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수수료 전쟁 (9)
앨버트 던스틴.
그는 친구와 함께 모바일 게임회사 투더블유 인터렉티브를 창업했다.
이들이 만든 게임은 인기를 끌며 어느덧 직원 100명의 중견 게임사로 성장했다. 최근에 출시한 게임 역시 양대 앱마켓에서 순조롭게 판매 중이었다.
모바일 게임 회사인 만큼 전체 매출에서 가장 큰 지출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앱마켓 수수료.
100만 달러 매출이 발생하면 이는 먼저 엔플과 구블로 들어가고, 그중 30만 달러를 떼고 70만 달러가 회사로 들어온다.
여기서 인건비와 임대료, 라이센스비 등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나면 실제 영업이익률은 10퍼센트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갑자기 레전드게임즈가 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소용없을 텐데.’
레전드게임즈는 게임 개발사이자, 게임 엔진 개발사이자, ESD 운영사로 업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기업이다.
하지만 그런 레전드게임즈조차도 엔플과 구블에 비하면 구멍가게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맞서 싸우는 것을 택했다.
나이트라이트와 블록 밸리의 매출 손실을 생각한다면, 이는 바보짓이나 다름없었다.
‘설마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 상대는 엔플과 구블이라고.’
역시나 나이트라이트와 블록 밸리는 양대 앱마켓에서 퇴출당했다. 그러자 레전드게임즈는 오히려 소송을 걸며 맞섰다.
앨버트는 레전드게임즈가 이기기를 간절히 응원했다.
이는 그가 만난 다른 개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발 레전드게임즈가 이겼으면 좋겠는데.”
“게임이 망하면 게임사도 망하는데, 엔플과 구블은 게임이 망하든 말든 30퍼센트를 챙겨간다는 게 말이 돼?”
“수수료만 좀 낮아져도 살 것 같은데.”
“인앱결제 강제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만약 레전드게임즈가 진다면 레전드게임즈 혼자 손실을 입게 된다. 반면, 레전드게임즈가 이긴다면 그 혜택은 모든 개발자들이 받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어느 누가 개발자를 위해 이렇게 싸웠겠는가?
일방적으로 밀릴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레전드게임즈는 오히려 엔플과 구블의 논리를 깨부수며 몰아붙였다.
그리고 레전드게임즈 스토어는 안드로메다에서 코스믹스토어와 협력해 다시 게임을 서비스했고, NOS에서는 클라우드 게이밍을 출시하는 방식으로 엔스토어를 우회했다.
WST와의 인터뷰에서 탐 스콧 CEO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클라우드 게이밍 개발 프로젝트를 리버티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자유를 위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 리버티(Project Liberty)!
그 인터뷰를 보는 순간, 앨버트는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바로 공동 창업자인 오스카 스튜어트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우리도 레전드게임즈 스토어에 들어가자.”
오스카는 당황했다.
“그, 그럼 엔플과 구블에게 찍힐 텐데.”
투더블유 인터렉티브는 이미 엔스토어와 플레이마켓에서 수익을 잘 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괜히 밉보일 행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오스카는 신중하게 말했다.
“나중에 레전드게임즈 스토어가 잘되면, 그때 가서 합류하면 되는 거 아니야?”
경영자로서는 그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앨버트는 책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저놈들이 계속 30퍼센트 수수료에 앱마켓 광고비까지 꼬박꼬박 받아 처먹고 있는 거야! 이건 자유를 위한 싸움이야! 우리는 지금 당장 싸움에 함께해야 해! 왜냐고? 만약 레전드게임즈가 패한다면, 저놈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한테 30퍼센트 수수료를 뜯어갈 테니까!”
오스카는 놀란 표정으로 친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문득 둘이 처음 게임을 개발했을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최고의 게임을 만들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저 엔플과 구블의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다.
만약 레전드게임즈 스토어에 들어간다면, 엔플과 구블이 결코 곱게 보지는 않을 거다.
약관을 어긴 것은 아닌 만큼 퇴출당하지는 않겠지만, 광고, 노출, 이벤트, 프로모션 등에서 각종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단 말인가?
30퍼센트였던 수수료를 12퍼센트만 낸다면, 게임사의 몫도 늘어나고 자신들의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
오스카는 힘차게 소리쳤다.
“좋아! 한번 해보자. 당장 레전드게임즈 스토어에 연락해!”
* * *
레전드게임즈 클라우드는 모바일 게임 업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모바일 웹 브라우저로 접속한 레전드게임즈 스토어는 마치 화면 전체가 앱마켓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원하는 게임을 골라서 실행만 하면 되는 것이다.
클라우드 게이밍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게임들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이에 여러 게임사들이…… 특히 크로스 플랫폼을 지원하는 게임사들이 큰 관심을 나타냈다.
게임을 각각의 운영체제에 맞게 최적화하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클라우드 게이밍은 게임 구동을 데이터센터에서 하는 만큼 이러한 문제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수수료가 압도적으로 저렴하다!
엔스토어 수수료에 불만을 가진 게임사들은 일제히 레전드게임즈 클라우드로 몰려갔다.
심지어 엔스토어에서 심사를 기다리던 게임 중 일부가 심사 요청을 취소하고 레전드게임즈 클라우드로 이동했다.
조니 마이렌은 경악했다.
‘클라우드 게이밍이라니!’
이러한 시스템을 한두 달 만에 구축했을 리 없다. 그렇다는 건 한참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클라우드로 엔스토어의 비즈니스 방식을 뒤흔드는 게 목적이었나?’
마음 같아서는 레전드게임즈 스토어를 유해 사이트로 지정해 웹 브라우저의 접근을 차단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법정에서 엔스토어에 없는 앱이라도 웹 브라우저로 얼마든지 접속할 수 있다고 말해놓은 상황.
만약 이를 차단한다면, 엔플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횡포를 부리는 기업이라고 시인하는 셈이다.
게임사들은 물론 소비자들에게까지 고소를 당할 위험이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상황을 보고 받았다.
“다른 게임사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개발사들이 일제히 수수료를 낮춰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 * *
[CAF(앱공정성연대), 가입 개발사 2000곳으로 늘어]
[CAF 공동성명서 발표, 각국 정부가 나서서 엔플과 구블의 횡포 막아 달라!]
[전미게임협회, 모바일 게임 수수료 낮춰 달라 요구!]
[엔플 측 핵심 관계자, 레전드게임즈 클라우드 이용시 고객들의 데이터 요금 증가 우려…….]
이제까지 게임사들이 엔플과 구블의 수수료 정책을 따랐던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대안이 생겼다.
-수수료 때문에 못 살겠다!
-엔스토어와 플레이마켓 덕분에 많은 유저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에 유저를 붙잡아놓고 매출을 올리기 위한 노력은 게임사가 했다.
-개발사들끼리는 경쟁을 붙이면서, 엔플과 구블은 왜 경쟁을 하지 않는 거냐?
-힘없는 개발사들에게는 30퍼센트씩 뜯어가며 빅테크 기업에게는 왜 절반만 받냐? 당장 AMZ와의 계약서를 공개해라!
-외부 결제 링크를 허가하라!
-더 이상은 디지털 소작농으로 살지 않겠다!
-레전드게임즈와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
먼저 물러선 것은 구블이었다.
클라우드 게이밍이 엔스토어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코스믹스토어는 플레이마켓을 대체할 수 있다.
주 매출원인 게임사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결국 구블은 앱마켓 수수료 정책 수정을 발표했다.
[소규모 개발자들을 위해 연간 수익 100만 달러 미만의 기업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15퍼센트로 낮추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100만 달러 이상에 대해서는 30퍼센트를 고수한 만큼, 사실상 생색내기나 다름없는 조치였다.
어쨌거나 구블이 먼저 수수료를 낮추겠다고 하자, 사람들의 시선은 엔플에게로 쏠렸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사들은 단체 행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이트라이트가 그랬듯 결제창에 외부 결제 링크를 집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본 조니 마이렌은 놀라 소리쳤다.
“이놈들이 지금 뭐하는 거야? 당장 외부 결제 링크 삭제하지 않으면 엔스토어에서 게임 삭제하겠다고 경고해!”
그러자 담당 직원은 당황하며 말했다.
“그, 그게…… 내리고 싶으면 내리라고 합니다. 레전드게임즈 스토어로 가면 된다고.”
“……뭐?”
감히 엔플에 반기를 들겠다고?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지금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한 명이 반란을 일으키면 한 명을 죽이면 된다. 백 명이 반란을 일으키면 백 명을 죽이면 된다.
하지만 천 명이라면? 만 명이라면?
엔플은 게임사에 경고장을 보냈지만, 게임사들은 외부 결제 링크를 내리지 않았다.
그동안 주장한 원칙대로라면 이 게임들을 전부 삭제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엔스토어 역시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엔폰으로 해당 게임을 이용하는 소비자들 역시 반발할 테고.
결국 엔플은 해당 게임사에 경고장만 발송했을 뿐, 삭제 조치를 바로 취하지는 못했다.
* * *
조니 마이렌은 CEO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얘기를 다 들은 탐 키튼 CEO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대책은?”
“일단 구블과 마찬가지로 소규모 개발자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절반으로 낮춰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한미루 대표의 예언대로 됐군.”
조니 마이렌은 속으로 굴욕을 삼켰다.
‘빌어먹을!’
한미루는 그를 만난 자리에서 ‘소송 결과와 상관없이 엔플은 수수료를 내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지금 정확히 그대로 이뤄졌다.
“그렇게 하면 지금 상황이 해결될 것 같나?”
조니 마이렌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힘들 것 같습니다.”
중소 개발사야 이 조치를 환영하겠지만, 매년 수억 달러의 매출을 내는 게임사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사실상 엔스토어의 독점 체제는 깨졌고, 앞으로는 클라우드 게이밍과 경쟁해야 할 것이다.
이전까지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30퍼센트 수수료는 이제 악덕 세율로 인식됐고, 엔플과 구블의 반독점법 위반과 관련한 소송은 미국뿐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등 전세계에서 진행 중이었다.
탐 키튼 CEO는 쓴웃음을 지었다.
“손실이 만만치 않군.”
단지 엔스토어 수익이 줄어드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손실은 기업 이미지의 하락.
재판장에서 보여준 모습만 해도 그렇다.
젊은 흑인 혼혈 여성 변호사는 레전드게임즈의 혁명가 이미지를 나타낸 반면, 그에 맞선 백인 남성 변호사들은 엔플을 기득권을 장악한 악덕 지주로 보이게 만들었다.
엔플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기업이었다.
엔플은 혁신가이자 혁명가였고, 새롭고 뛰어난 제품으로 개발자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켜주었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도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고, 엔플의 제품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큰 만족감을 느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들인 동시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 기업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인해 엔플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받았다.
당장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에 해가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게임사 하나 때문에 벌어졌다.
‘아니, 컨티뉴 캐피탈 때문인가?’
탐 키튼 CEO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끝까지 책임지고 이번 일을 해결하게.”
“……알겠습니다.”
탐 키튼 CEO는 안정적인 관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은 그의 체제 아래 엔플이 위기를 겪지 않고 성장한 비결이다.
다른 건 용서받을 수 있어도 관리를 실패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조니 마이렌은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 자신이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나가고 나자, 탐 키튼 CEO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한미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