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50화 (350/529)

350화. Computer Graphics (1)

난 시드와 통화했다.

[퀵샤카 오션월드, 형 친구가 만들었다고 했죠?]

“응.”

[다들 재미있다고 난리던데요.]

“그래?”

[예. 직원들끼리 모여서 한 판씩 하고 있어요.]

IT업계 사람들의 게임 사랑은 유명하지.

사내 대회는 물론이고, 실리콘밸리 내에서 크고 작은 게임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이때는 그야말로 회사 대항전이 벌어진다.

“전부 니 덕분이야. 다들 고마워하고 있어.”

[뭘요.]

만약 시드가 레전드게임즈 스토어를 개선해주거나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를 구축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빠르게, 그리고 이렇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블록밸리와 나이트라이트가 다른 게임과 구분되는 점은 그저 게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라, 하나의 사회적 공간으로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

블록밸리는 10대들의 소셜 네트워크로 활용되고, 나이트라이트에서는 각종 공연과 행사가 열린다.

이는 초기 형태의 메타버스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메타버스를 하나로 연결해 판게아라는 디지털 세계를 만드는 게 시드의 목표고.

“아! 보내준 프로그램 확인했어.”

[어때요?]

“너무 잘 만들어서 깜짝 놀랐어. 엄청 신기하던데.”

[정말요?]

내 말에 시드는 선생에서 칭찬을 들은 학생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이름은 뭐야?”

[아직 안 정했어요. 어떤 이름이 좋을지 고민 중이에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연락한 거예요.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흠…….”

그다지 어려운 질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난 이 프로그램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까.

“내 생각에는…….”

내가 이름을 말해주자, 시드는 반색했다.

[어! 저도 그 이름 생각했는데!]

“정말?”

[예!]

그럴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시드가 지은 이름이니까.

시드는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형이랑 저는 생각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줘서 정말 다행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 * *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물었다.

“예약하셨나요?”

“민아름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을 거예요.”

“예.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난 룸 안으로 들어가 기다렸다.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윤아가 먼저 나타났다.

“어! 먼저 와있었네요.”

“저도 방금 왔어요.”

그녀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회사 일은 어때요?”

“지금 퇴사 준비 중이에요.”

“기분은 어때요?”

“홀가분하면서 아쉬워요. 제 첫 직장이었데.”

성윤아가 DA증권을 그만두는 이유는 새로 만들어지는 간편결제 회사를 맡기로 했기 때문.

“회사 이름은 정했어요?”

“드림페이로 할 것 같아요.”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어! 좋은데요.”

“그쵸?”

DA카드에서 내놓은 대표 카드가 바로 DA드림카드.

내가 당시 DA카드에 있던 양자은 상무를 만나 지어준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고 드림(Dream)에는 D와 A가 들어가기도 하고.

“귀여운 동생은 뭐하고 있어요?”

“설마 그 귀여운 동생이라는 게 한세나를 말하는 건 아니죠?”

“맞는데요. 혹시 세나 말고 다른 동생 있어요?”

“…….”

세나 말고 다른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뭐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공부가 아닌 건 확실해요.”

그래도 요즘 영어는 좀 배우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개인 과외 선생님이라도 붙여줘야 하나?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민아름과 동호 선배가 함께 들어왔다.

인원이 다 도착하자, 코스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메뉴는 퓨전한식 코스요리.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넷이서 같이 밥 먹는 건 처음 아닌가?

민아름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제가 살 테니, 마음껏 먹어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그러자 그녀는 자랑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MFW가 대박 난 게 좋은 일이죠. 게임으로 홍보하자고 하기에 처음에는 그냥 애들이 하는 미니게임 같은 건 줄 알았어요. 이렇게 훌륭한 게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실제로 블록밸리 게임들은 간단한 미니게임이 주류다. 이 정도로 볼륨이 크고 잘 만든 게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퀵샤카 오션월드’와 ‘니더스에 어서 오세요’의 성공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선우가 만든 게임이 다른 블록밸리 개발자들의 의욕을 자극했는지, 그 뒤에 여러 대형 프로젝트가 발표됐다.

“여기저기서 MFW와 계약하고 싶다고 먼저 접근해오고 있어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미켈레는 바로 미팅하고 싶다며 당장 한국으로 달려왔구요.”

우리는 식사를 하고, 와인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MFW는 사업 모델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퀵샤카나 니더스 같이 작은 브랜드에 투자해 성공을 돕는 것.

둘째는 패션업체의 디지털화.

이 부분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생산, 판매, 재고관리, 상품 개발 등에 데이터를 활용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메타버스 내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이미 여러 기업들이 하고 있다.

니케의 경우 자사 온라인몰에서 직접 제품을 판매하고, 피트니스 앱 등을 출시해 고객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생산과 개발에 활용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MFW가 최초.

‘퀵샤카 오션월드’와 ‘니더스에 어서 오세요’로 인해 이게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진 만큼, 앞으로는 캐주얼 브랜드나 스포츠 브랜드는 물론이고, 명품 브랜드들까지 뛰어들어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성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MFW와 손을 잡는 것. 그래서 콧대 높은 회사들도 자기 발로 찾아오는 중이라고 한다.

민아름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퀵샤카와 니더스는 현재 온라인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오프라인 판매를 확대하려고 해요. 다양한 광고를 생각 중이에요. 그리고 명품 브랜드를 하나 만들어 보려구요.”

“명품 회사와도 계약했어요?”

“디자이너랑요. 혹시 잉그리드 게이블이라고 알아요?”

“오, 잉그리드.”

동호 선배는 괜히 이름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알아서 고개를 끄덕이는 거예요?”

“아니,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야.”

“…….”

그럴 줄 알았다.

당연히 모르는 나와 동호 선배와는 달리 성윤아는 손뼉을 쳤다.

“전 알아요. 뉴욕 소호에서 가장 유명한 신예 디자이너잖아요.”

이 얘기를 들으니 뭔가 생각나는 게 있다.

“설마…….”

동호 선배가 말했다.

“괜히 아는 척하지 말고. 너도 모르잖아.”

“아니에요. 진짜 알아요.

“뭐? 니가 잉글리쉬 게이를 안다고?”

민아름은 이름을 정정해주었다.

“잉글리쉬 게이가 아니라, 잉그리드 게이블이요.”

“저 그 사람이랑 만난 적 있어요.”

내 말에 성윤아와 민아름은 깜짝 놀랐다.

“정말요?”

“어디서요?”

“뉴욕 연말 자선 파티장에서요. 얼마 전 있었던 에밀리 클로에 사건 알죠?”

“그 상속녀 사기 사건이요?”

“예. 거기서 에밀리 클로에랑 같이 있었어요.”

“아…….”

성윤아에게는 일전에 얘기해준 적이 있다. 그러나 처음 듣는 민아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에밀리 클로에를 만났다구요?”

“예.”

“말도 안 돼…….”

난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해 대충 설명해주었다. 내가 사기 행각을 폭로했다는 부분은 빼고.

세 사람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내 얘기를 들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그러게요.”

이런 걸 보면 세상이 의외로 좁다. 괜히 지구촌이라고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민아름은 이어서 말했다.

“아무튼 디자인 실력 하나는 최고예요.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해서 MFW가 투자하기로 했어요. 제대로 하이엔드 브랜드로 키워 보려구요. 모델도 알아보는 중이에요.”

명품이 비싼 것은 브랜드 이미지 때문.

그래서 다들 큰돈을 써가며 대중들에게 명품의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끊임없이 고급 최고, 부, 명예, 명성, 지위 같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괜히 명품 회사들이 좋은 기계 놔두고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바느질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사실 기계가 사람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오직 이미지.

동호 선배가 물었다.

“명품들은 전속 모델 같은 게 있지 않나요?”

“맞아요. 앰버서더라고 하죠.”

앰버서더(Ambassador).

대사나 대표자를 뜻하는 단어로 패션업계에서는 ‘홍보대사’라는 의미로 쓰인다.

명품 브랜드들은 광고를 넘어서 유명인들을 ‘브랜드 앰버서더’로 선정해 홍보한다.

앰버서더로 선정되면 수천, 수억 원어치 신상품을 시즌별로 협찬받고, 패션쇼와 자선 파티 등에 각종 행사에 초청받는다. 여기에 들어가는 항공료와 숙박비 역시 업체에서 제공한다.

유명인들이 해당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대중에게 노출함으로써 브랜드의 이미지를 올리고, 대중들로 하여금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 앰버서더가 사고를 치면 브랜드도 큰일 아니에요?”

비싼 돈 들여 계약한 모델이 폭행이나 음주운전을 한다면? 막말이나 갑질을 하다가 걸린다면?

민아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이죠. 당사자의 이미지뿐 아니라, 브랜드의 이미지까지 같이 실추되니까요. 최대한 그런 위험이 없는 사람들만 골라서 선발하는데도 가끔씩 문제가 터져요.”

“하기야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죠.”

그럴 경우 가차 없이 계약을 해지하지만, 그래도 이미지에 흠집이 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나마 학폭 같은 과거야 조사해볼 수라도 있지만, 미래에 벌어질 일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생각 중이에요.”

마침 이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잘됐다.

“제가 괜찮은 모델 하나 소개해 드릴까요?”

성윤아는 살짝 당황했다.

“미루 씨가 아는 모델이 있어요?”

“그럼요.”

“누, 누군데요?”

“일단 한번 보여줄게요.”

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10대 중후반 정도의 백인 소녀.

키는 약 165센티 정도. 갈색 눈동자에 갈색 머리카락. 콧잔등에는 약간의 주근깨가 남아있고,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성윤아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예쁘다…….”

민아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예쁜데요. 매력도 있고. 혹시 전문 모델이에요?”

“그건 아니에요. 다른 사진도 많으니 계속 봐 봐요.”

민아름은 옆으로 사진을 넘겼다.

그녀는 마치 광고를 찍듯 여러 옷을 입고, 다양한 표정을 짓고,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성윤아는 입술을 살짝 내밀며 말했다.

“사진 엄청 많네요. 팬이에요?”

한창 사진을 넘겨보던 도중 두 사람은 멈칫했다.

“잠깐! 이 사진은 뭐예요?”

“어…….”

저 사진도 있었어?

에펠탑 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그녀는 한 남성과 다정하게 서 있었다.

그 남성은 다름 아닌 나.

그걸 본 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윤아는 바로 물었다.

“이, 이 여자랑 무슨 관계예요?”

“음,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러자 그녀는 버럭 소리쳤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같이 찍은 사진들이 이렇게 많은데.”

난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진짜예요. 전 이 여자 본 적도 없어요.”

성윤아는 화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내 눈앞에 내밀었다.

“증거가 이렇게 뻔히 있는데 거짓말이에요? 대체 프랑스는 언제 갔어요? 맨날 일하느라 바쁘다고 하더니, 이 여자랑 놀러 다닌 거예요?”

“아니, 그게…….”

“어떻게 이런 어린애랑! 얘 미성년자 아니에요?”

민아름은 놀라 물었다.

“정말 미성년자예요?”

“그러니까…….”

그러자 성윤아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대답 못 하는 거 보니 맞네!”

“…….”

나에게 대답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민아름은 동호 선배를 보며 물었다.

“혹시 동호 씨도 알고 있었어요?”

동호 선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미루야, 왜 그랬어? 얼른 인정하고 사과드려.”

“…….”

이 인간은 누구 편이야?

성윤아는 계속해서 추궁했다.

“솔직하게 말해요!”

원하는 대로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이 사진 합성이에요.”

“뭐라구요?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해요?”

“변명이 아니라 진짠데.”

“미루 씨 진짜…….”

난 진실을 말해주었다.

“이 여자, 가상 인간이에요.”

그 말에 두 사람은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민아름은 당황하며 물었다.

“가, 가상 인간이요?”

난 설명해주었다.

“예. 이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거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