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페더 (2)
내 말에 데이비드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페더의 달러 예치금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회계감사를 받으라는 요구도 거부하고 있으니까요.”
“이유가 뭔가요?”
“엄밀히 따지면 암호화폐는 국제회계기준에 따른 감사 대상이 아닙니다. 레너드 창은 감사를 진행할 만큼 시력 있는 회계법인을 찾기 힘들다는 식으로 둘러대지만요.”
만약 페더가 금융상품이었다면 은행과 같은 수준의 규제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페더는 스테이블 코인.
때문에 회계감사를 안 받겠다고 해도 강제할 수단이 없다.
“이와 관련해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페더와 관련해 합동 청문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예치금이 충분한지, 시세 조종은 없었는지 조사하기 위함이었죠. 하지만 실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밝혀낸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고작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를 고지했다는 이유로 3500만 달러의 벌금을 매긴 것이 끝입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실사를 했더라도 별일은 없었을 거예요.”
당시 페더 발행량은 100억 개로 지금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았다.
청문회를 열 거라는 얘기는 몇 달 전부터 알려졌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예치금을 맞춰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당시 청문회는 오히려 페더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 됐고, 이때 이후로 페더의 발행량은 폭증했다.
“여러 의문에도 불구하고 페더가 여전히 1달러를 유지하고 있는 건 그만큼 레너드 창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레너드 창은 코인맥스 해킹 사건 때 끝까지 배상을 마무리하며 고객과의 신뢰를 쌓았다. 때문에 그가 발행한 페더 역시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정말로 예치된 달러가 부족하다 해도 태환에는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은행의 지급준비율은 보통 7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영업한다. 이게 가능한 건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은행에 돈을 찾으러 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페더 역시 마찬가지다.
암호화폐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페더가 기축통화의 자리를 유지하는 한, 이를 당장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는 그리 많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한 번에 페더를 바꾸려 하지 않는 이상 뱅크런 같은 사태가 터질 리 없다.
“혹시 유동성 공급을 위해 예치금 없이 페더를 발행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 금액이 생각보다 크다면요?”
“어느 정도나 말입니까?”
“글쎄요. 절반 정도?”
데이비드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생각해 보면 레너드 창이 페더를 발행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연준이 돈을 풀면 주식은 오른다. 마찬가지로 페더가 많이 풀릴수록 암호화폐의 가격은 오른다.
만약 이러한 유동성 공급을 증권사가 담당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신나게 돈을 풀어서 주가를 끌어올릴 것이다.
현실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레너드 창은 거래소를 운영하며, 스테이블 코인도 발행하고 있으니까.
“페더의 발행량이 증가하면 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해져 암호화폐의 가격이 상승합니다. 암호화폐가 상승하면 코인맥스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이 돈으로 더 많은 페더를 발행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예치금보다 훨씬 많은 페더를 발행할 유인이 충분하지 않나요?”
데이비드는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레너드 창이 존 로라는 겁니까?”
존 로는 그 유명한 미시시피 버블을 일으킨 인물.
18세기 초, 적자에 허덕이던 프랑스에 나타난 그는 왕실의 신임을 얻어 방크 제네랄이라는 은행을 차리고 화폐를 발행한다.
그리고 왕실은 방크 제네랄에서 발행한 화폐로만 세금을 받는 방식으로 화폐 사용을 유도했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미시시피 회사의 경영권을 획득해 주식을 팔았다.
프랑스의 국채를 미시시피 회사 주식으로 교환해주자 프랑스의 적자 문제는 한 번에 해결됐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통화량을 늘렸고, 덕분에 미시시피 회사 주식은 나날이 치솟았다.
문제는 이 미시시피 회사가 실제로는 어떠한 수익도 내지 못하는 부실기업이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다.
본인이 화폐를 찍고, 그 화폐로 주식을 사게 해서 가격을 올리고, 더 많은 화폐와 주식을 찍어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세상에 영원히 오르는 자산이란 없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주식을 팔기 시작하는 순간, 이 사기극은 막을 내렸다.
미시시피 회사 주가는 폭락했고, 화폐 가치도 폭락했다. 주식과 화폐가 휴짓조각이 되자 물가가 치솟는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재산을 날렸고, 이는 결국 훗날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미시시피 버블은 프랑스의 금융 발달을 수십 년이나 늦춰놓았다.
이 여파로 인해 프랑스에서는 아직까지도 은행들이 ‘은행(Bank)’이라는 명칭 대신 ‘신용(Credit)’이나 ‘회사(Society)’로 쓸 정도다.
만약 레너드 창이 예치금 없이 페더를 발행했다면, 이는 존 로가 한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짓이다.
그리고 몇 년 후, 이는 사실로 밝혀진다.
일이 터지게 된 이유는 스노우 크래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디지털화는 필연적인 흐름이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건 가치가 고정된 스테이블 코인이다.
스노우 크래시는 향후 거대한 메타버스 세상을 건설한다. 그리고 이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로 스테이블 코인 페니(Penny)를 만든다.
페니는 스노우 크래시가 만든 디지털 세상에서 기축통화로 사용됐고, 작동방식과 속도, 기능 역시 기존의 어떤 암호화폐보다 뛰어났다.
화폐란 쓰이는 곳이 많아야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페니는 스노우 크래시의 메타버스뿐 아니라, 그와 연결된 모든 클라우드에서 사용이 가능했다.
이로 인해 알트코인과 스테이블 코인들은 자연히 몰락했고, 거래소 역시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이때 문제가 발생했다.
암호화폐 시장 전체에 거품이 꺼지며 페더를 달러로 교환하는 수요가 한 번에 몰린 것이다.
현재 1500억 달러 규모인 페더는 당시에는 6000억 달러로 늘어나있었다. 페더 리미티드는 처음에는 별문제 없이 태환을 해주었으나, 점차 태환이 지연이 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페깅이 깨지며 1달러 아래로 내려가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고, 시장 전반에 불안감이 퍼져나갔다.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페더를 달러로 바꾸려 했지만, 페더 리미티드는 유동성 문제를 이유로 태환을 일시 중단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미국 재무부와 증권거래소는 페더에 대한 점검과 규제에 나섰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놀랍게도 페더 리미티드의 보유 자산은 발행량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잘못된 투자로 상당한 자산을 날려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애초에 예치금 없이 페더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이는 엔론 사태를 뛰어넘는 사상 최대의 분식회계 사건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페더는 하루 만에 70퍼센트가 폭락했고, 이틀 후에는 99.99퍼센트 폭락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투자자들은 데이터 쪼가리가 된 페더를 들고 망연자실했다.
페더의 몰락은 가뜩이나 무너져가던 암호화폐 시장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만약 주식시장에서 이런 짓거리를 했다면 징역 300년쯤은 가뿐하게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암호화폐 시장에는 명확한 규정이 없는 만큼 적용할 혐의가 마땅치 않았다.
당장 약관만 봐도 ‘1페더는 1달러로, 1달러는 1페더로 바꿀 수 있다’라고 되어있지만, 그 다음 페이지에는 ‘1페더가 1달러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되어있다.
이 사건으로 레너드 창은 재판을 받았지만, 1심 판결에서 고작 6년 형이 나왔을 뿐이다. 그나마도 1천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즉시 항소했고.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내 예상이 맞다면 1500억 달러 중 최소 30퍼센트, 많으면 절반 이상의 예치금이 부족할 것이다.
“페더를 공격할 방법이 없을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이건 주식이 아닙니다.”
이게 주식이라면 리포트를 쓰고 공매도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건 스테이블 코인이다. 그리고 뉴커런시 엔터프라이즈는 조세피난처에 있는 비상장회사.
그러니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1회차 때는 없었던 일인 만큼, 방법은 이제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을 좀 만나봐야겠어요.”
“누구를 말입니까?”
“같이 일할 사람이요.”
* * *
“어서 오십시오, 한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하하! 물론입니다.”
난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미중년과 악수를 나눴다.
그의 이름은 허버트 렌츠.
행동주의 헤지펀드 엠프티풀 리서치의 대표다.
대부분의 사모펀드들이 건실하게 투자를 하는 반면, 엠프티풀 리서치는 주로 기업의 부실을 폭로하고 공매도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컨티뉴 캐피탈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공매도 하면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엠프티풀 리서치였다.
나와는 LD스튜디오 사태 때 인연을 맺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궁금한 게 좀 있어서요.”
“뭡니까?”
“페더에 대해서요.”
그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난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 페더 리미티드의 달러 예치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100만 달러의 포상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던데.”
아예 대놓고 내부고발을 유도하는 행위였다.
이에 대해 페더 리미티드 측은 ‘시장의 신용도를 떨어트리려는 멍청하고 한심한 시도’라며 비난했다.
“페더의 안정성에 의문을 지니고 있는 건가요?”
렌츠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페더 리미티드의 발표에 따르면 자산의 96퍼센트를 모처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기업 대출과 채권, 반트코인 등에요. 이중 현금 비중은 고작 4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라고 주장하던데요.”
“투자자산 중에서도 미국 국채는 13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반면 기업 어음과 채권은 65퍼센트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엔플이나 구블이 발행한 어음과 채권이라면 현금과 다를 바 없지 않나요?”
내 말에 그는 피식 웃었다.
“그 기업들은 애초에 어음과 채권을 발행하지도 않습니다. 설사 발행한다고 해도 이자율이 미국 국채와 크게 차이나지 않겠죠. 저희는 이 어음과 채권이 신흥국 기업, 특히 중국 부동산 개발사들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어음이든 채권이든 발행 기업에 문제가 생긴다면 휴짓조각이다.
렌츠 대표의 예상은 정확했다.
중국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며 페더 리미티드는 막대한 자산을 날려 먹으니까.
“페더를 공격할 계획인가요?”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페더의 규모는 무려 1500억 달러.
엠프티풀 리서치 혼자 힘으로 가능할 리 없다.
애초에 포상금을 주겠다는 발표를 한 것도, 내부고발자가 나올 거라는 기대보다는 부정적 인식을 퍼트려 세력을 끌어모으기 위함이다.
안타깝게도 내부고발자는 나오지 않았고, 자본 부족으로 공격은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끝나지만.
“실패할 수도 있을 텐데요.”
“대신 리스크도 적습니다.”
공매도의 기대이익은 정해져 있지만, 손실은 무한대다.
만약 페더를 1달러에 공매도했는데, 10달러로 오른다면? 그럼 투자한 돈의 9배를 더 물어내야 한다.
그러나 페더는 스테이블 코인.
가격이 1달러로 가격이 고정되어 있는 만큼 그 이상으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금융비용만 손실 보면 됩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겠네요.”
렌츠 대표는 웃음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난 그에게 말했다.
“자료를 좀 공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의문을 나타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수많은 인력과 시간, 비용을 들여 만든 자료일 것이다. 그걸 그냥 내놓으라고 하는 건 양심 없는 짓이지.
난 그를 보며 말했다.
“이번 일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