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78화 (278/529)

278화. 페더 (1)

새해가 시작됐다.

연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달라진 건 없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운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

새로운 기분으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른 시간임에도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새해 결심하고 며칠 못 가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려나?

어쨌거나 이러고 있으니 왠지 뉴요커가 다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센트럴파크를 제대로 돌려면 하루 종일 뛰어도 부족하기 때문에 그냥 적당히 뛰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와 씻었다.

조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니, 종업원이 말했다.

“일행분이 먼저 와 계십니다.”

“그래요?”

종업원을 따라서 가보니, 트리시가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팬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내가 맞은편에 앉아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당황하며 말했다.

“왜, 왜요? 언제든 와서 먹어도 된다면서요?”

당황하는 표정이 귀엽다.

“누가 뭐래요?”

언제든 와서 먹으라고 룸 번호까지 알려줬다. 어차피 두 명까지는 공짜니까.

종업원이 잔에 커피를 따라주었다.

난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언제 왔어요?”

“저도 방금 와서 마침 연락하려고 했어요.”

“그렇군요.”

크게 입맛은 없었지만, 난 오믈렛과 베이컨을 담아왔다

“어제는 뭐했어요?”

“아! 안 그래도 그 얘기 하려 했는데.”

난 그녀에게 파티에서 만난 에밀리 클로에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트리시는 깜짝 놀랐다.

“20대 초반 여자애한테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마저 속아 넘어갔다구요?”

“뭐…….”

정확히는 완전히 속아 넘어간 건 아니다. 결국 대출 신청은 불허됐으니까.

“한번 취재해 봐요. 잘 쓰면 좋은 기삿거리가 될 거예요.”

“알았어요.”

트리시는 바로 핸드폰에 적어놓았다.

“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트리시도요.”

* * *

새해 첫날이 지나고, 각국 증시가 개장했다.

한국 증시와 미국 증시 모두 1퍼센트 넘게 상승하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난 컨티뉴 캐피탈 본사로 출근해서 일했다.

예전에는 내가 일일이 자료를 찾아서 리포트를 작성해야 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난 조셉에게 지시했다.

“암호화폐와 거래소 관련해서 자료 좀 정리해줘요.”

“알겠습니다.”

그는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다음 날.

조셉은 깔끔하게 정리한 리포트를 나에게 내밀었다.

역시 골드만삭스 출신.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또 필요한 자료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난 몇 가지 자료를 더 부탁한 다음, 리포트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암호화폐의 시총 1위는 반트코인, 2위는 엘더리움. 두 암호화폐의 시총 비중은 무려 60퍼센트를 넘는다.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암호화폐들은 알트코인이라 한다.

반트코인과 엘더리움의 성공 이후 시장에는 수없이 많은 암호화폐들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기존의 암호화폐에서 하드포크(Hardfork) 돼서 갈라져 나온 암호화폐들도 많다.

현재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암호화폐는 약 9000여 종.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암호화폐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십 배는 될 것이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외에 작동 방식이나 목적성, 쓰임새 등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티플은 각국 은행과 제휴를 맺고 글로벌 은행간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리믹스는 게임 개발과 아이템 거래에, 티런은 콘텐츠 생산과 배포에, 에이오스는 비즈니스와 응용 프로그램 구축에, 어셈벌스는 소셜 네트워크 작성자에 대한 보상에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건 별 관심 없고, 관심이 있는 건 오직 하나.

바로 가격이 오르느냐 떨어지느냐다.

자료를 충분히 살펴본 다음, 난 대표실로 들어가 앉았다.

데이비드는 나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좀 알고 있나요?”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코인맥스 CEO를 만났어요.”

난 자선 파티에서 레너드 창을 만난 얘기를 해주었다.

데이비드는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들었다.

“그가 비공식 세계 1위 부자라는 얘기가 있던데요.”

“비공식인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죠.”

부자들의 자산 90퍼센트 이상은 주식으로 이뤄져 있다. 이 주식의 가치는 시장의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레너드 창의 재산은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게다가 그가 보유한 암호화폐의 가격은 변동성이 매우 커서 가치 산정이 쉽지 않다.

데이비드는 나에게 물었다.

“암호화폐 투자를 해본 적 있으십니까?”

“그럼요. 한때 정말 열심히 했죠.”

내가 대학생 시절, 코인 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반트코인과 엘더리움이 10배가 오르는 동안, 수십, 수백 배가 오르는 알트코인들이 속출했다.

어떤 코인이든 사기만 하면 올랐다.

그야말로 돈이 복사되던 시절이었다.

코인으로 수십, 수백억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그 얘기에 부자의 꿈을 안고 너도나도 투자에 뛰어들었다. 학교에서도 공부는 안 하고, 거래소만 들여다보고 있는 애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코인 안 하면 바보가 되던 시절이었던 만큼 나도 선우와 함께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암호화폐는 주식과 다르게 24시간 거래되고 상하한가도 없다. 심하면 하루에도 몇 배가 올랐다가 떨어진다.

이렇다 보니 자기 전까지 거래소를 들여다보았고, 자다 깨서도 제일 먼저 거래소부터 확인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시작은 좋았죠. 며칠 안 돼서 50퍼센트 넘게 벌었으니까요.”

어떤 자산이든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영원히 오를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히 오르는 자산이란 없다.

난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깔끔하게 두 배만 먹고 빠지려고 했는데, 그다음부터 폭락하더라구요.”

이때는 선우나 나나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잠은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하루 종일 거래소만 쳐다보며 ‘가즈아’를 외쳤다.

“등록금까지 날릴 뻔했다가 간신히 뺐어요. 생각하니 지금도 아찔하네요.”

“…….”

‘가즈아’ 했다가 정말로 골로 갈 뻔했다.

데이비드는 놀란 표정이었다.

“왜 그래요?”

“신기하군요.”

“뭐가요?”

“보스가 투자에 실패한 적도 있었다는 게요.”

“뭐…….”

그때는 회귀하기 전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그 뒤로는 코인판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이게 내가 회귀했음에도 암호화폐 투자를 하지 않았던 이유다.

대학생 때 이후로는 관심을 끈 데다가 4학년 때는 취업 준비에, DA증권에 입사한 이후에는 업무를 익히느라 코인판은 들여다보지도 않았으니까.

그래도 대략적인 흐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일단 회귀한 시점에서 반트코인과 엘더리움은 완만한 하락세였다.

알트코인 중에서 오른 것들도 있었겠지만, 투자를 안 했으니 뭐가 올랐는지 알 리가 있나?

반면 애널리스트로 열심히 일한 덕분에 주식시장에서 일어난 일은 줄줄이 꿰고 있다. 정말이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암호화폐 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암호화폐와 관련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특히 개인이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건 바보짓이라 생각합니다.”

“어째서요?”

“기울어진 운동장이니까요.”

“그건 주식시장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래도 주식시장은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과 규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고래(Whale)라 불리는 소수의 큰손들에 의해 좌지우지됩니다.”

금융시장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정보력과 자금력에서 개인은 기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마음만 먹는다면 부자가 빈자의 돈을 얼마든지 강탈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장에는 최소한의 규칙이라는 게 존재한다.

자산, 매출, 이익 등 기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기적으로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시세조종, 허위공시, 미공개정보를 활용한 매매 등은 불법행위로서 처벌받는다.

이러한 룰이 있기 때문에 개인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암호화폐 시장은?

그딴 거 없다.

이렇다 보니 그야말로 복마전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거래소에 상장하자마자 개발자가 물량 전체를 매도하고 잠적하기도 하고, 허위공시를 내서 가격을 띄우기도 하고, 자전거래를 통해 시세를 조종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거래소가 직접 코인을 발행하거나, 자신들이 투자한 코인을 상장해 가격을 띄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만약 증권거래소 위원장이 비상장 주식을 잔뜩 산 다음, 이 주식이 상장되도록 도움을 줬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구속이다.

그러나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이게 죄가 되지 않는다.

아니, 아예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내 표정을 보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렇다고 암호화폐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가치가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특히 반트코인은 디지털 세계의 금과 같은 존재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반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처음으로 구현한 암호화폐.

최초의 암호화폐인 만큼 성능은 가장 떨어진다.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엘더리움에 비해 송금 외에는 별다른 기능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암호화폐 시총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모두가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고, 희소성이 있기 때문.

금 역시 초창기에는 화폐로 사용됐지만, 이제는 누구도 금을 들고 다니며 거래하지 않는다. 그저 자산으로 쌓아놓고 있을 뿐이지.

“현재 암호화폐가 투기판으로 변질되어 있긴 하지만, 핵심은 블록체인 기술입니다. 그런데 이 블록체인 기술이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가치가 고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레너드 창이 누구보다 빠르게 페더를 만들었죠.”

페더의 발행회사는 페더 리티미드(Pether Limited).

코인맥스를 운영하는 뉴커런시 엔터프라이즈의 자회사다.

페더는 출시되자마자 코인맥스에 상장됐고, 이어서 규모가 큰 거래소들 역시 페더의 거래를 허용했다.

페더의 성공은 곧 코인맥스의 성공으로 연결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코인맥스의 순위는 6위였다. 그러나 페더 출시 이후 반트넥스를 꺾고 1위로 올라섰다.

“페더는 암호화폐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덕분에 거래소의 이용량은 크게 증가했고, 암호화폐 가격도 크게 올랐고, ICO도 활발해졌죠.”

페더의 등장은 암호화폐 거래를 더욱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각 거래소에 계좌를 만들거나 등록할 필요 없이 그저 페더만 구매하면, 얼마든지 거래소를 옮겨다니며 거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해외 거래소를 이용할 때도 환전이나 계좌 개설, 해외 송금 같은 복잡한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었다.

이전에는 거래소마다 거래되는 가격이 조금씩 차이가 났는데, 페더는 차익거래(Arbitrage Trading)를 가능하게 해줌으로써 각 거래소의 개별 코인의 가격을 안정화시키는 순기능을 했다.

현재 페더는 암호화폐 시장의 기축통화나 다름없다.

페더가 이렇게 범용적으로 쓰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가치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안정의 기반은 달러태환.

페더는 발행량만큼의 달러를 예치해놓고 있다. 언제든 달러로 바꿀 수 있기에 아무도 그 가치에 의심을 갖지 않았다.

현재 페더의 총 발행량은 약 1500억 개.

1페더가 1달러니 1500억 달러, 원화로는 무려 165조 원 규모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반트코인과 엘더리움에 이어 암호화폐 시총 3위에 해당한다.

생각해보면 엄청난 일이다.

시총이 1조 달러가 넘는 기업들을 보다 보면 1500억 달러가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지만, 이건 기업의 가치가 아닌 순수한 현금이다.

현금으로 1500억 달러를 들고 있는 기업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당장 컨티뉴 캐피탈도 그만한 현금은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정말로 이만큼의 달러를 가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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