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페더 (7)
스노우 크래시가 출시한 디파이 프로토콜, 일명 PN 프로토콜은 출시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페더는 1달러에 페깅되어 있는 스테이블 코인.
가격 변동이 없는 만큼 투자 대상이 아닌, 코인 시장에 머무는 대기자금일 뿐이다.
그런데 페니를 기반으로 만든 PN 프로토콜에 스테이킹을 해놓으면 3개월에 5퍼센트나 되는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만약 3개월 후 담보를 상환하지 못하면 담보로 예치된 1페니를 지급하고, 이자는 기존의 두 배인 10퍼센트 지급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담보로 잡은 암호화폐의 신뢰도다.
발행량이 확인되고 예치금은 예금과 미국 국채로 신탁기관에 보관해놨으니 100퍼센트 안전하다.
게다가 이를 발행한 건 스노우 크래시고, 예치금을 보증해주는 건 컨티뉴 캐피탈이다.
이 정도면 미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손실 날 염려는 없다고 봐도 좋다.
때문에 PN 프로토콜은 출시 일주일도 안 돼 400억 달러가 몰렸다. 마치 시장에 풀린 페더를 전부 흡수하는 모양새였다.
의문인 건 대체 어떤 구조로 수익을 내 이자를 지급하냐는 것이다. 만약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본인들 돈으로 이자를 지급해주는 것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혹시 직접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들려는 게 아닐까?”
“설마 암호화폐 쪽에 투자를 하려는 건가?”
“반트코인을 사들이려고?”
“3개월에 5퍼센트가 이자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게 비싸지만, 이 시장에서 5퍼센트 변동성은 우스운 수준이잖아.”
“하긴, 컨티뉴 캐피탈의 실력이라면 5퍼센트는 우습겠지.”
“500억 달러면 본인들이 원하는 가격을 만들 수도 있을 테고.”
“그런데 굳이 5퍼센트 이자를 줘가며 할 필요가 있나? 그냥 페더를 사면 될 텐데.”
“그건 페니를 유통하기 위함이 아닐까? 이번 일로 페니가 유명해졌잖아.”
“하긴, ICO나 에어드랍으로 뿌릴 것도 아니니.”
같은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해도 페니와 페더는 그 목적이 전혀 다르다.
페니는 현금 대신 클라우드 내에서 소비와 결제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반면, 페더는 거래소 간 자산 이체 및 관리에 쓰인다.
때문에 페니는 암호화폐 거래에 사용될 수 없다.
거의 모든 거래소에 상장된 페더와는 다르게 상장이 안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페니를 담보로 잡고 페더를 끌어모아 투자한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건 없을 것이다.
컨티뉴 캐피탈이 본격적인 암호화폐 투자에 나설 거라는 기대감에 시장은 이를 호재로 인식했다.
그런데…….
* * *
[(WST 단독) 컨티뉴 캐피탈, ‘페더는 역사상 가장 큰 폰지 사기’]
(전략)
록허트 대표는 페더의 자산에 큰 의구심을 나타냈다.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와도 같다. 예치금을 담보로 발행했다면, 이는 달러를 암호화폐로 변환한 것이지만, 예치금 없이 발행했다면 폰지 사기나 다름없다. 문제는 페더가 1500억 달러어치가 발행되는 동안 어떠한 규제도 감사도 없었다는 것이다.”
(중략)
컨티뉴 캐피탈은 페더를 공격할 것을 시사했다.
여기에는 엠프티풀 리서치도 가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버트 렌츠 대표는 ‘페더는 거대한 사기극이고, 이를 빨리 끝내는 것만이 투자자들의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페더 측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공식 입장문을 통해 터무니없는 의혹 제기라며 반박했다.
‘공매도 세력들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시장을 흔드는 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명백히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운 일이다. 페더는 여러 차례 당국의 조사를 받았고 문제가 없음을 확인받았다. 우리는 이러한 공격에 말려들지 않고 계속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겠다.’
* * *
컨티뉴 캐피탈과 엠프티풀 리서치가 손을 잡고 페더 공매도에 나섰다는 소식은 즉시 시장을 뒤흔들었다.
놀란 투자자들이 페더를 내던지며 매도량이 일시적으로 치솟았지만, 다행히 페더는 0.999달러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큰 변동 없이 페깅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다른 암호화폐들이었다.
8만 달러를 넘어 10만 달러를 향해 가던 반트코인은 7퍼센트가 폭락했고, 엘더리움은 11퍼센트, 그리고 알트코인들은 30퍼센트 이상 폭락했다.
언론들은 일제히 기사를 쏟아냈다.
[(속보) 암호화폐 시총 3000억 달러 증발!]
[컨티뉴 캐피탈의 페더 공격, 암호화폐 시장에 미칠 영향은?]
[스테이블 코인, 과연 안전한가?]
[레너드 창 CEO, 페더 공매도는 어리석은 짓. 공매도 세력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모인 사이트는 난리가 났다.
-ㅅㅂ 오늘 코인 박살이네.
-자고 일어났더니, 이게 뭔 일이야?
-폭락빔 맞고 35퍼센트 손실 ㅜㅜ
-이 새끼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갑자기 뭔 페더를 공격하겠다고 지랄이야?
-스테이블 코인을 공격해서 뭐하려는 거지?
-아무리 컨티뉴 캐피탈이라 해도 안 될 것 같은데.
-그건 모르지. 페이스노트마저 박살내 놓은 놈들인데.
-ㅋㅋ 걔들이 건드려서 멀쩡한 기업이 없음.
-그렇다 해도 페더 공격이 말이 됨? 발행한 사람이 세계 1위 부자 레너드 창인데.
-그럼그럼. 컨티뉴 캐피탈이라 해도 뉴커런시 엔터프라이즈에는 안 되지~
-지금은 존버할 때입니다.
-근데 페더 박살나면 어떻게 됨?
-어떻게 되긴. 좆되겠지…….
렌츠 대표는 NBC와 CNN, 폭스뉴스 등에 연달아 출연해 페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페더는 제대로 된 회계감사를 받은 적도 없고, 그저 서류 한 장만 공개했을 뿐입니다. 신흥국에 투자했다면 기업의 안정성뿐 아니라, 환율변동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저희의 분석에 따르면 자산의 상당 부분을 암호화폐로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즉, 페더를 발행해 암호화폐를 사서 가격을 끌어올리고, 그렇게 끌어올린 암호화폐를 보유함으로써 더 많은 페더를 발행했습니다. 만약 시장이 하락한다면, 담보의 가치는 순식간에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100퍼센트 안전한 자산은 오직 달러와 미국 국채뿐입니다.
기자는 그에게 물었다.
“페더 측은 회계법인의 증명서를 공개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기업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비공식 감사였습니다. 공인된 기준 없이 평가한 담보 가치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여러 차례 자산 세부 내역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포지션이 노출될 수 있다며 거절했습니다. 페더의 예치금에 정말로 문제가 없다면, 정식으로 회계감사를 받고, 자산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됩니다. 컨티뉴 캐피탈은 그렇게 했는데, 페더 리미티드는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렇다면 페더의 예치금이 어느 정도나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 분석에 따르면 30퍼센트 이상입니다. 담보 가치가 하락할 경우에는 50퍼센트 이상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 그렇군요.”
그 말에 기자는 당황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30퍼센트만 해도 500억 달러가 없다는 얘기니까.
“이번 일로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렌츠 대표는 냉소를 지었다.
“현재 스타벅스의 선불충전금은 무려 10억 달러로 웬만한 중소은행보다 많습니다. 만약 누군가 충전금을 대량으로 환불해 달라고 요청하면, 스타벅스가 이를 자사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돈은 애초에 스타벅스의 돈이 아니라 고객들이 넣은 돈이니까요. 그러니 언제든 환불을 요청한다면 돌려줘야 합니다. 페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페더는 1달러를 넣었을 때 1페더가 발행되는 구조입니다. 페더 리미티드는 그동안 발행한 페더의 100퍼센트에 해당되는 금액을 예치해놓았다고 했고, 언제든 1달러로 바꿔주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동안 발행한 페더 만큼의 달러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페더의 매도는 그저 충전해 놓은 잔액을 환불하는 것일 뿐입니다. 오히려 이를 공격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그만한 예치금이 없기 때문이 아닐지 의심해봐야 합니다.”
* * *
난 데이비드와 함께 렌츠 대표의 인터뷰를 보았다.
“말 잘하네요.”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렌츠 대표는 월가에서도 달변가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글도 잘 씁니다. 엠프리풀 리서치가 공개하는 모든 리포트는 렌츠 대표가 직접 감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대신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편한 일이지.
우리가 현재 투입한 자본은 500억 달러.
실로 엄청난 금액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페더를 무너뜨리기 힘들다.
“500억 달러쯤이야 쉽게 방어할 겁니다.”
“그렇겠죠.”
레너드 창은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의 주인이자, 세계 최대 스테이블 코인 발행회사의 주인.
설마 고작(?) 500억 달러 때문에 무너지지는 않겠지.
하지만…….
난 자신 있게 말했다.
“피 냄새가 나면 상어 떼가 몰려들기 마련이잖아요.”
* * *
최초의 암호화폐인 반트코인이 등장한 것은 약 10년 전.
1센트도 안 하던 반트코인은 8만 달러를 넘어섰고, 엘더리움을 비롯한 수많은 알트코인들이 쏟아져나오며, 암호화폐 전체 시총은 3조 달러로 성장했다.
역사상 하나의 시장이 이렇게 빨리 성장한 경우는 없었다.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보던 골드만삭스, JP모건, 웰스파고, HSBC 등 기존 금융사에서도 암호화폐에 관련한 파생상품을 출시하고, 직접 투자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사모펀드들 역시 포트폴리오에 암호화폐를 추가하는 추세였고, 암호화폐만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곳도 생겨났다.
시장에 넘치는 유동성, 신기술에 대한 선망, 기관들의 투자, 제도권 편입 등 각종 기대감으로 인해 현재 암호화폐 시장은 제2의 부흥기라 할 만큼 활기를 띠고 있었다.
반트코인와 엘더리움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고, 알트코인은 수백 퍼센트씩 상승했으며, ICO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시장 규모가 커진 만큼, 페더의 발행량 역시 꾸준히 증가했다.
페더의 예치금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지적됐던 사항이다.
발행량이 100억 달러, 200억 달러일 때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500억 달러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1천억 달러가 넘고, 1500억 달러가 넘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실제로 페더를 공격하려는 세력은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 엠프티풀 리서치의 경우 아예 대놓고 내부고발자를 찾기도 했고.
하지만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끝났다.
페더의 시총이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웬만한 공격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이 나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소문만으로도 시장 전체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월가의 투자사들은 즉시 움직였다.
“페더 자산에 대한 자료 다 가져와 봐!”
“즉시, 공매도 비용과 방법 알아봐.”
“포트폴리오 재점검하고, 암호화폐 시장에 미칠 영향 분석해서 오늘까지 제출해!”
투자사들은 컨티뉴 캐피탈이 주도하는 페더 공매도에 일제히 시선을 집중했다.
과연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사실 공매도는 상당히 리스크가 있는 투자방법이다.
기대이익은 정해진 반면, 기대손실은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매도 한번 잘못했다가 투자사가 파산하는 일도 흔했다.
그러나 페더 공매도는 다르다.
성공시 이익은 100퍼센트에 가까운 반면, 실패해도 손실액은 5~6퍼센트에 불과하니까.
다들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쯤 되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