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15화 (315/529)

315화. 수수료 전쟁 (3)

탐 스콧 CEO는 나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리실 줄 알았습니다.”

“페니 결제를 도입하면 엔플과 구블이 반발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말릴 생각이었다면, 진작 말렸겠죠.”

그는 살짝 감동한 표정이었다.

“투자사들이 나중에 말 바뀌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역시 컨티뉴 캐피탈은 다르군요. 투자받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뭐, 1회차 때 투자했던 위챈트도 안 말려서, 그때도 소송전이 벌어지긴 했지만……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전의를 불태우는 탐 스콧 CEO와는 달리, 블록 밸리 창업자들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인디 게임 개발자로 온갖 고생을 다 했는데, 그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을 만한 중요한 시점에 이런 악재가 터진 것이다.

단지 수익이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가입자 수 확보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어쩌면 기존 유저들마저 등을 돌릴 수도 있을 테고.

찰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로 소송을 하실 생각입니까?”

“그냥 가만히 퇴출당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소송을 하면, 이길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데.”

“저희가 계란인가요?”

“음, 바위는 아니겠죠.”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이 깨지기 마련.

그만큼 다들 이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것이다.

난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계란에 사상을 주입하면 바위도 깰 수 있다고.”

“예?”

“사상이요?”

“무슨 말씀인지……?”

다들 ‘이게 뭔 개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미국 사람들이 최고존엄의 뜻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실제로 개소리기도 하고.

심심해서 한번 해봤다.

“괜찮습니다. 절 믿으세요. 소송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블록 밸리의 흥행에는 아무 문제 없을 테니까요.”

내 말에 세 사람은 조금은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먼저 상황을 좀 정리했다.

“블록게임즈가 이 소송을 직접 진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송 명단에 이름만 올리고, 하던 일 계속하면 됩니다. 소송은 레전드게임즈가 맡을 테니까요. 괜찮죠?”

탐 스콧 CEO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주 소송 대상은 엔플로 하죠.”

“어째서입니까?”

엔플이나 구블이나 똑같이 모바일 앱마켓을 장악하고 있고, 똑같이 30퍼센트의 수수료를 받아먹는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엔플의 NOS는 독점 운영체제인 반면, 구블의 안드로메다는 오픈소스죠. 어느 업체든 구블의 허락 없이도 사용할 수 있고, 자사의 스마트폰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할 수도 있습니다.”

안드로메다 스마트폰에는 대부분 플레이마켓이 깔려 있고, 대부분의 결제 역시 여기서 이뤄진다.

하지만 플레이마켓 외에 다른 앱마켓을 설치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유성전자가 만든 코스믹 스마트폰에는 코스믹스토어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때문에 플레이마켓에서 퇴출당해도 다른 앱마켓을 통해 설치가 가능하다.

심지어는 스토어를 통하지 않고 웹에서 APK 파일을 받아 까는 것도 가능하고.

그럼에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플레이마켓의 점유율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우회로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구블은 할 말이 있다.

하지만 엔플은 다르다.

NOS에서는 엔스토어 외에 다른 앱마켓의 설치가 불가능하고, 보안을 이유로 웹에서 다운받아 설치하는 것 역시 막아놓았다.

사실상 운영체제와 앱마켓이 한 몸인 셈이다.

“어차피 핵심 쟁점은 똑같아요. 양쪽에 소송을 한다고 다른 결과가 나오지는 않겠죠. 반면, 엔플과의 소송전에서 이긴다면, 구블은 이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 * *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은 PC와 콘솔로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등장 이후 모바일 게임이 등장했고, 현재는 전체 게임 시장의 60퍼센트를 장악할 정도로 가장 큰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덕분에 엔플은 위챈트와 소뉴에 이어 게임 매출 3위를 기록했다. 놀랍게도 이는 게임 올인을 선언한 NS보다도 높았다.

위챈트, 소뉴, NS는 개발사이자 퍼블리셔이자 ESD.

여러 게임사를 인수해 직접 게임을 제작해 유통하고, 콘솔 개발과 각종 게임 대회를 개최한다.

반면, 엔플은 단지 엔스토어 수수료만으로 NS를 제친 것이다!

모바일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만큼, 수많은 게임사들이 엔플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고, 엔스토어에 자신들의 게임을 서비스하기를 원했다.

현재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게임만 수천 개고, 일부 게임사들은 엔플의 규정에 맞게 게임을 수정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감히 엔플의 심기를 거스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에 반기를 든 곳이 나타났다.

바로 레전드게임즈와 블록게임즈.

엔스토어 총괄 책임자 조니 마이렌 부사장은 이들의 행태를 보며 기가 막혔다.

‘엔스토어에서 장사하면서 수수료는 내지 않겠다니!’

그야말로 도둑놈 심보가 따로 없다.

페니 결제 도입은 엔스토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였다.

이제까지 나이트라이트의 엔스토어 총 매출은 약 5억 달러로, 엔플은 1억 5천만 달러의 수수료 수입을 얻었다.

이 게임을 퇴출시키면 엔플의 수익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반란을 초기에 진압하지 않으면 순종적인 시민들까지도 동요할 우려가 크다. 엔플을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조니 마이렌 부사장은 탐 키튼 CEO에게 보고했다.

“레전드게임즈와 블록게임즈 모두 페니 결제 삭제 요청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규정을 따르지 않는 앱은 엔스토어에서 삭제하는 게 원칙입니다.”

탐 키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원칙대로 처리하면 되겠군.”

“알겠습니다.”

* * *

[(게임스파크) 나이트라이트와 블록 밸리. 양대 앱마켓에서 퇴출!]

(전략)

엔플과 구블은 모바일 내에서 페니 결제를 중단하지 않으면 앱마켓에서 게임을 삭제하겠다는 경고장을 보냈다.

하지만 레전드게임즈와 블록게임즈는 이를 따르지 않았고, 결국 엔스토어와 플레이마켓에서 퇴출됐다.

현재 두 게임은 검색되지 않고, 다운로드 받을 수도 없다.

나이트라이트와 블록 밸리가 다운로드 수 1, 2위에 있는 인기 게임인 만큼, 게임을 즐기고 있던 유저들의 큰 불편이 예상되는 상항이다.

엔플은 따로 입장을 내지 않은 반면, 구블 측은 공지를 올렸다.

‘나이트라이트와 블록 밸리는 안드로메다에서 여전히 사용 가능하지만, 정책 위반으로 인해 더 이상 플레이마켓에서 제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게임들이 플레이마켓에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해당 게임사들과 협상할 뜻이 있습니다.’

레전드게임즈와 블록게임즈 모두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탐 스콧 CEO가 그동안 앱마켓의 과도한 수수료를 여러 차례 비판해오고, 자사 ESD 레전드게임즈 스토어를 통해 다른 모바일 게임들의 외부 결제도 지원해온 만큼, 이번 사태가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나이트라이트와 블록 밸리가 앱마켓에서 삭제될 수도 있다는 소문은 며칠 전부터 퍼져 있었다.

때문에 삭제 받기 전 유저들이 몰려들며 일일 최대 다운로드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결국 게임이 앱마켓에서 내려가자, 많은 소비자들이 당황했다.

게임 관련 게시판에는 나이트라이트와 블록 밸리를 다운받는 방법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다.

-어! 뭐야? 블록 밸리 어디 갔어?

-친구랑 함께 하기로 했는데 왜 다운이 안 되나요?

-검색해보니 앱마켓에서 삭제됐다네.

-일단 다운받은 사람은 구매 내역이 남아있어서 계속할 수 있음

-아악! 삭제되기 전에 미리 다운 받아 놓을 걸 ㅜㅜ

-레전드게임즈 홈페이지에서 APK 파일로 설치 제공합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앱을 설치하면 개인 데이터 손상 어쩌구 뜨는데, 무시하고 그냥 설치하면 됩니다.

-APK 파일이 뭔가요?

-플레이마켓 외에도 다른 앱마켓에서는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되게 귀찮네 ㅜㅜ 플레이마켓 말고는 써본 적도 없는데.

-엔폰은 깔 수 있는 방법 없나요?

-네. 없습니다.

-폰을 바꾸세요~

-엔폰 못 잃어! NOS 못 잃어! 나 엔플 못 잃어!

두 게임의 앱마켓 퇴출 소식은 게임 업계를 뒤흔들었다.

다들 이번 사태가 미칠 파장을 주목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블록게임즈야 이제 막 뜨기 시작한 곳이지만, 레전드게임즈는 업계의 큰손으로 통하는 곳이다.

“누구든 수수료 정책을 위반하면 바로 퇴출이라는 건가?”

“앞으로도 낮춰줄 생각이 없다는 거잖아.”

“나이트라이트야 그렇다 쳐도, 레전드게임즈가 퍼블리싱하거나 써릴 엔진을 쓰는 게임들은 괜찮은 건가?”

두 게임사의 투자사가 컨티뉴 캐피탈이다 보니, 금융계의 관심도 집중됐다.

“컨티뉴 캐피탈도 여기에 관련이 있는 건가?”

“애초에 페니 결제를 도입했을 때부터 암묵적으로 승인한 거 아니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정말로 엔플과 구블이랑 한판 붙을 생각?”

“에이, 설마…….”

* * *

난 데이비드의 전화를 받았다.

[결국 두 게임 모두 퇴출당했군요.]

“예상했던 일이죠.”

[정말로 소송을 진행하실 생각입니까?]

“예. 변호사로서 보기에는 어때요?”

컨티뉴 캐피탈 CEO이자, 최고의 투자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그의 직업은 원래 변호사.

[사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법 조항은 방대하고, 판례는 무한히 많은 만큼, 변호사라고 해도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니면 잘 모르기 마련.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습니다.]

“뭔가요?”

[이쪽이 불리하다는 거요.]

“다행이네요.”

[뭔가요?]

“아직 변호사로서 감이 안 죽은 것 같아서요.”

데이비드는 소리 내서 웃었다.

[가장 좋은 건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건데…….]

“저쪽에서 협상 생각이 있을까요?”

[없을 겁니다.]

소송의 쟁점은 30퍼센트의 인앱결제 수수료.

엔플이든 구블이든 이 수수료를 낮춰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1회차 때보다 상황이 훨씬 복잡하다.

결국 소송으로 끝장을 보는 수밖에 없다.

“로펌 섭외는 어떻게 됐나요?”

[이미 해놓았습니다.]

미국은 소송의 나라.

모든 건 소송으로 시작해서 소송으로 끝난다.

어느 정도냐면, 판사가 세탁을 맡긴 바지를 분실했다며 세탁소를 상대로 6600만 달러를 청구하는 소송을 건 일이 있었을 정도다.

한국은 성문법 형식의 대륙법을 따르지만, 미국은 판례법주의인 영미법을 따른다. 법 조항을 기계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판사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한다.

때문에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좋은 변호사를 써야 한다.

그리고 좋은 변호사는 곧 비싼 변호사다. 세상에 싸고 좋은 상품은 없듯, 싸고 실력 있는 변호사도 없는 법이지.

다행히 우리는 돈이 많다.

“캘리포니아 최고의 로펌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째서요?”

[캘리포니아 최고의 로펌은 이미 엔플과 구블에 가 있으니까요.]

“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돈은 우리보다 저쪽이 더 많지.

[그래도 실력 있는 곳으로 계약했습니다. 만나 보시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 * *

아처&해리슨.

LA에 본사를 둔 대형 로펌이다.

소송의 나라답게 미국의 대형 로펌들은 웬만한 대기업보다 규모가 크다. 고용 인원과 벌어들이는 돈 역시 기업이라 할 만하고.

만들어진 지는 약 20년. 그 사이 주로 기업 소송을 담당하며 이름을 알렸고, 미국 로펌 랭킹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난 호텔 미팅실에서 두 명의 변호사를 만났다.

50대 중반의 안경을 쓴 중년 백인 남성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닉 아처입니다.”

이름을 들으면 알겠지만, 그는 아처&해리슨 로펌의 대표 변호사.

이 정도 대형 로펌에서 대표 변호사가 직접 움직이는 사건은 흔치 않다.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컨티뉴 캐피탈쯤 되면 얘기가 다르겠지.

그의 옆에 있는 20대 후반 정도의 여성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피오나 해리슨입니다.”

검은 머리에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

인종은 흑백혼혈로 보이고, 꽤나 미인이다.

이름을 들으면 알겠지만, 그녀는 아처&해리슨 로펌의 대표 변호사…… 는 아니고, 공동대표인 마이클 해리슨의 딸이다.

난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반갑습니다. 한미루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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