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85화 (285/529)

285화. 페더 (8)

강남 유성타운 D동.

작년까지만 해도 유성물산의 소유였던 이 건물은 컨티뉴 캐피탈로 소유주가 바뀌었다.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는 진작 입주했고, 이어서 한국지사가 투자한 패션기획사와 연예기획사들이 속속 입주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SW게임즈도 입주를 끝마쳤다.

이동호와 에드워드는 투자자의 자격으로 연예기획사들을 둘러보고 걸그룹을 만나보았다.

“역시 걸그룹이 최고죠?”

이동호의 말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리안 걸그룹 이즈 베스트.”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하며 주먹을 살짝 부딪쳤고, 김범석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지사가 열심히 투자를 하는 사이, 미국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컨티뉴 캐피탈이 무려 500억 달러 규모의 페더를 공매도할 거라는 소문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암호화폐 시장이 출렁거렸다.

이동호는 한미루의 전화를 받았다.

[잘 지내고 있죠?]

“그렇긴 한데,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페더 공매도라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지금 코인족들 전부 우리 욕하고 있어. 조만간 시위라도 할 것 같은 기세야.”

[이사하길 잘했네요.]

“그렇지. 여기는 그래도 안전하니까.”

한국은 세계적인 암호화폐 투자 강국.

컨티뉴 캐피탈의 페더 공격 선언 이후 암호화폐 가격이 하락하자, 한국 코인 투자자들은 강렬한 분노를 나타냈다.

[일단 한국 자료 좀 정리해서 보내줘요.]

“어, 알았어.”

본사에서 시키면 지사는 따라야 한다.

직원들이 자료를 만들었고, 이동호는 김범석, 그리고 에드워드 밴슨과 한자리에 모여 리포터를 분석했다.

에드워드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군요.”

이동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암호화폐하면 또 한국이죠. 김창기의 난도 한국에서 벌어졌잖아요.”

한국 법무부장관의 말 한마디에 암호화폐 시장이 폭락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흠, 그런데 이 부분이 좀 이상하군요.”

“뭐가요?”

에드워드는 보고 있던 자료를 내밀었다.

“코스피 시총은 약 2,400조 원인데 비해, 암호화폐 원화마켓은 200조 원에 불과합니다.”

“그렇겠죠. 코스피는 개인은 물론 외국인, 기관, 연기금이 투자하는 시장이지만, 암호화폐 원화마켓은 오직 개인들만 투자하니까요.”

“그런데 암호화폐 일 평균 거래대금은 18조 원으로, 15조 원인 코스피보다 20퍼센트 이상 높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이동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야 한 시간에도 수십 번씩 사고파니까요. 한마디로 회전율이 미친 거죠.”

“이 정도로 거래를 하면 수수료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암호화폐 거래 수수료는 약 0.3퍼센트.

10번만 거래해도 3퍼센트의 손실이 발생한다. 100번을 거래하면? 이때는 원금의 30퍼센트를 손실을 본다.

거래를 많이 할수록 수수료로 빠져나가는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반면 단타를 치는 사람이 많을수록 거래소는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비트업이 세계 4위까지 올라간 거죠.”

“한국인들은 단타를 좋아하는 모양이군요.”

“저희가 또 단타의 민족이죠.”

예전에는 단타라고 하면 하루 안에 사고파는 데이 트레이딩(Day Trading)을 뜻했다.

하지만 요즘 단타라고 하면 보통 초와 분 단위로 거래하는 스캘핑(Scalping)을 뜻했다.

이동호는 괜히 코밑을 쓱 훑으며 말했다.

“예를 들어 상장폐지되는 주식의 정리매매 마지막 날에는 천하제일단타대회가 열리며, 거래량이 평소의 수천 배로 치솟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상폐 1초 전까지도 단타 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장관이죠.”

“……그렇군요.”

“그런데 최근 주식시장에서는 단타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전부 코인판으로 몰려갔으니까요.”

“…….”

코인창을 보다가 주식창을 들여다보면 무슨 정지화면 들여다보는 것 같다. 모름지기 투자종목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를 해야 제맛 아니겠는가?

다시 자료를 보던 에드워드는 또다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부분도 좀 이상하군요.”

“뭐가요?”

“반트코인와 엘더리움의 보유량이 왜 이렇게 적습니까?”

반트코인과 엘더리움의 시총은 전체 암호화폐 시총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

당연히 원화마켓에서의 비중 역시 이와 비슷해야 하는데…… 놀랍게도 글로벌마켓의 절반 이하인 27퍼센트에 불과했다.

“아! 한국 코인 투자자들은 반트코인과 엘더리움을 별로 안 좋아해요.”

“어째서입니까?”

이동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 정도 변동성으로는 우리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없으니까요. 반트코인 사봐야 두 배나 먹겠어요? 하지만 알트코인 하나 잘 타면 열 배씩 먹을 수 있죠.”

에드워드는 당황했다.

“아니, 열 배씩 오른다는 건 반대로 90퍼센트가 폭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잖습니까?”

“에이,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그럼 뭐가 중요합니까?”

“남들 다 잃는 시장에서도 나는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이 중요하죠.”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한 다음 물었다.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모바일 게임 랜덤박스에 수십만 달러씩 지르는 것도 그렇고, 암호화폐 거래량과 알트코인 비중도 그렇고. 여기는 무슨 도박의 나라입니까?”

“…….”

* * *

PN 프로토콜의 페더 예치액은 45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시중에 있는 페더의 30퍼센트가 예치됐음을 의미했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3개월에 5퍼센트 이자는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지는 않다. 1만 달러를 넣어야 고작 500달러니까.

그러나 운용금액이 큰 기관 입장에서는 다르다.

1000만 달러를 예치하면 3개월 만에 무려 50만 달러의 확정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던 기관들은 기꺼이 페더를 PN 프로토콜에 스테이킹했다. 예치된 450억 달러 중 80퍼센트 이상이 기관들의 자금이었다.

데이비드는 나에게 말했다.

“페더의 자산이 부족하다고 반드시 페더가 붕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죠.”

이는 은행의 지급준비율이 7퍼센트밖에 되지 않아도 뱅크런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와 같다.

“모두가 페더를 동시에 바꾸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페더는 문제가 없을 테니까요.”

일시적으로 10퍼센트를 매도해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20퍼센트나, 30퍼센트를 매도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50퍼센트라면? 70퍼센트라면?

과연 이를 방어할 수 있을까?

이러한 우려가 시장에 퍼지며 페더를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가 급증했다.

현재 페더를 들고 있는 투자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포지션은 보유한 페더를 달러로 태환하는 것이다.

그런데 PN 프로토콜에 스테이킹을 해놓았을 경우에는 해지가 힘들다.

이미 스테이킹 해놓은 페더를 컨티뉴 캐피탈이 전부 대출해갔기에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줄 방법도 없고.

다행히 PN 프로토콜에는 스테이킹 해지에 대한 조건이 하나 붙어있다.

바로 기간만료 전에 언스테이킹을 할 경우 1페더를 0.2페니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자는 지급하지 않는다.

비유를 하자면 100만 원을 정기예금이 맡겨놓고, 중간에 이를 해지하면 20만 원만 돌려받는 셈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예금액의 80퍼센트를 날리는 미친 짓을 할 리가 없다.

하지만 페더가 휴지조각이 될 상황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가만히 앉아 0원이 되는 것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20퍼센트라도 건지는 게 나으니까.

데이비드는 나를 보며 물었다.

“어째서 언스테이킹 조건을 넣어놓은 겁니까?”

“그런 조건이 없으면 스테이킹을 한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자신의 재산이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봐야 하잖아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20퍼센트는 건질 수 있다.

반대로 우리 입장에서는 굳이 줄 필요 없는 돈을 내줘야한다. 500억 달러의 20퍼센트면, 그것만 해도 100억 달러다.

“페니는 이제 시작이에요. 훗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암호화폐가 될 텐데, 시작부터 너무 미움 받으면 안 되지 않겠어요?”

“정말로 그게 전부입니까?”

역시 눈치챘구나.

난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PN 프로토콜에 스테이킹을 한 기관들이 다들 우리 편에 서지 않겠어요?”

* * *

골덴바움 시스터즈.

시티 오브 런던에 있는 이 헤지펀드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이들은 암호화폐 전문 투자사로, 무려 4억 2천 개의 페더를 PN 프로토콜에 스테이킹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폭락을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놈들이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나?”

“공매도를 위해 디파이를 활용하다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기관들이 앞다퉈서 보유한 페더를 달러로 바꾸는 중입니다.”

“페더 리티미드 측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현재 페깅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조용히 얘기를 듣던 제이미 골덴바움 CEO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그 말에 이제까지 떠들던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닫았다.

다들 표정이 심각했다.

엠프티풀 리서치가 페더의 문제를 지적했을 때만 해도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제까지 컨티뉴 캐피탈은 공매도에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건드리는 것마다 전부 폭락시켰다. 얼마 전에는 미국 빅5 기업인 페이스노트마저도 쓰러트렸다.

그렇다면 과연 페더는 멀쩡할까?

안전하게 5퍼센트 수익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95퍼센트를 날리게 생겼다!

‘아니, 그래도 20퍼센트는 돌려주니, 손실은 80퍼센트에 그치는 건가?’

어쨌거나 이 정도 손실이 생기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기……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푸석푸석한 금발, 빼빼 마른 몸과 광대가 드러난 얼굴, 창백한 피부.

마치 아버지 양복을 빌려 입은 듯한 모습에 숫기 없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의 이름은 조쉬 애프런.

얼마 전, 골덴바움 시스터즈에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그는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다른 자산을 처분해서 4억 2천만 달러 규모의 페더 공매도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뭐? 이게 무슨 소리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골덴바움 CEO는 차분하게 물었다.

“이유가 뭔가?”

“아, 예. 이런 겁니다. 현재 컨티뉴 캐피탈이 페더를 공격하는 방식은 외환시장 공격 방식과 비슷합니다. 만약 외화라면 공격이 성공한다 해도 기껏해야 수십 퍼센트 폭락할 겁니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화폐 가치가 0이 될 리는 없으니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페더는 달러 태환 스테이블 코인입니다. 정상적으로 태환이 이뤄지면 1달러지만, 태환이 중단되면 가치는 0으로 떨어질 겁니다.”

“그래서?”

“먼저 컨티뉴 캐피탈이 이길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럼 페더는 0이 될 테고, 저희는 PN 프로토콜에서 스테이킹을 해지해 20퍼센트, 8400만 달러어치의 페니를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4억 2천만 달러의 페더 공매도를 했다면 90퍼센트 이상의 수익이 났을 테고, 그럼 합쳐서 10퍼센트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다들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조쉬는 계속해서 말했다.

“반대로 뉴커런시 엔터프라이즈가 이길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럼 페더는 여전히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할 테고, 저희는 3개월 후 PN 프로토콜에서 안전하게 원금과 이자를 회수할 수 있습니다. 페더는 스테이블 코인인 만큼 공매도에 실패해도 비용은 5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그럼 이자로 손실을 상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다들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PN 프로토콜에 페더를 스테이킹 해놓았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페더 공매도에 나서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성공하면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고, 실패해도 손실을 피할 수 있다.

골덴바움 CEO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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