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일상2 (3)
최현숙은 당장 그 집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
그리고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고, 부녀회 모임에 슬쩍 얘기를 흘렸다.
“우연히 소문을 들었는데, 그 집 양반이 같이 일했던 동업자의 뒤통수를 쳤대요.”
“어머, 그게 정말이에요?”
“예. 고향 후배였다는데, 강제로 지분을 빼앗고 내쫓은 모양이에요. 그리고 대기업 전무를 영입해서 사업을 키웠다는데, 아무래도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겠어요? 이런 걸 보면 사업 수완이 보통이 아닌가 봐요.”
한번 안 좋은 쪽으로 소문을 퍼트리자, 순식간에 살이 붙어서 단지 전체로 퍼져 나갔다.
“어떻게 그럴 수가.”
“너무하네요. 아무리 사업이 중요하다지만 믿고 따르던 고향 후배를 배신하다니.”
“지난번 만날 때 보니, 되게 착하신 것 같던데. 남에게 안 좋은 말 한마디 못할 것 같고.”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 없나 봐요.”
“어쩐지! 공장 하나짜리 하청 업체가 어떻게 그렇게 컸나 했더니…….”
“동업자도 내쫓은 걸 보면, 숨겨진 뭔가가 더 있나 본데요.”
사람들은 부자를 부러워하면서도 시기한다.
원래 부자였던 사람보다 한때는 자신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가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 모습을 지켜보며 최현숙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아주 이 동네에서 고개를 못 들고 살게 만들어줘야지.’
* * *
세나의 말을 들은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안 좋은 소문이 퍼지면 동네에서 지내기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찾아가서 따져봐야 별 소용없을 것이다. 아니라고 발뺌하면 그만이니까. 이럴 때는 냉정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상대는 부녀회장이자 입주자대표.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지위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단지 아파트의 입주자대표면 상당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
송도 루미안 파크뷰 아파트는 2200세대의 대단지.
한 가구당 관리비가 15만 원이라 치면, 단지에서 걷히는 월 관리비는 3억이 넘는다. 1년이면 30억이 넘는 돈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난 먼저 그녀가 추진하는 일에 대해 알아보았다.
스마트 보안 시스템을 설치해 경비원 20퍼센트를 감축하겠다는 계획.
단지 CCTV 설치하는 것뿐 아니라, 추가 보안문 설치, 입출 차량 관리 시스템 설치, 종합 보안 시스템 구축 등등.
예상 사업비용은 정확히 안 나와 있지만, 이후 시설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10억이 넘을 것이다.
이걸 입주자대표가 멋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주민 80퍼센트가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아파트 일에 관심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보통 입주자대표가 아파트를 위한 일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따르기 마련이지.
“게다가 남편이 국회의원이라니.”
이름은 기동욱.
그 지역에서 내리 3선을 한 국회의원이다.
소속은 우리국민당으로 대표적인 친임계 의원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1회차 때 그는 임창식이 대통령이 된 뒤 2기 내각 때 국토부장관으로 임명된다.
그런데 청문회 과정에서 가족 관련 비리가 터져서 낙마…… 하지는 않고 임명되기는 하지만, 당시 엄청난 욕을 먹었다.
그때 나왔던 비리가 지금의 일과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난 일단 허민웅에게 연락했다.
[헤이, 브라더. 그날 잘 들어갔어?]
“예. 그보다 혹시 기업 하나 조사해줄 수 있어요?”
[기업?]
“유원시큐리티라고 아파트 보안업체예요.”
[무슨 일인데?]
“별일은 아닌데…….”
내가 대충 설명해주자 그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뭐? 그게 진짜야? 알았어. 내가 한번 철저하게 파헤쳐 볼게.]
난 전화를 끊은 다음 생각했다.
일단 이쪽이야 이렇게 대응한다 치고.
이미 퍼진 소문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상대를 쓰러트린다 한들 이미 퍼진 소문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다.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아니라고 설명한다 한들 오해가 풀릴까?
난 잠시 고민하다가 민아름에게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미루 씨.]
“잠깐 통화 괜찮아요?”
[그럼요. 무슨 일이에요?]
“먼저 상황을 말씀드리면…….”
난 대충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어머! 그럼 큰일인데요. 이런 건 초반에 확실하게 대처해야 해요.]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안타깝게도 오해를 풀 방법은 없어요. 어차피 사람들은 진실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믿으니까요. 따라서 중요한 건 오해를 푸는 게 아니에요.]
“그럼요?”
[오해를 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걸 알려줘야죠. 사람 심리가 참 이상해서 적당한 부자는 질투하는데, 엄청난 부자는 오히려 경외하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압도적인 돈으로 찍어 누르면 소문은 자연히 사라질 거라는 건가?
“혹시 저 좀 도와줄 수 있나요?”
뭘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럼요. 지금 백화점에서 만날까요?]
“예. 바로 갈게요.”
* * *
귄미자네 집에서 아파트 부녀회 회의가 열렸다.
“집 좋네요. 여긴 처음 와 보는데 저희 집과는 구조가 조금 다르네요.”
최현숙의 말에 같이 있던 아주머니들이 말했다.
“그래도 사모님 집이 좀 더 크지 않아요?”
“이번에 소파도 명품으로 새로 사셨던데.”
펜트하우스답게 집 안은 넓고 깨끗했다. 자재 역시 최고급이다.
그런데 세간 중에는 낡은 것들이 눈에 띄었다. 아마 전에 살던 집에서 쓰던 걸 안 버리고 가져온 모양이다.
그녀는 속으로 비웃었다.
‘이래서 졸부는 티가 난다니까.’
한 아주머니가 거실에 걸린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그림은 뭔가요?”
권미자가 말했다.
“아들이 전에 미국 갔을 때 사 온 그림이에요. 유명한 화가가 그린 거라고 하던데.”
“어머, 저게요?”
“애가 낙서한 것 같은 그림인데요.”
저 그림을 그린 사람은 현대미술의 대가로 불리는 랭크시.
가격은 100만 달러가 넘지만, 안타깝게도 그걸 알아볼 만한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뭐지? 랭크시 그림 흉내 낸 건가?’
그나마 최현숙이 좀 알아봤지만, 그녀 역시 진품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잠시 후, 사람들이 다 모였다.
모인 사람 숫자는 총 열두 명.
다들 거실에 둘러앉았고, 권미자는 차와 다과를 내왔다.
최현숙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 먼저 오늘 부녀회 모임 장소를 제공해주신 세나 어머님께 박수 부탁드릴게요.”
다들 박수를 쳤고, 권미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뭘요. 차린 건 없지만 편하게 계시다가 가세요.”
아파트에 어떤 소문이 도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아주머니들도 왠지 슬쩍 피하는 듯했고.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야 하는데.’
때문에 이 자리를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최현숙은 계속해서 말했다.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은 지난번에 스마트 보안 시스템에 대해 설명이 좀 부족했던 것 같아서예요. 아무래도 저희 아파트가 이 동네에서 가장 잘 사는 곳이다 보니, 예전부터 몇 차례 도난 사고가 발생했거든요. 그런데 경비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어요.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아파트 주민들의 안전 아니겠어요? 만약 애 있는 집에 범죄자가 침입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런 소문이 퍼진다면, 집값도 떨어질 테구요.”
그러자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럼요. 사모님 말씀이 맞아요.”
“도둑이라니. 생각만 해도 무섭네요.”
“얼마 전, 뉴스 보니까 아파트에 침입한 범죄자가 주민을 살해한 일도 있더라구요.”
“우리 집은 딸만 둘이라, 더욱 걱정이 커요.”
최현숙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민들끼리 의견을 모아 스마트 보안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한 거예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미 주민들 83퍼센트가 찬성했어요. 나머지도 반대가 아니라 집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아 아직 동의를 못 받은 거구요.”
경비원들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세대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자신과 동료를 해고하라는 서류에 사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경비원 20퍼센트 해고’라는 항목에 사인하라고 했다면 반대하는 주민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 보안 시스템 설치’라고만 되어 있었기에 대다수의 주민은 별생각 없이 사인했다.
최현숙은 권미자를 보며 물었다.
“혹시 세나 어머님께서는 지금도 반대하시나요?”
“예?”
“한번 편하게 말씀해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줄 생각이었다.
사람은 고립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그런 다음에 다정하게 손을 내밀면, 그때부터는 그녀를 믿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주민들이 다 찬성한다는데 딱히 반대할 만한 명분도 없다. 설사 그녀가 반대한다고 한들 아무 소용없을 테고.
권미자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 저는…….”
그 순간.
비밀번호 찍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쏠렸다.
현관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20대 중후반 정도의 청년.
“어머니! 저 왔습니다.”
권미자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들! 연락도 없이 집에 어쩐 일이야?”
“근처에 일 있어서 온 김에 잠깐 들렀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친구분들이세요?”
“으응. 우리 아파트 부녀회 회원님들이셔. 인사 드려.”
그 말에 한미루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미루라고 합니다.”
최현숙이 말했다.
“아드님이신가 보네요.”
“예. 저희 집 큰애예요. 한동안 출장 가 있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어요.”
권미자는 아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손에 그건 뭐니?”
아들의 양손에는 십여 개의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아! 좀 있으면 어머니 생신이잖아요. 그래서 좀 샀어요.”
“으응?”
권미자는 속으로 당황했다.
‘아니, 내 생일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게다가 그녀의 아들은 차라리 돈으로 줬으면 줬지, 선물 같은 걸 사오는 그런 다정한 성격이 아니다.
한미루는 보란 듯이 권미자의 앞에 쇼핑백을 내려놓았다.
“아니, 근데 뭘 이렇게 많이 샀어?”
“어머니가 뭐 좋아하실지 몰라서 그냥 다 사왔어요.”
쇼핑백의 로고만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한 아주머니가 먼저 슬쩍 말했다.
“뭐예요?”
“한번 열어보세요.”
“아, 예.”
부녀회원들의 독촉에 그녀는 쇼핑백 안에 있는 것을 꺼내 들었다. 천으로 된 포장을 벗기니 가죽으로 된 가방이 튀어나왔다.
그것을 본 부녀회원들은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어머! 그거 버킨백 아니에요?”
“잠깐. 여기 캘리백도 있어요.”
“샤넬 롱코트랑 구두네요.”
“까르띠에 쥬얼리 세트네요. 너무 예쁘다!”
다들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쇼핑백에서 쏟아져 나오는 에르메스 명품백과 샤넬 코트와 구두, 까르띠에와 티파니앤코 쥬얼리 등을 구경했다.
사실 가장 놀란 사람은 당사자인 권미자였다.
그녀는 명품백을 가리키며 아들에게 물었다.
“이거 얼마짜리니?”
“별로 안 비싼 거예요. 한정판이라 한 4천쯤 했나?”
‘“뭐, 뭐? 그, 그럼 이 목걸이랑 귀걸이는?”
“글쎄요. 그냥 직원이 추천해준 걸로 산 거라서. 얼마였더라? 아! 여기 영수증 있네요.”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영수증을 보았다. 거기에는 억 단위 금액이 찍혀 있었다.
그걸 본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고작 쥬얼리 세트에 1억을 태워?’
‘이게 말이 돼?’
‘남편이 돈 잘 버는 줄 알았는데, 아들은 더 잘 버나 보네.’
‘그냥 졸부집인 줄 알았는데…….’
‘엄청난 졸부집이었잖아!’
세상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쇼핑 한 번에 수억 원씩 지르는 집이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은근슬쩍 시기하고 질투했는데, 눈앞에서 돈 쓰는 모습을 보니 이건 질투 같은 걸 할 만한 레벨이 아니었다.
최현숙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
‘이게 다 얼마야?’
여기 있는 것만 합쳐도 수억 원이다.
게다가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상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부잣집 사모님이지만 한 번 쇼핑에 이 정도 명품을 질러본 적은 없다. 괜히 기가 죽을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거 받으세요, 어머니.”
“이건 또 뭔데?”
“골프장 회원권이에요.”
“응? 지난번에 하나 사줬잖아.”
“거기는 드림월드 GC잖아요. 이번에 영종도에 잭아일랜드 GC라고 새로 생겼다기에 하나 사봤어요. 아! 그리고 이건 JR블랙우드 호텔 회원권이에요. 가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놀러 가서 맛있는 거 드세요.”
“…….”
골프장 회원권과 호텔 회원권 모두 1억 원이 넘는다. 그런데 그런 걸 무슨 백화점 상품권처럼 어머니에게 선물했다.
‘우리 애는 서른 넘도록 취직도 못 하고 있는데.’
‘엄마 선물은커녕 맨날 용돈 달라고 손 벌리는데.’
‘난 언제 이런 목걸이 걸어보려나.’
‘다음 주에 동창회 있는데, 가방 하루만 빌려달라고 하면 안 되나?’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부녀회 회원들이 한마디씩 했다.
“사모님, 너무 부러워요.”
“아들이 참 효자네요.”
“좋은 아들 두셨네요. 잘생기고 멋지고.”
조금 전까지의 적대적인 분위기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다들 부러움과 선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작품에서 묘사하는 인물과 지명, 단체, 그 밖의 일체의 명칭이나 에피소드 등은 모두 허구이고,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