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일상2 (5)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기동욱 의원 아내의 비리가 밝혀진 것은 2기 내각 청문회 때.
당시 야당에서 이를 걸고 넘어졌지만,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했고 무난히 국토부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후 법원으로 넘어갔지만,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가 없다며 무죄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은 대선 시즌.
양당이 서로 흠을 못 잡아서 안달인 상황이다.
새정치당은 거센 공세를 펼쳤고, 그의 뒷배라 할 수 있는 임창식은 경선에서 떨어져 미국에 가있다.
당에는 사퇴 요구가 빗발쳤고, 우리국민당은 긴급의총을 열어 기동욱 의원 제명을 논의했다.
결국 여론 악화에 버티다 못한 기동욱 의원은 스스로 탈당계를 제출했다.
“저는 오늘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당을 떠나겠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언론의 악의적인 마녀사냥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와 가족은 어떠한 부당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걸리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저로 인해 당이 부담을 떠안는 상황은 바라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국민당을 탈당해 저와 가족의 억울함을 풀고 다시 당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실망을 끼쳐드린 점, 당원과 국민들께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 * *
[기동욱 의원, 우리국민당 탈당!]
[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묵묵부답]
[새정치당, 기 의원 탈당은 꼬리 자르기]
[기동욱 의원 아들, 특혜 채용 의혹]
[기동욱 의원의 아내 최모 씨, 입주자 대표 사퇴]
사태가 커지자 최현숙은 입주자대표 자리에서 물러났고, 스마트 보안 시스템 설치 추진은 자연히 무산됐다.
주민들은 만나기만 하면 이와 관련된 얘기를 했다.
“어쩐지, 그놈의 스마트 보안 시스템인지 뭔지를 꼭 해야 한다고 하더니.”
“설마 동생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었을 줄이야.”
“대체 그동안 얼마를 받았을까요?”
“그거 말고도 조사해보면 엄청 나오지 않겠어요?”
“이번 일로 집값 떨어지면 어떡하죠?”
“언론 보니까 아들도 특혜 채용됐다는 얘기가 있던데.”
“하긴, 그 집 아들 변변치 않은 대학 나왔던데. 어쩐지 대기업 들어간 게 좀 이상하다 했어요.”
“우리 집 애는 면접에서 떨어져 속상해 울고 있는데, 국회의원 빽으로 대기업 취직하다니. 너무 화가 나네요.”
반면, 권미자네 가족에 대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소문이 퍼졌다.
“아들이 엄청 효자인가 봐요. 차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다 아들이 사준 것 같은데.”
“어머니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백화점에서 다 쓸어왔다는 게 사실이에요?”
“진짜예요. 선물 사온 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요.”
“게다가 그 집 아들 한국대 나왔대요. 뭔 투자회사에서 일한다는데 돈도 엄청 잘 벌고.”
“미혼이고, 사귀는 사람도 없다던데.”
“효자라고 하니, 엄마가 소개해주면 무조건 만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전에 좀 안 좋은 소문이 있었잖아요. 남편이 동업자 뒤통수쳤다고.”
“에이, 그럴 리 있겠어요?”
“알고 보면 그거 다 부녀회장이 퍼트린 헛소문일 거예요.”
“맞아요. 마음에 안 드는 주민들 그런 식으로 몰아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어머어머!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아주 큰 오해를 할 뻔했네요!”
최현숙은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이전까지는 지역 유지이자 유명 정치인의 아내였지만, 이제는 그저 주민들의 관리비를 멋대로 유용한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소문이 무서워 집밖으로 나가기조차 힘들었다.
어쩌다가 나가서 주민과 마주치면 그녀를 피하거나,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지금껏 그녀는 이 아파트의 지배자였다.
경비원들과 주민 모두 그녀를 보면 먼저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고, 모두가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다.
그동안 마음에 안 드는 주민이 있으면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는 방식으로 고립시켜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
‘내가 우리 아파트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매일 같이 단지 청소 상태와 주차 관리 상태를 체크해 경비원들에게 지시했고, 주변 공인중개사를 돌아다니며 시세보다 싼값에 집을 올려놓지 못하게 막아 집값을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고작 동생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는 신세가 됐다.
이로 인해 남편은 탈당을 해야 했고, 아들은 눈치가 보여서 회사도 못 나가고 있다.
‘이 모든 게 다 그 집 때문이야! 그 집만 이사 오지 않았더라도!’
어쨌거나 더 이상 동네에서 고개를 들고 살 수가 없는 상황.
결국 최현숙은 남편과 가족을 데리고 야반도주하듯 이사를 떠났다.
* * *
난 세나에게 얘기를 전해 듣고 안심했다.
선우는 나에게 물었다.
“요즘 뭐하느라 그렇게 바빠?”
“집안일을 좀 해결하느라고.”
“집안일 중요하지. 잘 해결됐어?”
“응. 아주 깔끔하게 해결됐어.”
이걸로 부모님이 그 아파트에 사시는 데 별문제 없겠지.
나중에 세나 졸업하고 나면 강남으로 이사하시면 될 테고.
“일은 잘하고 있어?”
“응. 그런데 요즘 들어서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무슨?”
“사실 회사 차려서 게임을 만들려고 하니,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좀 난감했거든. 그런데 막상 만들기 시작하니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가 머릿속에서 술술 나오는 거야. 마치 예전에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 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난 순간 당황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왜 기시감 같은 거 있잖아. 데자뷔나.”
“…….”
잠깐.
생각해보면 그날 차에 치었을 때, 오토바이에는 나만 타고 있던 게 아니었다. 선우도 함께 타고 있었다.
그럼 혹시 얘도 나와 함께 회귀한 게 아닐까?
난 선우의 어깨를 붙들고 물었다.
“그거 외에 다른 생각은 안 나?”
“무슨 생각?”
“미래가 보인다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 것 같다거나.”
“로또 번호 같은 거?”
“응. 바로 그런 거.”
“흐음.”
선우는 팔짱을 낀 채 잠시 생각했다.
“아니. 그런 생각은 쥐뿔도 안 나는 것 같은데. 그냥 게임이 잘 만들어질 뿐이야.”
“…….”
아닌가?
역시 나 혼자 회귀한 건가?
선우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헉! 혹시…….”
난 깜짝 놀라 물었다.
“역시 뭔가 생각난 거야?”
선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난 천재 개발자가 아니었을까? 그동안 모르고 있다가 퇴사 후 각성한 거지. 맞아! 바로 그거야!”
“…….”
내가 왜 아침부터 얘랑 이런 쓸데없는 대화를 하고 있는 걸까?
난 화제를 돌렸다.
“출근이나 하자.”
“너도 출근하게?”
“응. 재타이거 만나기로 했어.”
* * *
중년 남자는 나를 보며 말했다.
“왠지 오랜만인 것 같군요.”
“실제로 오랜만이니까요.”
난 유재호 회장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이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지신 것 같네요.”
“그런가요? 사실 요즘 일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중입니다.”
주가도 꾸준히 오르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자리에 앉자 비서가 차와 커피를 내왔다.
우리는 음료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회사가 붙어 있으니 좋네요.”
유재호 회장도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컨티뉴 캐피탈에 팔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아름이도 더 자주 봅니다. 지난번에는 이동호 대표와 함께 오더군요.”
요즘 들어 자주 붙어 다니는 것 같아서 괜히 내가 다 뿌듯하다.
“출장은 잘 다녀오셨어요?”
내가 한국에 온 지 꽤 됐음에도 이제야 만나는 이유는 그가 출장 중이었기 때문.
“예.”
“중국이었죠?”
유재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의 반도체 공장 기공식에 다녀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나라는 중국. 그리고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역시 중국이다.
때문에 반도체 회사들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고객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중국 분위기는 어떤가요?”
“고위인사들을 만나봤는데, 제재에 별로 신경 쓰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약진을 보면 무서울 정도입니다. 제재로 인해 오히려 중국 기업들의 기술개발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일명 제재의 역설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전쟁 중.
미국은 몇 년 전부터 중국 반도체 산업에 각종 제재를 가했다.
이렇게만 보면 중국 반도체가 망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산량과 소비량 모두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미국 역시 말로는 강력한 제재를 부르짖지만, 정작 반도체 관련 제품의 대중 수출액은 매년 증가 추세다.
당장 작년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반도체 기업 20곳 중 19곳이 중국 기업이다.
어쨌거나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도체 공장 증설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지.
“요즘 들어 부쩍 견제가 심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럴 수밖에요.”
유성전자는 원래 메모리 반도체 최대 생산업체다.
그런데 최근에는 파운드리와 메모리 반도체 설계 쪽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파운드리 쪽에서는 대만의 PSMC가, 설계에서는 쿨컴, 안텔, 엔플 등이 버티고 있다. 사실상 전세계 모든 반도체 업체들이 경쟁 상대인 셈이다.
여기에 클라우드 기업들까지.
미래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도 좋겠지.
“이번 일로 엔플과 구블 역시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인데요. 구블의 글렌 코넬리 CEO와도 통화했는데, 불쾌감을 감추지 않더군요.”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죠.”
다만 나로 인해 그 시기가 좀 더 앞당겨졌을 뿐이다.
1회차 때는 그저 레전드게임즈, 그리고 엔플과 구블의 소송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로 인해 스노우 크래시와 유성전자도 얽혀들었다.
덕분에 판정승을 거두긴 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이번 일로 우리가 위협이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을 테니까.
난 탐 키튼 CEO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그 만남은 서로가 적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아마 다음번 싸움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유재호 회장은 홍차를 마시며 말했다.
“이번에 요코하마 일렉트론이 매물로 나올 거라고 합니다.”
“요코하마 일렉트론이면……?”
“세계 3위 반도체 장비회사입니다.”
당연히 들어본 적 있다.
반도체 섹터 분석할 때 빠지지 않는 회사니까.
“그 회사가 벌써 매물로 나왔어요?”
“벌써라니요? 매각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요?”
“아…….”
속으로 살짝 뜨끔했지만, 난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매각한다면 그거부터 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측이기에 유재호 회장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요코하마 일렉트론의 모회사는 소프트박스그룹(Soft Box Group).
업종은 정보통신업. 한국으로 치면, 네오틴과 LK텔레콤을 합쳐놓은 기업이랄까?
회장은 송 가즈키로 한국계 일본인이다.
업종을 보면 일본 내수에 치우쳐져 있지만, 이 기업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바로 스타트업계의 큰손이기 때문.
애초에 소프트박스그룹 자체가 송 가즈키 회장의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 이후에도 전세계의 다양한 기업에 투자해 지분을 사들였다.
특히 지니바바 초창기 때 2000만 달러를 투자해 약 1500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 외에 큐팡이나 아이버, 워크스페이스 같은 기업들에도 투자했고.
소프트박스는 본업보다 투자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주가 역시 크게 상승해 토요타에 이어 일본 시가총액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지난 분기에만 3조 엔 넘는 적자를 보며, 부채비율은 늘고 주가는 폭락하는 등 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리고 그렇게 된 원인은 따지고 보면 바로 나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