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페더 (13)
시장의 시선은 다오그룹에 집중됐다.
다오그룹은 중국은 물론 세계 최대의 건설회사. 파산시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중국 정부가 나서서 살려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부실 규모가 너무 커서 중국 정부조차 손을 쓰기가 힘들었다.
[(속보) 다오그룹 디폴트 선언! 사실상 파산]
이 사실이 알려지자 페더는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간신히 0.5에서 버티던 페더는 0.00001로 떨어졌다. 페더가 페깅될 줄 알고 계속 보유한 사람과 뒤늦게 매수한 투자자들은 99퍼센트가 넘는 손실을 입었다.
시총 3위 스테이블 코인의 붕괴는 시장 전체에 패닉셀을 불러왔다.
그동안 1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디파이 프로토콜은 담보 부족으로 줄줄이 청산 위기에 처했고, 이는 시장의 하락을 더욱 부추겼다.
이런 와중에 여러 황당한 사건들도 벌어졌다.
홍콩에 위치한 스카이 파이낸스. 그리고 싱가포르에 위치한 테리우스 네트워크.
이 두 기업은 세계 1, 2위의 암호화폐 담보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사였다.
그런데 암호화폐가 폭락하고 뱅크런이 발생하자, 두 회사는 나란히 환매와 인출을 중단했다.
캐나다의 암호화폐 거래소 쿼드리칭TX.
이곳의 창업자인 제라드 맥버드 CEO는 평소 암호화폐 시장의 전망에 대해 다스코드를 통해 투자자들과 토론하고, 린스타그램에 일상을 올리는 등 투자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그런데 페더 사태가 터진 이후부터 출금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그는 보안 문제라며 기다려 달라고만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유족들은 갑자기 그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인도에 출장을 갔다가 풍토병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건 제라드 맥버드가 평소 보안을 중시해왔다는 것. 대체 얼마나 중시했는지 거래소 자산을 혼자 관리해왔다.
다시 말해 거래소 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암호키는 오직 그만이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폭락했다 해도 해당 거래소에는 5억 달러나 되는 고객들의 자산이 묶여있었다.
그런데 그걸 뺄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돈을 날릴 처지가 된 이용자들은 정말로 맥버드 CEO가 사망했는지 확인시켜달라고 했지만, 그의 아내는 남편의 시신은 이미 화장했고, 자신은 암호키를 모른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한 중소 거래소 코인피플.
이 거래소는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고, 운영자는 잠적했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이곳은 제대로 된 거래소가 아니었다.
마치 모의투자를 하듯 매수와 매도 모두 그저 장부상으로만 거래가 이뤄졌고, 계좌에 숫자가 찍혔을 뿐, 실제 코인을 사고판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고객들이 입금한 코인과 현금은 어디로 갔을까?
당연히 운영자가 진작 다 빼서 도망갔다.
한국의 채굴 업체 비트마이닝.
이 업체는 강남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지하철역과 인터넷에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 채굴장을 차려 암호화폐를 채굴하는 회사로, 이 채굴기를 임대받으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하며 회원들을 끌어모았다.
100퍼센트 원금을 보장하고, 매일 1.5퍼센트, 월45퍼센트의 수익을 정산해주겠다는 말에 수천억 원의 투자금이 몰렸다.
암호화폐 폭락이 시작되자 놀란 투자자들은 돈을 찾으려 했지만, 회사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ㅋㅋㅋ 진짜 이건 뭐 사방에서 터지네.
-이거 실화냐?
-제라드 맥버드 살아있다는 것에 남은 타이탄 코인 다 건다!
-상식적으로 월 45퍼센트 수익이 나는 채굴기를 임대해준다는 게 말이 되냐? 임대 안 해주면 회사가 다 먹는 건데. 저런 걸 대체 누가 믿는 거지?
-내가 믿었음 ㅜㅜ 부모님 퇴직금까지 집어넣었는데, 아직 말씀 못 드리는 중…….
-ㅅㅂ 대체 뭔 놈의 시장에 사기꾼밖에 없냐?
-당장 레너드 창 잡아다가 감옥에 처넣어라!
-ㅎㅎ 처벌 안 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그게 말이 됨? 페더가 1달러라고 그동안 사기를 쳤는데.
-약관에 써놨잖아. 1페더는 1달러로 교환할 수 있지만, 이게 1페더가 1달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인 입으로도 1페더가 1달러의 가치를 지녔다고 말해왔지, 1페더가 1달러라고 말한 적은 없음.
-왠지 예전에 언덕에서 트럭 굴렸던 놈이 생각나네. 트럭이 움직인다고 말했지, 주행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어째 사기꾼들 하는 짓은 똑같냐?
-존버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번 역시 하나의 건전한 조정이 아닐까?
-ㅎㅎ 이게 건전한 조정? 불건전한 조정 맞았으면 세계가 멸망했겠는데.
-나는 인생이 거대한 퍼즐이라 생각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조각으로 이뤄진 긴 퍼즐에서 하나가 빠진 자리에 다른 조각이 들어갔다면 퍼즐 전체가 완전히 엉망이 돼 처음부터 다시 맞춰야 했을지도 몰라. 그동안 비극이라 생각한 모든 상황이 어쩌면 최고의 행운이었을 수도 있어. 이번 폭락 역시 그 퍼즐 중 하나가 아닐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야.
-물리니까 오만 개 잡생각이 다 나지? ㅋㅋㅋ
-응. 이게 널 죽이는 고통이야.
-시장은 언젠가 회복되는 건 맞음. 단, 너 파산하고 난 뒤.
* * *
[(속보) 반트코인 2만 달러 지지선 깨져!]
[암호화폐 전체 시총, 1조 달러 이하로 추락]
[디파이 연쇄청산 위기!]
암호화폐 폭락의 여파는 일파만파 번졌다.
상장사 중 가장 많은 반트코인을 보유한 마이크로하우스는 파산 위기로 몰렸고, 그 외에 자산의 일부를 반트코인으로 보유한 렉슨과 티슬라 등도 수천만, 수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개별 기업이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국가 전체가 암호화폐에 베팅한 나라도 있다.
바로 엘살바도르다.
중남미에 위치한 인구 650만 명의 이 나라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고, 인구의 70퍼센트가 은행 계좌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은 세계 최초로 반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하고, 얼마 안 되는 외환보유고를 털어서 1억 5천만 달러로 반트코인 3000개를 매입했다.
개당 5만 달러에 매입한 셈인데, 매입 이후에도 반트코인 가격이 8만 달러까지 오르며, 성공적인 투자처럼 보였다.
대통령은 반트코인 상승으로 국가 채무가 해결될 거라 자신했다.
그런데 페더 사태로 인해 반트코인 가격이 6만 달러로 떨어졌다.
그는 놀란 국민들에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코인은 반드시 오릅니다.’
4만 달러로 떨어졌다.
‘지금 파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오히려 추가 매수 기회입니다.’
3만 달러로 떨어졌다.
‘끝까지 버티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2만 달러 떨어졌다.
반트코인 고점 대비 80퍼센트가 폭락했고, 그만큼의 국가재정이 날아갔다.
당장 국가부채를 못 갚아 디폴트를 선언할 판에 대통령은 물타기만을 외쳤다. 그런데 물 탈 돈이 없었다.
그동안 정부를 믿고 반트코인을 보유하고 거래해왔던 국민들은 보유한 자산의 70퍼센트가 날아가는 날벼락을 맞았다.
분노한 국민들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NFT 시장 역시 휘청거렸다.
NFT란 대체 불가능 토큰(Non-Fungible Token)을 뜻하는 단어로 디지털 자산의 소유주를 증명하는 가상 토큰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데이터는 무한 복제될 수 있고, 원본과 카피본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이러한 디지털 세계에 유일한 원본을 만들 수 있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났다.
이에 너도나도 NFT를 제작하여 발행했고, 판매에 나섰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그림과 작품을 올려 NFT로 팔았고, NBA와 MLB 등은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을 NFT로 팔았다.
심지어는 게임사들도 캐릭터와 아이템에 NFT를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NFT와 관련해 수많은 업체들과 프로젝트들이 생겨났고, 알고리즘을 통해 랜덤으로 만든 캐릭터 그림들은 경매에 올라와 수천만 달러에 팔렸다.
할리우드 유명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이 요트 타는 고릴라 캐릭터를 샀다는 말에 가격은 끝없이 뛰었다.
투위터 창업자가 올린 ‘방금 나의 투윗을 설정했다’라는 최초의 투윗 NFT는 무려 290만 달러에 판매됐다.
그동안 여러 의문이 제기됐다.
‘희소성이 있다는 건 매력적이다. 그런데 그걸 대체 어디에 쓴다는 건가?’
‘NFT 그림을 산 사람은 그게 유일무이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게 카피본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개인 소장용이나 만족을 위해 사는 거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NFT 구매자의 80퍼센트는 이후에 더 비싼 가격에 팔기 위해 구매한다. 이는 이후에 자신이 산 가격보다 더 큰 돈을 지불할 바보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NFT는 보통 엘더리움으로 거래된다.
때문에 엘더리움 가격 상승은 곧 NFT 가격의 상승이었다. 그런데 엘더리움이 폭락하자, NFT 가격 역시 따라서 폭락했다.
최초의 투윗을 290만 달러에 구매한 사람은 이를 다시 경매에 올렸지만, 입찰가는 고작 1엘더리움, 1000달러에 불과했다.
* * *
페더가 몰락한 순간.
시장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컨티뉴 캐피탈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우오오!”
다들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고, 몇몇은 서로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때로는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셈이지.
데이비드는 지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데이비드도 수고했어요.”
긴장과 과로 때문인지 그는 잔뜩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아마 내 상태 역시 비슷할 것이다.
그동안 24시간 돌아가는 거래소를 체크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까.
롱맨은 장수하지만, 숏맨은 단명한다는 얘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오늘은 좀 푹 잘 수 있으려나?
데이비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시장 전체가 이 정도로 엉망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공격에 가담한 헤지펀드들만 신이 났군요.”
“엠프티풀 리서치 역시 환호하고 있을 거예요.”
헤지펀드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이 코인 저 코인을 들쑤시며 털어먹었다.
고작 이 정도 공격에 무너져내린다는 건, 그동안 암호화폐 시장에 얼마나 거품이 껴있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것은 컨티뉴 캐피탈이다.
그러나 비난의 화살은 우리보다는 레너드 창에게 쏟아졌다. 그는 계속해서 페더의 예치금이 충분하다고 주장했으니까.
코인맥스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레너드 창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언론이 홍콩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헐값이 된 페더를 사들여서 다시 PN 프로토콜에 넣어 상환하면 되겠군요.”
“그럴 필요도 없겠는데요.”
왜냐하면 다들 언스테이킹해서 0.2페니를 받아가는 중이니까.
헐값이 된 페더와 0.05페니를 받느니, 0.2페니를 받는 게 남는 장사다.
450억 달러어치 페더를 예치 받고, 그중 90억 달러를 돌려주는 거니, 대략 360억 달러를 벌어들인 셈이다.
데이비드는 새삼 놀랍다는 듯 말했다.
“믿기지 않는 수익이로군요.”
“사실 저도 그래요.”
증권사 다닐 때 내 월급이 얼마였더라?
디파이 프로토콜을 활용한 만큼 금융비용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이래서 디파이가 금융의 미래라고 하는 건가?
페니를 받아 간 기관들 대부분은 바로 태환을 요청했고, 달러로 바꿔준 만큼의 페니는 소각시켰다.
난 동호 선배에게 한국 상황에 대해 보고 받았다.
[여기 지금 난리도 아니야. 반트코인 채널에서는 전재산 날렸다는 인증글들이 주르륵 올라오고 있고, 회사 앞에 시위대도 와서 시위 중이야.]
“그건 뉴커런시로 가서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거긴 멀잖아. 케이맨 군도가 대체 어디야? 너 창수 알지?]
“누군데요?”
[박창수 말이야. 과대했던.]
“아아, 창수 선배요? 그 선배가 왜요?”
[걔가 원래 코인으로 대박 친 걸로 유명했거든. 무슨 코인 사서 열 배 먹었다고 자랑했었는데, 그 뒤로 빚까지 내서 타이탄에 몰빵한 모양이야. 성공하면 빌딩 한 채 살 거라고 했는데, 지금 연락이 안 돼.]
“아…….”
하필 사도 타이탄을 샀을 줄이야.
[걔 말고도 빚내서 코인 투자한 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은 암호화폐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지닌 나라.
성인 세 명 중 한 명은 암호화폐 투자를 접해봤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청년층.
사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저금리와 양적완화는 자산가치를 크게 상승시켰다.
반면 실질 임금은 크게 늘지 않았고, 일자리는 불안정했다.
성실하게 일해서는 집사고 결혼하기 힘든 시대다. 때문에 다들 어쩔 수 없이 투자시장으로 내몰린 것이다.
부동산은 돈이 없어서 못 사고, 그렇다고 주식 투자를 하기에는 GL케미칼의 GL엔텍 물적분할 재상장에서 드러났듯 경영진들이 주가를 올리기는커녕 이익 빼먹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암호화폐.
이곳은 얼마든지 일확천금이 가능한 시장이니까.
사실상 전국적인 도박판이 벌어졌는데도, 제대로 된 규제는 없었다.
“진작 규제가 만들어졌어야 했는데요.”
[뭐, 정부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
그동안 몇 차례 규제하려고 시도했고, 한번은 거래소 폐쇄까지도 검토했었으니까.
일명 김창기의 난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투자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해 무산됐다.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원래 페더 사태가 터진 건 다음 정부 때였다.
당시 대통령은 임창식. 그는 놀랍게도 대통령이 되자마자 암호화폐를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그나마 있던 규제마저 시원하게 풀었다.
때문에 페더 사태가 터지자 수십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쏟아져나오고, 경제성장률이 1퍼센트 이상 하락하는 등 경제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 암호화폐 규제 문제를 놓고 우리국민당 경선에서 임창식과 남궁석이 한 판 붙은 거 알지? 혹시 경선 토론회 봤어?]
“기사로만 대충 봤어요.”
동호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영상 찾아서 봐봐. 그거 진짜 대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