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수수료 전쟁 (7)
더 제롬 캐리어 투나잇 쇼(The Jerome Carrier Tonight Show).
줄여서 보통 제롬 쇼라고 하는 이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 토크쇼에는 연예인뿐 아니라, 정치인과 금융인, 스타트업 CEO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패널로 등장했고, 평균 시청자는 500만 명에 달했다.
오프닝 음악과 함께 유명 코미디언이자 진행자인 제롬 캐리어가 방청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세트장에 나타났다.
“좋은 밤입니다, 여러분. 제롬 캐리어입니다. 저는 최근 나이트라이트라는 게임을 즐겁게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머리에 페인트탄을 신나게 갈기고 있었죠. 그런데 오마이갓! 하루아침에 엔스토어와 플레이마켓에서 사라졌더군요. 깜짝 놀라 나이트라이트를 찾아보고 있는데, 제 딸이 옆에서 소리쳤습니다. ‘아빠! 블록으로 된 마을이 없어졌어!’라고. 저희 부녀는 아직까지도 그 두 게임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방청객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오늘은 그 게임의 행방에 대해 아실 만한 분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레전드게임즈의 탐 스콧 CEO입니다.”
방청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고 탐 스콧 CEO가 등장했다.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눴다.
“일단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죠. 나이트라이트와 블록 밸리는 어디로 간 겁니까?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글쎄요. 그건 제가 아니라 구블과 엔플에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탐 키튼 CEO에게 출연해 달라고 엔플에 문의했습니다만, 답변이 없는 걸로 볼 때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스콧 씨가 잘 아실 겁니다.”
“어째서인가요?”
“이름이 같은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겠죠.”
“하하!”
탐 스콧은 웃음을 터트렸고, 방청객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엔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세기의 소송전이네요. 물론 엔플이 이기겠지만요.”
“아!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여기 있는 모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좋습니다. 그럼 재판장에 나가실 때 떨지 않도록 이 자리에서 왜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지 말씀해보세요. 전 이 자리에 없는 탐 키튼 CEO의 입장을 대변해 보죠. 지금부터 절 탐 키튼이라고 생각하세요. 아! 그렇다고 때려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방청객들 사이에서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탐 스콧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한번 해보죠.”
제롬은 바로 토론을 시작했다.
“스콧 씨는 엔플과 구블이 독점 기업이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모바일 게임 시장만 놓고 볼 때입니다. 전체 게임 시장에서 엔플과 구블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60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60퍼센트가 고작인가요?”
“그래도 모바일 게임으로 한정해 95퍼센트인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탐 스콧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엔플 측의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AMZ를 예로 들어보죠. AMZ의 전자상거래 점유율은 40퍼센트입니다. 하지만 오프라인을 포함한 전체 리테일 시장으로 보면 8퍼센트입니다. 이를 전세계로 확대하면 3퍼센트 이하로 떨어지겠죠. 소송의 핵심은 인앱결제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모바일 시장으로 한정 짓는 게 타당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수수료에 대해 얘기해보죠. 30퍼센트가 너무 높다는 겁니까?”
“예. 모바일 게임 개발사 중 영업이익이 30퍼센트가 넘는 곳이 얼마나 될까요? 몇 년 동안 개발한 게임이 망하면 게임사는 엄청난 타격을 받습니다. 망하는 곳도 부지기수죠. 하지만 엔플과 구블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습니다. 반면, 게임이 성공할 경우 그들은 가장 많은 돈을 벌어갑니다. 게임을 개발해 얻는 수익보다 수수료가 더 많은 게 과연 정상일까요?”
그러자 제롬은 그 말을 반박했다.
“나이트라이트의 경우 콘솔에서 가장 많은 매출이 발생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뉴의 플레이스테이트와 NS의 Z박스에도 동일하게 30퍼센트의 수수료를 내면서, 엔플에 내는 30퍼센트는 부당하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탐 스콧은 손을 저었다.
“그건 경우가 좀 다릅니다. 소뉴와 NS는 직접 콘솔을 개발하고 저렴하게 판매해 콘솔게임이라는 시장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입니다. 또한 자사의 콘솔에 맞게 게임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발사들을 지원하고, 일부 게임사에는 직접 투자하고 있습니다. 해당 게임이 흥행에 실패하면, 소뉴와 NS 역시 손실을 보죠. 수수료 역시 30퍼센트 고정이 아닌, 계약조건에 따라 변동됩니다. 그런데 엔플이 게임 업계를 위해 한 게 뭐가 있습니까? 그저 통행세를 걷고 있을 뿐입니다.”
“엔플의 주장에 따르면 엔스토어의 규제와 검증을 통해 양질의 앱을 제공하기 때문에 NOS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헛소리입니다. PC에서는 얼마든지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설치하는 게 가능합니다. 이건 엔플이 만든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NOS에서는 엔스토어를 통해서만 설치해야 한다구요? 웃긴 건 중국에서는 위챈트의 유챗앱 내의 자체 스토어와 유페이의 결제를 허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건 중국 시장만의 특수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탐 스콧은 코웃음을 쳤다.
“특수성이라……. 제가 보기에는 중국에서는 반독점법 소송에 걸리면 질 것 같으니 예외를 허용해주고, 다른 나라에서는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엔플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겁니까?”
“예. 고객 정보를 보호하겠다며 페이스노트의 정보 수집을 차단해 놓고서는, 정작 본인들은 이용자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해 서비스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는 따로 데이터센터를 만들고, 중국 정부가 데이터를 검열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중국 앱에 대해서는 자체 스토어와 결제를 허용해주고, 어째서 미국 앱에 대해서는 안 된다고 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중국에서는 그렇게 해야 장사를 할 수 있고, 미국에서는 그렇게 안 해도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엔플이 말하는 공정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그래도 모든 업체에게 공정하게 30퍼센트의 수수료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엔플뮤직, 엔플TV, 바자르는 수수료를 낼까요?”
제롬은 고개를 저었다.
“안 내겠죠.”
“어째서요?”
“엔플이 만든 앱이니까요.”
“맞습니다. 그럼 엔플이 만든 엔플뮤직과 엔플TV는 수수료를 내지 않는데, 경쟁사인 스포티파티와 넷플레이는 수수료를 낸다면 이게 과연 공정한 경쟁일까요? 수수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엔플은 앱 심사부터 배포, 결제까지 전 과정을 독점하며,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앱인 스포티파티는 업데이트 심사 지연 등 각종 피해를 입었습니다. 반면 엔플뮤직은 꼬박꼬박 업데이트되고 있죠. 게임퍼스트는 내부에 있는 게임들을 개별 심사해야 한다는 이유로 엔스토어 등재가 보류됐습니다. 그런데 마찬가지 구독형 서비스를 하는 넷플레이는 내부 콘텐츠를 따로 심사하지 않습니다.”
“엔플이 자사의 입맛에 맞게 심사를 핑계로 경쟁사를 훼방 놓고 있다는 겁니까?”
탐 스콧은 대놓고 비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가장 웃긴 건, 게임퍼스트를 바자르의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쪽 업계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죠. 아마 NS의 사티아 샤말란 CEO와 짐 스펜스 사장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을 겁니다.”
“듣고 보니 불공정한 측면이 있긴 하겠네요. 하지만 자사 앱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30퍼센트로 동일하지 않습니까?”
“그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라구요? 뭐가요?”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30퍼센트 수수료를 적용한다는 말이요. 엔플은 AMZ 등 대기업에 대해서는 비밀리에 수수료를 절반으로 낮춰서 계약했습니다. 약자에게는 30퍼센트를 받고, 강자에게는 15퍼센트나 그 이하를 받는 게 엔플이 하는 짓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기에 제롬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까?”
“예. 양사 간의 계약서를 공개해달라고 법원에 정보공개 청구를 신청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엔플 측은 절대 자료를 공개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 공개했는데, 30퍼센트가 맞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실 이게 정말인지 아닌지는 탐 스콧 역시 몰랐다.
‘하지만 한미루 대표가 확실한 정보라고 말했지.’
근거가 뭔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무조건 믿을 수 있다.
탐 스콧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저희는 소송을 취하하고, 엔플에 대한 사과 광고를 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엔플이 수수료를 40퍼센트로 올리든 50퍼센트로 올리든 충실하게 따르겠습니다.”
제롬은 슬슬 토크를 마무리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이쪽 탐의 이야기인 만큼, 다른 쪽 탐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고 싶군요. 언제든 출연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습니까?”
탐 스콧은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과거 엔플은 혁신가이자 혁명가였습니다. 그들은 엔플 컴퓨터와 엔폰으로 세상을 바꿔놓았죠. 처음 엔폰이 등장했을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들은 독점의 횡포를 부리던 통신사들과 싸웠고, 수수료를 30퍼센트로 낮췄습니다. 하지만…… 한때 독점을 깨기 위해 싸웠던 엔플은, 이제 자신이 독점 기업이 됐습니다. 30퍼센트의 수수료는 황금률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은 불변의 규칙이 됐습니다. 엔플은 작년 동안에만 엔스토어로 250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이 금액이 앞으로 열 배, 백 배 늘어난다 해도, 30퍼센트의 수수료율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겁니다.”
잠시 말을 멈춘 탐 스콧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레전드게임즈는 과거 엔플이 그랬듯 독점을 깨려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디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 * *
엔플 법무팀 소속 변호사와 깁슨&심슨 로펌의 변호사들은 레전드게임즈의 논리를 부수기 위한 소송 전략을 짰다.
“모바일 게임 독점 문제를 피하기 위해, 재판부에 린텐도 포터블 같은 휴대용 게임기도 모바일 게임으로 포함해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아예 전체 소프트웨어 시장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엔스토어는 모바일 ESD에서는 60퍼센트의 점유율을 갖고 있지만, 이를 전체 ESD로 확대하면 점유율을 10퍼센트로 낮출 수 있습니다.”
“소뉴와 NS 콘솔 ESD 역시 게임사들에게 30퍼센트 수수료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 재판은 시작도 안 했는데, 탐 스콧 CEO는 엔플이 어떤 주장을 펼칠지 알고 있다는 듯 토크쇼와 인터뷰에 나가 이에 대한 반론을 펼쳤다.
업계 최고의 실력을 지녔다는 변호사들은 TV쇼에서 자신들의 주장이 하나씩 깨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게다가 레전드게임즈가 정보공개를 청구한 문서와 신청한 증인 모두 엔플의 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다.
이건 소송의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탐 스콧 CEO의 인터뷰를 본 조니 마이렌 부사장은 분노해서 소리쳤다.
“대체 누가 정보를 유출한 겁니까?”
깁슨 변호사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럼 우리 쪽 전략을 저놈들이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그, 그건…….”
* * *
[레전드게임즈, 앱공정성연합(CAF, Coalition for App Fairness) 출범! 앱 개발사들에게 엔플과의 소송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앱 스포티파티와 프랑스 모바일 게임 개발사 킹스톤 등 100여 개의 개발사 CAF에 합류! 엔플 수수료 정책에 반기 들어!]
CAF는 엔스토어 약관이 EU의 경쟁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EU에 제소했다.
EU집행위원회는 엔플이 모바일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휘를 남용한 게 맞는지에 대해 묻는 서면 질의서를 보냈다.
미국에서 시작한 소송은 이제 유럽으로 확대됐다.
난 데이비드의 전화를 받았다.
[EU가 일 처리가 느리기로 유명한 곳인데,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엔플과 구블의 모바일 시장 독점체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
엔플과 구블은 미국 기업이지만, 전세계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 결제하든 결제액의 30퍼센트가 미국 기업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를 좋아할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한마디로 울고 싶었는데 빰 때려준 셈이죠.”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소송 결과가 나오려면 1년은 걸릴 겁니다.]
난 웃음을 지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처음부터 소송으로 해결할 생각은 없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