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페더 (14)
한국은 올해 대선을 앞두고 각 당에서 당내경선이 진행 중이었다.
원래 차기 대통령감으로 거론되던 임창식 대표는 GL케미칼과 GL엔텍 사태로 인해 지지율이 폭락하는 위기를 겪었다.
대신 교수 출신의 3선 의원인 남궁석이 급부상했다.
그럼에도 임창식 대표는 건재했다.
그가 대표직을 내려놓고 출마를 선언하자, 우리국민당 주류세력들은 똘똘 뭉쳐 임창식을 지지했다.
때문에 국민적 지지는 남궁석 의원이 높았지만, 당원 지지만 놓고 보면 임창식 의원이 높았다.
지금으로서는 어느 한쪽도 승리를 낙관하기 힘든 상황.
그는 경선 토론을 앞두고 박성주 최고위원과 전략을 상의했다.
“남궁석 의원 지지율이 점점 치솟고 있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노년층 지지율은 형님이 강세입니다. 그런데 청년층 지지율은 남궁석 의원이 훨씬 높습니다. 그러니 확실하게 승기를 굳히기 위해서는 청년층의 마음을 잡아야 합니다.”
“좋은 방법이 있나?”
“하나 있긴 한데…….”
“빨리 좀 말해. 사람 숨넘어가겠네.”
박성주는 일부러 뜸을 들인 다음 말했다.
“암호화폐 관련 공약을 내세우는 겁니다.”
임창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암호화폐? 그 코인인가 뭔가 하는 거? 그게 표에 도움이 되겠나? 그거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거 참. 이러니까 형님이 청년들에게 인기가 없는 겁니다.”
“뭐?”
“거래소에 등록된 국내 인구만 1,530만 명이고, 실제 거래를 하는 사람은 무려 560만 명입니다. 이들 대부분이 20~40대고, 당연히 미성년자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유권자 중 3분의 1이 암호화폐 투자를 하거나 관심이 있습니다.”
“그, 그래?”
갑자기 귀가 솔깃해졌다.
“암호화폐 거래대금이 주식 거래대금을 넘어섰다는 기사 못 보셨습니까? 이제 청년들의 재테크 수단은 주식이 아닌 암호화폐입니다. 그러니 이쪽을 공략하면 청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임창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공약 한번 만들어봐.”
* * *
우리국민당 1차 경선 토론.
이 자리에서 임창식과 남궁석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그중 가장 쟁점이 된 것은 바로 암호화폐 규제 문제였다.
임창식 의원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암호화폐 규제를 완화하면 관련 파생금융상품 등의 기초자산으로 가상자산이 활용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시장이 커집니다. 이미 미국과 싱가포르 등에서는 전통 금융 기관들이 암호화폐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암호화폐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와 선물을 만들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규제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제를 풀고 ICO를 허용하면, 주식시장처럼 암호화폐 시장 역시 건전하게 성장할 겁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암호화폐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남궁석 의원은 반대를 분명히 했다.
“금융 현상은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긴 것이니, 현상을 받아들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현재 암호화폐 시장은 투기판으로 변질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면제해주고 규제를 완화해줄 테니 투자하라는 것은 기망에 가깝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먼저 거래소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허가제로 바꿔서 허가를 받은 거래소만 영업할 수 있게 하고 부실한 곳은 전부 폐쇄해야 합니다. 또한 내부 검증을 통해 기준에 미달하거나 부당행위가 있었던 코인들은 상장폐지해 이용자들을 보호하고, 이에 대한 책임은 거래소가 지도록 해야 합니다.”
남궁석 의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암호화폐 시장이 투기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오를 때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락시에는 엄청난 충격이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르게 규제를 푸는 것은 청년들에게 투기하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누군가 잘못된 길로 간다면, 잘못이라고 얘기를 해줘야 합니다.”
경선 토론이 끝나고 나자 우리국민당 게시판에는 분노한 투자자들의 글로 넘쳐났다.
-아놔! 남궁석 ㅋㅋㅋ
-GL엔텍 물적분할 후 재상장 때 할 말 하는 거 보고 존나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뭐?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고?
-아니, 지가 뭔데? 우리 엄마도 나한테 뭐라고 안 하는데!
-그건 너희 엄마가 널 포기했기 때문이 아닐까?
-부실 거래소를 폐쇄하고, 부실 코인을 상장폐지한다고? 이게 김창기의 난과 뭐가 다르냐?
-남궁석 지지 당장 철회한다!
-진짜 개꼰대. 개실망.
-어디 본선 투표 때 두고 보자.
-대한민국 코인러들은 임창식 의원을 지지합니다. (반트코인 채널 일동)
-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습니까?
-암호화폐 좀 그만 건드려라. 청년들에게 암호화폐는 꿈과 희망이다!
-우리의 꿈을 짓밟는다면 선거 때 표로 심판하겠다!
-암호화폐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정부는 즉시 국민연금으로 반트코인을 매수하라!
이 여파로 인해 여론조사에서 남궁석 의원 지지율이 5퍼센트가 폭락하며, 임창식 의원과의 격차가 오차범위 밖으로 벌어졌다.
지지층에서도 사과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남궁석 의원은 요지부동이었다.
반면 확실하게 승기를 잡은 임창식 의원 측은 환호했다.
‘경선만 이기면 대통령이 코앞이야!’
박성주 최고의원은 이럴 때 더욱 세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조언했고, 임창식 의원은 조중일보가 주최한 ‘가상자산 콘퍼런스’에 참석해 공약을 발표했다.
“암호화폐 시장만큼은 규제 걱정이 없도록 확실히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전환하겠습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암호화폐와 관련해 수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디지털자산에 대한 기본법을 제정해, 암호화폐와 NFT 등 가상자산사업 정책을 총괄할 디지털산업진흥청을 설립하겠습니다. 암호화폐 투자 수익에 대해 전면 비과세를 실시하고, ICO를 단계적으로 허용해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시장을 활성화하겠습니다!”
이러한 공약에 청년들은 열광했고, 임창식 의원의 지지율은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남궁석 의원은 지지율이 떨어지든 말든 부실 거래소부터 퇴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았다.
“당장 거래소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부실 거래소를 시장에서 퇴출해야 합니다. 그동안 거래소들은 수조 원의 이익을 벌어들였고, 이 돈은 전부 거래소를 이용한 투자자들 주머니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거래소는 스캠코인 피해 등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암호화폐 규제 문제는 이제 경선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2차 경선토론에서도 임창식 의원과 남궁석 의원은 첨예하게 맞붙었다.
임창식 의원은 암호화폐 규제 완화와 지원을 주장했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신산업을 망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입니다. 한국만 여기에 뒤처져서야 되겠습니까?”
남궁석 의원은 관련 자료를 꺼내들며 반박했다.
“3년 전 1,700억에 불과했던 암호화폐 범죄 피해액은 작년 3조 원까지 늘어났습니다. 이런데도 대부분은 처벌을 받지조차 않았습니다.”
그러자 임창식 의원은 새턴랩스와 강문도 대표의 성공사례를 거론했다.
“사기는 물론 처벌해야 합니다. 하지만 산업은 지원하고 육성해야 합니다. 새턴과 타이탄을 보십시오. 한국인 청년이 만든 이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은 5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ICO를 했다면, 전세계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 겁니다. ICO 금지 방침이 국내의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가로막고 빅테크 기업들의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킨 겁니다. 지금처럼 규제 일변도로 한다면 지금 개발하는 각종 코인들도 ICO가 허용되는 싱가포르나 스위스 등으로 방향을 틀지 않겠습니까?”
남궁석 의원은 맞받아쳤다.
“말씀하신 새턴과 타이탄에 대해서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알고리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새턴랩스가 만든 디파이 프로토콜 역시 의문점이 많습니다. 이자로 무려 24퍼센트를 지급하는데, 뒷사람 돈을 받아 앞사람에게 지급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이자율이 가능합니까?”
“그게 바로 선진 디지털 금융이라는 겁니다. 새턴과 타이탄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훌륭한 국산 코인이고, 완벽한 알고리즘으로 작동되고 있습니다. 그걸 부정하는 건 우리 청년들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임창식 의원이 한창 목소리를 높이는데, 사회자가 끼어들었다.
“저기, 방금 들어온 속보인데 타이탄 코인이 폭락 중이라고 합니다.”
그는 놀라 소리쳤다.
“아, 아니, 그게 왜 폭락합니까?”
“알고리즘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지금 사기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
임창석 의원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사회자가 계속해서 질문했지만, 그는 당황한 나머지 입을 벌린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장면은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 * *
그동안 반트코인 채널 유저들은 남궁석 의원을 욕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시장이 폭락하자 다들 태세를 전환했다.
-죄송합니다, 남궁석 의원님.
-그때 다 던지고 나왔어야 했는데. 이제 보니 저희를 위해 하신 말씀이었군요.
-쌍욕해서 죄송합니다 ㅜㅜ
-ㅋㅋㅋ 욕하던 놈들 다 도게자 중.
-맞는 말만 하는 남궁석~ 반박시 남궁석 말 맞~
-남궁석 의원 말대로 진작 규제가 만들어졌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청년들 미래를 생각해서 쓴소리하는 사람은 남궁석 의원밖에 없다!
-할 말은 하는 정치인!
-지지율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다른 정치인과는 차원이 다름!
-비록 코인으로 전재산을 날렸지만 남궁석 의원님 지지합니다.
-그저 빛빛!
-빛궁석!!
반면 임창식 의원 선거 사무소로는 비난이 쏟아졌다.
-임창식 이 개새끼야!! 니 말 듣고 타이탄 투자했다가 개쪽박 찼잖아!
-뭐?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훌륭한 코인? 완벽한 알고리즘?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지금쯤 집에서 이불킥하고 계실 듯 ㅋㅋㅋ
-이걸로 한 가지 확실해짐. 이런 놈한테 경제 맡겼다가는 나라 망함.
-남궁석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임창식 대통령 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
-임창식 떨어트리기 위해 당장 우리국민당 당원 가입한다.
-ㅎㅎ 임창식 코인 개떡락 중!
임창식 의원은 망연자실했다.
사실 그는 암호화폐가 뭔지도 잘 몰랐다. 그저 지지율을 위해 규제 완화와 투자 활성화를 공약했을 뿐이다.
그런데 하필 이 시점에서 시장이 대폭락할 줄이야!
특히 새턴과 타이탄을 거론한 것은 최악의 수였다.
GL엔텍 사태에 이어 또 헛발질을 하는 바람에 청년층은 물론이고, 중년층과 노년층마저도 등을 돌렸다. 그의 지지율은 마치 코인처럼 추락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를 지지하던 의원들은 슬쩍 등을 돌렸고, 이제는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그는 모두가 인정하는 차기 대통령이었다.
분명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잘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그가 대통령이 되는 걸 방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았다.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던 그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건 GL케미칼과 GL엔텍 사태 때문.
만약 그 일이 문제가 되지만 않았어도 그는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 그의 지지율은 떨어졌고, 대신 남궁석의 지지율은 치솟았다.
“그러고 보니…….”
그 사태를 일으킨 건 컨티뉴 캐피탈.
그리고 이번 암호화폐 폭락 사태 역시 컨티뉴 캐피탈의 공격으로 시작됐다.
이쯤 되자 혹시 자신을 노리고 일부러 공격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임창식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컨티뉴 캐피탈 그놈들만 아니었어도…….”
대통령이 되기만 한다면 그런 더러운 투기자본은 한국에 발도 못붙이게 하리라!
‘아직 포기하기는 일러.’
분명 역전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권력은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임창식은 간절했다.
‘차기 대통령은 나야! 나!’
* * *
토론회 도중 망신을 산 임창식 의원은 며칠 후 기자들에게 해명했다.
“그러니까 제 말의 핵심은 미국처럼 규제보다는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최소한 미국 수준으로 규제를 풀어야, 더 많은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이 생겨나고, 투자자들의 투자 기회도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미국처럼…….”
그 순간, 한 기자가 손을 들며 말했다.
“방금 속보가 들어왔는데, 미국이 암호화폐에 대해 강력한 규제에 나서겠다고 합니다.”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