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수수료 전쟁 (4)
사전에 얘기한 대로 블록 밸리 창업자들은 빠지고, 탐 스콧 CEO만 자리를 함께했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난 두 명의 변호사에게 말했다.
“의뢰 내용은 당연히 알고 계실 테고, 오시기 전 자료도 충분히 검토해 봤을 테니, 따로 설명드릴 필요는 없겠죠?”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일단 소송 대상을 엔플로 한정해 얘기해 보죠. 이번 일에 대한 두 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제가 듣고 싶은 건 귀에 즐거운 얘기가 아닙니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의견이죠.”
아처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소송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다름없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이어서, 이번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인가?
예상은 했지만, 막상 들으니 역시 귀가 즐겁지는 않다.
다윗에게 사상을 주입하면 골리앗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보니, 다윗은 그딴 거 없이도 골리앗을 이겼던 것 같다.
난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상대에게 질문했다.
“그만큼 힘든 싸움이라는 건가요?”
“예.”
“어째서요?”
“귀책사유가 레전드게임즈와 블록게임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앱이 아닌 웹에서의 결제를 지원하거나 인앱결제와 외부 결제의 가격을 차별화하는 것은 위반 행위가 아닙니다. 다른 앱들 역시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으니까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망고뮤직을 예로 들면, 앱에서 결제하면 1만 원이지만, 홈페이지에서 결제하면 7천 원이다.
이렇게 가격이 차이나는 이유는 앱 수수료 때문.
대부분의 앱들은 웹에서 구독을 결제하거나 캐시를 충전하면, 이를 앱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넷플레이나 투위치 등 많은 앱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엔플과 구블은 딱히 이를 제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부 결제를 앱 내부에서 제공하거나, 이를 유도하는 것은 명백한 약관 위반입니다. 따라서 앱을 삭제한 엔플과 구블의 조치는 정당합니다.”
“조건이 부당하다고 해도 계약은 계약이라는 거군요.”
“예. 앱마켓에 게임을 등록할 때 규정과 약관을 따르겠다고 승인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이는 계약에 동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엔플이 갑자기 수수료를 올렸다면 모를까, 그때나 지금이나 수수료는 동일하다. 따라서 레전드게임즈와 블록게임즈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거나 다름없다.
“그럼 이쪽에서 주장할 수 있는 건 뭡니까?”
이번에는 해리슨 변호사가 말했다.
“독과점에 의한 횡포입니다. 30퍼센트라는 수수료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확정된 게 아닌, 두 과점 기업의 담합에 의한 거라고 주장하는 거죠.”
탐 스콧 CEO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장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이들은 독과점으로 인해 개발자들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이익도 침해하고 있습니다.”
“그럼 소비자 이익 문제도 주장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승소를 장담하기는 힘듭니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가 엔플이라는 겁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엔플은 세계 최대 기업.
엔플의 시총은 한국의 GDP와 코스피 시총보다 크고, 엔플의 매출은 한국의 국가 예산과 비슷하다.
이쯤 되면 거대 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기업을 상대로 싸우려는 거고.
승소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에도 탐 스콧 CEO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그 역시 사태를 벌이기 전 충분히 법률적인 검토를 해봤을 테니까.
“제가 바라는 것은 승소가 아닙니다. 재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아처&해리슨 로펌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 말에 두 사람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승소가 아니면, 뭘 바라시는 겁니까?”
난 옆을 보았다.
그러자 탐 스콧 CEO가 말했다.
“이 소송이 최대한 이슈화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겁니다. 엔플은 세계 1위의 초거대 기업이고, 시장의 지배자입니다. 디지털 세계의 황제이자 대지주죠. 하지만 여전히 본인들을 혁신의 아이콘이자 젊은 감각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시장을 독점하고, 개발자들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착취하며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음에도 말이죠.”
“언론 플레이가 목적이라는 겁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수수료에 대한 불만을 가진 건 저희뿐이 아닙니다. 다들 말을 못 해서 그렇지, 모두가 엔플과 구블의 독과점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고, 앱마켓 수수료가 과도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불이익이 두려워 누구도 말을 못 했지만, 저희가 총대를 메고 앞장선다면, 많은 개발자들이 목소리를 낼 겁니다. 사태가 커지면 앱마켓의 독과점은 분명히 문제가 될 겁니다.”
물리적 장벽이 없고, 생산과 유통이 디지털로 이뤄지는 IT업계는 그 특성상 독과점이 이뤄지기 대단히 쉽다.
엔플, 구블, NS, AMZ, 페이스노트 모두 독과점 기업이다.
애초에 독과점이 아니라면, 시총이 거기까지 올라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독과점은 정상적인 시장의 기능을 망가뜨리는 해악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터치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독과점이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엔플의 30퍼센트 수수료는 소비자들의 이익을 해친다는 거군요.”
“예. 이건 웹과 앱의 이중가격 구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더 저렴하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셈이죠. 인앱결제와 외부 결제 중 소비자가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처 대표는 신중하게 말했다.
“결국 소송의 핵심은 반독점법 위반 여부가 될 텐데, 이와 관련해 법원의 판단은 매우 소극적입니다.”
“그렇겠죠. 그 기업들이 미국 기업이니까요.”
미국이야 자국 기업들이 독과점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 해도 얼마든지 눈감아 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생각이 좀 다르지 않을까요? 어느 나라에서 결제하든 수수료는 엔플과 구블이 챙겨갑니다. 심지어 이들은 모두 조세회피처에 법인을 두고, 해당 국가에 세금조차 납부하지 않죠.”
내 말에 아처 대표와 해리슨 변호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설마 미국 법원뿐 아니라, 전세계 법원에서 소송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뭐, 꼭 우리가 직접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태만 키우면 알아서 각 나라에서 알아서 소송이 벌어질 테니까요.”
1회차 때도 이 소송은 큰 뉴스였다.
때문에 소송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주장이 오갔는지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도.
난 해리슨 변호사를 보며 말했다.
“저희는 피오나 해리슨 씨가 이 소송의 대표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아처 대표는 당황하며 말했다.
“해리슨 변호사는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괜찮습니다. 때론 경험이 부족한 것도 장점이니까요. 중요한 건 프레이밍입니다.”
그녀는 대표 변호사의 딸이라서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다.
데이비드가 로펌에 있는 수십 명의 변호사들 중 직접 뽑아 요청했기 때문에 온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유색인종의 젊은 여성이기 때문이겠지. 게다가 미인이고.
데이비드 역시 이 소송에서 프레임을 어떻게 짜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난 전략을 설명해주었다.
“엔플은 이 소송을 기업 대 기업으로 끌고 가려 할 겁니다. 우리는 이걸 초거대 기업의 갑질로 몰아가야 합니다. 저쪽은 세율이 높다고 항의하는 소작농들을 내쫓는 백인 남성 꼰대로 만들고, 우리는 그에 맞서 싸우는 자유의 투사쯤이 좋겠네요.”
* * *
[레전드게임즈, 캘리포니아 북부지방 법원에 소장을 제출!]
[앱마켓 수수료를 둘러싼 소송전!]
[엔플, 별다른 입장 발표 없어]
[탐 스콧 CEO, ‘모든 개발자들의 자유를 위한 싸움. 결코 멈추지 않을 것’]
레전드게임즈는 소장을 제출함과 동시에 과거 엔플의 광고를 패러디한 광고를 내보냈다.
나이트라이트의 캐릭터는 대중을 현혹하는 엔플의 로고를 향해 달려들며 총을 쐈고, 이어서 문구가 올라왔다.
‘레전드게임즈는 엔스토어 독점에 저항했습니다.
엔플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나이트라이트를 차단했습니다.
빅브라더에 대항해 이 싸움에 동참해주세요.’
이로써 플랫폼 기업과 게임사 간 소송전의 막이 올랐다.
-와! 진짜 소송하네.
-매출 타격이 장난 아닐 텐데.
-나이트라이트가 NOS에서만 5억 달러 매출을 올렸다는데. 안드로메다 포함하면 한 10억 달러 되지 않을까?
-오우! 그럼 수수료만 3억 달러를 낸 건가?
-브라더후드M에 비하면 별거 아님. 얘들은 1년 매출만 2조 원이 넘음. 크로스 플랫폼도 아니라, 이게 전부 모바일 매출임. 수수료로 6천억은 냈을걸.
-그랬던 때가 있었지…….
-이제는 개 같이 멸망! 브저씨들도 안 하는 게임이 되었음 ㅋㅋㅋ
-그런데 30퍼센트 내고 장사하거나,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지. 뭔 소송이야? 이길 수나 있나?
-혹시 소송하라고 컨티뉴 캐피탈이 지시했나?
-과연 누가 이길까?
-만약 레전드게임즈가 이기면, 진짜 수수료 내려가는 거 아님?
-그럴 리 없음.
-안 돼. 안 낮춰줘. 낮춰줄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 * *
유성그룹은 전사적 역량을 투사해 한국, 미국, 유럽, 일본, 호주 등에 동시다발적으로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관련 기업을 인수했다.
인원도 대거 확충했다.
만약 사업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룹 전체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언론에서는 유재호 회장이 승부수를 띄웠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유재호 회장은 직접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기업인과 정치인을 만나 투자와 고용을 약속했다.
그러고는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해당 소식을 접했다.
‘페이스노트와 싸운 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에는 엔플과 구블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다니.’
유재호는 한미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출장 갔다 왔더니, 그새 또 재밌는 일을 벌였군요.”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 했는데, 잘됐네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그냥 안부를 물으러 전화한 건데, 이런 말을 들으니 왠지 긴장이 됐다.
[예. 이번 기회에 코스믹스토어를 좀 키워보시는 건 어떤가요?]
“무슨 말입니까?”
[나이트라이트와 블록 밸리를 코스믹스토어에 넣어달라는 얘기입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기업은 엔플.
엔폰은 단일 기종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다. 그 외에 자오미, 오보, 비포 등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도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회사는 유성전자다. 그리고 유성전자가 판매하는 스마트폰에는 플레이마켓과 함께 코스믹스토어가 깔려 있다.
그동안 판매한 스마트폰과 태블릿만큼 깔려 있긴 하지만, 앱마켓에서의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고, 주로 코스믹폰에 특화된 앱들을 배포하는 것에 그쳤다.
앱마켓의 매출 대부분은 게임에서 나오는데, 게임사들이 구블의 눈치를 보느라 안드로메다에서는 플레이마켓에만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하면 유성전자까지도 구블에게 밉보이지 않겠습니까?”
[아! 그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스노우 크래시와 손잡고 데이터센터 사업을 시작하신 순간부터 찍혔으니까요. 여기서 좀 더 밉보인다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지 않을까요?]
그 말에 유재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구블은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 3위 기업.
따라서 유성전자는 이미 구블의 강력한 경쟁자였다.
[함께하겠다고 하시면 저희 쪽에서 강하게 밀어드리겠습니다. 나이트라이트와 블록 밸리 외에 다른 게임들도 말이죠.]
현재 유성전자 매출의 두 축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스마트폰은 세계 점유율 1위지만, 소프트웨어는 구블에 종속되어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코스믹스토어를 키운다는 것은 사실상 구블에게 반기를 드는 행위. 예전이었다면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유재호는 웃음을 그치며 말했다.
“광고 준비하라고 지시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