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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34화 (334/529)

334화. 요코하마 일렉트론 (5)

숙소는 지난번에 묵었던 롯폰기의 JR블랙우드 호텔.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년의 남성은 직접 문을 열어주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는 영어로 나에게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한미루 님. 저희 호텔을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그의 이름은 안도 요시히데. 이 호텔의 지배인이다.

난 일행을 한 명씩 소개해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세나가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했지?

난 여동생에게 말했다.

“자기소개 한번 해봐.”

“지금?”

“못 하겠어?”

“훗! 못 하긴 왜 못 해?”

좋은 자세다. 언어는 자신감이지.

외국인이 한국어를 못하는 것처럼,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건 당연하다. 언어는 틀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많이 말하는 게 중요하다.

세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오케이. 호카손 미.”

응? 호카손?

벌써부터 불안하다. 왠지 말려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런데 누가 말리기도 전에 세나는 유창한(?)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마이 네이무 이즈 세나 한. 아이무 유니바시티 스투단트.”

뭐야? 얘 발음이 왜 이래?

놀랄 새도 없이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아이 해브 아 파미리. 화자, 마자, 안도 마이 브라자.”

“…….”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지배인의 성이 ‘안도’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선우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브라자라고 한 거 맞지?”

소진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 것 같아요.”

대체 브라자는 왜?

넌 그런 거 안 해도 되는 애잖아.

[여기서 화자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서술하시오. (3점)]

……뭐 이런 건가?

나만 못 알아들은 건 아닌지, 선우와 소진이 모두 벙찐 표정이었다.

하지만 안도 지배인은 웃으며 말했다.

“Oh! Miss Han, you are a family with your father, mother and brother.(한세나 님 가족은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로군요.)”

알아들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알아들은 거지? 혹시 일본인만 알아들을 수 있는 건가?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쓰! 오브 코오스.”

선우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아! 니가 브라자였구나.”

“…….”

본인은 잘했다고 생각하는지 세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역시 일본인 친구랑 학교에서 열심히 연습한 보람이 있네.”

아니야. 보람 없어. 앞으로는 걔랑 연습하지 마.

“따라오시겠습니까? 룸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지배인을 따라 룸으로 향하는데, 선우가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맨 처음 말한 호카손은 뭘까?”

“……몰라.”

이건 10점짜리 문제 아닌가?

* * *

룸을 두 개 잡을까 하다가, 그냥 프레지덴셜룸 하나로 잡았다.

방 세 개에 화장실 세 개니, 세나랑 소진이가 화장실 있는 큰방 쓰면 되겠지.

이용할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블랙우드 인터내셔널과 협력해서 다행이다. 전세계에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있는 셈이니까.

돈을 떠나서 언제든 예약이 된다는 점이 편하다.

“우와! 여기도 좋다.”

창밖으로는 롯폰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세나와 소진이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단톡방에 올려야지.”

“예진이랑 유경이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대충 짐을 풀었다.

비행시간이 짧아서인지 별로 피곤하지는 않았다.

“저녁은 뭐 먹을까?”

“그냥 호텔에서 먹자. 룸서비스 시켜도 되고.”

세나는 손가락을 흔들었다.

“노노. 일본에 왔으면 현지식을 먹어야지.”

“현지식 뭐?”

“라멘 먹자, 라멘.”

좋은 호텔 레스토랑 놔두고 라멘이라니.

요즘은 한국에도 라멘집이 널려 있어서 유니크함이 떨어지지 않나?

그래도 일본에 왔으니, 일본 느낌 나는 음식을 먹는 게 좋겠지?

“그래. 나가자.”

세나와 소진이는 재빨리 검색해 호텔 근처의 라멘 맛집을 찾았다.

마침 근처에 괜찮은 곳이 있어서 우리는 걸어서 이동했다.

아직 저녁 시간 전이라서 그런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선우는 메뉴판을 펼치며 물었다.

“뭐 먹을래?”

“알아서 잘하는 걸로 시켜.”

“교자 먹을 거지?”

“시켜.”

“맥주는?”

세나가 바로 대답했다.

“무조건 시켜야죠. 생맥주.”

난 소진이에게 물었다.

“너도 마실 거야?”

“아, 저는…….”

세나가 옆에서 대신 말했다.

“당연히 마시지. 얘 술고래야. 엄청 잘 마셔.”

“그래?”

그러고 보니, 바베이도스에 있을 때도 칵테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소진이는 당황하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요즘 많이 줄였어요.”

선우는 익숙한 일본어로 주문했다.

생맥주가 나왔다.

세나는 신나게 소리쳤다.

“자! 간빠이!”

우리는 맥주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혼자 왔으면 호텔에서 대충 먹고 밖에도 나오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다 같이 오니 출장이 아닌 여행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와! 라멘이다.”

잠시 후, 라멘이 나오자 다들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맛있어?”

세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많이 먹어.”

기왕 나온 김에 주변을 좀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어디 가보고 싶은 데 있어?”

내 물음에 세나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클럽! 나 롯폰기 클럽 한번 가보고 싶어!”

“응. 안 돼.”

“아, 왜에?”

* * *

다음 날.

세나와 소진이는 관광을 위해 일찍부터 서둘렀다.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되는 휴양지 리조트라면 모를까, 대도시를 돌아다닌다고 하니 왠지 불안하다.

난 나가기 전 철저하게 안전 교육을 실시했다.

“항상 차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고. 모르는 사람이 뭐 사준다고 하면 쫄래쫄래 따라가지 말고.”

“뭐래? 오빠는 내가 바보인 줄 알아?”

“…….”

바보인 줄 안다.

가이드와 경호원이 함께 간다지만, 충분한 안심이 되지는 않는다.

“걱정 마세요, 오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응. 그런 자세 좋아.”

소진이가 같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세나 혼자 보냈으면 마음이 불안했을 텐데.

세나와 소진이가 먼저 나갔고, 선우도 게임사와 미팅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나갈 건데, 걱정 안 해줘?”

“넌 생긴 게 일본인 같아서 괜찮아.”

“…….”

사실 일본어 하는 거 보면 더 일본인 같다.

선우도 나가고 난 뒤.

난 시간에 맞춰서 정장을 빼입고 나갔다.

정문 앞에는 롤스로이스 팬텀이 대기 중이었다. 경호원이 문을 열어주었고, 난 올라타며 말했다.

“소프트박스 본사로 가주세요.”

* * *

난 미나토구의 고층빌딩에서 60대 남자를 만났다.

“어서 오십시오.”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언뜻 봐서는 일본인 같지만, 핏줄로만 따지면 그는 순수 한국인이다. 한국 출생이기도 하고.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 일부러 ‘송’이라는 한국 성을 쓴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과 일본에 와서 생활한 만큼 그의 정체성은 일본인에 가깝다.

한국어는 거의 못 하고, 평소 발표할 때 일본 고사를 많이 인용한다.

시원하게 벗겨진 머리가 인상적이다.

투윗터에서 누가 ‘머리카락의 후퇴가 심각하다’고 하자, 그는 ‘머리카락이 후퇴하는 게 아니다. 내가 전진하는 거다’라며 맞받아친 것은 유명한 일화.

괜히 옆머리 넘겨서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낸 모습이 그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가 바로 소프트박스 그룹의 송 가즈키 회장이다.

한국 이름은 송일기(宋一紀).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대화는 영어로 이뤄졌다.

젊은 시절 미국에서 유학한 그는 영어가 유창해 따로 통역은 필요 없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송 회장님을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저를 말입니까?”

“예. 존경합니다.”

그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까?”

“예. 만나면 꼭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요?”

“어째서 해외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포털과 통신업은 내수 독과점 산업.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적인 사업의 영위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끝없이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부르짖었고,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생존이요?”

“예. 일본은 이미 늦었습니다. 선진국 중 고령화가 가장 심한 반면, 디지털화는 가장 느립니다. 처음에는 일본을 바꿔보려 했지만, 이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본에만 안주하는 것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군요.”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

지금 빨리 전환을 서두르지 않으면 일본처럼 된다. 1회차 때는 실제로 그랬고.

“저야말로 한 대표님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뭔가요?”

“정말로 사마라 회장을 탈출시켰나요?”

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아니라고 해도 안 믿으시겠죠?”

그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사실 컨티뉴 캐피탈은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요?”

“처음 컨티뉴 캐피탈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쿨라우드…… 즉, 스노우 크래시 인수 발표가 났을 때입니다. 사실 인사이트 펀드는 스노우 크래시에 대한 투자를 가장 먼저 고려했습니다. 만약 투자할 수 있었다면, 모든 걸 팔아서라도 샀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가 투자를 못 한 이유는 간단하다.

“몇 차례 협상을 했지만, 공동대표 두 사람은 절대 팔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지분을 몽땅 팔고 나간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내막을 살펴보고는 더욱 놀랐구요. 그런 방식으로 인수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송 가즈키 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방법이 있을 줄 알았다면 제가 먼저 써먹었을 텐데요.”

나 역시 미래를 알지 못했다면 몰랐겠지.

“운이 좋았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란 천운이 맞아야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죠. 돈이 없어서 못 산 기업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사이트 펀드를 만드셨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PIF가 참여하지 않은 것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돈을 벌어서 좋은 건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자로서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화이트로드 에런 화이트 회장 다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런 화이트는 철저한 가치투자를 지향한다. 그의 심지어 그의 포트폴리오 중 무려 40퍼센트가 전세계 시가총액 1위인 엔플이다.

반면 송 가즈키 회장의 투자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뜰 만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인수한 다음,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빠르게 성장시킨다.

그다음, 상장 또는 매각해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최근 10년 동안은 그야말로 테크 기업들의 전성시대였다. 휘발유와 경유차는 전기차와 수소차로, 마트는 이커머스로, 금융은 핀테크로 대체됐고, 기업들은 너도나도 클라우드를 도입했다.

덕분에 송 가즈키 회장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무섭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방식은 시장이 상승할 때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지만, 반대로 시장이 하락하면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누가 수영복을 입지 않았는지 드러난다는 말처럼, 거품이 빠지면 테라피스나 토머스 모터스 같은 사기, 또는 부실 기업들의 민낯이 드러나기 마련.

인사이트 펀드가 투자한 워크스페이스는 상장 직전에 손실 규모와 부채가 드러나는 바람에 기업가치가 4분의 1로 폭락했고 상장은 중단됐다. 또한 지나바바와 다다추싱 등 중국 테크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제재로 인해 폭락했다.

특히 렉스의 파산은 치명적이었다.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이 큰 기업들이 줄줄이 날아가며 5년 동안의 벌어들인 엄청난 수익을 다 까먹은 것도 모자라 원금 손실까지 입었다.

계획하고 있던 투자는 올스톱 됐고, 투자자들은 인사이트 펀드에서 돈을 뺄 조짐을 보였다.

일명 펀드런이다.

송 가즈키 회장은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아마 내가 찾아온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난 그에게 대답을 들려주었다.

“요코하마 일렉트론 인수에 대해 논의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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