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80화 (280/529)

280화. 페더 (3)

렌츠 대표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자료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그동안 수집한 페더 리미티드의 자산 내역이 나와 있었다. 증거자료가 첨부돼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세부적인 내용을 입수한 걸로 볼 때 아마 여러 차례 관계자와 접촉했을 것이다.

난 그것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확실히 중국과 신흥국 기업들에 투자를 많이 했네요.”

“그중 안전한 건 미국 국채뿐입니다. 나머지는 단기간에 현금화하려면 엄청난 손실을 감내해야 할 겁니다.”

“대량의 어음과 채권을 한 번에 매각하면 제값을 받기 힘들겠죠.”

“최근 중국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습니다. 다오그룹의 파산설이 나오고 있을 정도죠.”

“페더 측이 그 회사의 어음과 채권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요?”

“예. 100억 달러 규모로 추정 중입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렌츠 대표는 나에게 물었다.

“왜 웃으십니까?”

“아, 예전 일이 좀 생각나서요.”

프리머스 펀드가 딱 이랬었지.

그의 예상대로 다오그룹은 파산하고, 페더는 투자한 자산을 날려먹는다. 그러나 이때도 별일 없이 넘어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페더를 달러로 바꾸지 않는 이상, 자산이야 있든 없든 별 상관없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니,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걸 공격하고 어떻게 돈을 버느냐다.

어떤 기업에 부실이 있다고 판단되면, 해당 기업의 주식을 공매도하거나 풋옵션을 매수하면 된다.

그럼 암호화폐는 어떻게 공격해야 할까?

암호화폐도 화폐다 보니, 이는 외환시장을 공격하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원화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싶다면,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시장에는 원화가 많아지고 달러가 줄어들어,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원화 가격은 내려가고 달러 가격은 올라간다.

그런데 원화를 팔기 위해서는 먼저 원화가 있어야 한다.

방법은 달러를 예치해놓고 원화를 빌리는 것이다.

1달러에 1천 원이라고 하면, 100억 달러를 예치한 다음 10조 원을 빌려서 이를 외환시장에서 팔아치우고 달러를 사들인다.

빌린 10조 원을 전부 팔았다면, 수중에는 다시 100억 달러가 생겼을 것이다.

공격이 성공해서 원화 가치가 폭락해 1달러에 2천 원이 됐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는 시장에서 다시 50억 달러를 팔고 10조 원을 사들인다. 그리고 빌린 원화를 상환하고, 예치한 100억 달러를 돌려받는다.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10조 원을 빌린 다음 10조 원을 갚았을 뿐이다. 그런데 100억 달러는 150억 달러로 늘어났다.

마찬가지로 페더를 공매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디선가 페더를 빌려와야 한다.

난 렌츠 대표를 보며 말했다.

“대표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제가 맞춰볼까요?”

“말씀해 보시죠.”

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를 말했다.

“디파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한 대표님께서는 역시 예상하고 계셨군요.”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는 중앙은행이 있고, 그 밑에 여러 시중은행들이 있다.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싼 이자를 주고 예금을 받아, 비싼 이자를 받고 빌려준다. 이러한 예대마진은 은행의 주수입원이다.

그렇다면 은행 같이 중앙화된 기관이 없는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이러한 여신 기능이 어떻게 이뤄질까?

바로 디파이(DeFi)다.

탈중앙화된 금융(Decentralized Finance)의 약자인 디파이는 관리자 없이 블록체인의 스마트 콘트랙트에서 작동한다. 예금, 대출, 투자 등 금융거래가 미리 정해진 프로토콜에 따라 움직인다.

누군가 1코인을 6개월 동안 예치하면 5퍼센트 이자를 주는 디파이를 만들면, 여기에 전자지갑을 연결해 1코인을 디파이에 넣는다.

그럼 자동화된 알고리즘에 따라 6개월이 지나면 1.05코인이 전자지갑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이자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건 그 코인을 대출해간 사람에게 받는다.

한번 정해진 프로토콜은 변경이 불가능하기에 중간에 누군가 돈을 가로채거나 할 수 없고, 관리 비용이나 시스템 유지 비용 등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들에게 보다 많은 수익을 제공해줄 수 있다.

어떤 디파이는 아예 자체 토큰을 발행하기도 한다.

DA은행에 돈을 입금했더니, 은행에서 DA코인을 발행해 이자로 지급하는 방식이랄까?

그 코인이 대체 무슨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호화폐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만큼, 디파이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디파이에 스테이킹 된 암호화폐가 재작년 500억 달러였는데, 작년에는 1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렌츠 대표는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디파이 프로토콜을 통해 페더를 일정 기간 동안 스테이킹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페더를 빌려서 내다 파는 거군요.”

스테이블 코인은 가만히 놔둔다고 가치가 1달러에 고정되지 않는다.

마치 환율처럼 수요가 일시적으로 몰리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일시적으로 늘어나면 가격이 떨어진다.

이러한 변동을 막기 위해 발행사는 유동성공급제도를 운용한다.

이를 LP(Liquidity Provider)라고 하는데, 원래 가치에 맞게 사고팔고를 반복해 가격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만약 페더의 매도물량이 쏟아지면, 페더 리미티드는 페깅이 깨지지 않도록 이를 매수해 가격을 1달러에 맞춰야 한다.

“디파이의 담보는요?”

제일 편한 건 달러를 예치해 담보로 잡는 것이다. 하지만 디파이는 은행계좌가 아닌 전자지갑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암호화폐를 예치해야 한다.

“반트코인을 매수할 생각입니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반트코인은 그나마 가장 안전한 자산.

하지만…….

“페더가 사기라는 게 밝혀진다면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을 테고, 반트코인 역시 폭락할 텐데요.”

물론 99.99퍼센트 폭락할 페더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겠지만, 최소 반토막이다.

“그 부분은 옵션을 사들여서 헤지하려고 합니다.”

“금융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반트코인은 어느 정도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관련 옵션들이 출시됐다. 하지만 워낙 불안정한 상품이다 보니, 주식이나 채권 옵션에 비해 수수료가 많게는 열 배에 이른다.

렌츠 대표는 나를 보며 물었다.

“혹시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예.”

그는 반색했다.

“뭡니까?”

“우리도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해 담보로 삼는 겁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이었는지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한마디로 1달러짜리 페더를 빌리는 대신 1달러짜리 스테이블 코인을 담보로 맡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코인을 신뢰할까요?”

코인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발행할 수 있다. 시장의 신뢰를 얻기가 힘들 뿐이지.

“믿을 만한 곳이 발행하고, 확실한 보증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컨티뉴 캐피탈이 발행하겠다는 겁니까?”

난 자신 있게 말했다.

“아니요. 스노우 크래시가 발행할 겁니다.”

* * *

렌츠 대표와의 얘기를 끝낸 나는 다시 컨티뉴 캐피탈로 돌아왔다.

얘기를 전해들은 데이비드는 신중하게 말했다.

“정말로 하실 생각입니까?”

“예. 터질 버블이라면 조금이라도 일찍 터트려야 하지 않겠어요?”

페더는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지금보다 네 배 규모로 성장해 엄청난 피해를 일으킨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터트리는 게 오히려 시장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단지 그것 때문입니까?”

“현실적인 이유도 있긴 하죠.”

원래대로라면 스노우 크래시는 여전히 알렉스 프레스턴과 롤프 부치가 공동 CEO로 있고, 상장에 성공해 투자금을 끌어모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 둘을 내쫓았고, 상장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스노우 크래시의 성장 속도는 빨라졌지만, 투자금이 부족해졌다.

여기에 링크랩스까지 인수해야 하고.

“성공하면 링크랩스 인수비용 정도는 쉽게 벌 수 있을 거예요.”

현재 링크랩스는 계약 진행 단계다.

한 번의 투자로 이 비용을 벌 수 있다면, 사실상 돈 한 푼 안 들이고 인수하는 셈이다.

“성공을 확신하십니까?”

“글쎄요. 그건 해봐야 알겠죠.”

페더를 공격하는 건 1회차 때는 없었던 일이다. 때문에 나 역시 100퍼센트 성공을 확신하기는 힘들다.

“대신 리스크가 별로 없잖아요. 실패해도 금융비용만 날리고 끝이니까요.”

“작전에 소요되는 자금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지금 가진 자산을 전부 쏟아부으면 얼추 맞을 거예요.”

저쪽에서 최선을 다해 방어할 테니, 태환을 포기할 때까지 페더를 공매도해야 한다.

“페더에 대한 믿음을 깨트리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페더를 보유한 모두가 달러 태환에 나설 거예요.”

현재의 페더의 발행량은 1500억 달러 규모. 아마 1000억 달러까지는 어떻게든 방어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더 이상 달러를 내주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닉슨 쇼크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겠군요.”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잊었지만, 원래 달러는 금태환 화폐였다. 35달러를 들고 중앙은행에 가면 1온스의 금으로 바꿔주었다.

그런데 베트남전을 거치며 미국 정부가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 것을 본 다른 나라들은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금으로 태환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연하게도 미국은 발행한 달러만큼의 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은 달러의 금태환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온 브레튼우드 체제가 종말을 맞으며 세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닉슨 쇼크(Nixon Shock)다.

이후 미국 달러 가치는 폭락했다.

현재 금 1온스가 1700달러가 넘으니, 닉슨 쇼크 이전과 비교하면 98퍼센트가 하락한 셈이다.

“그래도 달러는 뒤에 미국이라도 있죠.”

금태환을 중단했음에도 달러가 현재의 가치를 유지하는 건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더는 태환이 중단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과 디파이 프로토콜 구축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당연히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다행히 세계 최고의 천재가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그 천재는 바쁜 관계로 만나려면 내가 직접 찾아가야 한다.

“캘리포니아에 좀 다녀올게요.”

* * *

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리자마자 준비된 리무진을 타고 스노우 크래시 본사로 향했다.

시드는 항상 그렇듯 헤드폰을 낀 채 일 중이었다.

난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시드는 내 얼굴을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헤드폰을 벗었다.

“형! 갑자기 어쩐 일이에요?”

“할 얘기가 좀 있어서.”

전화로 하기에는 좀 긴 얘기다.

난 시드를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암호화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디지털 세계에 걸맞은 화폐라고 생각해요. 분산원장 기술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가격 변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째서?”

“가격이 변동하면 투기 대상이 될 테니까요.”

“그럼 스노우 크래시가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건 어떨까?”

시드는 이유 대신 다른 걸 물었다.

“방식은요?”

스테이블 코인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첫째는 법정화폐 담보 코인.

발행사가 예치해놓은 달러만큼의 코인을 발행하는 방식이다. 페더가 대표적이다.

둘째는 암호화폐 담보 코인.

첫째와 거의 동일하지만 달러가 아닌 코인을 기반으로 발행한다는 차이가 있다. 발행사는 담보로 반트코인이나 엘더리움을 예치해놓는다.

하지만 이 경우 코인 가격의 변동에 따라 담보 가치가 변동한다는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알고리즘 코인.

달러나 다른 암호화폐로 태환해주지는 않지만. 알고리즘을 통해 수요에 따라 공급량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식이다.

“법정화폐 담보 방식으로. 난 스테이블 코인 발행으로 스노우 크래시가 어떠한 이익도 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

시드는 해맑게 웃었다.

“역시 형이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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