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페더 (9)
[(WST 단독) 헤지펀드들 잇따른 페더 공매도 선언. 영란은행의 악몽 재현되나?]
(전략)
이번 일은 1992년 발생한 퀀텀 펀드의 파운드 공매도와 여러 면에서 닮아있다.
1990년, 영국은 ERM에 가입하며 자국 화폐인 파운드와 독일의 마르크를 6퍼센트 밴드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페깅해 놓았다.
문제의 발단은 독일이었다.
독일이 통일되며 독일 정부는 동독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고, 그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직후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붕괴되는 일을 겪은 만큼, 즉시 10차례나 금리를 인상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에 다른 나라들은 비명을 질렀다.
다들 독일에게 금리 인상 자제를 요청했지만, 독일은 자국 상황이 먼저라며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금리 인상으로 마르크는 강세를 나타냈고, 화폐 가치가 고정된 만큼 영국도 따라서 금리를 올려 파운드를 방어했다.
문제는 독일은 경제가 튼튼해서 금리 인상을 버텨낼 수 있었던 반면, 영국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업률은 치솟았고, 고금리를 버티지 못한 기업들은 파산했고, 경기는 침체됐다.
상식적으로는 이 시점에서 영국은 ERM을 탈퇴해 파운드 가치가 떨어지도록 놔뒀어야 했다. 그러나 이는 영국의 경제가 독일에 비해 안 좋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유럽의 헤게모니를 두고 독일과 다투고 있던 영국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국은 한때 세계의 지배자이자,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다.
때문에 영국은 끝까지 파운드 방어를 선택했다.
이때 조지 소로스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그는 파운드는 고평가됐고, 영국이 이 상황을 오래 유지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가 이끄는 퀀텀 펀드는 파운드 공격을 선언했고, 돈 냄새를 맡은 수많은 헤지펀드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헤지펀드들은 레버리지를 최대한 일으켜 파운드 공매도를 쏟아냈고, 영국은 단기금리를 15%로 인상하고 파운드를 사들이며 방어에 나섰다.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었다.
파운드 강세와 고금리를 버티지 못하면 헤지펀드들이 죽는 거였고, 파운드를 방어할 달러가 떨어지면 영국이 죽는 거였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먼저 손을 든 것은 영국이었다.
영국은 한 달도 안 돼 포기를 선언하고 ERM을 탈퇴했다.
그러자 바로 파운드화는 폭락했고, 조지 소로스와 헤지펀드들은 헐값이 된 파운드를 사들여 공매도를 청산해 천문학적 수익을 올렸다.
이는 영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헤지펀드의 공격에 의해 무너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중략)
그렇다면 이번 페더 공매도 사태는 어떻게 될까?
지금으로서는 결과를 예단하기가 힘들다.
만약 페더 공매도에 실패한다면, 페더는 지금과 같이 암호화폐 시장의 기축통화로서 기능할 것이다.
그러나 페더가 무너진다면, 그때는 암호화폐 시장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암호화폐 투자로 유명한 헥사곤 인베스트먼트 킴벌리 로먼 CEO는 이렇게 말했다.
“플레이어가 계속 포커판에 참여해있을 필요는 없다. 누구도 당신에게 매번 게임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이길지 질지 알 수 없을 때는 잠시 카지노를 떠나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 * *
레너드 창은 홍콩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센트럴에 있는 사무실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지켜보았다. 시장의 전망은 팽팽했다.
며칠 만에 150억 달러가 넘는 매도량이 쏟아졌지만, 페더의 가치는 여전히 1~0.999달러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이는 페더 리미티드가 쏟아지는 물량을 바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그 덕분인지 충격을 받았던 시장은 이내 회복세로 돌아섰다.
이 외에도 기관들의 태환 요구가 줄을 이었다.
일반적으로 페더는 거래소에서 거래되지만, 시장 교란을 막기 위해 1,000만 달러 이상을 거래하는 기관들에게는 사이트를 통해 따로 태환을 해주었다.
사방에서 그에게 연락이 걸려왔다.
그는 주요 투자자들에게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보다시피 페깅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발행량 이상의 예치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페더는 아무 문제 없이 거래되고 있기에 투자자들은 안심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지켜보았다.
[퍼마운틴 캐피탈, 골덴바움 시스터즈, 라이먼골드 PE, 테더 공매도 선언!]
[엠프티풀 리서치 렌츠 대표, 페더 공매도는 매우 매력적인 투자. 더 많은 헤지펀드들이 참여할 것]
[골드만삭스, 코인맥스의 가치만 해도 2000억 달러 이상, 페더 방어는 충분히 가능]
[무디스, 페더 리미티드 신용등급 현상유지]
컨티뉴 캐피탈의 공매도 전략은 교묘하고 치밀했다.
‘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해낸 거지?’
디파이에 언스테이킹에 대한 조항을 집어넣음으로써, PN 프로토콜에 예치한 기관들마저도 페더 공매도에 나서게 만들었다.
레너드 창은 파티장에서 만났던 한국인을 떠올렸다.
사우디 PIF 해외투자본부장과 함께 나타난 남성. 그는 다름 아닌 컨티뉴 캐피탈의 공동대표.
컨티뉴 캐피탈은 21세기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투자사로 유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크게 성공했다 해도, 그의 성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레너드 창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가장 짧은 시간에 벌어들였다.
무엇보다 부의 근본이 달랐다.
일반적인 투자로 돈을 벌어봐야 그저 시장의 수많은 플레이어들 중 한 명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암호화폐 시장의 절대적인 지배자였다.
3조 달러나 되는 거대한 시장이 그의 손에 의해 움직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성 금융권에서는 암호화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명 투자자들은 언론에 나와 그를 비웃었고, 반트코인을 비롯한 모든 코인은 쓰레기라고 조롱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디지털 쓰레기로 취급하던 반트코인은 8만 달러를 넘어섰고, 코인맥스는 웬만한 선진국의 주식거래소 이상으로 커졌다.
이렇게 되자 금융권은 앞다퉈서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기업들 역시 반트코인과 엘더리움을 사들였다.
레너드 창은 암호화폐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여겼다.
인류는 물물교환의 시대에서 실물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신용화폐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 신용화폐의 마지막 진화 형태가 바로 CBDC다.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CBDC에 대한 연구와 발행을 준비 중이었다.
CBDC 역시 블록체인으로 작동하는 만큼, 블록의 생성과 검증을 위해 여러 중개기관이 참여한다.
이걸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세계 최대 거래소를 운영하고, 세계 최대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 뉴커런시 엔터프라이즈.
영국, 캐나다, 스위스 등의 중앙은행에서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
CBDC가 성공한다면, 그는 미래 화폐의 흐름을 한 손에 쥐게 될 것이다.
찬란한 미래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누군가 그에게 칼끝을 들이댔다.
레너드 창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감히 나에게 도전을 하겠다는 건가?”
* * *
컨티뉴 캐피탈은 엄청나게 바빠졌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주식거래소와는 다르게 24시간 거래가 이뤄지고, 개별 거래소마다 가격이 약간씩 차이가 난다.
직원들은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시장을 모니터링했고, 실시간으로 자료가 올라왔다.
역시나 다른 헤지펀드들도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온갖 방법을 동원해 페더 숏포지션을 구축했다.
“방금 나온 자료입니다.”
“고생하셨어요.”
난 커피를 마시며 조셉이 가져다준 자료를 살펴보았다.
한창 집중해서 읽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렌츠 대표였다.
[페더 측에서 회계법인 HMA 케이맨의 인증을 받은 자산 내역을 공개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 회계법인은 뭐하는 곳인가요?”
[저도 처음 들어보는 곳입니다. 케이맨 제도에 있는 곳이라고 하니, 직접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으니까요.]
그는 서류에 적힌 내용이 맞는지 발로 뛰어 조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라오후커피 공매도 때는 아예 1만 명의 알바생을 고용해 각 지점마다 손님이 몇 명인지, 몇 잔이나 팔렸는지를 일일이 조사했을 정도니까.
아마 탐정을 했으면 명탐정으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까?
“잘 다녀오세요.”
전화를 끊고 다시 자료를 살펴보는데,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뜻밖의 사람이었다.
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상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은 잘 들어가셨습니까?]
“예.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상당히 재밌는 일을 벌이고 있던데. 목적이 뭡니까?]
“돈이 될 것 같아서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싸움은 향후 암호화폐의 헤게모니를 누가 쥐느냐의 싸움이니까.
[한 대표와는 많은 걸 함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그는 암호화폐의 제왕이다.
만약 그가 앞으로의 일에 도움이 됐다면, 나 역시 기꺼이 손을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있어서 방해꾼이다.
시드가 만드는 메타버스 세상에 그의 자리는 없으니까.
나로 인해 스노우 크래시의 성장은 더욱 빨라졌고, 미래는 조금씩 앞당겨졌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는 만큼, 위험 요소는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없애는 게 좋겠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저에 대해 잘 모르시나 보네요.”
[뭘 말입니까?]
난 그에게 말했다.
“제가 사기꾼과는 일을 같이 안 해서요.”
* * *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DG아웃사이더의 반트코인 채널
이곳에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몰려 있었다.
반트코인과 거래소의 등장과 함께 만들어진 이 채널은 암호화폐 시장과 함께 성장하며, 수많은 유행어를 남겼다.
이후 암호화폐가 폭락하며 한동안 긴 암흑기를 겪었지만, 최근 제2의 코인 붐이 일며 다시금 활성화됐다.
지금 한국은 그야말로 코인 열풍이었다.
반트코인이 4만 달러에서 8만 달러로 두 배가 오르는 동안, 열 배씩 오른 알트코인들이 속출했다.
여기에 레버리지 옵션까지 판을 쳤다.
하루 만에 100만 원으로 10억을 벌었다는 얘기가 도시전설처럼 돌아다니며, 투자자들은 너도 나도 매수행렬에 뛰어들었다.
-머장 떡상 중!
-지금 반트코인 엘더리움을 타봐야 얼마나 먹겠어?
-고작 두세 배 먹을 거면 뭐하러 코인을 하나?
-코인 하나 잘만 타면 순식간에 인생 역전하는 거야!
-인생은 한강물 아니면, 한강뷰 아니겠어?
-엘클로 한 시간 만에 2천 먹음. 꺼어억!
-라테 코인 아직 안 탄 흑우들 없재?
-오늘 이더 머선129??
-스타팜 코인 펌핑 들어간다!!
-오늘 빨간맛이다! 빠, 빨간맛! 궁금해 코인!
-ㅅㅂ 내 코인만 파란맛이네ㅜ
시장이 활황이다 보니, 온갖 코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라이언 코인이 뜨자, 이를 베낀 타이거 코인, 재규어 코인 등이 출시됐다.
대체 이 코인들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격이 오를 거라는 말에 너도나도 사들였다.
그런데 이렇게 상승하는 장에 엄청난 악재가 하나 등장했다.
바로 페더 공매도 사태다!
페더 공매도가 본격화되자,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흔들렸다. 반트코인은 8만 달러 아래로 내려갔고, 알트코인들은 10퍼센트 이상 줄줄이 하락했다.
-페더 공매도? 페더가 뭐야?
-비트업과 반썸에도 다 없지 않나?
-시총 3위의 스테이블 코인임. 1페더=1달러로 가격이 고정되어 있음.
-가격이 안 움직인다고? 그럼 그걸 왜 사?
-코인맥스나 다른 해외 거래소에서는 이게 달러로 쓰이니까.
한국은 은행 시스템이 매우 잘 발달된 있는 나라.
때문에 원화마켓에서의 거래는 대부분 현금으로 이뤄지고,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개념이나 페더가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코인맥스와 레너드 창에서 대해서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시장의 최고 스타니까.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시장이 하락 중이라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다 같이 분노했다.
-이 새끼들이 지금 뭐하는 짓거리야?
-지금 뭐 떡락한다 어쩐다 하는 기사 나오던데. 설마 김창기의 난 때처럼 태초마을로 돌아가는 건 아니지?
-창기빔도 견뎌낸 우리다! 고작 컨티뉴빔 따위에 흔들릴 것 같냐?
-우리는 무조건 레너드 형 편이다! 여기 컨티뉴 캐피탈 편드는 놈들 없재?
-반트코인 100K 간다! 꽉 잡아라!
-루플도 간다!
-ㄴㄴ 루플은 못 감. 다른 코인 다 올라도 걘 영원히 안 오름.
-루또속 ㅋㅋㅋ
-루플에 대한 혐오를 멈춰주세요 ㅜㅜ
-레너드 형 힘내!
-컨티뉴 캐피탈 지지하는 놈들은 이제부터 친구고 가족이고 전부 손절한다!
-페더의 무운을 빕니다!
-무운을 빈다고? 왜 운이 없기를 빌지? 이 새끼 숏충이네! 관리자 형! 이 새끼 IP 차단 좀!
-그러게. 유운을 빌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