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Computer Graphics (6)
[컨티뉴 캐피탈, 산하 사모펀드 이스트레이크 PE를 통해 한국 콘텐츠 투자 강화]
[탁동식 감독이 넷플레이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알카트라즈, 한국에 CG 스튜디오 설립!]
CG 제작 프로그램 로키는 할리우드를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데, 프리즈너가 한국에 알카트라즈 스튜디오를 설립하겠다고 하자, 한국의 제작사들은 술렁거렸다.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은 작품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CG 제작을 맡아주겠다는데?”
“가상 인간도 그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드는 거라며?”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지 않아도, 그 정도 퀄리티를 뽑아낸다는 건가?”
“CG만 해결돼도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이러면 컨티뉴 캐피탈 투자를 받는 게 낫지 않나?”
어느 쪽의 투자를 받나 OTT를 통해 전세계에 배급하는 것은 똑같다.
물론 OTT의 투자를 받는 독점작만큼 강력한 푸시를 받지는 못하겠지만, 대신 IP를 공동으로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메리트였다.
탁동식 감독은 로키의 CG 제작 성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게다가 여기에는 아직 대중에 공개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게 가능하다고? 그럼 앞으로는 그린 스크린이고, 세트장이고 없어도 되는 건가?’
그걸 본 순간, 그는 고민하지 않고 서류에 사인했다.
탁동식 감독은 ‘세븐 라운드’ 제작발표회에서 말했다.
“탁스토리는 이스트레이크 PE의 투자를 받아 ‘세븐 라운드’ 제작에 들어갑니다. 작품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넷플레이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세븐 라운드와 함께할 주연 배우를 소개합니다.”
* * *
난 탐 스콧 CEO와 통화했다.
“그떄 얘기한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스노우 크래시가 로키를 공개하기 이전, 난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말씀하신 건 프리즈너와 얘기해 진행 중입니다. 설마 써릴 엔진을 이런 식으로 영상 산업에 적용할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뭘요.”
나처럼 미래를 알면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레전드게임즈는 게임 엔진 개발사이자, 게임 개발사이자, ESD.
이중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게임 엔진. 애초에 내가 레전드게임즈를 반드시 인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역시 그것 때문이고.
“장담하는데 앞으로는 이게 업계의 표준이 될 겁니다.”
[하하! 대표님 말씀이라면, 이제는 파인애플을 얹은 피자가 맛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
그거 맛있지 않나?
뭐가 문제야?
전화를 끊는데, 마침 미팅을 끝마친 동호 선배가 자리로 돌아왔다.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에서 엔터 사업 투자를 담당하는 펀드는 이스트레이크(East Lake) PE.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트레이크 PE라…… 이름 참 잘 지은 것 같아.”
“선배 이름에서 딴 거죠.”
어차피 나중에는 본인이 가져갈 거라 일부러 그렇게 지어줬다.
내가 선배 몫을 챙겨주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중이다.
“응? 나 호수 호(湖)가 아니라, 넓을 호(鎬)자 쓰는데.”
난 당황했다.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해요?”
“안 물어봤잖아.”
“저번에 이름 한자로 쓰라고 하니까 동녘 동(東)에 호수 호(湖)로 썼잖아요.”
“아! 갑자기 써보라고 하니까 생각이 안 나서 그냥 아무거나 쓴 거야. 요즘 한자를 누가 손으로 쓰나?”
“…….”
뭐, 필요하면 나중에 이름의 한자를 바꾸든지 하겠지. 펀드 이름 바꾸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을까?
“세븐 라운드 투자 확정됐어. 편당 제작비 60억 원. 총 10편이니 600억 원. 이 정도면 한국 드라마 중에서는 최대 아닌가?”
“그래 봐야 미드 제작비에 비하면 반의반도 안 되잖아요.”
“거기야 그만큼 시장이 크니까.”
“뭐, 우리도 미국에서 성공하면 되죠.”
이게 나중에 대박을 치는 걸 보면, 넷플레이가 배 아파하지 않을까?
“그리고 요즘은 원 소스 멀티 유즈(OSMU)가 대세예요.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으면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죠.”
잘 만든 영상 콘텐츠는 게임으로 만들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게임원작 영화나 드라마는 만화원작만큼이나 조심해야 하지만.
동호 선배는 혀를 내둘렀다.
“루카스 CEO가 대단하긴 대단해. CG 제작 프로그램 하나 때문에 투자를 받고 싶다는 제작사들이 줄을 서고 있으니.”
이제 영상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CG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단언컨대 CG를 쓰지 않는 영화나 드라마는 없다.
꼭 뭘 그려 넣는 것만이 아니라, 색감 보정(Color Grading) 등의 보정 작업도 CG의 영역이니.
“지금 할리우드 CG 업체들은 난리 났던데. 로키 공개 이후 다즈니 주가가 10퍼센트 넘게 떨어졌어.”
그 이유는 세계 최대 CG 업체인 IML이 다즈니 산하이기 때문.
“사실 진짜 난리 난 기업은 따로 있죠.”
내 말에 동호 선배는 되물었다.
“그래? 어딘데?”
난 1회차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어디긴 어디겠어요? 그래픽 소프트웨어 하면 생각나는 기업이 하나 있지 않아요?”
* * *
에도바(edoba).
1980년 무렵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IT기업이다.
원래는 출판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였으나, 이후에는 사진과 영상 전문가를 위한 다양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소프트웨어 기업이 됐다.
대다수의 미국 기업이 그러했듯 에도바는 금융위기 당시 큰 어려움을 겪었고, 직원의 10퍼센트인 800여 명을 해고해야 했다.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1000달러가 넘는 프로그램이 잘 팔릴 리 없었다. 불법복제도 문제였다.
당시 시라반 슈리 CEO는 큰 결단을 내렸다.
바로 기존 패키지 판매에서 구독형 모델로 전환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1000달러짜리 프로그램을 사는 대신 매달 30달러씩 결제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소비자는 프로그램을 직접 사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고, 회사는 더 많은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에도바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처음에는 우려가 컸으나, 구독형 서비스 덕분에 에도바는 적자 폭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회생의 기회가 찾아왔다.
엔플과 구블이 스마트폰을 내놓았고, 페이스노트는 소셜 네트워크를 출시했다.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사진으로 올렸다.
그리고 이어서 투위치, 에이튜브, 톡틱 등의 영상 플랫폼이 뜨며, 누구나 영상을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과거 전문가들이 하던 일을 모두가 하게 되며, 포토샵과 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에도바는 그래픽 소프트웨어 분야의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했고, 빅3인 엔플, 구블, NS조차도 이 시장은 넘보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가격을 올렸음에도 이용자들은 점점 늘어났고, 에도바는 어느새 시총이 2000억 달러가 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최근 에도바를 위협할 만한 기업이 하나 등장했다.
파그마(Pagma).
10년 전 아데오 벨데가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그가 만든 것은 디자인 협업 소프트웨어로 테이블 위에 하나의 그림을 놓고 여러 명이서 작업하듯, 한 파일에 여럿이 동시에 접속해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에도바의 포토샵이 컴퓨터나 앱에서만 작동하는 것과는 달리, 파그마는 웹 기반이다.
웹 브라우저에서 주소와 코드만 입력하면 PC, 스마트폰, 태블릿 할 것 없이 언제 어디서든 접속이 가능했다.
새로운 작업자를 추가하고 싶으면 그저 링크와 코드만 보내주면 되는 만큼, 이를 통해 모르는 사람들끼리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
작업 내용은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언제든 접속해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또한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을 바로 반영해, 기능을 업데이트했다.
무엇보다 큰 강점은 웬만한 기능은 다 무료라는 것이다.
전문적으로 사용하려면 결제를 해야 하지만, 일반적인 사용에는 굳이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
사용하기도 쉽고 협업도 쉬운 데다가 공짜인 만큼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파그마는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파그마의 점유율이 치고 올라오며 에도바의 월 활성이용자 수(MAU)는 정체 조짐을 보였다.
아직은 에도바에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나, 시라반 슈리 CEO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몇 년 안에 파그마가 에도바의 점유율과 수익을 갉아먹을 수도 있어.’
더 크기 전에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다.
에도바 역시 일부 기능을 무료로 풀어 파그마의 성장을 견제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괜히 어설프게 무료화 정책을 벌였다가는 오히려 기존 유료 구독자가 구독을 해지할 가능성이 크다.
‘경쟁자와 싸우는 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야.’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바로 경쟁자를 없애버리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경쟁자를 없앨 수 있을까?
그건 바로 돈으로 집어삼키는 것이다.
* * *
에도바는 초창기부터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렸다.
이전에도 경쟁사를 여럿 인수한 전력이 있다. 이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에도바는 파그마에 100억 달러의 인수를 제안했다.
하지만 파그마의 창업자 아데오 벨데는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자 슈리 CEO는 점차 금액을 높여 불렀다.
그리고 그는 직접 아데오 벨데 대표를 만났다.
슈리 CEO는 그에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아기 신발이 들어있었다.
“아이가 태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첫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아이가 커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죠.”
가벼운 인사가 오간 뒤 본격적인 인수 협상 얘기가 시작됐다.
30대 청년인 아데오 벨데는 그에게 말했다.
“저는 기업을 팔 생각이 없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다음 목표는요? 상장인가요?”
“아마도 그렇겠죠.”
기업을 키워 증시에 상장하는 것은 모든 창업자들의 꿈이라 할 수 있다.
슈리 CEO는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파그마가 지금처럼 빠르게 성장을 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파그마가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에도바가 지켜만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에도바가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에도바는 수많은 인력과 자본이 있다. 그러나 파그마는 그렇지 않다.
파그마가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아데오가 필사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도 잠도 거의 자지 못하고, 주7일 일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10년 동안 좁은 원룸에 살며 일에만 매달린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이대로 10년, 혹은 20년이 더 지나면 파그마는 지금보다 더 크게 성장해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아이는 이미 성인이 되어있고,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도 못 하겠죠.”
사람의 인생에서 성공이란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행복한 가족을 꾸리는 것 역시 성공의 중요한 요건이다.
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인데 정작 가정이 파탄 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일에 매달려 있겠습니까, 아니면 기업을 팔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습니까? 마지막 제안입니다. 200억 달러를 드리죠.”
파그마는 커가는 과정에서 여러 VC의 투자를 받았다.
현재 아데오의 지분은 50퍼센트 수준.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당장 100억 달러를 손에 쥘 수 있다.
슈리 CEO는 상대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최후통첩을 날리듯 말했다.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협상을 취소하고 에도바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해 파그마를 상대하겠습니다.”
“…….”
슈리 CEO는 그의 표정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사람의 체력과 의지란 무한하지 않다.
그가 처음 창업을 했던 19살의 청년이었다면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30대고,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사람은 멀고 불확실한 성공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돈에 더 끌리기 마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