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37화 (337/529)

337화. 요코하마 일렉트론 (8)

[(WST) 추락한 인사이트 펀드, 송 가즈키 회장, 전멸만은 피하겠다!]

(전략)

송 가즈키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투자 실패에 대한 반성을 피력했다.

워크스페이스의 추락과 렉스의 파산으로 인해 드러난 인사이트 펀드의 손실은 심각한 수준이다.

인사이트 펀드는 그동안 비상장 유니콘들을 높은 멀티플을 주고 사들였다. 일단 시장을 장악하기만 하면 수익은 따라올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투자한 기업 중 현재 독자생존이 가능한 기업은 15퍼센트 수준이고, 나머지 기업들은 투자금 없이는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송 회장은 일부 기업을 매각하거나 IPO 하는 방향을 고려 중이지만, 당분간 현금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투자자들이 수익성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보기 시작했고, 시장 상황 악화로 IPO 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소프트박스 그룹은 그동안 보유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막대한 자금을 대출받아 인사이트 펀드에 투자했다.

그런데 자산 가치 폭락으로 인해 재무건전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중이다.

송 회장은 ‘큰 이익을 냈을 때 자만했던 것이 부끄럽다. 지금은 손실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다’라며, 펀드 전체를 구조조정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기존에 계획되어있던 투자를 20퍼센트로 줄이고, 자금 마련을 위해 제일 먼저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일본 최대이자 세계 3위의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인사이트 펀드는 이 기업의 지분 36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매각해 약 4조 엔의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과연 인사이트 펀드가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다.

* * *

송 가즈키 회장의 기자회견은 일본을 뒤흔들었다.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니케이 시총 10위 안에 드는 거대 기업이다.

컨티뉴 캐피탈은 인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유성전자, 사우디 국부펀드와 CYP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었다.

그동안 여러 전자기업들이 무너지는 가운데도 꾸준히 성장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 기업의 주인이 바뀌게 생겼다는 소식에 일본인들은 한탄했다.

-외국에 이것저것 다 팔리는 것도 모자라 요코하마 일렉트론까지 넘어가는 건가?

-유성전자가 요코일렉을 인수할 수도 있다고?

-나 어렸을 때만 해도 유성전자는 일본 전자기업들에 비하면 중소기업이나 다름없었는데.

-일본 10대 전자기업의 끝자락에도 못 들던 기업이었지. 유성전자 기기 들고 다니면 다들 비웃었음.

-도시바도 망하고, 샤프도 망하고ㅜㅜ

-반도체 기업들 쫄딱 망한 것도 모자라, 이젠 장비 기업까지 팔아넘기는 건가?

-대체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송 가즈키는 뭘 한 거야?

-머리카락이 후퇴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전진하는 거라며? 머리카락과 함께 후퇴하면 어쩌자는 거냐?

-일본 기업이 인수하면 안 되나?

-안타깝게도 일본 기업은 그럴 돈도 배짱도 없어…….

-이렇게 다 팔리고 나면 대체 뭐가 남는 거지?

-이제 일본 제조업은 끝난 건가?

* * *

요코하마.

도쿄 인근 카나가와현 최대도시이자 일본에서 도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도쿄에서의 거리는 대략 한 시간 정도.

요코하마 일렉트론 본사는 도심에서 떨어진 외곽에 공장과 함께 위치해 있다.

난 이곳에서 50대 남성을 만났다.

난 상대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미루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나카자토 요시하루입니다.”

그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고, 내가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는 관계로 통역이 자리를 함께했다.

통역은 대충 내 나이 또래의 남성.

“나카자토 하지메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름을 들으면 알겠지만, 그는 나카자토 요시하루의 아들.

영국에서 유학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일본인 특유의 영어 발음 같은 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직접 만나 보니 어째서 사마라 회장이 ‘사무라이 같은 남자’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농담 한마디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딱딱한 인상에 굵은 주름과 굳게 다문 입술에서는 고집 같은 것이 엿보였다.

경영자라기보다는 오랜 기간 숙련된 장인 같다.

요코하마 일렉트론의 창업자는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는 아버지에 이어 2대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야말로 평생에 걸쳐 한 우물만 판 셈이다.

그는 외부에 거의 나서지 않고, 언론 인터뷰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송 가즈키 회장이 소개해줬기 때문.

“송 회장에게 전해 듣긴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젊군요.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기업 조사차 방문했습니다.”

이래 봬도 한때는 잘나가는(?) 애널리스트였다. 기업 탐방도 자주 하곤 했지. 그렇게 얻어먹은 믹스커피만 한 트럭이다.

“혹시 공장을 좀 둘러볼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그는 딱 잘라 거절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외부인에게 공장 견학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컨티뉴 캐피탈 정도 되면 보여줄 법도 한데 얄짤없구나.

참고로 이건 모두에게 마찬가지. 애널리스트든 대주주든 직원과 관계자가 아니면 누구도 못 들어간다.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보안이 철저하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네요.”

“비즈니스란 곧 전쟁입니다. 무기와 전략을 상대에게 노출하는 것은 바보짓이죠. 저희 회사는 오직 제품으로 말할 뿐입니다.”

“최근 중국 장비업체들의 추격이 무섭던데요.”

중국은 반도체 완제품만큼이나 소재, 부품, 장비의 국산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나카자토 회장은 코웃음을 쳤다.

“겉모습은 흉내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 기술과 수십 년의 노하우는 절대 카피가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카피할 때쯤에는 저희는 다시 몇 년을 앞서나가 있을 겁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자사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다.

그도 그럴 것이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어려운 시기에도 R&D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일본 내에서도 최고의 인재를 선발해 교육했다.

직원의 30퍼센트가 R&D 인력이고, 지금도 순이익의 35퍼센트를 기술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일본 제조업이 몰락하는 가운데도 이렇게 승승장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입니다. 저희 회사의 진정한 가치는 메이드 인 재팬에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가장 수익이 잘 나오는 건 중국 공장 아닌가요? 중국 정부의 증설 요청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은 정부 지원도 크고 인건비도 싸니까요. 그러나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일본 기업입니다. 따라서 공장을 짓는다면 일본에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업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로 공장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중이다.

이런 글로벌 시대에도 일본 생산을 고집하다니. 이걸 보수적이라도 해야 할지, 장인정신이라고 해야 할지.

나카자토 회장은 나를 보며 물었다.

“어째서 저희 회사를 인수하려는 겁니까?”

사실 나만큼 요코하마 일렉트론의 미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다.

난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중국 시장 때문입니다. 현재 중국 시장에서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ATAM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코하마 일렉트론이 중국 반도체 장비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그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중국에서 ATAM을 누를 거라는 겁니까?”

“예.”

대답을 해줬으니, 이번에는 내가 질문할 차례다.

“회장님께서는 누가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인수했으면 하십니까?”

그 물음에 대해 나카자토 회장은 짧고 굵게 대답했다.

“누가 인수하든 저희는 저희가 할 일을 할 뿐입니다.”

* * *

일본에서의 일을 끝마친 나는 선우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난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로 들어가기 전 먼저 옆 건물부터 들렀다.

유재호 회장은 나에게 물었다.

“일본은 어땠습니까?”

“좋았어요. 간 김에 관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었네요.”

나보다는 세나가 제대로 즐겼지만.

“그런데 굳이 일본까지 갈 필요가 있었습니까?”

“아! 송 가즈키 회장은 예전부터 한번 만나보고 싶었거든요.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만나보겠어요?”

유재호 회장은 웃음을 지었다.

내가 일본에 간 사이 그라고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꽤 바빴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요코하마 일렉트론 차이나에 다녀왔으니까.

“루퍼트 리우 대표는 잘 만나셨나요?”

“예. 향후 5년 동안 중국 매출이 두 배 이상 성장하게 될 거라 자신하더군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추가 공장 설립도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물론 본사의 승인이 있어야겠지만요.”

“나카자토 회장은 중국 공장에 부정적인 것 같던데요.”

유재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마냥 반대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일본 정부가 중국만큼 지원을 해줄 리도 없을 테니까요. 그보다 다른 기업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요코하마 일렉트론 매각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다.

인수할 만한 기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1회차 때도 인수할 기업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고.

그런데 이번에는 컨티뉴 캐피탈과 유성전자, 그리고 PIF가 손을 잡고 인수에 나서겠다고 하자, 여러 기업들이 관심을 보였다.

“엔플은 PSMC와 손잡았고, 구블은 마이크록과 협의 중이고, 안텔은 사모펀드와 컨소시엄 구성 협상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다 끼어드는군요.”

“본인들이 가지고 싶지는 않아도, 저희에게 넘겨주기는 싫다는 거겠죠.”

이미 예상했던 일인 만큼 별로 놀랍지는 않다.

유재호 회장은 골치 아프다는 듯 말했다.

“문제는 또 하나 있습니다.”

“뭔가요?”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 같은 기업입니다. 그런 만큼 일본 정치권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인수 심사에 대해 까다롭게 살펴보겠다는 거죠. 그래서 엔플은 키오노스를 컨소시엄에 끌어들일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제법 머리를 썼는데.

“비율은요?”

“15퍼센트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인수금액이 4조 엔이라면 15퍼센트만 해도 6천억 엔. 원화로는 6조 원.

“키오노스가 그럴 만한 돈이 있나요?”

“엔플과 PSMC가 보증이라도 서주지 않겠습니까?”

고작 15퍼센트라고 해도 어쨌거나 일본 기업이 껴있냐 아니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것이다.

“그럼 우리도 키오노스를 컨소시엄에 합류시키는 건 어떤가요?”

유재호 회장은 뭔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역시 안 되겠죠?”

심심해서 한번 말해봤다.

안 될 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저쪽에서 나를 사마라 회장을 탈출시킨 범인이라 오해(?)하고 있기 때문.

죽으면 죽었지 컨티뉴 캐피탈과 손잡을 일은 없겠지.

엔플, PSMC, 구블, 안텔, 마이크록 등등.

어느 곳 하나 만만하지 않은 상대가 없다.

하지만 난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결국은 우리가 이기게 될 테니까요.”

* * *

난 유재호 회장과의 대화를 끝마치고 나오며, 데이비드에게 연락했다.

“요코하마 일렉트론 주식을 매수하세요.”

인사이트 펀드가 보유한 지분은 36퍼센트.

나머지 64퍼센트는 도쿄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중 기관 보유분을 제외하면, 유통 물량은 대략 40퍼센트 안팎.

[당장 말입니까?]

“예.”

[장내매수를 하면 주가가 오를 테고, 그럼 매각가에도 영향을 끼칠 텐데요. 매수를 하더라도 인사이트 펀드의 지분 인수가 끝난 다음에 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다.

매각가란 결국 주가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 주가가 올라가면 매각가도 비싸질 우려가 크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최대한 많이 확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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