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82화 (282/529)

282화. 페더 (5)

워싱턴 D.C.

난 미국의 정치 중심지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을 지닌 40대 후반의 백인 남성.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의원님.”

그의 이름은 마크 필립스.

현재 조지아주 상원의원이다.

내가 만난 정치인들 중 가장 높은 사람이다.

한국에서 남궁석 의원을 만난 적이 있긴 하지만, 한국의 국회의원과 미국의 상원의원은 비교할 레벨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300명이지만, 미국 상원의원은 이 넓은 땅에 딱 100명이니까.

게다가 그는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라 할 수 있다.

“의정 활동으로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아무리 바빠도 한 대표님은 만나야죠.”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필립스 상원의원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열심히 투자하며 지냈습니다.”

“그날 투자회사를 만들겠다고 들었는데, 그게 설마 컨티뉴 캐피탈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성장세가 무섭던데요. 워싱턴 정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회상하듯 말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일을 떠올립니다. 미루 씨가 같은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예. 뭐…….”

사실 나 없었어도 아무 일도 안 생겼다.

그래도 굳이 오해를 정정해줄 필요는 없겠지.

그러고 보니 그날 같이 비행기에 탔던 크리스토퍼 로무 아저씨는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연락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깜빡 잊고 있었네.

“일전에 반도체 공장 건설 문제로 유성그룹 유재호 회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듣기로는 미루 씨가 조지아를 추천했다고 하던데, 정말입니까?”

“유 회장님이 그런 얘기를 했었나요?”

“예. 막판에 마음을 바꾼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컨티뉴 캐피탈의 조언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날 띄워줬을 줄이야.

텍사스주로 갈 뻔했던 반도체 공장이 조지아주로 방향을 틀며, 그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졌다.

올해는 한국과 미국 모두 대선이라는 큰 이벤트가 있는 해.

공화당이야 어차피 현직 대통령 조니 월레스가 경선에서 이길 테니, 민주당 경선에 관심이 집중된 상황.

원래 유력 후보는 데런 카셀 일리노이주 주지사였으나, 현재는 마크 필립스 상원의원의 지지율이 점점 높아지는 중이다.

여기에는 최근 페이스노트 청문회에서 마이크 골든버그에게 일침을 날린 것도 한몫했다.

한참 동안 지난 얘기를 나눈 뒤, 그는 나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일로 이렇게 찾아온 겁니까?”

난 본론을 꺼냈다.

“페더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스테이블 코인을 말하는 겁니까?”

“예. 이것과 관련해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요.”

난 자료를 내밀며 페더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필립스 상원의원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페더의 예치금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예. 페더의 발행량은 무려 1,500억 달러 규모인데, 이에 따른 회계감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여러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불법행위요?”

난 자료를 건네주었다.

“페더의 발행량과 암호화폐 시총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페더의 발행량이 늘어날 때마다 반트코인 가격이 치솟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페더를 통해 시세를 조종한다는 겁니까?”

“예. 돈이 풀리면 자산 가치는 오르기 마련이니까요. 여기에 더해 자전거래(Cross Trading)로 반트코인을 끌어올린 정황도 있습니다.”

시세가 10,000원이라고 하면, 내가 11,000원에 높여서 내놓고, 내가 그 가격에 산 다음, 다시 내가 12,000원에 내놓고, 다시 내가 사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거래량이 늘어나며 가격이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매수세가 따라붙어 실제로 가격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

만약 주식시장에서 이런 짓을 하다 걸리면 가장매매(Wash Sales)라고 해서 바로 잡혀 들어간다.

그러나 놀랍게도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테이블 코인은 금융 상품이나 다름없습니다. 은행 수준의 회계감사를 받는 게 당연하지만, 페더는 그동안 어떠한 회계감사도 받지 않고, 자산 내역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당국의 규제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먼저 담보가 없는 스테이블 코인을 시장에서 퇴출해야 합니다. 설사 발행 주체가 엔플이나 구블이라 해도 말입니다. 신용을 담보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다는 것은 달러를 찍어내는 행위나 다름없으니까요. 둘째로 스테이블 코인은 발행량만큼 예치금을 마련해 두도록 해야 합니다. 이 예치금은 당연히 스테이블 코인 발행액과 동일하거나 더 많아야 합니다. 발행사의 자산과 명확히 분리돼야 하고,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도록 정부가 공인한 예금기관이나 수탁기관에 보관해야 합니다. 또한 잘못된 투자로 자산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산 목록을 명확하게 지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장단기 국채 등으로 보유하도록 말이죠.”

필립스 상원의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료를 살펴보았다.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규제에 대한 논의 역시 오래전부터 있었죠.”

이게 통화라면 외환에 대한 규제로, 자산이면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규제를 하면 되겠지만, 암호화폐는 그 중간 어딘가쯤에 있다.

모두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암호화폐 시장과 거래소 모두 폭풍성장해서 이제는 건드리기가 힘든 상황이 됐다.

“하지만 갑자기 규제를 시작했다가 폭락하기라도 하면 투자자들의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게 될 겁니다.”

“그렇겠죠.”

이게 당국이 쉽게 규제에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실제로 몇 년 전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국인들의 암호화폐 사랑은 유별나다. 인구수를 생각하면 투자자 수도 적지 않고 1인당 투자금액도 여느 나라와 비교해서 뒤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리는 블록체인 기술에 지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 은 아니고, 사실상 도박판이기 때문이다.

일확천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일단 뛰어들어야지.

이때 한국인들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해서 같은 암호화폐가 원화마켓에서는 20퍼센트 이상 비싸게 거래됐을 정도다.

다시 말해 미국에서 10,000원에 거래되는 코인이 한국에서는 12,000에 거래됐다.

이러면 누가 미쳤다고 사겠나 싶지만…… 다들 열심히 샀다.

어차피 가격이 오를 텐데, 비싸게 사는 게 대수겠는가?

난 선우와 함께 처음 암호화폐 투자했던 때를 떠올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끝물이었지만, 당시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초반에는 50퍼센트 정도 벌었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가즈아’를 외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기자간담회에서 김청기 법무부장관이 ‘현재 암호화폐 거래는 투기, 도박과 비슷한 양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법률을 제정해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고,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 발언은 즉시 전세계를 강타했다.

반트코인은 30퍼센트 폭락했고, 대부분의 알트코인들은 50퍼센트 넘게 폭락했다. 개중에는 90퍼센트 넘게 폭락한 코인도 있었다.

이때 김치 프리미엄도 같이 빠지는 바람에 한국 투자자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분명 어제까지 수익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마이너스 70퍼센트가 찍히는 걸 보니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당시 코린이들은 그야말로 집단 패닉 상태였다.

투자자들의 원성이 빗발치고 정권 지지율마저 떨어질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슬쩍 ‘관련 부처 간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개인의 발언일 뿐이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분노한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이를 ‘김청기의 난’으로 부르며 법무부장관 사임을 요구했고, 이는 외국 언론에까지 대서특필 됐다.

‘김청기의 난’이 진압(?) 된 이후 살짝 반등하긴 했지만, 암호화폐는 기나긴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나와 선우는 그때 돈을 뺀 뒤로는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직까지도 이때의 폭락이 김청기 법무부장관의 발언 때문인지 아닌지 말이 많다.

만약 정말로 한국 법무부장관 말 한마디 때문에 수십 퍼센트가 폭락한 거라면, 이는 암호화폐 시장이 규제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말해주는 거나 다름없다.

그럼 미국이 암호화폐와 거래소에 대한 규제에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시장이 받을 충격은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암호화폐 시장은 무법지대나 다름없습니다. 규제가 늦어질수록 피해는 더욱 커지게 될 겁니다.”

어차피 터질 버블이라면 일찍 터트리는 편이 낫다.

난 필립스 상원의원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다음에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돌아갈 겁니다.”

페더 폭락 이후 드디어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안이 만들어졌다.

이 암호화폐 규제를 승인하고 발효한 사람은 바로 필립스 상원의원…… 아니, 그때는 그가 미국 대통령이었다.

문제는 너무 늦었다는 것.

이미 그 전부터 이미 암호화폐 시장이 붕괴하고 있었기에 고래들은 이때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최대한 팔아치웠고,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개인들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다.

“어느 정도 피해가 발생할 거라고 봅니까?”

“글쎄요. 뒤늦게 터진다면 미국 경제 성장률이 1퍼센트는 낮아질 겁니다.”

“…….”

필립스 상원의원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이게 과장이 아니다. 그만큼 페더의 몰락이 가져온 충격은 엄청났으니까.

잠시 생각하던 그는 입을 열었다.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시장에 개입할 만한 명분이 없습니다. 게다가 대선이 코앞이니까요.”

사실 그는 암호화폐 초창기부터 규제를 주장했다. 그런데 정치권이 어영부영하는 사이, 시장 규모가 손대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미국에만 수천만 명의 암호화폐 투자자가 있다.

이들의 표를 생각한다면, 갑자기 규제에 나서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다.

“그럼 명분이 있다면 규제에 나설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만…….”

난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그 명분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놀란 빛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뜻입니까?”

“저희는 페더의 문제점을 폭로할 생각입니다. 사태가 벌어지고 나면 모두가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할 겁니다. 이때는 오히려 먼저 규제를 하겠다고 나서는 쪽이 더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대선가도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

어차피 가만히 놔둬도 그는 대통령이 된다. 하지만 내가 대통령이 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준다면, 금상첨화겠지.

필립스 상원의원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어떻게 말입니까?”

난 간략하게 계획을 말해주었다.

“페더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스노우 크래시도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겠다는 겁니까?”

“예. 하지만 저희는 페더와는 다르게 철저히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서 당국의 규제와 통제를 받을 생각입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투자자이자 화이트로드 에런 화이트 회장은 투자자들에게 항상 말했다. ‘절대 미국에 반대하는 투자를 하지 말라(Never bet against America)’ 라고.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안 되지.

* * *

[(WST 단독) 스노우 크래시, 스테이블 코인 페니 출시!]

(전략)

스노우 크래시 루카스 CEO는 암호화폐 페니를 출시한다고 발표하고 백서를 공개했다.

페니는 스테이블 코인으로 1페니는 1달러에 고정된다.

스노우 크래시가 구축한 클라우드 내에서 거래와 송금을 위해 사용되고, 관련된 기업들과 연계해 사업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스노우 크래시는 퍼플게임즈, 레전드게임즈, 블랙우드 호텔, 오코너 버거 등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페니는 스노우 크래시 홈페이지와 앱 내에서 전자지갑을 연결하기만 하면, 언제든 쉽게 달러로 바꿀 수 있다.

스노우 크래시의 대주주인 컨티뉴 캐피탈의 록허트 대표는 페니의 안정성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페니는 디지털 내에서 결제와 송금의 편의성을 위해 만들어진 스테이블 코인입니다. 우리는 안정성 확보를 위해 페니에 대한 예치금을 오직 미국 국채와 예금으로만 보유하고, 발행량과 보유 자산 모두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입니다. 또한 회계법인의 회계감사는 물론 자체적으로 은행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겠습니다.”

스노우 크래시가 스테이블 코인을 출시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나타냈다.

암호화폐 관련 사이트는 떠들썩했다.

-뭐야? 루카스 CEO가 코인을 만들었다고?

-이야! 스노우 크래시 많이 컸네,

-사놓으면 오르려나?

-ㅋㅋㅋ 스테이블 코인인데, 오르긴 뭘 올라. 1페니는 1달러로 고정되어 있다잖아. 글자 못 읽음?

-스테이블 코인이면 저게 페더랑 다른 게 뭐야?

-페더는 거래소에서 코인 사고파는 데 쓰는 거고. 저건 클라우드 내에서 각종 결제와 송금에 쓰이는 것 같은데.

-그럼 게임머니와 연동할 수도 있는 건가?

-시스템이 구축되면 저걸로 레전드스토어에서 게임도 구매하고, 아이템 거래소에서도 쓰일 거라 함.

-아하! 스타벅스 선불충전금 같이 넣어놓고 쓰는 건가?

-비슷할 듯~

-돈도 안 될 것 같은데 저걸 출시하는 이유가 뭐지?

-이자 수익이나 낙전 수익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혹시 나중에 먹튀 하려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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