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화. Computer Graphics (3)
성윤아는 아까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이런 여자가 미루 씨 타입인 거예요?”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건 그냥 미국 10대가 좋아할 것 같은 여성의 얼굴을 AI가 분석해서 만든 거예요.”
민아름이 물었다.
“브랜드의 이미지나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가요? 예를 들어 일본 브랜드를 한국에 런칭한다고 할 때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일본인을 만들어내는 식으로요?”
“그럼요.”
난 바로 프로그램에 키워드를 입력했다.
[한국 남성이 선호하는 일본 20대 여성]
잠시 후, 여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160센티 정도 키에 볼륨감 있는 몸매, 그리고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에 귀여운 얼굴을 한 20대 동양인 여성이다.
“와…….”
“확실히 일본인 같은 느낌이네요.”
동호 선배는 사진을 보며 말했다.
“흐음, 왠지 내가 아는 일본 여배우랑 닮은 것 같은데.”
“어! 저도 그 생각했는데.”
난 잠시 누군지 생각해 보았다.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누구를 닮았더라?
“사쿠라 뭐였는데.”
“어…….”
그 순간, 이름이 생각났다.
한국 남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유명한 여자 배우다.
민아름이 물었다.
“누구랑 닮았는데요?”
동호 선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착각했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동호 선배는 나에게 눈빛을 보냈다.
‘설마 눈치 못 챘겠지?’
나 역시 눈빛으로 대답했다.
‘다행히 못 챈 것 같아요.’
‘그런데 진짜 닮지 않았어?’
‘그러게요.’
AI가 너무 정확한 것도 문제다.
이렇게 한국 남성들의 취향을 정확하게 알아내다니!
아무래도 데이터 분석에서 성인용은 제외해야 할 것 같다.
로키의 성능을 두 눈으로 확인한 민아름은 나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실제 모델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난 회귀하기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질문에 답해주었다.
“가상 인간이 실제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어요.”
노래, 연기, 광고 역시 하나의 예술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영화를 볼 때, 배우의 연기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배우의 삶까지 생각한다.
그가 이 역할을 따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등등.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있고, 이는 아무리 정교한 프로그램이 나온다고 해도 흉내낼 수 없을 테니까요.”
따라서 여기서는 반대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가상 인간은 실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자신이 각 게임 속으로 들어가 유저들과 플레이를 할 수도 있고, 나중에는 증강현실이나 홀로그램으로 패션쇼나 공연도 할 수도 있겠죠.”
성윤아가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실제 인간과 똑같아 보여도, 인간이 아니라고 하면,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죠.”
가상 인간은 현재 태동기에 가깝다.
기업들이 이를 마케팅에 조금씩 활용하고 있지만, 기술력의 부족과 대중의 반감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
기존 브랜드가 시도하기에는 약간의 리스크가 있다.
“그러나 MFW는 다르죠.”
메타버스 패션 위크라는 이름답게 애초에 디지털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가상 인간을 모델로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덜할 것이다.
메타버스에서 옷을 판매하는데, 홍보 모델이 메타 휴먼인 건 딱히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남들은 못하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큰 홍보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테고.
내 얘기에 민아름은 감탄했다.
“놀랍네요.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성윤아도 말했다.
“그러게요. 전 이런 걸 상상도 못했어요.”
“뭘요.”
미래를 알고 있으면 이 정도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그걸 현실로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미래는 알아도 그 미래를 만들 능력은 안 된다.
그러나 미래를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투자는 할 수 있지.
민아름은 눈을 빛냈다.
“알았어요. 한번 열심히 해볼게요.”
“예. 앞으로의 일은 여기 이동호 지사장과 상의해가며 진행하면 돼요.”
내 말에 동호 선배는 당황했다.
“응? 나는 왜?”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매니지먼트를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누구를?
“가상 인간이요.”
“응?”
버츄얼 캐릭터에게도 생일과 혈액형, 키, 나이, 몸무게는 물론, 심지어 MBTI까지 있다.
선우에게 좀 듣긴 했는데, 이쪽도 파고들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고 한다.
게임 NPC에게도 설정을 부여하듯, 가상 인간 역시 세세한 설정을 짜줘야 한다. 어떤 취미를 지녔는지, 어떤 특기가 있는지, 어떤 동물을 좋아하는지 등등.
한 명만 만드는 게 아닌 만큼, 각각의 캐릭터의 컨셉을 만들고 그에 맞춰 잘 운영해야 한다.
매니지먼트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당연하게도 가상 인간 본인이 사고를 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운영사가 사고 칠 위험은 얼마든지 있다.
만약 하켄크로이츠나 욱일기가 그려진 티셔츠라도 입히면, 그 캐릭터 생명은 그 날로 끝장이다.
“흐음, 진짜 매니지먼트를 하듯 섬세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건가?”
“그런 거죠.”
“이건 기획사들과도 한번 상의해봐야겠는데.”
동호 선배는 엔터테인먼트 담당, 민아름은 패션 담당.
연예계와 패션계는 떼려야 뗄 수 없으니, 앞으로도 협력할 일이 많을 것이다.
같이 붙어서 일하다보면 더 친해지겠지.
* * *
식사를 끝마친 뒤.
민아름은 바로 일을 시작하고 싶은지, 동호 선배를 끌고 회사로 향했다. 아마 이제부터 둘이 밤늦게까지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둘이 사라지고 나자, 나와 성윤아만 남았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와인 한 잔 더 할래요? 여기 근처에 괜찮은 와인바 있는데.”
“그럴까요?
어차피 집에 가봐야 할 일도 없다.
난 성윤아와 함께 와인바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는 제가 살게요.”
“아니에요. 제가 사야죠.”
“아, 아니에요. 제가 살 거예요.”
“왜요?”
그러자 성윤아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아, 아까 오해한 게 미안해서요.”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다.
난 괜히 턱을 치켜세웠다.
“거 참. 사람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그러자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칫, 자기가 오해하게 만들어놓고…….”
“뭐라구요?”
“아니에요. 제가 잘못 했어요.”
성윤아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까 화낸 걸 떠올리니 부끄러워진 모양이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아니에요. 오해할 만했죠.”
“그 사진 다시 봐 봐요.”
난 아까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띄운 다음 건네주었다.
그녀는 살짝 풀린 눈으로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진짜 같은데. 진짜 합성 맞아요?”
“예. 합성이 진짜라서, 사진이 가짜예요.”
“이 사진은 대체 왜 만든 거예요?”
“시드가 멋대로 만든 거예요.”
“미루 씨가 부탁한 게 아니라요?”
“예.”
“그럼 삭제해도 상관없겠네요?”
“그럼요.”
“진짜 삭제할 거예요.”
“예.”
그런데 어차피 삭제해봐야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지 않나?
성윤아는 사진을 삭제한 다음 나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우리는 와인을 마셨다.
술을 마셔서인지 그녀는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미루 씨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난 피식 웃었다.
“대단하긴요. 진짜 대단한 건 시드죠. 미미르 덕분이기도 하구요.”
제이슨 킴이 만들어 낸 AI 프로그램 미미르는 어디에나 활용될 수 있는 만능 개발툴이다.
블록밸리 스튜디오에서 제공하는 개발툴로 블록밸리 게임을 만들 듯, 시드는 미미르를 기반으로 해서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미미르가 없었다면 아무리 시드라고 해도, 이렇게 빠르게 이런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붓이 좋을수록 글씨가 잘 써지기 마련.
시드가 미미르를 활용하는 것은 여포가 적토마를 타고, 만렙 캐릭터가 전설의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쨌거나 시드가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미미르가 있기 때문.
만약 제이슨 킴이라는 천재가 없었다면, 지금의 시드 역시 없지 않았을까?
“시드 역시 거인의 어깨에 서있는 셈이죠.”
그녀는 생긋 웃었다.
“아이작 뉴턴이 한 말이네요.”
뉴턴은 모두가 아는 영국의 천재 과학자이자 수학자.
사람들이 그의 업적이 찬사를 보내자, 그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본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고 말했다.
여기서 거인이란 그 전의 인류가 쌓아놓은 문명과 지식.
그는 여러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사우스씨 버블(South Sea Bubble)로 인해 말년은 불행했다.
이래서 항상 투자는 신중해야 하는 법.
난 회귀하기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마 시드는 그 뒤로도 세상을 더욱 크게 바꿔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후대의 누군가는 시드가 더 크게 만들어 놓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세상을 바라보겠지.
성윤아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사진 합성이 그렇게 쉽게 돼요?”
“예. 얼굴을 3D 스캔하는 게 가장 좋긴 한데, 사진으로도 가능해요.”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 사람의 얼굴을 파악해 다른 각도로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입력하는 데이터가 많을수록 출력은 좋아지기 마련.
더 많은 사진이나 영상이 있으면, 더 빠른 시간 안에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그럼 우리도 한번 해봐요.”
“저랑 윤아 씨요?”
“예. 안 돼요?”
“안 될 거 없죠. 가보고 싶은 곳 있어요?”
성윤아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요.”
“그게 뭐예요?”
“몰라요? 아르헨티나에 있는 곳인데.”
“처음 들어봐요.”
그녀는 린스타그램에 있는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위치는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남극과 맞닿아있는 지점이었다.
“예전에 다큐멘터리 영상 같은 걸 봤는데, 너무 예뻐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아직 못 가봤어요?”
“예. 아무래도 아르헨티나 갈 일이 별로 없잖아요. 멀기도 하고.”
“언젠가는 가지 않겠어요?”
성윤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긴 한데, 문제는 앞으로 10년 안에는 빙하가 다 녹을 수도 있대요.”
“그럼 빨리 가야겠네요.”
요즘 지구온난화가 심각하긴 하지.
“윤아 씨 사진 보내줘요.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으로. 동영상이면 더 좋구요.”
“잠깐만요.”
그녀는 스마트폰에서 신중하게 사진을 골라 나에게 사진 열다섯 장과 세 개의 짧은 영상을 톡으로 보내주었다.
난 그것을 클라우드에 업로드 했다.
그러자 잠시 후 합성 사진이 나왔다.
나와 그녀가 트래킹 복장을 한 채 기암괴석 같은 거대한 빙하와 투명한 호수 앞에서 다정하게 서있는 사진이다.
마치 정말로 같이 이곳에 여행을 간 것 같은 모습이다.
“와…….”
성윤아는 신기하다는 듯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이 사진 저 가져도 돼요?”
“그럼요.”
난 사진을 보내주었다.
성윤아는 해맑게 웃었다.
“헷!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