하는 감독과 배우들도 많았다.
그러나 써릴 스크린은 이러한 문제를 전부 해결했다.
배경에서 나오는 빛이 인물의 피부와 눈동자, 반사체에 비치며 별다른 CG 작업 없이도 자연스러운 광원 연출이 가능했고, 실시간으로 배경이 렌더링 되는 만큼 배우들도 훨씬 자연스럽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스크린에 비친 화면인 만큼 실제와 구분이 힘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배우들의 몰입감은 확연히 올라갔다.
처음부터 배경과 합성해서 찍고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이후 재촬영이나 CG 작업에 들이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써릴 스크린에서 연기한 배우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세트장보다 써릴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게 훨씬 실감 나.”
“써릴 스크린 덕분에 정말로 사이버펑크 세계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앞으로 다시는 그린 스크린에서 연기를 못할 것 같아.”
벤자민 디아민디 감독은 써릴 스크린에 대해 한마디로 평가했다.
“앞으로 영화는 써릴 스크린을 사용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구분될 것이다.”
그는 할리우드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천재 감독이자 흥행 감독.
그런 그가 써릴 스크린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자, 다른 감독들 역시 크게 관심을 가졌다.
다행히 써릴 엔진과 써릴 스크린은 라이선스 비용만 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 유수의 제작사들은 바로 도입을 서둘렀다.
“어서 레전드게임즈에 연락해!”
“우리도 써릴 엔진과 써릴 스크린을 도입해야 해.”
“당장 연락해! 아니, 내가 지금 레전드게임즈로 갈 테니 스케줄부터 잡아 봐.”
* * *
인더스트리얼 매직 앤드 라이트(Industrial Magic & Light).
줄여서 IML이라 불리는 이곳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뛰어난 시각효과(VFX) 스튜디오다.
이곳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유명 영화의 시각효과를 담당했고, 당대에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장면들을 구현해냈다.
다즈니는 큰돈을 들여 이 기업을 인수했다.
IML은 압도적인 CG 기술력과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 모두에서 어느 기업도 따라오기 힘든 최고의 CG 장면들을 선보였다.
이러한 기술적 우위는 다즈니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최고라고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로키가 공개된 이후, IML의 사장 칼 체이펙은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로키의 성능은 과장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게 무슨 대단한 신기술은 아닙니다. CG 작업에서 중요한 건 단지 뛰어난 기술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제작 노하우입니다.”
IML은 각종 특허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막대한 데이터와 노하우를 축적해 놓았다.
그는 아무리 로키가 뛰어난 프로그램이라 해도 단기간에 이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써릴 스크린이 공개되고 나자 산산이 부서졌다.
‘이건 말도 안 돼…….’
자연스러운 빛 반사를 표현하기 위해 LED 스크린에 화면을 띄워놓고 촬영하는 건 이미 영화계에서 사용되는 기법이었다.
하지만 CG 후작업이 그린 스크린보다 어렵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쓰였다.
그런데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게임 엔진을 활용해 배경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한다니!’
만약 실제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써릴 스크린은 로키의 기능 중 하나.
로키로 3D 배경을 구성한 다음 이를 써릴 엔진을 활용해 LED 스크린에 띄워서 촬영하면, 처음부터 CG와 합성한 것과 같은 영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재촬영과 후작업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만큼, 그야말로 기술적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칼 체이펙은 다즈니 임원들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말했다.
“이제 다즈니의 기술적 우위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앞으로 영상 콘텐츠 산업은 스노우 크래시와 레전드게임즈가 주도해 나가게 될 겁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저희도 당장 이 기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 * *
난 탐 스콧 CEO와 통화했다.
[사방에서 연락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다즈니에서도 기술을 도입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앞으로는 이 기술이 업계 표준이 될 겁니다.”
[놀랍습니다. 정말이지 대표님께서는 남들이 생각도 하지 못하는 걸 생각해내시는군요.]
“뭘요.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건데요.”
언제나 그렇듯 내가 생각해낸 건 아니고, 1회차 때도 실제 쓰였던 기술이다.
기술이 보편화된 후에는 써릴 스크린만 활용해 영화를 찍기도 했고, 나중에는 스크린이 아닌 홀로그램을 띄우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과거 사진과 영상은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린스타그램 덕분에 누구나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게 됐고, 에이튜브와 톡틱 등의 플랫폼과 프로프리미엄 같은 편집 프로그램 덕분에 누구나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로키와 써릴 엔진 덕분에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블록밸리 스튜디오로 인해 1인 게임 개발자들이 늘어난 것처럼, 레전드게임즈로 인해 1인 영화 제작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내가 통화를 끝내자, 옆에서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던 동호 선배가 말했다.
“이야! 설마 게임 엔진을 영화에 사용할 줄이야. 탁동식 감독이 보자마자 바로 계약서에 사인할 만해.”
“이제는 제약 없이 원하는 장면을 뽑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아름 씨는 CF나 패션쇼에 어떻게 쓸지 고민 중이고. 엔터 업계는 이걸로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써릴 스크린은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뮤직비디오, CF, TV쇼 등에도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영상 길이 대비해서 가장 많은 CG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뮤직비디오.
노래가 흘러나오는 3분 동안 배경이 수십 번은 바뀌니까.
최근 뮤직비디오는 더욱 화려해지는 추세였다. 수십 개의 세트장을 만드는 것은 물론, 해외 로케이션까지 한다.
뮤직비디오 하나 만드는 데 10억을 썼다는 건 이제 대단한 뉴스도 아니다.
제작사들이 이렇게 뮤직비디오에 돈을 쏟아붓는 건 그만큼 인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보는 음악의 시작을 연 것은 MTV. 그리고 이후 에이튜브와 톡틱이 등장하며 보는 음악은 날개를 달았다.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영상을 접하게 되며. 노래 못지않게 비주얼, 무대의상, 춤, 퍼포먼스 등이 중요해졌고, 여기서 가장 수혜를 입은 게 바로 K-팝.
이는 K-팝의 글로벌화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다.
K-팝이 글로벌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는 에이튜브와 톡틱의 성장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주얼하면 또 K-팝이지. 여자 아이돌들이 노래 부르며 칼군무 추는 걸 보면 저절로 박수가 나온다니까. 저렇게 추기까지 얼마나 연습했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지고 그래.”
“그럼 남자 아이돌들은요?”
“응? 걔들은 뭐?”
“…….”
남의 집 딸내미만큼이나 아들내미들도 좀 걱정해줬으면 좋겠다.
“엔터사에 로키와 써릴 스크린에 대한 자료 배포해요.”
컨티뉴 캐피탈은 이제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됐다.
“안 그래도 범석이가 자료 만드는 중이야.”
이제 한 공간 안에서 원하는 장면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세트장도, 로케이션도 필요 없으니 제작비와 기간은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근데 다리안 헤럴슨은 죽다 살아났네. 설마 소송 이후 그린 스크린 공포증 같은 게 생겼을 줄이야.”
“으음.”
그린 스크린에서의 연기는 전적으로 배우의 상상력에 의존한다. 그런데 거기서 전 와이프 얼굴이 떠오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나저나 이건 1회차 때는 없었던 일인데.
그는 재판 이전부터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그리고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리고 재판 도중 더욱 심해졌고.
원래 재판은 1년은 더 걸리고, 복귀는 재판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뒤에나 한다.
리버티의 주연도 원래 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재판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복귀한 모양이다.
“…….”
그럼 설마 이거 혹시 나 때문 아닌가?
내가 거기서 조언해준 바람에 1회차 때보다 빠르게 술도 끊고 변호인단을 교체한 거라면?
어쨌거나 써릴 스크린 덕분에 해결돼서 다행이다.
병 주고 약 준 셈인가?
“너, 다리안 만나봤다고 했지?”
“바베이도스에서 만났다고 했잖아요.”
“나도 팬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따라갈걸.”
“뭐, 나중에 LA 가면 촬영 현장에 슬쩍 한번 놀러 가요.”
“어! 그래도 되나?”
“안 될 거 없죠.”
이제 리버티 제작에 있어 컨티뉴 캐피탈은 중요한 협력사가 됐다. 일 핑계 대고 찾아가도 이상할 건 없지 않을까?
“그나저나 애니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지금 포세이돈 개봉도 앞두고 있을 텐데. 그거 제작비만 1억 달러가 넘는 대작인데, 제대로 개봉할 수 있을까?”
난 피식 웃었다.
“글쎄요. 이제 누가 그녀에게 신경이나 쓰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