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45화 (345/529)

345화. 간편결제 (2)

양정욱은 한미루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보았다.

그는 프리머스와도 관련이 없고, 양자은과도 별 관련 없었다.

어쨌거나 사태 직후만 해도 그는 그놈 역시 잘 지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부고발이나 한 놈을 누가 데려다 쓰겠는가?

‘아마 다시 볼 일은 없겠지.’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름을 다시 듣게 됐다.

‘뭐? 그놈이 컨티뉴 캐피탈 대리인이라고?’

컨티뉴 캐피탈은 유수의 글로벌 투자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대 사모펀드. DA금융그룹보다도 수십 배가 크다.

한미루가 한정그룹을 공격해 그룹을 해체시키고, GL케미칼과 GL엔텍 사태를 주도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따르면 한국지사 대표는 다름 아닌 리서치부서의 대리 이동호.

‘이동호가 후배인 한미루를 데려온 건가? 그런데 대리놈은 어떻게 지사장이 된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쩌면 자신이 거대한 음모에 얽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거나 그가 그룹의 핵심에서 밀려나 비참하게 사는 동안,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은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놈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 * *

양정욱을 만난 건 프리머스 펀드 사태 이후로는 처음이다.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그가 나보다 키가 작다는 것이다. 신기하다. 예전에는 엄청나게 커 보였던 것 같은데.

역시 사람은 자신의 위치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양정욱은 이를 갈듯 말했다.

“무슨 일로 여기 온 거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니가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그를 보니 자연히 프리머스 펀드 사태가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망친 최악의 펀드 사기 사건.

거기에는 내 인생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다행히 그 이전 시점으로 회귀해 조기에 참사를 막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 이후에 회귀했다면 이번 삶도 평생 후회하며 살았을 것이다.

주범인 박태일 대표는 출국 직전 인천공항에서 체포됐다.

워낙 큰 사건이었던 만큼, 박태일은 경제범죄사범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징역 30년이 확정돼,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만약 양정욱이 아니었다면 1회차 때 그런 끔찍한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그랬으면 내가 회귀하는 일도 없었겠지.

난 그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경영권 분쟁 같은 걸 벌일 생각이면 꿈 깨라는 얘기를 드리려구요.”

“뭐?”

“본인 잘못으로 그런 일이 생겼는데도 계속 경영 같은 걸 하고 싶나요? 저라면 반성하며 조용히 살 것 같은데.”

양정욱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 DA증권에서 양자은 전무를 만났다고 하더니.”

“소식이 빠르시네요.”

그가 후계자 자리를 되찾기 위해 수작을 꾸미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그러나 그게 성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1회차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프리머스 펀드 사태는 그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벌어진 일로 결론이 났다.

어느 주주가 그가 회장이 되는 것을 지지하겠는가?

하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했다.

난 그에게 현실을 말해주었다.

“설사 양자은 전무에게 문제가 생긴다 해도 전문경영인을 내세우면 내세웠지, 그쪽이 회장직을 물려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자 그는 버럭 소리쳤다.

“이 그룹은 원래 내 거였어!”

이 얘기를 들으니 일전에 만났던 주철진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한국 재벌들은 회사를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거면 나처럼 상장도 하지 말고 1인 회사로 운영하든지.

양정욱은 화를 삭이며 말했다.

“한 가지만 물어보지.”

“뭔가요?”

“누나의 지시를 받고 폭로한 거냐?”

“…….”

이게 뭔 개소리야?

이딴 소리나 하는 걸 보니,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모양이다.

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펀드에 부실이 있으니 폭로한 거지, 지시를 받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나요? 없는 사건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그러자 그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거짓말 마! 누나랑 짜고 일부러 나한테 보고 없이 폭로한 거잖아!”

“…….”

말해봐야 소용없을 것 같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믿는 법이지.

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처럼 조용히 살아요. 그럼 별일 없을 테니까.”

“니가 내 앞에서 그딴 말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그럼 어쩔 건데요?”

그는 당장이라도 주먹질을 할 것 같이 화를 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가 약해진 건지, 내가 강해진 건지…… 아니, 둘 다인가?

왠지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는 내가 왜 이 사람을 무서워했던 거지?

난 들고 온 서류 봉투에서 자료를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이걸 보면 아무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해봐야 양자은 전무님을 밀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서류를 훑어보았다.

거기에는 컨티뉴 캐피탈이 DA금융그룹과 맺은 업무협약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

“컨티뉴 캐피탈은 양자은 전무님이 회장직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DA금융그룹은 한국 최대의 금융재벌.

그러나 컨티뉴 캐피탈에 비할 바는 아니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통째로 사들일 수도 있다.

물론 금융회사 인수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컨티뉴 캐피탈이 지지해주는 것만으로도 양자은 체제가 뒤집힐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확실하게 깨닫지 않았을까?

그는 나를 노려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너, 넌 대체 정체가 뭐야?”

“정체요?”

“컨티뉴 캐피탈과는 무슨 관계야?”

한국에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에게는 왠지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모르고 계셨나 보네요. 제가 컨티뉴 캐피탈의 주인입니다.”

“뭐, 뭐라고?”

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 다시 말해주었다.

“컨티뉴 캐피탈이 제 거라구요.”

“…….”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믿기 쉽지 않겠지.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그저 일개 신입사원이고, 그는 유력한 차기 회장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난 거대 사모펀드의 주인이 됐고, 그는 재벌그룹 후계자에서 일개 임원으로 전락했으니까.

“니, 니가 컨티뉴 캐피탈 주인이라고?”

“예.”

“하하…… 마, 말도 안 돼.”

뭐, 믿거나 말거나.

난 어이없다는 듯 웃는 그를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 * *

난 차를 타고 회사로 돌아갔다.

이제는 내 건물이 된 유성타운 D동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일하고 있던 동호 선배는 나를 보며 물었다.

“어디 다녀왔어?”

“양정욱 만나고 왔어요.”

“정욱이면…… 어! 설마 양정욱 전무?”

“예.”

내 말에 동호 선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짜? 요즘 뭐하고 지내?”

“DA금융연구소에 있던데요.”

“흠, 그래? 완전히 한직으로 밀려났구나. 근데 뭐하러 만난 거야?”

“그냥요.”

동호 선배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좀 불쌍하네.”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요?”

“그때 사고만 안 쳤으면 지금쯤 회장 됐을 거 아니야.”

“…….”

본인이 양정욱 때문에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알아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한동안 빤히 쳐다보자 동호 선배는 당황했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봐?”

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모르는 게 낫겠네요.”

“응? 아니, 뭔데? 그러니까 궁금하잖아.”

* * *

[(속보) DA금융그룹, 핀테크 사업을 진출을 위해 컨티뉴 캐피탈과 업무협약!]

[스테이블 코인 페니를 기반으로 한 간편결제 서비스 출시 예정]

[핀테크를 향후 DA금융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키워나가겠다 선언!]

-뭐야? 코인으로 간편결제를 한다고?

-잠깐만. 그럼 물건 팔고 코인 받는 건가?

-거래랑 송금에만 활용하는 거지.

-실제로 모바일 게임에서는 이미 그렇게 쓰이고 있음. 이용자가 미리 구매해놨거나 실시간으로 구매한 페니로 결제하고, 결제 후 게임사들에게 자동 환전되는 방식임.

-오프라인과 온라인 양쪽에서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와! 완전 대박이네.

-이게 과연 타피오카페이나, 패스페이를 꺾을 수 있을까?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한다고 하니, 기대해봐도 좋을 듯?

간편결제 서비스는 이미 수십 개가 난립해있는 만큼, 금융사가 이 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은 별로 큰 뉴스가 아니었다.

그러나 신용화폐가 아닌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과 컨티뉴 캐피탈과 업무협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핀테크 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DA은행, DA증권, DA카드 할 것 없이 계열사들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반면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며 다른 간편결제 기업들의 주가는 소폭 하락했다.

양자은은 그룹 부회장으로 올라섰고, 간편결제 서비스를 은행, 증권, 카드, 보험 등과 연계할 거라는 계획을 밝혔다.

주주들은 양자은 체제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양정욱은 분노해 소리쳤다.

“으아아! 한미루!”

* * *

MFW는 SW게임즈와 계약을 맺고 브랜드 홍보를 위한 블록밸리 게임을 제작했다.

가장 먼저 출시한 건 퀵샤카 브랜드의 게임.

게임 이름은 ‘퀵샤카 오션월드’로 바다를 배경으로 서핑을 비롯한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파도가 올 때마다 리듬게임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방향키와 버튼을 눌러야 한다. 처음에는 쉽지만, 높은 파도일수록 버튼 입력은 어려워진다.

성공하면 캐릭터가 서핑보드에 서서 멋지게 파도를 타고 모두의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실패하면 물에 빠져 살려달라며 허우적거렸다.

친구끼리 모여 서로 누가 멋있게 파도를 타나 경쟁하는 것도 가능했다.

블록밸리에서는 누구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만큼 온갖 게임이 넘쳐났고, 그중 인기가 있는 것은 극소수였다.

그런데 ‘퀵샤카 오션월드’는 출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탑 50위에 들었고, 일주일도 안 돼 1위로 올라섰다.

-퀵샤카 오션월드 존잼!

-이거 대박임. 버튼 누를 때마다 파도 타는 느낌임.

-실수할 때마다 서핑보드가 휘청거리는데, 손가락이 덜덜 떨림.

-그러다가 파도 타는데 성공하면 쾌감 쩜!

-이거 하다 보니 왠지 서핑에 자신감이 생기네~

-ㅋㅋㅋ 핑거서퍼들~

-그런데 퀵샤카는 뭐야?

-수영복이랑 서핑복 브랜드라는데.

-오우! 서핑복 회사에서 홍보하려고 게임을 만든 건가?

-신박하다. 신박해.

-처음 들어보는데 유명한 브랜드인가?

-그런가 봄.

-캐릭터가 입은 수영복이 예뻐서 게임에서 한번 구매해 봄. 직접 입어 보니 예쁨.

-어디서 살 수 있나요?

-홈페이지에 가도 되고, 게임 안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게임 안에서? 게임 아이템이 아니라, 진짜로 수영복과 서핑복을 살 수 있다고?

-진짜임. 페니로 결제하고 주소 입력하면 실물을 집으로 배송해 줌. 현재 북미랑 유럽은 배송된다 함.

-블록밸리 게임에서만 파는 한정판 래쉬가드도 있음.

-ㅎㄷㄷ 신기하네.

퀵샤카는 오렌지카운티 지역 서퍼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브랜드.

홈페이지와 쇼핑몰을 만들어놓긴 했지만, TV나 잡지 광고 한번 하지 않았다. 그런데 ‘퀵샤카 오션월드’ 게임이 대박을 치자, 갑자기 주문이 폭주하며 순식간에 모든 제품이 품절됐다.

민아름은 퀵샤카의 공동대표 케이티 샌퍼드의 연락을 받았다.

[언제 물건이 입고되냐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어요. 매장 물건마저 동이 나서 장사를 할 수가 없을 정도예요.]

민아름은 침착하게 말했다.

“알았어요. 제가 지금 바로 원단과 생산공장 섭외해볼게요.”

전화를 끊은 그녀는 생각했다.

처음 한미루에게서 게임을 만들어 홍보하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일반적으로 의류 브랜드 홍보라고 하면, 패션쇼, 팝업 스토어, TV광고,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SNS 마케팅 등을 생각하지, 누가 게임을 생각하겠는가?

그래도 잘 될 거라는 말을 듣고 내심 기대하긴 했는데…….

민아름은 혀를 내둘렀다.

“이거 대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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