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12화 (312/529)

312화. 블록 밸리 (6)

내 얘기를 전해 들은 블록 밸리 창업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게임으로 패션 브랜드를 홍보하겠다구요?”

“명품 브랜드가 게임에서 옷을 판매한다니.”

“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무리가 아닐까요?”

놀랍게도 가능하다.

게임에서 꼭 게임만 하라는 법은 없지.

블록 밸리가 엄청난 대박을 터트렸음에도 창업자들은 아직 자신들이 만든 게임이 어떤 가능성을 지녔는지 모르고 있다.

난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똑같은 얘기를 전했다.

창업자들조차도 반신반의했지만, 선우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 괜찮은 아이디어네. 게임 내에서는 디자인만 구현할 수 있지만, 패션은 디자인이 전부니까.]

“바로 그거야.”

가상세계 안에 햄버거의 형태를 구현한다 해도, 맛을 느끼게 할 수는 없다. 그런데 패션은 형태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패션 브랜드가 유독 메타버스에 적극적인 것이다.

[뭐, 현실에 페라리 랜드도 있는데, 나이키 랜드가 없으리라는 법도 없지.]

“그래서 그걸 좀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응? 나보고 만들라고?]

“그럼 내가 너한테 이 얘기를 왜 했겠니?”

해당 브랜드와 수주 계약을 맺어, 블록 밸리 내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나눠 갖는 것이다.

“이 시장이 생각보다 커. 일단 패션 브랜드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케이팝 랜드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을걸.”

[아직 내 게임 제작은 시작도 못 하고 있는데.]

“그건 장기 프로젝트잖아. 워밍업으로 괜찮지 않겠어? 직원들끼리 손발을 맞춰본다고 생각해.”

그사이 꼭 돈을 벌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익 구조가 있는 편이 좋다. 회사 이름을 알릴 수도 있을 테고.

[대충 만들려면 금방 만들겠지만, 제대로 만들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아예 직원을 더 뽑아서 팀을 나누는 건 어때? MMORPG 개발팀과 블록 스튜디오 개발팀으로. 잘 만들면 좋은 레퍼런스가 될 테고, 그럼 다른 브랜드들 역시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넣을 거야.”

일감이야 내가 몰아주면 되는 거고.

잠시 생각하던 선우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내 제안을 수락했다.

[오케이, 알았어.]

* * *

일 얘기도 끝났으니, 우리는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다.

성윤아의 친한 언니라는 건 알았지만, 나와도 이렇게 친분이 생길 줄이야.

민아름의 특징은 짧은 단발머리. 그녀처럼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도 얼마 없지 않을까?

“그때 동호 씨가 말한 거 말이에요.”

“뭐요?”

“토드 씨랑 나영이요.”

“아! 어떻게 됐어요? 사귀는 거 맞대요?”

“결혼할 거라는데요.”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나영이에게 물어보니 그냥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토드는 에드워드가 본사에서 함께 데려간 직원이라고 하고, 박나영은 민아름이 데려온 MFW의 직원이다.

두 사람이 사귀느냐 마느냐를 두고 얘기가 많았는데, 이번에 결혼한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이야! 이런 걸 보면 진짜 인연이라는 게 있나 보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나영이 걔가 진짜 남자 까다롭게 보는 애인데. 설마 한눈에 반해서 결혼하겠다고 할 줄이야.”

토드고 나영이고 누군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보다 내가 없는 사이 이렇게 친해졌을 줄이야. 왠지 소외감이 들 정도다.

편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민아름은 한국 최고 재벌이라는 범유성가의 일원.

유재호 회장이 여동생처럼 아끼기도 하고. 여기에 외모와 스타일까지 빼어나니, 정재계에서 들이대는 남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동호 선배 역시 꿀릴 건 없다.

무려 컨티뉴 캐피탈의 한국 지사장. 이 정도면 웬만한 은행 행장이나, 증권사 사장보다도 높다.

결혼만 한다면 내가 혼수로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 정도는 챙겨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동호 선배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동호 선배는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아! 유 대표님. 보내주신 계약서 확인했습니다.”

난 그녀에게 물었다.

“둘이 언제 이렇게 친해졌어요?”

그러자 민아름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니까요.”

그래도 이 정도로 친해졌을 줄이야.

민아름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두 분은 보기 좋네요. 형제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하긴 했죠.”

학교에서는 선배였고, 회사에서는 사수였다.

가족, 그리고 같이 살았던 선우를 제외하면,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다.

“미루 씨는 동호 씨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신세 진 게 많아서요. 배운 것도 많고.”

애초에 동호 선배가 아니었다면, 주식이나 투자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입생 때 동호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 투자 동아리에 발을 들여놓은 게 내 투자 인생의 시작이었다.

회사에 취직해서는 리포트 쓰는 법부터 시말서 쓰는 법까지, 많이도 배웠다.

난 1회차 때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저한테는 생명의 은인 같은 사람이에요.”

비유처럼 얘기하긴 했지만, 실제로 생명의 은인이다.

동호 선배가 아니었다면 그때 죽었을 테니까. 그럼 회귀도 못 하지 않았을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가요?”

민아름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한국지사는 동호 씨에게 주려는 건가요?”

“풉.”

순간,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아니면 됐구요.”

왠지 속내를 들킨 것 같다.

난 슬쩍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미루 씨가 한국지사를 밀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엔터 투자야 한국 회사들이 중심이니 한국지사가 투자한다 해도, 패션 브랜드들은 대부분 외국 기업이에요. 본사가 직접 투자해도 됐을 텐데, 굳이 한국지사로 하여금 투자하게 한 것은 나중에 분할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해서요.”

“…….”

솔직히 좀 놀랐다.

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줄이야.

현재 한국지사가 투자하는 분야는 엔터와 패션.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극히 일부인 데다가 클라우드, 플랫폼, 게임 등 핵심 사업과는 거리가 멀다.

일부러 그런 자잘한 사업들을 한국지사에 몰아넣는 중이다.

난 부인하는 대신 솔직하게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 말에 민아름은 오히려 놀랐다.

“어! 정말이에요?”

“아니, 본인이 말해놓고 왜 그렇게 놀라요?”

민아름은 놀란 표정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 그렇긴 한데……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수조 원짜리 기업을 가족도 아닌 남에게 준다니.”

한국지사가 직접 투자하는 규모만 해도 약 5조 원.

상식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투자사를 혈육도 아니고, 아는 사람에게 주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뭐, 줄 때쯤에는 수십조가 되어 있겠지만.

“기업을 쪼개고 합치는 건 재벌들에게는 일상이나 다름없어요. 그룹이 어떻게 분리될지, 누가 어떤 계열사를 물려받을지.”

“아…….”

인간관계를 보고 기업이 어떻게 분할할지를 판단하다니.

역시 재벌은 재벌이구나.

“다른 사람들도 눈치챘을까요?”

“그럴 리가요. 그 정도면 자식에게도 죽기 전까지는 안 물려줄 텐데. 저도 미루 씨 성격을 몰랐다면 짐작조차 못 했을 거예요.”

“제 성격이 어떤데요?”

“음, 아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는 성격?”

“그런가요?”

“저한테도 이런 기회를 줬잖아요. 미루 씨가 아니었다면, 오빠와 언니를 보며 부러워만 하고 있었을걸요.”

“그럼 지금은요?”

그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오빠와 언니가 저를 부러워하게 만들 생각이에요.”

자신감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동호 선배에게는 말하지 마요.”

“어째서요?”

“알면 부담돼 죽을 수도 있거든요.”

그동안 자기 돈 아니라고 생각하니 여기저기 쉽게 투자했지만, 자기 돈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투자 하나 할 때도 벌벌 떨지 않을까?

내 말에 민아름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깝지는 않아요?”

“전혀요.”

“부럽네요.”

“동호 선배가요?”

“아니요, 미루 씨가요.”

“어째서요?”

“호의를 받는 건 쉬운 일이에요. 베푸는 게 어려울 뿐이죠. 수조 원짜리 기업을 줘도 아깝지 않을 사람이 있다는 건 멋진 일이죠.”

난 피식 웃었다.

“맞아요.”

지난 생에서 신세 진 걸 갚을 기회가 생겨서 정말 다행이다.

그보다 이번 생에는 이 선배를 무조건 장가보내야 한다. 이번에도 독거노인으로 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물렁물렁한 동호 선배에게는 똑 부러지는 성격의 여자가 잘 어울리겠지?

* * *

탐 키튼.

세계 최대 기업인 엔플의 CEO이자, 엔플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엔플의 창업자이자 혁신가인 스티비 쉴러가 암으로 사망하고, COO였던 탐 키튼이 CEO직에 오르자 많은 사람들은 엔플이 무너질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탐 키튼은 뛰어난 경영 능력으로 오히려 스티비 쉴러 시절보다 더 크게 엔플을 성장시켰다.

엔플은 시총 1조 달러의 벽을 돌파한 데에 이어, 시총 2조 달러마저 뛰어넘으며, 그는 주주와 대중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탐 키튼은 현재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이유는 얼마 전 출시된 한 게임 때문.

현재 빅테크 기업들은 게임 대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NS의 3대 CEO은 사티아 샤말란은 마이 크래프트를 만든 마장을 20억 달러에 인수한 것도 모자라, 게임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하며 구독형 게임 서비스인 게임퍼스트를 출시했다.

구블 역시 구독형 게임 서비스 스테피아를 내놓았고, AMZ는 세계 최대 게임 스트리밍 회사인 투위치를 인수하고, 게임 퍼블리싱에도 뛰어들었다,

이에 질세라 엔플은 구독형 게임 서비스인 바자르(Bazaar)를 출시했다.

4.99달러만 내면 안에 입점해 있는 모든 게임들을 추가 요금 없이 즐길 수 있다.

엔플은 세계 1위의 기업답게 그동안 진출한 모든 사업에서 성공을 거둬왔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엔플의 바자르 출시로 게임 업계의 판도가 바뀔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조차 많았다.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할 만한 게임이 없기 때문.

이에 엔플은 막대한 돈을 들여 게임 IP를 사서 라인업을 만들고, 대대적으로 서비스를 리뉴얼했다.

탐 키튼은 직접 발표에 나서 성공을 자신했다.

[바자르는 모바일 게임의 혁명을 일으킬 겁니다! 달라진 것은 하나. 바로 전부입니다.]

실제로 전부 달라지긴 했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필 리뉴얼 시점에, 어떤 인디 게임이 출시됐기 때문.

탐 키튼은 조니 마이렌 부사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그는 엔플의 앱마켓인 엔스토어를 총괄하는 책임자였다.

먼저 바자르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직접 발표한 게 머쓱할 정도로 가입자 수는 거의 늘지 않았다.

“블록 밸리가 현재 NOS와 안드로메다 양대 앱마켓에서 모두 1위입니다. 블록 밸리의 흥행으로 인해 다른 모바일 게임의 매출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엔스토어의 작년 매출은 850억 달러.

이중 게임 비중이 70퍼센트가 넘는다.

그런데 청소년들의 블록 밸리 접속 시간이 늘어나며, 다른 게임들의 매출이 줄어들며 엔스토어가 거두는 수수료도 줄어들었다.

그럼 블록 밸리를 상대로 수수료를 챙기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블록 밸리에는 인앱 결제가 없었다.

“블록 밸리에서는 록스라는 게임머니가 쓰이는데, 이는 게임 내에서가 아닌 외부결제, 또는 스테이블 코인 페니로만 구매가 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수수료가 한 푼도 들어오지 않는 구조입니다.”

엔플은 엔폰에 다운된 게임에서 이뤄지는 결제의 30퍼센트를 수수료로 챙겼다. 그런데 블록 밸리는 편법으로 이를 회피했다.

“페니라…….”

엔플은 NOS를 통해 이뤄지는 모든 결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

그런데 스테이블 코인으로 결제가 이뤄지면, 결제 정보를 컨티뉴 캐피탈과 스노우 크래시는 가져갈 수 있는 반면 엔플은 접근하지 못한다.

탐 키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쓸데없는 게임에 돈을 쏟아부을 게 아니라, 이런 게임을 샀어야 했는데.’

만약 블록 밸리를 바자르에 넣었다면, NS의 게임퍼스트를 따라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블록게임즈를 인수할 수는 없나?”

“컨티뉴 캐피탈이 지분 70퍼센트를 가진 대주주입니다. 매각할 리 없을 겁니다.”

사실 블록 밸리는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 뒤에 있는 스노우 크래시와 컨티뉴 캐피탈.

경영자로서의 본능이 그에게 경고를 울렸다.

‘이대로라면 큰 위협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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