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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301화 (301/529)

301화. 휴식 (7)

다음 날.

세나와 친구들은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호텔에서 준비해준 차를 타고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재밌게 놀다 와.”

“응. 다녀올게.”

그리고 난 시드와 함께 차를 타고 프리즈너로 향했다.

시드는 웃으며 말했다.

“형 덕분에 프리즈너도 가보네요.”

“나 아니라도 가면 두 팔 벌려 환영했을걸.”

누가 스노우 크래시 CEO의 방문을 싫어하겠는가?

“일은 어때? 잘 되고 있어?”

“네. 재밌게 하고 있어요.”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얘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스노우 크래시는 문을 닫아야 한다.

시드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형 여동생 말이에요.”

“세나?”

“네. 영어는 못 하는 거예요?”

“응. 못해. 걔는 공부를 안 해서.”

“그렇군요.”

난 슬쩍 물었다.

“혹시 싫은 건 아니지?”

“예? 왜 싫어요?”

“롤프 부치는 멍청하다고 싫어했잖아.”

시드는 피식 웃었다.

“그거야 멍청한데 똑똑한 척해서 싫어한 거구요.”

“아…….”

하기야 시드의 기준으로 보면 세상에 안 멍청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생각해보면 롤프 부치가 사기꾼이라 그렇지, 실제로는 천재에 가까운 사람이다.

“남매인데 형이랑은 다르네요.”

“걔가 원래 아무 생각이 없어.”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그래?”

“예.”

그러고 보니…… 좀비물을 좋아하는 것도 좀비들이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지?

그리고 세나 역시 아무 생각이 없다.

“…….”

혹시 내 여동생은 좀비와 동급인 건가?

* * *

LA 근교 버뱅크에 위치한 프리즈너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자 사이먼 라이너스 대표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네요.”

그때는 그냥 창고 같았는데, 지금은 번듯한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프리즈너는 원래 그저 그런 B급 영화사 중 하나였으나, 좀비네이도2가 대박이 터지며 상황이 달라졌다.

OTT와 케이블TV뿐 아니라 영화 개봉으로도 대박을 쳤고,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퍼펙트네이도와 맞붙어 이기는 바람에 인지도 역시 크게 상승했다.

덕분에 프리즈너는 이제 제법 규모가 있는 스튜디오로 성장했다.

이제는 좀비네이도 시리즈뿐 아니라, 또 다른 감독과 스태프를 뽑아 다른 B급 영화들도 제작 중이다.

지금 지분을 판다면 투자한 돈의 20배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팔 생각은 없지만.

“처음 투자를 받았을 때만 해도 컨티뉴 캐피탈이 그렇게 대단한 곳인지 몰랐습니다.”

난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실제로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모펀드가 됐다. 덕분에 프리즈너 역시 같이 주목을 받았다.

아마 B급 영화사들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지 않을까?

시드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산체스 감독님은요?”

“이제 올 겁니다. 아! 왔네요.”

미팅실 문이 열리며, 후덕한 체형의 히스패닉계 남성이 들어왔다.

바로 페르난도 산체스 감독이다.

난 소개를 해주었다.

“당연히 알겠지만, 이쪽은 페르난도 산체스 감독님. 그리고 이쪽은 스노우 크래시 CEO 시드 루카스예요.”

“반갑습니다. 산체스입니다.”

시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손을 붙잡았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팬입니다. 이제까지 좀비네이도를 수백 번 돌려봤어요.”

“정말입니까?”

“예.”

스노우 크래시는 실리콘밸리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거대 기업이다. 비상장기업 중에서는 가장 크고.

그런 기업의 CEO가 자신의 팬이라고 하니 좋아할 수밖에.

난 두 사람에게서 앞으로의 제작 계획을 들었다.

“이제는 여유가 좀 생긴 만큼, 그동안 못 해본 여러 장르의 영화를 제작해 보려고 합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블록버스터의 경우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다. 영화 한 편 만드는 데 수억 달러씩 들어간다.

아무래도 투자사, 제작사, 배급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힘들다.

반면 B급 영화는 그러한 제약에서 자유롭다.

애초에 제작비가 적기 때문에 실패시 리스크도 적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하지 못하는 다양한 시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난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처럼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세요. 컨티뉴 캐피탈은 조금도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그 말에 산체스 감독의 얼굴이 환해졌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투자를 좀 더 해서 공포와 호러 영화를 몇 개 제작해 보려고 합니다.”

시드가 슬쩍 물었다.

“좀비물은요?”

“그것도 생각 중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한국에서도 재밌는 좀비물들이 나오고 있더군요.”

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도 봤어요. 좀비네이도만큼은 아니지만, 재밌던데요.”

“좀비에 대한 해석 방식이 미국과는 좀 달라서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배울 점도 많구요.”

그의 말에서는 영화…… 특히 좀비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쳐났다.

시드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필요하다면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어드릴게요.”

“헉! 정말입니까?”

“예.”

영화산업은 IT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CG는 물론이고, 제작과 홍보에 빅데이터와 AI가 사용되니까.

시드 루카스는 현재 실리콘밸리 최고의 천재 프로그래머.

그런 사람이 프리즈너를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좋을 수밖에.

라이너스 대표는 재빨리 말했다.

“CG를 구현할 프로그램이 있으면 제작비와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관객들 반응을 분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한번 제작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산체스 감독은 좋아 어쩔 줄 몰랐다.

좀비네이도가 살짝 병맛이라 그렇지, 그는 상당한 감각과 능력이 있는 감독이다.

애초에 B급 영화 잘 찍는 감독은 A급 영화 역시 잘 찍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는 훗날 블록버스터를 만드는데, 스타워즈를 능가하는 초대박을 친다.

시드는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고, 산체스 감독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그건 5편쯤 나올 내용이라 미리 알면 재미없을 텐데요. 그래도 얘기해드릴까요?”

“아니요. 그럼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시드가 다른 사람과 이렇게 즐겁게 얘기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컨티뉴 캐피탈을 설립했을 당시 얼마 안 되는 돈을 쪼개서 프리즈너에 투자한 건 바로 시드의 마음을 얻기 위함.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 * *

미팅이 끝난 뒤, 우리는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바로 돌아가게?”

“예. 할 일이 많아서요.”

스노우 크래시의 핵심은 AI 미미르와 시드 루카스.

시드가 없으면 스노우 크래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조심히 가.”

“네. 다음에 봐요.”

시드를 보낸 뒤.

난 세나와 친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얘들이 돌아온 것은 밤늦은 시간.

디즈니랜드 개장할 때 입장해서 폐장할 때까지 실컷 놀았다고 한다.

“재밌었어?”

세나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응. 너무 좋았어. 역시 스타워즈가 최고야.”

디즈니랜드에서 샀는지 다들 캐릭터 머리띠를 하고, 인형과 굿즈를 한 무더기 들고 있었다. 세나는 아직 제다이의 꿈을 버리지 않았는지 라이트 세이버를 사왔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진작 데려올 걸 그랬다.

아예 날 잡고 올랜도를 한번 갈까?

* * *

다음 날, 오전에는 다 함께 LA 거리를 둘러보며 쇼핑을 했다.

LA는 고층빌딩이 즐비한 뉴욕과는 달리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왠지 거리가 좀 익숙한데.”

“영화에서 한두 번 정도는 봤을 거야.”

아무래도 할리우드가 가깝다 보니, 영화 촬영지로 자주 이용된다. 실제로 한쪽에서는 영화를 촬영 중이었다.

점심은 오코너 버거로 데려갔다.

“우와! 여기가 그 유명한 오코너 버거야?”

“미국 3대 버거 중 하나라던데.”

“여기 엄청 맛있대.”

“한국에도 들어오면 좋을 텐데.”

컨티뉴 캐피탈은 오코너 버거 지분 7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내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오코너 버거를 먹은 다음, 애들을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LA 국제공항에는 미리 대여해 놓은 전용기가 대기 중이었다.

난 헤어지기 전 세나에게 말했다.

“부모님에게 잘해. 엄마한테 짜증 내지 말고.”

“내가 언제 짜증 냈다 그래?”

“어! 지금 짜증 내는 것 같은데.”

“그거야 내가 짜증 안 냈는데, 오빠가 짜증 냈다고 하니까 그런 거지.”

“아무튼 잘해. 알았지?”

세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 말고, 나만 믿어. 내가 또 우리 집 분위기 메이커잖아.”

“…….”

트러블 메이커가 아닐까?

얘가 이렇게 내 말을 잘 듣는(척하는) 건 집에서 받는 것과는 별개로 매달 25만 원씩 용돈을 주기로 했기 때문.

“가끔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말 잘 듣나 안 듣나 검사할 거야. 말 안 듣는다고 하면 용돈 없어.”

“아, 왜에? 오빠가 왜 이렇게 동생을 못 믿냐?”

내가 뭘 보고 널 믿겠니?

“한국 도착하면 연락하고.”

“알았어.”

세나의 친구들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빠 덕분에 너무 재미있게 놀았어요.”

“신세 많이 졌습니다.”

“너무 감사했어요.”

세나는 작은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받아.”

“뭐야?”

“우리가 돈 모아서 산 선물이야.”

뭔가 해서 보니, 비타민이랑 각종 영양제다.

“오빠는 돈 많으니 좋은 건 다 있을 거 아니야. 돈만 벌지 말고 건강 좀 챙기라구.”

“아니, 뭐 이런 걸 다…….”

솔직히 좀 감동했다.

얘가 오빠의 건강을 생각해주다니.

“돈도 없을 텐데.”

다른 애들이 말했다.

“괜찮아요.”

“오빠 덕분에 환전해온 돈 하나도 안 써서 다 남았어요.”

“고마워.”

잊지 말고 챙겨 먹어야겠다.

소진이는 슬쩍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오빠.”

“응, 그래.”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면, 얘가 날 좋아하는 것 같은데…….

뭐, 세나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겠지.

* * *

세나는 친구들과 전용기에 올라탔다.

다들 만족감과 아쉬움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진짜 꿈만 같은 시간이었어.”

“사진 보내주니까 부모님이 못 믿는 거 있지?”

“우리 오빠는 왜 자기는 안 데려갔냐고 뭐라고 하더라.”

한세나는 어깨가 으쓱했다.

‘아! 오빠가 돈을 잘 버니 이런 게 좋네.’

덕분에 친구들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정소진이 물었다.

“어제 미루 오빠랑 함께 있던 사람은 누구야?”

“맞아. 미루 오빠가 되게 챙겨주는 것 같던데.‘

“중요한 사람인가?”

한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그래밍? 뭐 그런 거 한다던데.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노우 플라워인가 하는 회사에서 일한대.”

“와! 그럼 엄청 똑똑하겠다.”

한세나는 피식 웃었다.

“아! 그런데 그 사람 바보인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악수하는데, 오빠가 바보가 옮을 수도 있다고 농담하던데.”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유경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세나야, 그건 아마도…….”

박세연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의미로 옆구리를 찔렀고, 조유경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응? 왜?”

“아, 아무것도 아니야.”

때로는 진실을 모르는 게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전용기는 한국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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