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03화 (303/529)

303화. 휴식 (9)

술병을 다 비울 때쯤.

진세연은 테이블에 쓰러지듯 잠들었다.

얘가 이 정도로 취해 뻗을 애가 아닌데. 아무래도 비행기 타고 오느라 피곤했던 모양이다.

어떻게 데려다주지?

“…….”

그런데 얘 호텔은 어디야?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누군가 해서 보니 지유다.

난 대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응?”

[누군데 언니 전화를 받는 거죠? 언니 지금 어디 있어요?]

“지유야? 나 미루.”

그러자 지유는 놀란 듯 말했다.

[앗! 한미루 선배님!]

“응. 세연이랑 같이 술 마시고 있었어.”

[아, 네. 언니는요?]

“피곤했는지 자고 술 마시다가 자고 있어.”

결코 내가 술을 먹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자 지유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요? 어떡해. 제가 지금 데리러 갈게요.]

“아니야. 내가 데려다줄게. 호텔 어디야?”

난 바로 인포메이션에 얘기해 차량을 대기시키고, 진세연을 깨웠다.

“걸을 수 있겠어?”

“으응. 잠깐 졸렸어.”

“가자. 데려다줄게.”

다행히 크게 취한 건 아닌지, 눈을 뜨고 걷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참가 인원과 스태프가 많다 보니, 주최 측에서 콘서트장 주변의 호텔을 아예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늦은 시간이지만, 주위에 팬들과 기자들이 있는 만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정문이 아닌 바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지유가 여자 매니저와 함께 대기 중이었다.

지유는 트레이닝 바지에 후드집업을 입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 연예인이라기보다는 그 나이 또래의 애들로 보였다.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예쁜가?

지유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예. 선배님은요?”

“나도 뭐 똑같지. 공연하러 왔다며?”

“네. 아! 혹시 선배님도 공연 보러 오세요?”

그 물음에 난 얼떨결에 대답했다.

“어…… 아마도.”

“정말요?”

진세연은 두 팔을 벌려 사촌동생을 끌어안았다.

“지유야. 나 화장실.”

“응. 얼른 올라가자, 언니.”

지유는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희 가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선배님.”

난 손을 흔들었다.

“공연 잘해. 응원할게.”

내 말에 지유는 밝게 웃었다.

“네. 열심히 할게요.”

* * *

K-팝 페스티벌을 앞두고 가수들의 리허설이 한창인 가운데, 난 동호 선배와 손님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탑티어 엔터의 박진웅입니다.”

나이는 30대 후반.

후덕한 체구에 안경을 꼈다.

탑티어 엔터는 뮤키즈가 소속된 한국 최대 엔터회사. 그는 유현무 대표와 함께 탑티어 엔터를 키워온 장본인이다.

현재는 탑티어 엔터의 자회사인 애니버스 컴퍼니의 사장을 맡고 있다.

“반갑습니다. 사장님. 이쪽은 한미루 팀장입니다.”

난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동호 선배는 일전에 본 적이 있지만, 나와는 초면이다.

굳이 미팅룸을 따로 잡을 것 없이 프레지덴셜룸에서 만났다. 안에 어차피 회의 공간이 따로 있으니까.

음료는 룸서비스로 시켰다.

그는 감탄하며 방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JR블랙우드 프레지덴셜룸이군요.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정말 넓네요.”

이 룸은 1박에 30만 달러.

동호 선배는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 머물고 있던 사람처럼 말했다.

“뭘요. 저희 회사가 블랙우드와 인연이 있는 만큼 출장 올 때는 가끔씩 이용하곤 합니다.”

“…….”

어제 처음 자본 거 아니었어?

누가 들으면 정말 자주 이용하는 줄.

나이도 경력도 우리보다 많지만, 그는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탑티어가 크다고 해도 컨티뉴 캐피탈에 비할 바는 아니니까.

애초에 1박에 30만 달러짜리 룸을 이용한다는 것부터가 클래스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나이고 연륜이고 돈이 최고지.

박진웅 사장은 우리에게 가지고 온 자료를 건네주었다.

“오늘 뵙자고 한 건 일전에 말씀드린 것 때문입니다. 현재 저희가 운영하는 애니버스라는 앱이 있습니다. 자료를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난 동호 선배와 자료를 살펴보았다.

애니버스는 원래 탑티어 엔터가 뮤키즈를 비롯한 소속 아이돌들의 굿즈를 파는 쇼핑몰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규모가 점점 커지며 현재는 자회사로 독립한 상태.

“저희는 애니버스를 단순한 팬클럽이 아닌, 아티스트와 팬이 함께할 수 있는 종합 플랫폼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연예기획사를 넘어서, 플랫폼 비즈니스로 확장하겠다는 건가?

이것 역시 디지털 전환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동호 선배가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기획은 괜찮아 보입니다. 사실 일반 회사원들은 아이돌 공연이나 행사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팬클럽이나 팬카페 같은 곳은 가입하기도 좀 그렇고.”

이건 본인의 경험담.

진성 팬이라면 모를까, 그냥 좋아하는 팬 입장에서는 관련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해외팬이라면 더더욱 그럴 테고.

덕질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덕질을 해야 할지 모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플랫폼 사업은 개별 아이돌에 쏠린 리스크를 크게 줄여 주니,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겠죠.”

한때 엔터와 게임 분야의 애널리스트였던 만큼 정확한 지적이다.

연예기획사의 가장 큰 위험은 뭘까?

바로 인적 리스크다.

똑같이 투자해서 아이돌을 키워도 뜨고 못 뜨고에 따라 수익은 천차만별. 성공한다 해도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그룹 멤버 중 한 명만 사고를 쳐도 큰일이다.

난 1회차 때의 일을 떠올렸다.

당시에도 걸그룹 매니아였던 동호 선배는 한 중소기획사가 런칭한 걸그룹에 주목했다.

그리고 뜰 것을 확신하고는 강력 매수 추천 리포트를 썼다.

실제로 그 걸그룹은 중소기획사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1위 후보까지 치솟는 기염을 토했고, 회사 주가는 두 배가 넘게 올랐다.

그런데…….

하필 그 시점에서 멤버 하나가 음주운전을 하다가 앞차를 들이받아 전복시키는 사고를 일으켰다.

활동은 순식간에 종료됐고, 그동안 열심히 찍은 CF는 전부 내려갔고, 광고비는커녕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주게 되며, 주가는 폭락했다.

그다음에 추천 리포트를 쓴 엔터사에서는 학폭 문제가 터졌다.

멤버 중 한 명이 중학교 때 왕따의 주동자였던 데다가 폭력에 금품갈취까지 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징계까지 받았다고 한다.

귀엽고 청순함을 밀던 걸그룹은 순식간에 학폭돌, 일진돌로 나락 갔고, 또다시 주가는 폭락.

하루 종일 항의전화에 시달리고 부장에게 불려가 깨진 동호 선배는 억울해하며 말했다.

‘아니, 그 착하게 생긴 애가 학폭을 했는지 안 했는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과거에는 학폭 문제가 터져도 대충 넘어갔으나, 요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 덕분에 증거를 남기기도 쉽고, 폭로도 쉬워졌다. 그렇다 보니, 연예계에서 학폭 문제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작년에만 해도 학폭 문제로 하차한 연예인이 열 명은 될 것이다.

학창 시절 잠깐 실수한 걸 가지고 너무한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팬들이 싫다는데 어쩌겠나?

애초에 학폭할 때 자기 인생을 걸 각오 정도는 했어야지.

여기에 한국의 특성상 남자 아이돌은 군 입대 문제도 있다.

다행히 이런 사고 없이 계속 승승장구를 한다 해도 이번에는 계약 만료가 기다리고 있다. 먼저 계약이 만료된 멤버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팀은 자연스레 해체 수순을 밟는다.

탑티어 엔터를 설립한 유현무 대표는 오랫동안 연예계에 있었던 만큼, 이러한 인적 리스크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플랫폼 사업을 기획한 것이다.

플랫폼 사업은 특정 아이돌에 쏠린 리스크를 분산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게 가능하니까.

대부분의 엔터사들은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서 만든 게 아니라, 소규모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규모가 큰 기획사를 제외하면, 팬 관리나 굿즈 판매 등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수시장만을 대상으로 할 때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세계시장을 노린다면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고,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합해 관리한다면, 기획사나 팬 모두 편해질 테고.

“커뮤니티와 커머스 기능을 강화하고, 라이브 스트리밍과 온라인 공연도 기획 중입니다.”

오프라인 공연이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지만, 온라인 공연은 그런 제약 없이 무한대로 관람객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나이트라이트에서 선보인 스카이픽스의 콘서트처럼, 오프라인에서는 불가능한 무대 연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재야 그냥 핸드폰이나 모니터 화면으로 시청하는 거지만, VR 기술이 발전하면 온라인 공연 시장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이쯤 들으니, 어떤 스타일인지 알 것 같다.

K-팝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원래 내수용에 그쳤다.

그런데 지금처럼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SNS와 에이튜브, 톡틱 덕분.

따라서 SNS, 커머스, 미디어, 커뮤니티 기능을 통합한 앱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가 연예계 쪽은 큰 관심이 없다 보니 딱히 써보진 않았는데, 아마 꽤 성공했던 걸로 기억한다.

“일단 플랫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아이돌을 끌어들여야 하고, 그에 걸맞은 기능을 구현해야겠네요.”

“그렇습니다.”

여기에 최적의 파트너는 컨티뉴 캐피탈.

컨티뉴 캐피탈은 이미 대부분의 엔터사에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다른 기획사들의 협력을 얻기 편하겠지.

그리고…….

“앱 개발을 스노우 크래시에 의뢰하고 싶습니다.”

“블랙포레스트앱 같은 걸 원하시나요?”

스노우 크래시와 손잡고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가장 유명한 기업은 바로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세계 최대 호텔그룹은 블랙우드는 스노우 크래스와 손을 잡고 하이엔드 시장을 노린 숙박공유와 여행을 위한 블랙포레스트앱을 출시했고, 단숨에 시장의 강자로 급부상했다.

“블랙우드도 블랙우드지만, 레전드게임즈를 보고 좀 놀랐습니다.”

레전드게임즈 스토어는 PC ESD 시장의 최강자인 스트림을 잡겠다고 야심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런데 출시 초기에 장바구니 기능조차 없어서 다른 의미로 게이머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랬던 레전드게임즈 스토어가 이제는 환골탈태해서 게임 구매는 물론, 스트리밍, 방송, 채팅, 리모트 플레이 등이 전부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레전드게임즈 스토어는 게이머들의 놀이터 같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애니버스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 표정을 본 박진웅 사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이디어는 괜찮아요. 사업성도 좋고, 성장 가능성도 크구요.”

지금 말한 대로만 된다면, K-팝 팬들에게는 필수앱이 될 것이다.

내 말에 그의 얼굴에 환해졌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스노우 크래시가 하기에는 사이즈가 좀 작은 편이라서요.”

“아…….”

탑티어 엔터는 그 이름에 걸맞게 현재 한국 최대의 엔터회사다. 회사 규모만 해도 웬만한 대기업보다 크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엔터 산업이 아무리 크게 성장한다 해도 게임 산업에 비할 바는 아니다.

현재 한국 엔터사들 시총을 다 합쳐봐야 레전드게임즈나 퍼플게임즈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업들과의 연계성을 생각하면 나쁘진 않겠네요.”

일단 연예계와 패션 사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그리고…….

“나이트라이트 스카이픽스 공연처럼 게임과 다양한 협업을 할 수도 있을 테구요.”

박진웅 사장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공연은 저도 봤습니다. 엄청나더군요. 설마 게임 그래픽을 활용해 공연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레전드게임즈 스토어 때 한번 해봤으니, 이 정도면 시드가 직접 나설 것도 없이 다른 직원들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조건에 대해 한번 얘기해보죠.”

“어떤 조건을 원하십니까?”

난 딱 잘라 말했다.

“애니버스 지분 70퍼센트는 어떤가요?”

내 말에 그는 당황했다.

“예? 70퍼센트요?”

“애니버스에 대한 개발 비용은 저희가 전부 투자하고, 다른 기획사들의 협력도 받아내 드리죠. 운영은 지금처럼 탑티어 측에서 계속하시면 됩니다.”

박진웅 사장은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49퍼센트까지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러면서 슬쩍 동호 선배를 보았다.

아무래도 일개 직원(?)보다는 지사장과 직접 얘기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자 동호 선배는 나를 가리켰다.

“조건 얘기는 여기 한 팀장과 하시면 됩니다. 한 팀장의 말이 곧 제 뜻입니다.”

“아, 예.”

난 딱 잘라 말했다.

“70퍼센트면 크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어차피 도움이 필요한 건 저쪽이다.

나야 별로 아쉬울 것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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