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64화 (264/529)

264화. 소셜 네트워크 (5)

시드는 반색했다.

“정말요?”

“응. 현실과 메타버스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VR 기술이 필요하잖아. 그리고 그건 결국 BCI가 되겠지.”

“맞아요.”

마치 장난감 사준다는 얘기를 들은 아이처럼 좋아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내 걱정스런 표정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 기업, 페이스노트에서 인수할 거라는 얘기가 있던데.”

“그러니 그쪽에서 채가기 전에 우리가 인수해야지.”

링크랩스를 인수한다고 해서 당장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상용화된 제품이 나오고 있는 HMD와는 달리, BCI는 아직 연구 단계다.

상용화까지는 최소 5년.

그때까지 수익은커녕 계속해서 연구비를 쏟아부어야 한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나중에 반드시 수익을 낸다는 보장도 없다.

페이스노트쯤 되니까 인수하는 거지, 다른 기업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링크랩스는 BCI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때가 본격적인 메타버스의 시작이다.

이런 좋은 기업을 1회차 때처럼 페이스노트가 먹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

난 문득 궁금해져서 시드에게 물었다.

“페이스노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시드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나쁜 놈들이에요.”

“어째서?”

“알고리즘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하니까요. 페이스노트에 가입하는 순간, 인종, 성별, 학력, 거주지역, 친구 등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띄워줘요. 정보를 선별해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생각하며 보는 게 아니라, 보는 대로 생각하게 만들죠.”

역시나 시드는 페이스노트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디 가서 지구는 평평하다고 말한다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관련 글을 검색하고 열심히 ‘좋아요’를 누르면, 어느새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말하고, 내가 보는 모든 글과 사진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알고리즘이 문제라고 생각해?”

“알고리즘 자체는 나쁜 게 아니에요.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용하느냐가 문제죠. 아마 마이크 골든버그는 자신이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걸요.”

“흠, 그렇군.”

이 말을 들으니 부담 없이 두드려 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페이스노트는 매일 수십억 명이 접속하는 SNS.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워낙 덩치가 큰 만큼 웬만한 공격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진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일단 트리시의 역할이 중요하다.

잘해야 할 텐데.

* * *

이른 새벽.

트리시는 차를 빌려서 샌프란시스코 외곽의 24시간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이라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도착한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한미루가 해준 얘기들을 떠올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트리시 오코너 기자님이신가요?”

“예, 맞습니다.”

나타난 사람은 40대 중반 정도의 백인 여성이었다. 붉은색 머리카락에 마른 몸, 창백한 피부를 지녔다.

“제보해주신 분인가요?”

“네.”

“반갑습니다. 트리시 오코너 기자입니다.”

그녀는 트리시의 맞은편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설탕은 넣지 않고, 크림만 넣고 커피를 몇 번 휘저었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만날 생각이 없었어요. 메일로만 연락할 생각이었죠.”

“만나기로 결심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기자님이 쓰신 기사는 전부 읽어봤어요. 전부 진실 된 기사더군요. 그래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거짓말을 싫어해요. 그리고 그걸 알아채는 것에 능숙하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전 에밀리 하이젠이에요. 얼마 전까지 페이스노트에서 허위정보 담당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했었죠.”

역시나 제보자는 페이스노트의 고위직이었다.

“지금은 그만둔 건가요?”

“예. 세 달 전에 그만뒀어요.”

목소리와 말투에서 제보를 하기까지 상당한 고민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트리시는 테이블 위에 녹음기를 올려놓았다.

“녹음기를 켜도 될까요? 싫으시다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괜찮아요.”

그녀는 녹음 버튼을 누르고 본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페이스노트에서 얼마나 일하셨나요?”

“3년 8개월 동안 일했어요.”

“내부고발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째서 제보를 결심하신 건가요?”

잠시 머뭇거리던 에밀리는 입을 열었다.

“아들이 하나 있어요.”

그녀는 이혼한 후,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수십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만큼 금전적인 어려움은 없었지만,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친구들과 햄버거 가게에 갔는데, 그곳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났어요.”

트리시는 두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앗! 설마…….”

에밀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다행히 아들은 다치지 않았어요. 하지만 같이 있던 친구 한 명이 죽었죠. 그 일로 충격을 받은 아들은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에요.”

트리시는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햄버거 가게 총기 난사면 올 3월에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사건인가요?”

그 물음에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범인은 극단주의자이자 음모론자였어요. 그는 평소 페이스노트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죠.”

전혀 특별한 일은 아니다.

미국인들 대부분은 페이스노트를 사용하고 있고, 범죄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페이스노트는 바로 범인의 계정을 삭제하고, 연관된 글들을 지우는 작업에 들어가요. 그게 바로 제가 하는 일이죠.”

아들과 관련된 일이었던 만큼, 그녀는 범인이 페이스노트의 남긴 흔적들을 추적해 조사해보았다.

그 결과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오웬 마커스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남자였어요. 착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죠.”

그는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렀고, 주로 집에서 인터넷을 하며 지냈다. 그런 그에게 페이스노트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친구 중 한 명이 음모론의 신봉자라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오웬은 그가 하는 얘기와 그가 올린 뉴스를 딱히 믿지는 않았지만, 친구를 위해 열심히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그의 피드에는 음모론과 관련된 글들만 올라오기 시작했고,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온갖 기사와 사진과 퍼온 인터넷 글들을 올리며 세상을 비난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 삼아 봤지만, 오웬은 점점 그 생각에 물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이민자들 때문이야. 그들을 없애는 것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일이야.

-정부는 독감백신을 통해 사람들 몸에 칩을 심어 국민을 통제하려 하고 있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백악관에 침투해 있어. 이들을 막지 못한다면 미국은 끝이야.

-유대 자본이 금융시장을 장악해 우리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중이야.

-거대 제약회사들이 실험실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고 있어. 이들은 이를 뿌려 인구를 조절할 생각이야.

세상은 심하게 잘못되어있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오웬은 어떤 기사를 보게 됐다.

[캘리포니아의 한 햄버거 가게 지하에서 민주당 정치인들이 아이들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아동포르노를 제작하고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악마숭배를 벌이고 인육을 먹었다!]

처음에 오웬은 이 기사를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어이가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에는 이를 입증하는 근거들이 넘쳐났다.

누군가는 민주당 의원들이 특정 단어와 제스처로 자신들끼리 암호를 주고받았다며, 이를 일일이 분석해서 올렸다.

이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경찰과 FBI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정치인들 때문.

민주당 고위 인사들이 깊이 관련되어 있는 일이다. 그러니 공권력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누군가 나서서 잘못된 일을 바로잡아야 한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납치된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정의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총을 들고 햄버거 가게로 쳐들어갔다.

오웬은 자신을 가로막는 이들에 대해 총기를 난사했다.

총을 맞은 사람은 죽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가게에서 도망쳤다.

그는 지하에 갇혀있는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햄버거 가게를 뒤졌다.

그런데…….

에밀리는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햄버거 가게에는 지하실이 없었어요.”

“…….”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다시 들어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지하실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자신이 본 게 가짜뉴스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아니면 그 뉴스를 끝까지 믿었을까? 그건 누구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사살됐으니까.

“페이스노트는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공유한 이들의 게시물이 더 많이 노출되도록 가중치를 부여하는 식의 알고리즘 설계해놨어요. 항상 이용자가 보고 싶은 걸 보여주죠. 그게 진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용자들은 불편한 진실보다는 거짓이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맞는 걸 원하니까요. 그래서 페이스노트는 가짜뉴스, 허위 정보, 극단적 콘텐츠가 돌고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치해 놨어요. 아니, 오히려 광고 수익을 나눠주며 그런 뉴스를 올리고 공유하도록 장려했죠.”

“그 결과 소심하고 착한 청년이 총기 난사범이 됐다는 건가요?”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전만 해도 총기 난사 사건은 드문 일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작년에 총기 난사가 몇 번 일어났는지 알아요?”

트리시는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보았다.

“열 번 넘었죠.”

“무려 열세 번이에요. 정확히 109명이 사망했죠.”

만약 한국이었다면 증오와 분노가 끓어올라도 이를 분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누구나 손쉽게 총을 살 수 있는 나라.

그저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랑이나 동정 같은 선한 감정을 일으키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바로 나타나지도 않아요. 하지만 증오와 분노는 자극하기 쉽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죠. 그리고 사람들은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어해요. 어째서 취직이 안 되는지 고민하기보다는 이민자를 혐오하는 게 편하고, 왜 선거에 졌는지 원인을 분석하기보다는 부정선거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죠. 사회 전체가 혐오, 증오, 분노를 키우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페이스노트가 있어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그동안 내부에서도 꾸준히 문제가 제기됐다.

하지만 위에서는 듣지 않았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어째서 페이스노트는 이 문제를 고치지 않은 거죠?”

“오직 돈 때문이죠. 이용자는 상품이에요. 페이스노트는 이용자의 모든 행동들을 추적해 데이터로 만든 다음, 이를 광고주에게 팔아 돈을 벌죠.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더 많은 광고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용자를 계속해서 페이스노트 안에 묶어놔야 해요. 그래서 그들을 중독시키기 위해 노력하죠. 댓글과 ‘좋아요’는 슬롯머신이 쏟아내는 동전과도 같아요. 행위에 보상을 받은 이용자는 더욱 중독에 빠져들죠.”

“……”

트리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 취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제보가 어느 정도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에밀리는 탄식하듯 말했다.

“페이스노트는 어느새 괴물로 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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