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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33화 (333/529)

333화. 요코하마 일렉트론 (4)

출발은 금요일 오후.

전용기가 있는 김포공항에 모이기로 했다. 나와 선우는 먼저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같이 외국 나가는 건 오랜만 아닌가?”

“엄청 오랜만이지.”

대학생 때는 같이 유럽여행도 가곤 했는데.

얘 기준에서 ‘오랜만’이면, 내 기준에서는 ‘엄청 오랜만’이다. 1회차 때 동업으로 치킨집을 차린 이후에는, 둘 중 한 명은 가게를 지켜야 해서 휴가도 따로 갔으니.

잠시 기다리자 여자애 둘이 캐리어를 끌고 뛰어왔다.

유아체형에 똥머리를 한 여자애는 내 동생 한세나. 그리고 그 옆에 포니테일에 귀여운 얼굴과 글래머러스한 여자애는 친구인 정소진.

소진이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빠.”

역시 귀엽군.

“안녕, 소진아. 학교 끝나고 온 거야?”

“예. 세나랑 만나서 바로 왔어요. 저기, 그런데 저도 정말 같이 가도 되나요? 지난번에도 신세 졌는데 죄송해서…….”

“죄송은 무슨. 어차피 비행기나 숙소 비용이 따로 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세나를 안 데려가는 거라면 모를까, 데려가기로 한 이상 소진이가 같이 가는 편이 오히려 낫다.

세나 혼자 두면 안심이 안 돼서 말이지.

소진이와 선우만 서로 처음 보고, 나머지는 다 아는 사이.

두 사람은 첫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세나 친구 정소진입니다.”

“반갑습니다. 미루 친구 강선우예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선우는 여자에 별로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다. 여자나 남자나 똑같은 사람으로 대한다랄까?

그래서인지 금방 말을 놓고 친해졌다.

소진이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이, 이거 받으세요, 오빠.”

“이게 뭐야?”

“초콜릿이에요.”

“응? 초콜릿을 왜?”

소진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밸런타인데이에 못 드렸잖아요. 지난번에 신세 진 것도 있고 해서…… 늦었지만 드리고 싶었어요.”

참고로 당시 나는 엔플과 구블과 박 터지게 싸우느라 미국에 있었다.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1년에 한 번 있는 밸런타인데이 이벤트를 그냥 넘겼구나.

세나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 소진이가 직접 만든 거야. 나도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어.”

누가 들으면 만드는 데 돕기라도 한 줄.

소진이는 손을 내저었다.

“그,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대단한 게 아니긴.”

손수 만든 초콜릿이라니!

학생 때나 할 법한 풋풋한 행동이다.

이걸 보니 역시 나한테 마음이 있는…….

“아! 친구랑 같이 오신다고 해서 하나 더 준비했어요.”

“어? 초면에 이런 거 받아도 되나?”

……건 아니구나.

의리든 뭐든 어떤가? 받았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러고 보면 난 여동생에게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난 세나에게 말했다.

“넌 이런 걸 보면 뭐 느끼는 거 없니?”

“응. 없어.”

사실 나도 없다.

화이트데이에 사탕 안 준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원래 남매끼리는 그런 걸 주고받지 않는다.

* * *

우리는 전용기에 올라탔다.

세나와 소진이는 일전에 타봤지만, 선우는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놀란 눈으로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야! 엄청 좋네.”

“갖고 싶으면 너도 하나 사.”

“응? 내가 돈이 어디 있어서?”

“회사 명의로 사면 되지. 하나 사줄까?”

잠시 생각하던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내가 외국 나갈 일이 얼마나 있다고.”

“컨티뉴 캐피탈 명의로도 사놨으니, 필요하면 언제든 빌려 타.”

세나는 잔뜩 신난 표정이었다.

“아! 재밌겠다. 도착하면 어디부터 놀러 가지?”

“…….”

그저 머릿속에 놀 생각만!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니?”

어차피 안 하는 걸 알면서 그냥 한번 물어봤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요즘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학원도 다닐까 생각 중이야.”

“……응?”

순간, 잘못 들었나 했다.

“니가 영어 공부를 한다고?”

“나중에 전세계를 여행 다니려면 영어 정도는 할 줄 알아야겠더라구. 글로벌한 세나가 되기 위해 파이팅 하는 중이야.”

“…….”

이럴 수가!

사실 공부란 본인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하는 게 제일이다.

이 얘기를 들으니 여행 데리고 다닌 게 헛수고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재일교포 애가 있거든. 걔랑 같이 영어 수강하는데, 내 파트너란 말이야. 그래서 걔랑 함께 열심히 영어 공부하고 있어.”

“실력 좀 늘었겠네.”

세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간단한 일상대화 정도는 문제없지.”

“오!”

나중에 한번 시켜봐야겠다.

언어는 많이 쓸수록 느는 법이지.

난 소진이에게 물었다.

“세나에게 들으니 일본어 잘한다며?”

“잘하지는 않고, 그냥 의사소통하는 정도예요.”

“일본어는 어쩌다 배우게 된 거야?”

“그냥 관심이 좀 있어서요. 사촌 언니가 일본어 번역 일도 하고 해서.”

“번역? 책?”

“예.”

“어떤 책인데?”

“이것저것 많이 했는데, 요즘은 ‘오빠가 여동생을 숨김’이라고…….”

“…….”

뭔 제목이 그래?

선우는 바로 알아들었다.

“어! 그거 라노베 아닌가?”

“라노베?”

“라이트노벨 말이야.”

“아아.”

얘는 게임업계에서 일하는 만큼 서브컬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세나가 옆에서 설명해주었다.

“소진이 일본어 엄청 잘해. 일본에서 여름과 겨울에 하는 큰 축제도 가고 그랬는데.”

“축제?”

“동아리 사람들이 모여서 책 파는 축제였는데. 뭐더라?”

어째서인지 소진이는 엄청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잠깐. 이거 설마……?

선우가 말했다.

“혹시 나츠코미랑 후유코미를 말하는 거야?”

“그, 그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본 최대의 동인행사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이상한 만화 보고 그랬어. 그 남자끼리 키스하고 껴안는 걸 뭐라고 하지?”

“게이?”

“그거 말고.”

선우가 말했다.

“BL?”

“맞아. 그거.”

선우는 재빨리 물었다.

“혹시 부녀자?”

부녀자란 원래 부인과 여자를 합친 단어지만, 여기서 ‘부’는 좀 다른 의미로 쓰인다.

소진이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요, 요즘은 잘 안 봐요.”

“‘요즘’이라는 건 예전에는 봤다는 거고, ‘잘 안 본다’라는 건 보긴 본다는 거잖아.”

“…….”

소진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럴 수가!

내 여동생의 친구가 부녀자였다니!

“어쩌다가 그 길을 걷게 된 거야?”

소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렸을 때 사촌 언니가 막 이거저거 보라고 하는 바람에…….”

선우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포교 당했구나.”

“……네.”

뭐, 취향이니 존중해주자.

대화를 하는 사이 일본이 점점 가까워졌다.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마라 회장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

설마 정말로 하네다공항에 도쿄지검 특수부가 진을 치고 있지는 않겠지?

뭐, 체포당하면 당하는 대로 이슈가 될 테니 나쁠 건 없다. 컨티뉴 캐피탈과 PIF에서 구명운동이라도 해주겠지.

* * *

티에리 사마라 키오노스 전 회장 일본 탈출 사건.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비리 폭로.

그 일로 인해 일본 전체가 입은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키오노스 CEO 사이토 마사키를 비롯해 경영진들이 줄줄이 사임하고, 검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정계에도 영향을 끼쳐서 사카모토 다카야 등 중의원 세 명이 조사를 받았다.

일본 정부가 시행하려던 1조 엔 규모의 반도체 지원은 올스톱됐고, 키오노스는 SPME와의 분쟁으로 인해 극심한 경영난에 빠져들며 주가는 70퍼센트 가까이 폭락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일본 반도체의 마지막 골든타임이 끝났다’라고 평가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당연히 일본 검찰.

이는 일본 검찰 역사상 최악의 망신이었다.

그동안 일본 검찰은 공정과 정의의 상징이었다.

일본 국민들이 정치인은 믿지 않아도 검찰은 믿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인해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됐다.

그나마 일본 언론이야 검찰과 정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전부 사마라 회장의 잘못인 것처럼 보도했지만, 외신에서는 일본의 사법체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는 대일투자에까지 큰 악영향을 끼칠 정도였다.

담당 검사였던 요시네 켄타로 검사는 물론이고, 도쿄지검 특수부 관련자들이 줄줄이 갈려나갔고, 차기 검찰총장으로 지목되던 마노 도시유키 도쿄지검장마저 옷을 벗었다.

일본 검찰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새로 도쿄지검장으로 부임한 하즈키 에이다는 바로 지시를 내렸다.

“사마라 회장 탈출에 관여한 놈들 전부 색출해서 기소해!”

일본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 관련자들을 몽땅 기소했고, 해외 조력자들 역시 전부 범죄자 인도를 요청했다.

탈출을 주도한 것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PMC 블랙몽구스의 벤 쿨렌과 올리버 쿨렌 형제.

그들은 사마라 회장의 가족에게서 의뢰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그들은 사마라 회장 가족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누군가 이들을 연결해줬을 거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마침 의심되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바로 한미루.

이유는 명확했다.

그는 컨티뉴 캐피탈 공동대표로 탈출 며칠 전 일본으로 와서 사마라 회장과 접촉했다. 그리고 컨티뉴 캐피탈은 키오노스 공매도와 풋옵션으로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정황상 그가 키오노스의 주가를 폭락시키기 위해 일을 벌인 것이 확실했다.

문제는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저 탈출 직전에 사마라 회장을 찾아가 만났을 뿐이다.

그는 사마라 회장이 탈출한 뒤 유유히 일본을 떠났다.

일본 검찰은 그 이후 한미루를 요주의 인물로 올려놓았다.

때문에 하네다 공항 측에 전용기 착륙 허가 요청과 탑승객 목록이 전해지자마자, 한미루의 입국 사실을 전달받았다.

일본 검찰, 특히 도쿄지검 수뇌부는 비분강개했다.

“그런 짓을 벌이고도 감히 다시 일본에 들어오겠다고!”

“이런 건방진 자식이!”

“대체 일본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 거냐?”

“당장 체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체포하고 싶어도 혐의가 없다.

물론 혐의가 없어도 일단 조사하겠다고 잡아놓은 다음, 계속 구금 기간을 연장하면 몇 개월이고 재판 없이 붙잡아놓을 수 있다.

실제로 이는 일본 검찰이 자주 써먹는 방법이다. 상대가 어중이떠중이였다면 정말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루는 컨티뉴 캐피탈의 공동대표.

그런 사람을 아무런 혐의도 증거도 없이 체포한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슈가 될 것이다. 그나마 죄가 있다면 괜찮겠지만, 만약 죄가 없다면?

그야말로 국제 망신이다.

“그럼 아예 입국을 금지하는 건 어떻습니까?”

외국인 출입국 허가는 해당 국가의 고유 권한이다.

국가에 해를 끼치는 위험 인물이라 판단되면, 얼마든지 입국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컨소시엄 대표로서 투자 목적으로 입국한다고 합니다.”

“키오노스를 폭락시켜서 번 돈으로 일본 기업을 사겠다는 건가?”

“사우디 자본과도 얽혀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입국을 금지한다면 향후 PIF의 대일투자가 줄어들거나 자본이 빠져나갈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일본 검찰은 한미루가 일본에 입국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즈키 에이다 도쿄지검장은 분통을 터트렸다.

“일본에게 망신을 주고, 일본을 털어먹은 놈을 그냥 놔둬야 한다니! 이런 빌어먹을!”

* * *

김포공항에서 하네다공항까지는 두 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난 전용기에서 내리며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세나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래?”

“아니, 뭐…….”

사마라 회장에게 그랬던 것처럼 도쿄지검 특수부가 공항에 진을 치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주변이 조용하다.

혹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나 혼자 찔려서 괜히 걱정한 건가?

“흠, 하긴.”

일본 검찰이 그렇게 할 일 없는 조직도 아니고, 굳이 나 하나에 관심 가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죄 없는 사람 일단 체포해서 구금하는 쪼잔하고 추잡한 짓을 할 리도 없을 테고.

간략하게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가자, 호텔에서 보내준 차량과 경호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호텔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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