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17화 (317/529)

317화. 수수료 전쟁 (5)

엔플과 구블을 상대로 소송을 해서 이길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처&해리슨 로펌이 이번 소송을 맡기로 한 이유는 장기적으로 레전드게임즈뿐 아니라 스노우 크래시와 컨티뉴 캐피탈을 고객으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표 변호사를 맡은 피오나 해리슨은 책임감이 무거웠다.

다행히 클라이언트 역시 이기기 힘든 소송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미리 승소 여부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패할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로펌의 명성이 크게 하락할 테니까.

질 땐 지더라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그녀 외에 열다섯 명의 변호사들이 달라붙어, 관련 법조항과 엔플과 구블의 약관, 그리고 각국의 판례를 검토했다.

탐 스콧 CEO는 그녀가 요청한 자료들을 제공하며 함께 재판을 준비했다.

한미루는 해리슨 변호사에게 서류를 건네주며 말했다.

“저희 쪽 주장과 저쪽에서 주장할 내용을 대충 적어봤습니다. 자료랑 근거 찾아서 정리하세요. 일부 자료는 해당 기업에 직접 문의해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또한 명단에 적어놨으니, 그 사람들에게 증인으로 나와 줄 수 있는지 물어보세요.”

“알겠습니다.”

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안다고 이런 지시를 내리는 거지?’

사실 이런 의뢰인은 종종 있다.

그냥 변호사의 말만 따르면 될 것을, 뭣도 모르면서 자신이 판사나 변호사라도 되는 양 재판을 진두지휘하려는.

이런 의뢰인을 어르고 달래며 소송을 진행한다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어쨌거나 돈을 받고 고용된 입장인 만큼, 클라이언트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일단 검토해보고 아니다 싶은 것들은 적당히 제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용을 살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쪽 주장은 일관적이고 논리적인 동시에, 상대측 주장의 모순을 찔렀다.

심지어는 엔플이 앞으로 어떤 논리를 펼칠지,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할지까지 적혀 있었다.

보면 볼수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이후의 과정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이, 이건 우리도 생각지 못했던 건데.’

해리슨 변호사는 놀란 눈으로 탐 스콧 CEO와 대화하는 한미루를 보았다.

어쩌면 이 소송…….

정말로 이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소장을 읽어 본 엔플의 부사장 조니 마이렌은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허…… 설마 정말로 소송을 할 줄이야.”

블록게임즈는 모든 걸 일임하고 한 발 뒤로 빠졌고, 레전드게임즈가 소송을 맡았다.

조니 마이렌은 상대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탐 스콧 CEO는 한마디로 괴짜였다.

레전드게임즈는 게임 개발사며, 써릴 엔진 개발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갑자기 스트림의 수수료 30퍼센트가 너무 비싸다며, 레전드게임즈 스토어를 만들어 기존 30퍼센트의 수수료를 절반 이하로 낮췄다.

초기 점유율은 미미했으나,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으며 스노우 크래시와 협업한 덕분에 현재는 종합게임플랫폼으로 거듭났고, 점유율 역시 크게 높아졌다.

게임사와 이용자들이 계속 레전드게임즈로 빠져나가자, 견디다 못한 스트림은 결국 수수료를 20퍼센트로 낮췄다.

‘엔스토어 수수료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건가?’

당연하게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일단 엔플은 스트림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거대 기업이다.

작년 엔스토어의 매출은 850억 달러.

엔플이 거둬들인 수수료 수입은 약 250억 달러.

만약 30퍼센트인 수수료를 20퍼센트로 낮춘다면, 무려 80억 달러의 이익이 감소한다.

게다가 엔스토어 매출이 매년 20퍼센트 이상 성장 중인 만큼, 향후에 벌어들일 이익 역시 크게 줄어들어, 주가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앱마켓 수수료 30퍼센트는 시장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존재했고,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은 절대적 황금률이었다.

모두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레전드게임즈보다 훨씬 큰 IT기업들도 군말 없이 수수료를 납부했다. 그런데 일개 게임사가 감히 엔플의 정책에 전면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그것도, 이기기도 힘든 소송까지 걸며.

사실 이번 레전드게임즈의 소송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나이트라이트는 엔스토어와 플레이마켓에서 이제까지 약 8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30퍼센트 수수료를 내고도, 5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그런데 앱마켓 퇴출로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할 상황이다.

소송의 액수나 규모는 과거 엔플과 유성전자가 벌였던 특허권 분쟁에 비하면 훨씬 작았다. 그러나 그때보다 업계와 언론, 그리고 대중들의 관심은 훨씬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엔플과 유성전자의 특허권 소송’은 그저 두 기업 간의 싸움이었다. 누가 이기든 지든 양사 외에 미치는 파장은 극히 적었다.

하지만 이번 ‘레전드게임즈의 반독점법 소송’은 핵심 쟁점이 인앱결제 수수료인 만큼, 게임 업계와 IT업계, 그리고 소비자들까지도 관련되어 있었다.

만에 하나 엔플이 지기라도 한다면, 시장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하지만 이 소송 자체는 엔플에게도 부담이긴 했다.

엔플과 구블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못 해서 그렇지, 개발자들 상당수는 인앱결제 수수료에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번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불만이 불길처럼 번져나갈 우려가 있다.

그러니 더더욱 초기에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엔플은 이전부터 협력해온 깁슨&심슨 로펌을 선임해 소송을 준비하는 한편, 맞소송을 진행했다.

사실 탐 스콧 CEO보다 더 신경 쓰이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한미루라…….”

데이비드 록허트와는 달리 그의 이름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만 조사해보니,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그는 최근 페이스노트의 청문회와 페더 공매도에 관여했다. 그리고 그 직전에는 한국에서 GL엔텍 사태로 증시 전체를 뒤집어 놓았다.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최근 일어난 주요 사건들마다 한복판에 존재했다. 마치 본인이 그 사건을 전부 일으킨 것처럼.

‘뭐지? 유령인가?’

이번 일과는 얼마나 관련이 있는 걸까?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이 소송은 어느 한쪽을 끝장내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대기업들 간의 소송은 판결까지 가기보다는 그전에 합의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은 수수료 문제로 인해 서로 이견이 있을 뿐.

게임이 엔스토어에 다시 등록되는 게 서로에게 이익이다. 저쪽 역시 그걸 간절하게 원하고 있을 테고.

그는 변호사에게 지시했다.

“한번 저쪽이랑 접촉해 얘기를 들어보세요.”

“알겠습니다.”

깁슨 변호사는 레전드게임즈 측에 연락을 보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뭐라구요?”

그의 말을 들은 조니 마이렌은 되물었고, 깁슨 변호사는 다시 말해주었다.

“할 얘기가 있으면 직접 만나서 하자고 합니다. 저쪽에서는 레전드게임즈와 컨티뉴 캐피탈의 대표가 함께 나오겠다고 합니다.”

“하…….”

조니 마이렌은 웃음을 흘렸다.

‘역시 소송은 블러핑이었나?’

먼저 소송을 건 주제에 속으로는 원만한 합의를 원하는 것이다. 하긴, 그게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테니까.

조니 마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단, 그쪽에서 오라고 하세요.”

* * *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메이너스 호텔.

회의실 창밖으로는 엔플 본사가 내려다보였다.

난 탐 스콧 CEO와 해리슨 변호사와 함께 이곳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반갑습니다, 한미루입니다.”

40대 후반의 백인 남성은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조니 마이렌입니다. 컨티뉴 캐피탈의 공동대표에 대한 얘기는 예전부터 들었습니다. 이 정도로 젊은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엔스토어 담당자이자, 엔플의 서비스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엔플 전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물이다.

동행한 사람은 돈 깁슨.

깁슨&심슨 로펌의 대표다.

해리슨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에서 1위, 미국 전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로펌이고, 과거 엔플과 유성전자의 특허권 소송을 맡아서 진행했다고 한다.

“오랜만입니다, 부사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탐 스콧 CEO와 마이렌 부사장은 이전에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눈 다음, 각자 비밀유지서약서에 서명했다. 오늘 오간 대화에 대해 외부에는 알리지 않겠다는 계약이다.

당연히 법정에서 증언으로 활용할 수도 없다.

딱히 신체검사를 하는 건 아닌 만큼, 마음만 먹으면 녹음기나 스마트폰을 숨겨 얼마든지 녹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법적 처벌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 이런 간단한 계약조차 지키지 않는다는 게 알려지면, 누가 그 사람을 믿고 비즈니스를 하겠는가?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조니 마이렌 부사장은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보내주신 소장은 잘 받았습니다. 내용이 꽤 재밌더군요. 엔플이 독점기업의 횡포를 부렸다니.”

말투와 표정에서 여유와 자신감이 넘쳤다.

난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도 소장 잘 받았습니다. 외부 결제로 얼마의 매출이 발생했는지 밝히고, 매출의 30퍼센트 수수료를 내라는 내용이더군요.”

“당연한 요구입니다. 두 회사의 계약 위반으로 엔플이 원래 얻었어야 할 이익만큼 손실을 봤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이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실제로 1회차 때 레전드게임즈는 이 소송에서 패소해 320만 달러를 물어준다. 금액보다는 반드시 수수료를 받는다는 상징적 의미겠지.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레전드게임즈의 요구 사항은 뭡니까?”

“말하면 들어주실 수 있나요?”

“뭐냐에 따라 다르겠죠. 엔스토어 1, 2위 게임이 동시에 내려간 것에 대해서는 저희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많은 고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고, 문의나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기를 바랍니다.”

그는 농담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소송이 길어진다면 변호사들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죠.”

흔히 미국 의료비가 무섭다고 하는데, 변호사비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비용을 감당 못 해 기업이 파산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이걸 노리고 일부러 소송을 걸어 경쟁사를 망하게 만드는 일도 있고.

과거 유성전자와 엔플의 특허분쟁 당시 양측은 변호사 비용으로 4억 달러를 넘게 지출했다.

이 천문학적인 액수가 상대 기업도 아니고, 변호사들 주머니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간 것이다.

이러니 기업 간의 분쟁은 로펌 배만 불린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물론 엔플이나 우리나 변호사비에 부담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돈을 안 쓰고 해결할 수 있다면 서로 좋겠지.

마이렌 부사장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레전드게임즈와 블록게임즈 역시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걸 원치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원하는 걸 한번 편하게 얘기해보시죠.”

마치 강자로서 아량을 베푸는 듯한 모습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만나보긴 했는데, 솔직히 좀 놀랐다.

1회차 때 엔플은 아예 협상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 소송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설마 블록 밸리가 추가됐기 때문은 아닐 테고…… 그럼 컨티뉴 캐피탈 때문인가?

어쨌거나 편하게 말하라고 하니, 편하게 말하기로 했다.

“저희 요구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그는 웃음을 지었다.

“세 가지나 되는군요. 일단 들어보죠.”

난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며 말했다.

“첫째, 30퍼센트의 수수료를 낮출 것. 둘째, 앱 내에 외부 결제 링크를 허용할 것. 셋째, NOS에 엔스토어 외에 다른 앱마켓을 도입할 것. 이 세 가지 조건만 들어주신다면, 소송을 취하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이렌 부사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난 피식 웃었다.

“요구 조건을 말하라고 해서 말한 건데요. 혹시 연방법원이 수수료를 무조건 30퍼센트를 받고, 외부 결제 링크를 금지하라고 정해놓기라도 했나요? 아니면, 엔플이 만든 약관이 절대 수정할 수 없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라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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