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Computer Graphics (4)
MFW은 퀵샤카의 광고영상을 공개했다.
안나라는 이름의 10대 중후반 정도의 여성이 퀵샤카의 서퍼웨어를 입고 바다에서 서핑을 하는 장면이었다. 동시에 래시가드와 수영복을 입고 해변에서 찍은 화보도 공개했다.
퀵샤카는 최근 가장 뜨고 있는 브랜드.
그런 만큼 광고 모델에 대한 관심 역시 뜨거웠다.
-오! 예쁘다.
-드디어 내 이상형을 찾았음 ㅜㅜ
-자꾸 눈길이 가~ 숨도 못 쉬겠어~
-유명 모델 같은데, 혹시 누군지 아시나요?
-이름이 뭐지? 몇 살이지?
-미국인인가? 프랑스? 호주?
공개한 영상과 화보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모두가 모델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가운데, MFW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안나(Anna)는 디지털 세상을 자유롭게 뛰어노는 메타 휴먼입니다. 그녀를 응원해주세요.]
이 소식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뭐? 이게 가상 인간이라고?
-실제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거야?
-말도 안 돼!
-설마 가상 인간으로 광고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MFW가 메타버스 패션 위크라고 하더니, 디지털에 진짜 진심이었네.
-이제까지 나온 가상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데.
-가상 인간이라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운데. 실제 인간 데려다가 가상 인간이라고 뻥치는 게 아닐까?
-왠지 진짜 인간 같아서 좀 기분이 나쁨.
-그러게. 실제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가짜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불쾌한 느낌이 듬.
-이러다가 모델들 일자리 다 사라지겠네.
-이런 거 못 하게 정부에서 법을 만들어야 한다!
-버튜버들도 전부 퇴출시키자!
그동안 가상 인간을 활용한 홍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유의 어색함으로 인해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안나는 달랐다.
다행히 대다수의 대중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실제 인간이 아니라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영국의 유명 타블로이드지인 ‘옐로우 익스프레스’가 음모론을 제기했다.
[안나는 가상 인간이 아닌 실제 인간. 한국에 감금 돼 강제 노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
해당 언론사는 안나와 함께 학교를 다녔다는 익명의 핵심 관계자를 인터뷰하며, 안나가 한국에 감금돼 강제로 사진과 영상을 찍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영상과 사진에 나온 손가락 모양과 눈의 찡그림을 분석해 살려달라는 구조신호를 보내는 거라 주장했다.
이 기사는 페이스노트를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안나가 실제 인간이냐 가상 인간이냐를 놓고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감금되어 있는 안나를 구출하자는 서명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논란이 더 커지기 전에, MFW는 또 다른 영상을 공개했다.
안나가 디지털 세계를 뛰어노는 영상이었다.
그녀는 집에서 블록밸리 게임을 하던 도중 직접 게임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외형은 블록밸리 캐릭터에 맞게 변했다. 안나는 블록밸리의 게임들을 돌아다니며 다른 캐릭터들을 만났고, 이번에는 나이트라이트의 전장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외형은 또다시 나이트라이트에 맞춰 변했다.
이 영상이 뜨자 최초로 기사를 올린 언론사는 슬그머니 기사를 삭제했다.
이에 대해 항의가 이어지자 옐로우 익스프레스 측은 ‘컴퓨터 안에 감금해 놓고 멋대로 영상과 사진 만들어내고 있으니, 감금과 강제 노동은 맞지 않냐’라며 반박했다.
-ㅋㅋㅋ 가짜 인간이 진짜 인간이라는 가짜 뉴스.
-빛의 속도로 글삭튀!
-저 기사 믿고 MFW 욕하던 놈들 다 어디 갔냐?
-ㅅㅂ 컴퓨터 안에 감금 ㅎㅎ
-그나저나 페이스노트는 아직도 가짜 뉴스 못 거르네. 대체 마이클 골든버그는 뭐하고 있는 거지?
-집에서 나이트라이트나 한 판 하고 있을 듯.
-이러니 페이스노트 주가가 맨날 떨어지지 ㅜㅜ
-그런데 아직도 안나가 실제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놈들이 한둘이 아님.
-내가 믿는 것이 곧 진실이다!
-왜 이런 음모론이 나오는지는 알 것 같음. 사진이야 그렇다 쳐도 영상 퀄리티가 이 정도라는 게 말이 돼?
-대체 이 영상을 어떻게 만든 거지?
-이 정도면 할리우드고 뭐고 다 발라버리는 수준 아님?
가상 인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이제 사람들은 MFW가 이 영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궁금하게 여겼다.
아무리 CG 기술이 대중화되었다지만, 이 정도로 정교한 영상은 할리우드 CG 스튜디오에서나 제작이 가능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 * *
프리즈너가 좀비네이도3의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1분 30초의 짧은 티저에서는 우주의 무중력 공간에서 좀비들이 싸우는 영상이었다.
좀비네이도2 이후 대중들의 관심이 엄청나게 높아진 만큼, 공개 하루 만에 에이튜브에서 1천만 회가 넘게 조회됐다.
놀라운 것은 영상의 퀄리티였다.
좀비네이도가 B급 영화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긴 해도, 어느 누구도 CG 퀄리티를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좀비네이도에 극찬을 아끼지 않은 유명 영화평론가 앵그리 래빗조차도 ‘내가 발로 CG를 만들어도 저거보다는 잘 만들겠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영상의 CG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미쳤다!
-좀비네이도3는 저런 그래픽으로 만든다고?
-프리즈너가 이 정도 CG를 만드는 기술력이 된다고?
-아니, 그런데 우주에서 좀비가 왜 싸우는 거야?
-장르가 스페이스 좀페라인가?
-아, 뭔가 아쉽네. 발로 만든 것 같은 CG야 말로 좀비네이도의 특징인데~
-ㅋㅋ 레알. CG가 너무 깔끔하니 뭔가 어색함.
-기대는 됨. 영화관에서 보면 지릴 것 같은데.
-3편도 극장 개봉하려나?
-당장 좀비네이도 1, 2편 정주행 간다!
라이너스 대표는 공식 발표했다.
“MFW에서 공개한 가상 인간 안나와 이 영상은 AI 기반 CG 제작 플랫폼 로키를 활용해 만든 것입니다.”
프리즈너는 자회사로 CG 전문회사 알카트라즈를 설립하고, 직원 모집 공고를 냈다. 이를 통해 할리우드 CG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생각이다.
이 발표에 대해 할리우드는 발칵 뒤집혔다.
“스노우 크래시가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AI가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자연스러운 장면을 연출한다는 건가?”
“가상 인간을 저 정도로 표현할 정도면, 딥페이크나 디에이징도 문제없겠는데.”
“애니메이션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테고.”
시각효과(VFX, Visual effects)는 영화와 함께 탄생했다
영화 제작자들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연구했다.
배우에게 특수분장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니어처를 만들거나, 셀로판지에 배경을 그린 다음 카메라에 대고 촬영하거나(Matte painting), 아예 필름 위에 일일이 그려 넣기도 했다(Painting on film).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Computer Graphics)이 등장한 뒤, 이 시장은 격변을 맞이했다.
이전에는 사람 손으로 일일이 했던 작업을 이제는 컴퓨터의 연상 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제 CG를 쓰지 않은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배우들이 그린 스크린 앞에서 타이즈를 입고, 센서를 부착한 채 연기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디에이징을 통해 젊어 보이게 만들거나 하거나, 다른 사람의 얼굴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할리우드 영화 시장이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함에 따라 영상 CG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가장 두각을 나타낸 곳은 다즈니 산하의 IML과 호주의 뉴랜드 디지털.
이 두 기업이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고, 그 외에 작은 회사들이 난립해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 독점체제에 균열을 깰만한 기업이 등장했다!
어이없게도 그곳은 할리우드가 무시했던 B급 영화사였다.
* * *
난 프리즈너 라이너스 대표의 연락을 받았다.
그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로키 공개 이후 할리우드는 난리가 났습니다. 영화사와 방송사에서 먼저 계약을 맺고 싶다고 연락을 해오고 있습니다.]
일단 간단한 CG 작업부터 맡겨서 실력을 보겠다는 거겠지.
최근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할리우드 CG 기술은 인간의 눈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갔다.
딥페이크나 디에이징 같은 기술은 이제 흔하다.
로키로 할 수 있는 건 기존 프로그램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로키를 활용하면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더 나은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제작사들에게는 엄청난 메리트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를 위해 이런 엄청난 프로그램을 만들어줄 줄이야.]
“뭘요.”
내가 만들어준 것도 아닌데.
[대표님께서 루카스 CEO와 함께 찾아와 이 얘기를 했을 때만 해도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어! 설마 그날 일부러 루카스 CEO를 저희와 만나게 해주신 겁니까? 로키를 만들어주게 하기 위해서!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뭐…….”
시드가 로키를 프리즈너에 만들어줬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할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내 덕분이라 생각한다는 데 굳이 정정해줄 필요는 없겠지.
난 전화를 끊고 난 뒤 생각했다.
송 가즈키 회장은 소프트박스를 중심에 놓고 투자한 스타트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려는 AI군집 전략을 펼쳤다.
내가 하는 방식 역시 그것과 비슷하다.
여기서 핵심은 스노우 크래시의 클라우드.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모든 기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것은 세계 최고의 AI프로그램 미미르와 세계 최고의 천재 시드 루카스가 있기 때문.
이번에 나온 로키 역시 그중 하나다.
원래는 프리즈너가 CG 작업에 활용할 프로그램이었지만, 가상 인간을 만들어 패션과 매니지먼트 쪽으로도 활용하는 식으로 연관된 기업들에 맞게 적용시켰다.
그리고 이걸 활용할 방법은 몇 가지 더 있다.
* * *
동호 선배는 나에게 물었다.
“이번에 티즌 매물로 나왔던데. 관심 없어?”
“가격은 얼마인데요?”
“3천억 원.”
티즌은 국내 토종 OTT.
가입자는 130만 명 정도이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 못해 매물로 나왔다.
OTT란 오버 더 탑(Over The Top)의 약자로, 여기서 탑이란 영상을 수신하는 셋탑박스(Set-top box).
다시 말해 OTT 기존 셋탑박스를 넘은 VOD와 인터넷 방송을 뜻한다.
이 시장의 선구자는 바로 넷플레이.
인터넷에서 비디오와 DVD를 대여해주는 회사로 출발한 넷플레이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었고, 이는 대박을 터트렸다.
초기에 방송사와 영화사는 기꺼이 자신들의 콘텐츠를 넷플레이에 내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외 수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신 속도의 발달과 콘텐츠 소비가 활발해지며, 이제 OTT는 영상 시장의 주력으로 떠올랐고, 넷플레이는 콘텐츠 업체들 중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다.
OTT가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방송사와 영화사들은 자사 콘텐츠를 넷플레이에서 빼서 독자적인 OTT를 런칭했고, 여기에 빅테크 기업들까지 가세했다.
다즈니 플러스, 엔플TV, AMZ프라임, HOB 맥스 등등.
여기에 국내 토종 OTT까지 더하면, 대략 열 개 정도의 업체들이 경쟁을 벌이는 셈이다. 출혈경쟁이 워낙 심하다 보니, 버터지 못한 기업들은 서로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거나, 매물로 나오기도 했다.
난 잠시 생각한 다음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이제 와서 이 시장에 뛰어들어봐야 뭐 먹을 게 있다구요.”
OTT 시장이 아무리 커봐야 게임에 비할 바는 아니다. 게임은 메타버스의 한 축인 반면, 영상은 독자적인 시장이니.
난 동호 선배에게 말했다.
“중요한 건 콘텐츠예요.”
“콘텐츠?”
“좋은 콘텐츠만 확보하고 있으면 OTT들 줄 세워놓고 얼마든지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어요. 그러니 콘텐츠에 투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