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32화 (332/529)

332화. 요코하마 일렉트론 (3)

난 본격적인 얘기를 꺼내기 전에 슬쩍 물어보았다.

“일본 기업에 대해 여쭤보려는데, 괜찮을까요?”

[응? 안 괜찮을 건 뭔가?]

“일본에 안 좋은 기억이 있으시잖아요.”

내 말에 사마라 회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괜찮네. 어차피 다 지난 일인데. 요즘도 가끔 그때의 악몽을 꾸긴 하지만, 명상과 요가로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지.]

“효과가 있나요?”

[그럼. 덕분에 분노도 많이 가라앉고 여유가 생겼네. 워낙 효과가 좋아 만나는 사람마다 추천을 해주고 있지. 자네도 시간 나면 꼭 한번 배워보게. CEO는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 역시 매우 중요하니.]

“알겠습니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은 미리미리 정신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에는 명상, 심리치료, 정신상담이 넘쳐난다.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치료해주겠다는 관련 앱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고.

그럼 스트레스를 치료해주는 앱을 만드는 개발자들의 스트레스는 누가 치료해주려나?

어쨌거나 잘 극복했다니 다행이다.

[어떤 기업인가?]

“요코하마 일렉트론입니다.”

난 상황을 정리해서 설명해주었고, 사마라 회장은 깜짝 놀랐다.

[요코일렉을 인수하겠다고?]

“예.”

[장비회사 인수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제가 원래 어려운 일 하는 걸 좋아해서요.”

뻥이다.

나만큼 날로 돈 버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세상에 없다.

[내가 알기로 요코일렉은 별문제 없네. 기술도 뛰어나고, 재무도 탄탄하고. 무엇보다 CEO가 훌륭하네.]

“잘 아시나 보네요.”

[그럼. 나카자토 회장은 몇 차례 만난 적 있지.]

“어떤 사람인가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무라이 같은 남자랄까?]

이건 좀 뜬금없는 표현인데.

“사무라이요?”

[전통을 중시하고, 적당히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타입이지. 융통성은 없지만, 꼼수를 부리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하네.]

이런 게 외국인이 보는 사무라이의 이미지려나?

그런데 실제로 나카자토 요시하루 회장은 빈틈이 없기로 유명하다. 책임감도 뛰어나고 부지런하다.

게다가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과 모노즈쿠리의 표본이다.

조금의 불량률도 용납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야 직성이 풀렸다. 불량으로 제품을 폐기할지언정 자신들의 제품으로 고객사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최근 일본의 장인정신이 쓸데없는 곳에서 발휘돼서 그렇지, 이런 첨단산업에서 한 우물만 깊게 판다는 것은 무시하지 못할 강점이다.

1나노란 10억 분의 1미터.

반도체 장비란 이런 미세한 공정을 다루는 기계다.

요코하마 일렉트론이 ESML의 EUV 장비처럼, 절대 대체 불가능한 장비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비슷한 제품이라 해도 가장 잘 만들고 가장 신뢰도가 높다.

성능이 좋고 고장이 안 나니, 주문이 몰려들 수밖에.

[하지만 인수는 말리고 싶네.]

“어째서요?”

[반도체 회사는 정부의 규제를 강하게 받는 산업이네. 그나마 같은 일본 기업이라면 모를까, 다른 나라 기업이 인수한다면 온갖 규제가 뒤따르지. 이건 SPME가 키오노스에 투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네.]

일본에서 반도체 사업을 해본 사람에게만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충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떠한 얘기를 듣던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일단 일본에 가보려고 합니다.”

내 말에 그는 아까보다 더 크게 깜짝 놀랐다.

[뭐? 일본을 가겠다고?]

“예. 뭐가 잘못됐나요?”

[당연히 잘못됐지. 가자마자 체포당할 수도 있지 않겠나?]

“설마요.”

그러자 사마라 회장은 분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라니! 난 상공회의소 행사에 참석하려고 갔다가 전용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도쿄지검 특수부에 바로 체포당했네. 이게 셋업(Set Up) 범죄가 아니고 뭐겠나? 그 뒤 무슨 꼴을 겪었는지 아나? 수개월 동안 구치소에 갇혀 외부와의 연락도 면회도 금지됐네. 밥도 제대로 안 줘서 살이 10킬로그램이나 빠졌지. 지금까지도 그때의 몸무게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네!]

“…….”

일본 법무성의 해명에 따르면 딱히 적게 준 건 아니고 정량으로 줬다고 한다. 그 정량이 일본인 기준이라서 문제지.

[이 모든 게 일본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네!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지! 지금 생각해도 이가 갈리네!]

이게 특정 국가를 모함하기 위해 없는 말 지어낸 게 아니라는 사실이 놀랍다.

사마라 회장은 비분강개하며 소리쳤다.

[더 어이가 없는 게 뭔지 아나?]

“뭔가요?”

[나는 의혹만으로 체포해 구금당했는데, 정작 비리가 터져 나온 사이토 마사키를 비롯한 이사진들은 전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았다는 거네. 그나마도 하나둘씩 무혐의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있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말이 안 되죠.”

한국이 금융 범죄에 관대하다지만, 이건 일본 역시 만만치 않다.

그동안 온갖 분식회계, 횡령, 배임 사건들이 터져 나왔지만, 구속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일본 검찰은 내국인에게는 관대하고, 외국인에게는 막 대하는 그런 놈들이네! 그런데도 일본에 가겠다는 건가?]

“저야 일본에서 사업을 하지 않았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그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한 만큼 억지로 걸면 걸릴 게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한 일이 없으니 털어봐야 나올 것도 없다.

사마라 회장은 코웃음을 쳤다.

[흥! 일본은 무엇이든 가능한 나라네. 재팬 캔 두 애니띵!(Japan can do anything!)]

“…….”

이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다.

그나저나 명상과 요가로 마음을 다스렸다더니, 별 효과가 없는 모양이다.

* * *

사업하는 사람들은 다들 바쁜 만큼, 무작정 찾아간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정을 조율하는 사이 난 요코하마 일렉트론의 매출 관련 자료를 계속 살펴보았다.

역시나 중국 쪽 매출이 순항 중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내년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퍼센트를 넘지 않을까?

송 가즈키 회장이 요코하마 일렉트론을 인수한 것은 금융위기 이후.

당시는 반도체 치킨 게임과 금융위기로 인한 수요 폭락으로 인해 반도체 기업들이 줄도산하던 시기였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기업을 살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지원을 끊었다. 때문에 엘다피는 파산했고, 키오노스는 SPME의 투자 덕분에 간신히 살아났다.

이때 요코하마 일렉트론도 파산 위기에 몰렸다.

정부마저 손을 놓고 있었으나 송 가즈키 회장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반복되는 만큼, 불황의 그늘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호황이 시작될 거라 판단했다.

게다가 그는 중국 시장에 주목했다.

전세계가 금융위기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중국만은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지니바바나 다다추싱 투자를 보면 알 수 있듯 송 가즈키 회장은 중국 IT기업의 성장성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IT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도체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송 가즈키 회장은 공장 증설과 함께 중국 진출을 추진했다.

사실 나카자토 회장은 중국 공장 건설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소프트박스 그룹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송 가즈키 회장은 중국 고위층을 직접 만나 설득해 정부와 지자체의 투자를 이끌어냈고,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상하이에 공장을 지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후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반도체 공장 유치에 나섰고, 거기에 장비를 공급하는 요코하마 일렉트론의 매출은 폭증했으니까.

이런 걸 보면 역시 송 가즈키 회장의 안목은 뛰어나다.

지금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는 있던 공장 공장마저도 놀고 있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진출과 공장 증설에 나선다는 건 모험에 가까웠다.

제조업에 있어서 과잉설비는 재앙이다.

만약 예측이 틀렸다면, 요코하마 일렉트론은 엄청난 적자를 떠안고 망했을 것이다.

한창 자료를 뒤적거리며 보고 있는데, 세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동생이 이렇게 자주 연락하는 걸 보니, 남매끼리 너무 친해진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집에는 별일 없지?”

[응. 동네 아줌마들이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찾아와서 오빠에 대해 질문하며 사진을 들이미는 것만 빼면 별일 없어.]

“사진?”

[응. 딸 사진, 조카 사진, 며느리 언니 사진, 사위 여동생 사진, 딸의 친구 사진, 친구의 딸 사진 등등.]

“…….”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 동네 맞선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모양이다.

훗, 이놈의 인기란.

하지만 어림도 없지.

자연스런 만남을 추구하는 나에게 맞선이 웬 말이냐?

[엄마가 주말에 오래. 가족끼리 밥 먹자고.]

“갑자기?”

뭔가 느낌이 싸하다.

이런 말 듣고 순순히 집에 가는 흑우 없재?

“진짜 목적은?”

[사진 보여주며 한 명 골라보라고 할 것 같음.]

역시.

“못 간다고 전해드려.”

[왜?]

“주말에 일본 가.”

내 말에 세나는 반색했다.

[진짜? 일본 어디?]

“도쿄.”

그러자 세나는 바로 말했다.

[우와! 도쿄! 나 도쿄 좋아하는데. 나도 데려가!]

“넌 학교 안 가니?”

[주말에 간다며? 주말만 놀고 돌아오면 되지. 요즘 그렇게 여행가는 애들 많아.]

하긴, 일본은 가까우니.

“일본어도 못 하는 애가 일본 가서 뭐 하려고?”

[소진이가 일본어 엄청 잘해. 예전에 일본 여행도 많이 갔어.]

“그래?”

그런 능력이 있는지는 몰랐군.

[우왕! 안 그래도 우리 일본 놀러갈까 생각 중이었는데 잘됐다.]

“아니…….”

잘되긴 뭐가 잘돼?

데려가 준다는 말도 안 했는데, 혼자서 김칫국 드링킹 중이다.

“응. 안 돼. 돌아가. 데려가 줄 생각 없어.”

[뭐야? 맨날 오빠만 놀러 다니고!]

“일하러 가는 거야, 일하러.”

[무슨 일?]

웬만해서는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얘한테 오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줄 필요가 좀 있다.

“기업 M&A. 매저 앤드 애퀴지션(Merger and Acquisition). 번역하자면 인수합병이지.”

단어 순서대로라면 합병인수라고 해야 맞겠지만.

[그러니까 그게 뭔데?]

“돈 주고 기업을 산다고.”

[아하!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되지,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해?]

“…….”

이게 대체 뭐가 어려워?

[아무튼 우리도 데려가.]

“일본 가서 뭐하게?”

[할 거야 많지.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구경도 하고. 데려갈 거지?]

역시나 쓸데없는 이유였다.

난 단호하게 말했다.

“노노.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뭔 소리야? 오빠는 일본에 가서 기업 산다며?]

“…….”

그게 그거랑 같니?

* * *

하도 데려가 달라고 난리를 치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데려가기로 했다.

세나는 바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지만, 당장 스케줄이 맞는 사람이 소진이밖에 없어서 둘만 가기로 했다.

일본은 안전하고, 소진이가 일본어를 잘한다지만, 그래도 둘만 돌아다니게 하기에는 걱정된다.

그래서 가이드와 경호원도 섭외했다.

이런 건 JR블랙우드 호텔 측에 얘기하면 알아서 다 준비해준다. 돈이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는 법이지.

선우는 나에게 물었다.

“일본에 간다고?”

“응.”

“잘됐네. 그럼 나도 같이 가자.”

“넌 왜?”

“안 그래도 일본 게임사 몇 곳과 미팅할 예정이었어. 만날 사람도 있고.”

참고로 얘도 일본어를 꽤 잘한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일본 게임이 주류였다.

그때는 한글화가 안 된 게임도 많았던 만큼, 게임을 하기 위해 독학으로 일본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 역시 그렇게 배웠고.

혼자 가려고 했는데, 어째 같이 갈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다행히 전용기라 비행깃값이 따로 나갈 일은 없다.

“오케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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