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63화 (263/529)

263화. 소셜 네트워크 (4)

내가 아무 말 없이 쳐다보자, 트리시는 의아하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왜, 왜 그래요?”

난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 제보 내용 좀 자세히 말해줘요.”

제보만 받았다고 바로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보 내용이 사실인지 알기 위해서는 취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취재를 위해서는 전문가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지.

그 전문가가 바로 나다.

“음, 그러니까 그게…….”

트리시의 얘기를 들은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내용과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보자는 분명 1회차 때와 동일인이다.

“그 제보 말이에요. 한번 취재해 봐요.”

“어째서요?”

“사실일 가능성이 커요.”

내 말에 그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트리시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정말로 페이스노트의 알고리즘이 증오와 분노를 조장한다구요?”

“예. 컨티뉴 캐피탈도 지금 이 문제를 조사 중이에요.”

얼핏 들으면 좀 황당한 얘기 같다.

그런데 이는 엄연한 사실이고, 페이스노트 역시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내부고발이 터져나온 거고.

“잘하면 엄청난 특종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특종이라는 말에 트리시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예.”

무려 미국 기업 5위, 시총 1조 달러짜리 기업의 내부비리를 캐내는 일이다. 제대로 터트린다면 미 전역을 뒤흔들 스캔들이 될 것이다.

“일단 그 사람과 계속 연락하며 취재해 봐요. 그리고 가능하면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해요.”

“알았어요.”

* * *

트리시 오코너는 작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날도 그녀는 스타벅스에서 기사를 쓰고 있었다. 애틀란타 공항에서 발생한 항공기 엔진 폭발 사건에 대한 기사였다.

기사를 쓰던 도중 뒷자리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됐고, 말을 건넸다.

그게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자리에서 한미루는 세계 최고의 투자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누구든 꿈은 꿀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컨티뉴 캐피탈은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유명한 사모펀드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가 알려준 기사들 덕분에 월스트리트 타임즈(WST)는 작은 인터넷 언론사에서, 뉴욕 타임즈(NYT) 월스트리트 저널(WSJ)와 함께 뉴욕 3대 언론사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 기자가 됐다.

예전에는 취재를 하려고 쫓아다니며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서로 취재해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날 스타벅스에서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WST는 여전히 지역의 작은 인터넷 언론사였을 테고, 그녀는 무명 기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오빠는 컨티뉴 캐피탈에 투자를 받지 못했을 테고, 그랬으면 오코너 버거는 지금처럼 펍에서만 팔리는 햄버거로 남았을지 모른다.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는 한미루를 ‘오코너 가문의 은인’이라 불렀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사람이란 말이지.’

트리시는 한미루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제보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WST 트리시 오코너 기자입니다. 보내주신 제보 내용을 깊게 취재하고 싶습니다.]

* * *

난 트리시의 얘기를 전해줬다.

“어떻게 생각해요?”

데이비드는 신중하게 말했다.

“그런 제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가요?”

“페이스노트가 중독이나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자극적인 콘텐츠와 가짜뉴스에 대한 문제 역시 마찬가지죠.”

현대인들은 모두가 SNS 중독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을 뜨면 SNS에 접속해, 자기 직전까지 SNS를 한다.

페이스노트에는 가짜뉴스가 넘쳐나고, 린스타그램에는 미남미녀들이 가득하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명품과 슈퍼카를 사고, 여행을 다닌다.

보다 보면 나 빼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산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알고리즘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 않나요?”

과거에는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다니며 알고 싶은 정보를 열심히 찾아야 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알고리즘이 이용자가 보고 싶은 정보만을 골라서 알아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게 뭐 대단한 비밀은 아니고, 모두가 대충 알고 있는 내용이다. 관련 논문이나 리포트도 여럿 나왔다.

중요한 건 페이스노트 내부에서 이 사실을 알았냐는 것이다. 만약 이를 인지하고도 은폐했거나, 오히려 조장했다면 이건 엄청난 스캔들이다.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WSJ는 탐사보도를 벌였지만, 페이스노트 측은 근거 없는 의혹일 뿐이라며 부인했다.

결국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주가는 소폭 하락하고 대충 넘어갔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

“사실로 밝혀진다면 도덕성에 큰 흠집이 나긴 하겠지만, 회사 전체에 타격을 입히기는 힘들 겁니다.”

역시 이 정도로는 SNS 제국을 무너뜨리기는 힘든가?

“만약 의회 청문회가 열린다면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기업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정치권의 규제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회의적이었다.

“그럼 얘기가 좀 다르겠지만, 아마 힘들 겁니다.”

“어째서요?”

“빅테크 기업들은 로비스트를 통해 의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대부분 정치인들은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총 1조 달러에 전세계 인구 28억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정치권에 천문학적인 로비 자금을 퍼붓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난 자신있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요. 저한테 방법이 있으니까요.”

데이비드는 의문을 나타났다.

“대체 어떤 방법입니까?”

“그건…….”

“설마 지켜보면 알게 됩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잘 아시네요.”

지금 중요한 건 제보자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1회차 때 탐사보도를 진행한 WSJ 기자도 제보자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트리시가 과연 할 수 있을까?

* * *

컨티뉴 캐피탈의 대규모 공매도 이후에도 페이스노트 주가는 상승세였다.

손실률은 벌써 5퍼센트를 넘었고, 21억 달러가 날아갔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다.

엔플이 다음번 NOS 업데이트 때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며, 승인받지 않은 앱의 유저 트래킹을 중단시킬 테니까.

업데이트 일정에 따르면 다다음 주다.

계속해서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가운데, 난 트리시의 연락을 받았다.

[제보자를 설득했어요. 만나겠대요.]

“어! 정말요?”

대체 어떻게 설득한 거야?

[예. 아마도 페이스노트 전 직원인 것 같아요. 제가 실리콘밸리로 가야 할 것 같아요. 회사에서 출장 허가받았어요.]

페이스노트 본사는 산호세에 위치해 있다.

“저랑 같이 가요.”

[미루도요?]

“예. 어차피 시드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어요.”

[알았어요.]

“비행기는요?”

[이제 끊어야죠. 몇 시 비행기로 할까요?]

“이코노미석?”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저희 출장은 무조건 이코노미예요.]

“그렇군요.”

예전에는 이코노미 타고 잘만 다녔는데, 이제는 아니다.

난 그녀에게 말했다.

“호텔과 비행기 예약은 저한테 맡겨요.”

* * *

난 JFK 공항에서 트리시를 만났다.

그녀는 편한 차림에 백팩을 메고 캐리어를 하나 끌었다. 취재를 위해 출장 가는 기자라기보다는 여행 가는 대학생 같은 모습이다.

“캘리포니아는 오랜만이네요. 오빠는 잘하고 있으려나?”

그녀의 오빠인 숀 오코너는 실리콘밸리에서 페르난도 도밍고와 함께 오코너 버거 확장을 위해 노력 중이다.

비행기에 올라탄 트리시는 깜짝 놀랐다.

“헉!”

“왜 그래요”

“여, 여기는 퍼스트 클래스잖아요.”

“예. 기왕 가는 거 편하게 가야죠.”

트리시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저 와인 마셔도 돼요? 퍼스트 클래스는 고급 와인 나온다고 들었는데.”

“예. 공짜니 마음껏 시켜요.”

정확히는 요금에 다 포함되어 있는 거지만.

트리시는 신났는지 와인을 비롯한 기내식을 이것저것 시켰다.

난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다 먹을 수 있겠어요?”

트리시는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요. 다 먹을 거예요. 살면서 언제 또 퍼스트 클래스를 타보겠어요? ”

“…….”

왕복으로 끊은 거라 돌아올 때도 탈 텐데.

JFK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5시간 30분을 날아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짜라고 고급 와인을 실컷 마신 트리시는 내릴 때쯤에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괜찮아요?”

“네네, 그럼요. 괜찮아요. 아~주 멀쩡해요.”

“…….”

취한 것 같은데.

우리는 마중 나온 차를 타고 블랙우드 호텔로 향했다.

체크인을 하고 키를 받는데, 트리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서, 설마 룸을 하나만 잡은 거예요?”

“예. 불편하면 따로 잡을까요?”

내 말에 그녀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돈 아껴야죠. 히힛!”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내가 잡은 방은 프레지덴셜 스위티룸.

웬만한 스위트룸 몇 개를 붙여놓은 것보다 크고, 중문을 통해 양쪽으로 나눠지는 구조였다.

중문을 잠가서 따로 쓸 수도 있고, 터놓을 수도 있다.

“트리시가 이쪽 써요. 전 저쪽 쓸게요.”

트리시는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아, 이런 구조였구나.”

“…….”

대체 뭔 생각을 한 거야?

* * *

트리시는 취했는지 바로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난 그녀를 놔둔 채 혼자 스노우 크래시로 향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안으로 들어서자 안경을 쓴 중년의 흑인 여성이 나를 반겼다.

그녀의 이름은 캐시 볼로드. 원래 회계 보조였던 그녀는 컨티뉴 캐피탈이 인수한 뒤 CFO로 승진했다.

초기에는 미숙하고 실수도 많았지만, 현재는 시드를 도와 스노우 크래시를 잘 이끌어나가는 중이다.

“루카스 CEO는요?”

“일하고 계십니다.”

난 그녀의 안내에 따라 시드의 자리로 향했다.

시드는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헤드폰을 낀 채 코딩을 하는 중이었다. 한쪽 모니터에서는 좀비 영상이 흘러나왔다.

난 시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시드는 날 보더니 깜짝 놀라며 헤드폰을 벗었다.

“형!”

“뭐 보고 있어?”

“한국에서 나온 좀비 드라마예요. 좀비네이도만은 못하지만 꽤 볼 만해요.”

원래 좀비 영화는 주로 서구권에서 인기가 많은 장르다. 때문에 영화, 드라마, 게임 할 것 없이 서구권에서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에는 K좀비가 인기를 얻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 시기쯤 좀비 한류가 퍼졌던 것 같기도 하고.

“잘 지냈어?”

“그럼요.”

그사이 시드는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했다.

일단 FBI와 NSA를 위한 데이터 분석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축했고, 두 기관 모두 모나앱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며 신나게 범죄자들을 낚았다.

마치 다른 자료를 이용해 검거한 것처럼 보도했기 때문에 범죄자들은 설마 모나앱이 털렸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블랙우드 호텔과 협업하며, 숙박 공유뿐 아니라 호텔 예약 시스템 전체를 뜯어고쳤고, 비밀리에 AMZ의 보안 시스템을 손봐주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드 루카스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졌다.

이전에 스노우 크래시는 다른 클라우드 기업들과 가격 경쟁을 벌였지만, 이제는 비싸도 이용하는 서비스가 됐다.

수익 역시 크게 증가해서 이번 분기에는 최초로 흑자가 예상됐다.

“식사는 했어?”

“음, 먹은 것 같아요. 먹었나?”

그러자 볼로드 CFO가 말했다.

“예. 아까 샌드위치 드셨습니다.”

누가 옆에서 안 챙겨주면 밥도 잘 안 먹는 모양이다.

난 시드와 함께 휴게실로 이동했다.

휴게실에는 각종 음료와 간단한 간식거리가 구비되어 있었다.

시드는 우유를, 난 에너지 드링크를 하나 마셨다.

“무슨 일로 온 거예요?”

난 바로 대답하는 대신 시드에게 물었다.

“HMD 기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구려요. 눈앞에 고작 영상 하나 펼쳐놓고 가상현실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웃기지 않아요?”

“그럼 BCI 기술은?”

“그건 필요하죠.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와 뇌가 직접 신호를 주고받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요. 아직은 기초적인 단계지만, 결국 그 기술이 주류가 될 거예요.”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혹시 링크랩스라는 기업 알아?”

그 물음에 시드는 깜짝 놀랐다.

“어! 당연하죠. 창업자인 호킨스 박사가 쓴 논문도 다 읽어봤어요. 같이 일해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난 시드에게 본론을 말했다.

“그 기업 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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