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05화 (305/529)

305화. 휴식 (11)

암표상은 놀라 소리쳤다.

“잠깐! 당신 뭐야!?”

그러자 동양인 청년, 이동호는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암표 판매는 불법입니다. 취소된 티켓은 저쪽 현장에서 바로 판매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뭐?”

어느새 주위에 진행요원이 다가와 티켓을 회수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내 티켓을 내가 얼마에 팔든 니들이 뭔 상관인데?”

“암표 판매가 적발될 시에는 티켓 예매를 즉시 취소한다고 약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돈은 구매한 아이디로 환불될 겁니다.”

처음에는 당당하게 큰소리치던 암표상은 나중에는 애원하듯 말했다.

“선생님들, 저도 먹고살려고 하는 일입니다. 이 암표를 팔아야 애들 분유를 사먹일 수 있습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았지만,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끌려가는 암표상을 보며 혀를 차던 이동호는 잭슨에게 말했다.

“아무리 공연이 보고 싶어도 암표는 구매하지 마세요. 지금처럼 티켓이 취소될 수도 있으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그러자 코비는 훌쩍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공연 못 보는 거야?”

미쉘은 그런 동생을 달래주었다.

“다음번에 누나가 꼭 보여줄게.”

이동호는 코비가 손에 들고 있는 플래카드를 보며 물었다.

“혹시 루나틴즈 팬이야?”

울먹이는 동생을 대신해 미쉘이 대신 대답했다.

“예. 저랑 동생 모두 루나틴즈 팬이에요. 오늘 동생 생일이라 보러 왔는데…….”

“흐음, 그런 사연이.”

이동호는 씨익 웃으며 코비에게 말했다.

“나도 루나틴즈 팬인데. 앞으로도 열심히 응원한다고 약속하면 형이 선물 하나 줄게.”

“정말요? 약속할게요.”

그는 코비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거 받아. 생일 축하해.”

“가, 감사합니다.”

코비는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놀라 소리쳤다.

“아빠! 이거 봐요! 공연 티켓이에요!”

봉투 안에 든 것은 공연 티켓 세 장. 그것도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VVIP석이다.

그것을 본 잭슨은 깜짝 놀랐다.

“마, 말도 안 돼.”

잭슨은 아이들을 대신해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동양인 청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 *

“비싼 티켓이라면서, 그렇게 아무한테나 줘도 되는 거예요?”

“루나틴즈 팬이라잖아. 나야 어차피 공짜로 받은 거니, 루나틴즈 팬들이 가서 응원해주면 좋은 거 아니겠어?”

난 동호 선배의 손에 이끌려 소피아 스타디움에 왔다.

공연장 주위에는 팬들로 가득했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많고, 인종은 다양했다.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을 보니 K-팝의 인기가 실감 난다.

“그나저나 암표상 놈들 다 죽었으면. 저런 놈들 때문에 선량한 팬들이 피해를 입는다니까. 비행기 티켓처럼 아예 실명으로만 예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입장시에 신분증을 대조해야 해.”

암표상들은 표를 확보하기 위해 아예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크로로 예매를 한다.

개인이 일일이 주문 넣는 것보다 증권사 프로그램 매매가 빠르듯, 암표상들이 잔뜩 표를 확보하는 사이 정작 일반 팬들은 예매를 못 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때문에 나중에는 정말로 실명제를 도입한다.

암표상들은 게거품을 물며 반대했지만, 일반 팬들은 두 팔 들어 환호했다.

우리는 들어가기 전, 푸드트럭에서 김치 타코를 사 먹었다.

“이거 맛있네.”

“그러네요.”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생각인지 방송사에서는 K-팝의 인기와 관련한 방송을 편성했고, 아나운서인 진세연은 카메라맨과 돌아다니며 팬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수들은 대기실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테고.

“그러고 보니, 루나틴즈랑 같은 비행기 타고 왔다면서요. 얘기 좀 했어요?”

“얘기는 무슨. 다들 출발하기도 전부터 곯아떨어지더라. 제나는 아예 코까지 골면서 자던데.”

“실망했겠네요.”

“노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스케줄 소화하는 거 보니 짠하더라.”

“…….”

연예인 걱정보다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돈 벌러 다니는 후배를 좀 걱정해주는 게 어떨까?

“아! 시간 됐다. 들어가자.”

* * *

소피아 스타디움의 입장 인원은 무려 7만 명.

중앙에는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천장에 설치된 360도 LED 전광판에서는 무대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7만 명의 함성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처음 무대에 등장한 건 제이텐션이라는 9인조 보이그룹.

직접 와본 공연장의 열기는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TV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끝 객석에서는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열광했고, 마치 떼창이라도 하듯 한국어로 된 가사와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처음 레코드판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콘서트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연극과 뮤지컬은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얼마든지 영상과 사진으로 실컷 보고, 깨끗한 음질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루나틴즈가 등장하자, 동호 선배는 환호하며 말했다.

“역시 루나틴즈가 최고야. 걸그룹 중에서 원탑이라니까.”

그 말대로 루나틴즈는 여자 아이돌 중에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다.

찍은 주식마다 다 말아먹은 것과는 다르게 걸그룹 보는 눈 하나는 확실하다.

“직접 보니 어때?”

난 솔직한 감상을 얘기했다.

“멋지네요. 대단하기도 하고.”

아이돌들 대부분은 10대, 20대.

이 무대에 서기 위해 다들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학교, 친구, 여가 등 또래들이 누리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춤과 노래를 연습했을 것이다. 난 저 나이 때 그냥 놀러 다녔던 것 같은데.

“어! 지유 나온다.”

프릴이 달린 미니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지유는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아이돌 그룹과는 다르게 혼자임에도 무대를 가득 채우는 느낌이다.

1회차 때는 씨랩 사건으로 인해 음원만 발매했을 뿐,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K-팝 페스티벌에도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오우! 잘 부르네. 역시 내 후배야!”

지유는 무대 위에서 놀랄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그곳이 자신의 자리인 것처럼.

* * *

[(WST) LA의 겨울을 녹인 K-팝의 뜨거운 열기]

(전략)

LA 소피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K-팝 페스티벌 공연에는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렸다. 모든 좌석은 순식간에 매진됐고,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은 공연장 밖에서나마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했다.

K-팝 가수들은 춤과 노래로 무대를 뜨겁게 달궜고, 팬들의 함성은 뮤키즈가 등장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중략)

이번 공연은 미국에서 K-팝의 위상을 알리는 하나의 계기가 될 전망이다.

뮤키즈는 라스베이거스를 시작으로 한 월드투어를 예고했고, 차세대 걸그룹으로 손꼽히는 루나틴즈는 ‘우리의 노래는 10대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는 것이다. 더 오래 음악을 하며, 더 많은 팬들을 만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난 기사를 보던 도중 전화를 받았다.

[하이, 미루. 뭐하고 있어요?]

“WST 기사 보고 있었어요.”

[국장님이 취재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전해달래요.]

“뭘 이 정도로.”

WST와는 인연이 깊은 관계로 취재를 위해 기꺼이 편의를 봐줬다.

대단한 건 아니었고 기획사들에게 주요 언론사에 자료 보낼 때 같이 보내달라고 부탁한 정도였다.

[아쉽네요. 제가 직접 취재 갔으면 좋았을 텐데.]

“K-팝 좋아해요?”

[그럼요.]

“누구 좋아하는데요?”

[음, 뮤키즈요. 제논 잘 생겼어요.]

“…….”

내 미래의 매제인가?

물론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그녀가 취재를 못 온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취재는 어떻게 되고 있어요?”

[에밀리랑은 몇 차례 면회했고, 관련자들 인터뷰도 거의 끝났어요. 파보면 파볼수록 재밌던데요.]

난 연말파티에서 만났던 금발의 여성을 떠올렸다.

자칭 프랑스 상속녀 에밀리 클로에.

원래 그녀의 사기 행각이 밝혀진 것은 한참 뒤. 사기 행각이 걸리고 나자 한동안 도주한다.

그런데 나 때문에 파티장에서 바로 붙잡혔다.

난 트리시에게 특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트리시는 현재까지도 열심히 취재 중이다.

[그런데 모두가 속았는데, 어떻게 미루는 보자마자 사기꾼이라는 걸 알아챈 거예요?]

“말했잖아요. 제가 원래 사기꾼 알레르기 같은 게 있다고.”

물론 그딴 건 없고 그냥 미래를 알고 있을 뿐이지만.

난 트리시와 적당히 잡담을 하다가 끊고, 계속 기사를 찾아보았다.

미국에서 K-팝이 아직 주류 문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영어권이 아닌 나라의 가수들이 이런 인기를 얻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짧게나마 뉴스에서도 다뤄졌고, K-팝의 인기 원인에 대해 분석하는 다양한 기사들이 나왔다.

왠지 가슴이 웅장해진다.

난 심심해서 에이튜브 반응도 한번 알아보았다.

[충격! 한국 아이돌들 공연을 보고 LA 시장이 눈물을 쏟아낸 사연은?]

[K-팝 페스티벌 성공에 일본이 경악하고 중국이 무릎을 꿇다!]

[전세계 가수들이 한국 아이돌들을 따라하겠다고 선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정상들 한목소리로 애원. 제발 K-팝 아이돌들을 우리나라로 보내주십시오!]

[충격 선언! 캘리포니아 주지사, 오늘부터 나는 한국인이다!]

[미국 청소년들! K-팝 때문에 한국으로 이민 가고 싶어…….]

“…….”

그만 알아보자.

썸네일만 봐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이런 영상이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다. 무슨 국뽕 영상 찍어내는 공장이라도 있나?

대체 이런 걸 누가 보나 싶어서 조회수를 확인해 보니, 기본이 100만 단위다.

미친 거 아닌가?

하기야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거겠지.

이쯤 되면 에이튜브가 세상을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 * *

이틀에 걸친 K-팝 페스티벌 행사가 끝난 뒤.

동호 선배는 투자자로서 관계자들을 만나러 갔고, 혼자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난 이름을 확인한 다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안녕.”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괜찮은데.”

[아직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점심 드실래요? 제가 살게요.]

“나올 수 있어?”

[네네. 나갈 수 있어요.]

“어디서 볼까?”

난 LA 중심가의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그러자 한 여성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예요, 선배님.”

스키니진에 운동화를 신고, 숏패딩을 걸쳤다. 긴 머리는 하나로 묶고, 안경을 썼다.

무대에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난 안경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위장용이야?”

내 말에 지유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원래 눈이 안 좋아서 평소에는 안경 끼고 다녀요. 오늘도 렌즈를 끼려고 했는데, 눈이 좀 아파서요.”

하기야 내내 렌즈를 끼고 있었을 테니.

“안경도 잘 어울리는데.”

“그, 그래요?”

“그런데 용케 나왔네. 보통은 못 나오게 하지 않나?”

지유는 웃으며 말했다.

“친척들 만난다고 하고 나왔어요. 그리고 저 LA는 익숙해요. 큰아버지가 여기 사셔서 방학 때마다 자주 와있었거든요.”

뭐, LA가 한국 교민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긴 하지.

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누가 알아보고 사인해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요.”

하기야, 아이돌들처럼 예쁘거나 잘생긴 애들이 단체로 몰려다니는 게 아니면 알아보기 쉽지 않다.

지유의 말에 따르면 그 뒤에 스케줄이 있는 아이돌들은 이미 떠났고, 그렇지 않은 아이돌들은 하루 정도 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몇몇 팀들은 내일 디즈니랜드 놀러 간다고 하던데요.”

역시 디즈니랜드인가?

아무래도 미국에서는 남들 시선 신경 덜 쓰며 편하게 놀 수 있겠지.

“점심은 뭐 먹을래?”

“여기 와서 꼭 먹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선배님도 가보시면 좋아할 거예요.”

“어딘데?”

“따라와 보시면 알아요.”

지유는 당당하게 앞장서서 걸었다.

도착한 음식점에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얼마 전, 와본 적이 있는 곳이다.

“오코너 버거네.”

“예. 제가 햄버거를 좋아해서요.”

이곳은 다름 아닌 오코너 버거 LA지점.

지유는 긴 줄을 보더니,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한 시간은 넘게 기다려야겠는데요.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오코너 버거의 인기란.

난 지유에게 말했다.

“잠깐 있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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