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요코하마 일렉트론 (10)
[(산케이 단독) 티에리 사마라 키오노스 전 회장. 불법 밀출국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다!]
(전략)
티에리 사마라는 각종 횡령, 배임, 개인 비리로 인해 두 차례나 체포됐고, 20억 엔이라는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보석 중이던 중범죄자였다.
그는 몰래 일본을 탈출한 다음, 거짓과 날조된 이야기를 폭로해 키오노스와 일본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는 그동안 키오노스에 입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행위다.
그동안 티에리 사마라의 탈출에는 배후가 있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있었다. 본지는 오랫동안 이 사건을 취재했고, 최근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핵심 관계자의 제보에 따르면 그 배후는 놀랍게도 컨티뉴 캐피탈과 유성전자다.
(중략)
컨티뉴 캐피탈은 이때 당시 공매도와 옵션 투자로 140억 달러, 그리고 러시 펀드를 통해 120억 달러를 챙긴 것으로 알렸다.
이는 3조 엔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투자 타이밍, 그로 인해 얻은 천문학적인 이익, 탈출 직전에 사마라와의 접촉 등을 볼 때, 그의 탈출에 컨티뉴 캐피탈이 개입했음은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유성전자 역시 사마라 회장의 탈출로 인해 큰 이익을 얻기는 마찬가지다.
컨티뉴 캐피탈처럼 직접 투자를 하지는 않았지만, 당시는 유성전자가 데이터센터 산업 진출로 인해 고객사들의 이탈이 우려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키오노스에 문제가 생김으로써 반사이익을 얻었다.
현재 유성전자는 일본의 10대 전자기업을 합친 것보다도 규모가 크다. 그러나 불과 30년 전만 해도 유성전자는 일본 전자 기업들의 하청업체에 불과했다. 유성전자는 일본이 보내준 핵심부품으로 TV나 냉장고를 조립하던 회사였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착실하게 일본의 기술을 훔치고 베꼈다.
그렇게 기술력을 쌓은 다음에는 반도체 산업에 진출해, 이번에는 키오노스의 반도체 기술을 훔치고 베껴 제품을 만들었다.
기술을 빼앗긴 일본 전자 기업들은 하나둘씩 몰락했지만, 유성전자는 승승장구했다.
본지의 취재에 따르면 컨티뉴 캐피탈은 그때 벌어들인 막대한 돈으로 유성전자와 손잡고, 일본 최대 반도체 장비회사인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사들이려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이 기업의 대주주는 소프트박스 그룹이다.
소프트박스 그룹은 인사이트 펀드를 통해 요코하마 일렉트론 지분 36퍼센트를 보유 중이고, 현재 이를 매각 추진 중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소프트박스 그룹은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매각하려는 것일까?
겉으로는 자금난을 말하고 있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고 의심이 된다. 이번 매각에는 송 가즈키 회장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송 회장의 국적은 일본인이지만, 그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그의 핏줄이 온전히 한국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그의 아내 역시 자이니치다.
그런 만큼 한국 기업에 특혜를 주려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만약 요코일렉이 컨티뉴 캐피탈과 유성전자 컨소시엄에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이제까지 그랬듯 철저하게 기업을 분석해 해체하여 기술을 빼돌릴 테고,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일본의 수많은 전자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비참하게 몰락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소프트박스가 CYP 컨소시엄에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넘기는 것은 나라를 팔아넘기는 짓이나 다름없다.
일본의 시민사회, 경제 단체, 그리고 정치권이 나서서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지켜야 한다!
* * *
산케이 신문의 기사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사실 추측과 날조에 가까운 기사였고, 증거도 없었다.
그러나 파급력은 엄청났다.
처음 넷우익들 사이에서 퍼지던 기사는 순식간에 대중들에게 퍼졌고, 이슈가 되며 NHK 등 공중파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사마라 회장 탈출은 세계적인 뉴스였다.
그러나 정작 사건이 일어난 일본에서는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치권의 눈치를 본 일본 언론들이 의도적으로 보도를 자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사 덕분에 새삼 이슈가 됐다.
사마라 회장 탈출,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각종 폭로는 일본의 국제적인 망신이었다.
이로 인한 피해 역시 엄청나 일본이 입은 유무형적 손실이 1조 엔이 넘을 거라는 얘기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따지고 보면, 사마라 회장이 없던 일을 꾸며낸 것도 아니고, 없던 얘기를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비난하려면 먼저 일본의 후진적인 기업 행태와 사법 체계를 비판해야겠지만…… 일본인들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뜩이나 일본 최대의 반도체 장비회사가 외국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에 국민 감정이 별로 좋지 않은 상황.
그런데 그 대상이 사마라 회장의 탈출을 배후에서 지시하고, 그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진 기업이라면?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뭐야? 사마라 회장의 탈출 배경에 컨티뉴 캐피탈이 있었다고?
-범죄자를 불법으로 탈출시킨 다음 허위사실을 폭로하게 해 일본을 망신 준 건가?
-컨티뉴 캐피탈은 당시 키오노스 공매도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갔다! 그 돈이 무려 3조 엔에 달한다!
-유성전자 역시 배후로 의심된다고?
-기술로 일본에 안 되니, 이런 더러운 음모를 꾸미다니!
-이는 일본에 대한 공격이나 다름없다!
-저런 부도덕한 기업에 일본 기업을 넘기는 게 말이 되나?
-절대 안 된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일본 국민들의 힘을 보여줍시다!
혐한 단체와 넷우익들은 소프트박스 본사 앞에서 거센 시위를 벌였다.
“요코일렉 매각을 철회하라!”
“송 가즈키 회장은 나와서 사과하라!”
“조센징들을 일본 땅에서 몰아내자!”
“한국에게서 일본 기업을 지키자!”
“송 가즈키도 한국으로 돌아가라!”
“니뽄 반자이!”
* * *
[산케이 신문 기사의 진실은?]
[사마라 전 회장의 탈출 배후에 컨티뉴 캐피탈과 유성전자 있었나?]
[여론조사 결과 CYP컨소시엄에 매각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76퍼센트…….]
여론이 악화되자 일본 정치권이 움직였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나가미네 장관의 주재 아래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강경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첨단 반도체는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그러한 첨단 반도체 생산에 있어서 다양한 장비를 납품하는 회사입니다.”
“일본 산업에 해를 끼친 기업이 일본 기업을 인수하게 놔둘 수 있겠습니까?”
“일본의 국가 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기업에 입찰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엔플과 PSMC, 키오노스 연합이 더 적합한 입찰자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일본의 ‘외환 및 대외 무역법’을 내세웠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핵심 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려는 외국 기업은 사전에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법이다.
일본 정부는 내부적으로 CMIC와 CYP컨소시엄의 입찰 자격을 제한하는 쪽으로 방향을 굳혔다.
만약 인수하려는 곳이 CYP컨소시엄뿐이었다면, 아무리 일본 정부라 해도 인수를 불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CYP컨소시엄 외에 유력한 인수 후보가 있다.
바로 엔플, PSMC, 키오노스 연합이다.
강력한 경쟁자나 다름없는 유성전자와는 달리, 키오노스는 일본 반도체 기업인 데다가, 엔플과 PSMC 역시 일본에 우호적이었다.
PSMC는 일본 반도체 공장을 조기에 착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금액은 무려 1조 엔 규모.
이 공장에 들어가는 장비는 요코하마 일렉트론에 주문할 예정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 재건 및 자국 내 안정적 조달처 확보를 위해 반도체 공장 유치를 추진해왔다.
여기에 PSMC가 적극적으로 화답한 것이다.
10나노 이하의 첨단 공정은 아닌, 22~28나노 공정이지만, 여기서 생산된 반도체는 자동차, 산업용 기계, 가전 등의 일본 기업들에 공급될 예정이다.
이는 인수를 위한 일종의 선물이나 다름없었고, 일본 정치권은 두 팔 들고 환호했다.
“PSMC의 투자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유성전자와는 다르게 PSMC는 일본 반도체 산업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대만과의 반도체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즉시 관련법을 개정해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 * *
놀란 유재호 회장은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정부 관료들을 만나며 설득에 나섰다.
난 일본에 간 유재호 회장의 연락을 받았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친한파로 알려진 자민당 의원들도 만남을 피하고, 경제산업성 쪽에서는 아예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난 어이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태클을 건다구요?”
CYP컨소시엄이 제시한 조건은 파격적이라 해도 좋았다.
인수가격은 7조 2천억 엔.
또한 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소프트박스 그룹의 사정을 감안해 인수대금 절반을 즉시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소프트박스 그룹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제안이었고, 덕분에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말로는 사마라 회장 탈출 사건을 내세우지만, 내심 컨티뉴 캐피탈과 유성전자에 넘어가는 것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현재 한일관계가 별로 좋지 않으니, 일본 정치권 입장에서도 부담이겠죠.]
그렇다고 설마 언론과 대중, 정치권까지 나서서 반대할 줄이야.
“송 회장은 뭐라고 하나요?”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여러 업체를 경쟁시켜야 가격을 더 끌어올릴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희와 CMIC를 탈락시키면 사실상 엔플, PSMC, 키오노스 연합만 남게 됩니다.]
유재호 회장은 나에게 슬쩍 물었다.
[혹시 좋은 방법 없겠습니까?]
말투로 봐서는 나한테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눈치다.
“아니, 일본 정부가 못 사게 하는데 저라고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렇군요.]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한들, 팔지 않겠다면 소용없다.
확실히 머리를 잘 썼단 말이지.
사실상 과반 지분 확보에는 실패했다. 투자에 실패한 이상, 중요한 건 얼마나 빠르고 질서정연하게 물러나느냐다.
난 유재호 회장에게 말했다.
“일단 그동안 사들인 주식부터 처분하죠.”
* * *
[엔플, PSMC, 키오노스 연합, 요코하마 일렉트론 우선 협상자로 선정]
[일본 정치권 관계자, 일본, 미국, 대만의 반도체 협력 강화할 것]
[인수가는 약 6조 5천억 엔으로 알려져…….]
엔플, PSMC, 키오노스 연합은 바로 소프트박스 그룹과 인수 협상에 들어갔다.
아직 여러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먼저 인수대금의 절반을 달러로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6조 5천억 엔이면 적정가보다는 비싼 가격이다.
그러나 요코하마 일렉트론의 향후 가치와 인수로 인한 시너지를 생각한다면, 지불 못 할 가격도 아니다.
탐 키튼은 PSMC 첸 회장과 통화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제가 한 게 뭐가 있습니까? 전부 키튼 회장님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산케이 신문에 제보해 일본 내에서 부정적 여론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일한 관계가 안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방법이 그렇게 잘 통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CYP컨소시엄의 입찰 자격을 박탈시킨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각종 조건을 놓고 경쟁을 벌여야 했을 테니까.
그런데 첸 회장은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예? 산케이 신문에 제보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제가요? 아, 아닙니다. 전 그때 말씀드린 대로 일본 정부 측에 PSMC의 반도체 공장을 제안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전 엔플이나 키오노스 쪽에서 손을 쓴 거라 생각했는데요.]
“…….”
순간, 탐 키튼은 멈칫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