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소셜 네트워크 (3)
데이비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페이스노트 사업 모델에 불안 요소가 있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엔플이 제재 조치를 취할지, 취한다고 하더라도 언제 취할지 모르는데, 가진 자산을 전부 공매도하시겠다는 겁니까?”
“그걸 모르니까 공매도만 하는 거죠.”
안 그랬으면 옵션부터 건드렸겠지.
앞으로의 일들이 내가 아는 미래대로 100퍼센트 똑같이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때문에 이제부터는 어느 정도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
난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뭐, 페이스노트가 여기서 더 올라봐야 얼마나 오르겠어요. 반대로 떨어질 이유는 많죠. 그러니 공매도를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겠어요? 일단 해보고 손실이 30퍼센트를 넘으면 중단하는 걸로 하죠.”
잠시 생각하던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 * *
난 호텔에 머물며, 매일같이 컨티뉴 캐피탈 본사로 출근했다.
정장에 코트를 입고 월스트리트를 걸어서 출근하니, 새로 입사를 한 것 같은 기분이다. 왠지 DA증권 신입사원 시절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데이비드는 대표실을 쓰라고 했지만, 난 그냥 빈 책상 아무거나 쓰겠다고 했다.
난 창가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들면 사무실 전경이 보였고, 창밖으로는 월스트리트가 내려다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상석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페이스노트와 관련한 사내 리포트 작성이다. 굳이 이걸 쓰는 이유는 공매도에 대한 근거를 남기기 위함.
난 RA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페이스노트의 각종 문제점 등을 조목조목 서술했다.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종이컵을 내밀었다.
“이거 드시면서 하시죠.”
난 고개를 돌렸다.
나이는 대략 30대 중반.
곱슬머리에 안경을 쓴 백인 남성이다. 왠지 범생이처럼 생겼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고 들었는데, 맞으시죠?”
“예.”
“다행이네요.”
“그런데 전 주로 아이스를 먹는데.”
얼죽아 몰라?
그러자 그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했다.
“헛! 당장 바꿔오겠습니다.”
“괜찮아요. 고맙게 마실게요.”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전 조셉 클라인이라고 합니다. 혹시 필요한 자료나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저한테 지시해주시면 됩니다.”
“아, 예.”
데이비드가 직원 한 명 붙여준다고 했는데, 이 사람인 모양이다.
왠지 계속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 눈치라서 난 그에게 질문했다.
“컨티뉴 캐피탈에 온 지는 얼마나 됐나요?”
“이제 두 달째입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이직했습니다.”
“그래요? 이전에는 어디 다녔는데요?”
“골드만삭스에서 파생상품 트레이더로 5년 동안 일했습니다.”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혹시 여기가 연봉을 더 많이 주나요?”
“아니요. 연봉은 비슷합니다.”
“그럼 굳이 이직한 이유가……?”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 스타일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토머스 모터스 때부터 보면서 꼭 이곳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직한다고 하니까 다른 직원들도 전부 부러워했을 정도입니다.”
표정과 말투에서 존경이 가득 묻어났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긴 사람이 이러니, 살짝 부담된다.
난 동호 선배가 해준 금융시장의 격언을 떠올렸다.
‘돈 잘 벌면 형이야. 무조건 형이야.’
하기야 나이와 경력이 뭐가 중요하겠나?
“이번에 하신 GL케미칼과 GL엔텍 투자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았습니다. 옵션만기일에 매도하고 수익을 확인했을 때는 모두가 박수치며 기뻐했습니다.”
“그때 여기는 새벽 아니었나요?”
“다들 집에 안 가고 남아있었습니다. 그런 광경은 절대 놓칠 수 없죠.”
“그랬군요.”
하긴, 나 같아도 집에 안 가고 구경했을 것 같다.
그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예.”
배우겠다는 의지가 강렬하다.
나한테 배울 게 있을지 모르겠다만.
난 그에게 작성 중인 리포트의 항목을 내밀었다.
“내일까지 제가 지적한 문제점들에 대한 기사랑 자료 찾아서 정리하세요. 명확하지 않거나 입증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최대한 많이 찾으세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예. 사내용 리포트라 몇 명만 볼 거니까요. 인터넷에 올라온 글 같은 것도 좋습니다. 아!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고 혼자 하세요.”
내 지시에 그는 힘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조셉은 리포트를 작성해왔다.
내가 그것을 살펴보는 동안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왠지 예전에 내가 리포트 써서 과장에게 올렸을 때가 생각나는 모습인데.
그나저나 엄청 잘 썼다.
역시 골드만삭스!
이걸 보니 그동안 내가 쓴 리포트가 얼마나 쓰레기였는지 알 것 같다.
“좋네요. 잘하셨어요.”
내 말에 조셉은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다른 일은 하지 말고, 제가 얘기한 자료들만 찾아서 정리해서 저한테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난 먼저 리포트를 정리해 비공개 클라우드에 업로드해 놓았다.
참고로 컨티뉴 캐피탈은 빠르고 안정성 높은 스노우 크래시의 기업용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한다.
이어서 링크랩스의 자료를 살펴보았다.
“이 기업을 반드시 인수해야 하는데…….”
몇 년 뒤라면 모를까, 지금 시점에서 페이스노트와 인수전을 벌이는 건 승산이 없다.
가장 좋은 것은 페이스노트에 문제가 생겨서 알아서 떨어져 나가는 것.
엔플의 유저 트래킹 금지조치는 페이스노트에 분명 심각한 타격을 준다. 실제 조치가 발표된 이후 주가도 10퍼센트 넘게 하락하니까.
현재 미국의 디지털 광고 시장은 1100억 달러. 이는 TV 광고의 두 배의 이르는 액수다.
게다가 TV 광고 액수는 줄어드는 반면, 디지털 광고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을 하는 중이다.
이 시장의 선두주자는 페이스노트, 그리고 그다음은 구블.
그런데 엔플도 이 시장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그래서 페이스노트에 개인정보 수집에 제한을 건다.
광고 매출이 줄어들 걸 우려한 페이스노트는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이후에는 구블까지도 같은 조치를 취한다.
문제는 이 정도로는 골든버그 CEO의 인수 의지를 꺾기 힘들다는 거다.
아니, 오히려 이 사건 이후 그는 더욱 링크랩스 인수에 의지를 불태운다.
SNS를 넘어서 VR 기술을 확보하는 것만이 플랫폼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역시 내부고발 정도는 터져줘야 하는데…….”
고발 내용이 뭔지 대충 알고 있으니, 내가 직접 리포트를 써서 공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라는 게 아무도 모르는 엄청난 비밀 같은 건 아니다.
막상 들으면 모두가 ‘아, 그랬구나. 이놈들 그럴 줄 알았어’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이고, 관련 논문과 기사도 여러 차례 나왔다.
결국 증거 없이는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페이스노트에 있는 내부고발자를 끌어낼 수 있을까?
열심히 고민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사실 내가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지금은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나?
* * *
며칠 동안 출근하며 일하는 사이, 컨티뉴 캐피탈은 조용히 페이스노트 공매도에 나섰다.
420억 달러.
원화로는 45조 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 정도 공매도를 퍼부으면 주가가 휘청거려야 정상이다. 하지만 페이스노트 시총은 1조 달러.
고작 420억 달러 공매도로는 별 티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나스닥이 상승세였기에 공매도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소폭 올랐다.
딱히 한 일은 없지만, 시간은 잘 가서 어느새 퇴근 시간이다.
난 눈치 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대표인데 누구 눈치를 보겠는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내일 봐요.”
난 근처 카페에서 트리시를 만났다.
복장은 평소처럼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스니커즈. 여전히 대학생 같은 모습이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니요.”
“자, 어서 저녁 먹으러 가요.”
낯선 땅에서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난 트리시와 함께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메뉴는 멕시칸 푸드.
“제가 괜히 시간 뺏는 거 아니에요?”
“무슨 말이에요? 나중에 한국에 가면 미루가 안내해줘요.”
난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에 올 일이 있나요?”
내 물음에 그녀는 살짝 당황했다.
“나, 나중에 특파원으로 갈 수도 있잖아요.”
“지역 인터넷 신문사에서 특파원도 보내요?”
“그, 그럼요. WST는 점점 커지고 있으니까요. 나중에는 전세계에 특파원도 보낼 거예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희망은 가질 수 있는 거지.
저녁을 먹은 뒤.
트리시는 나를 데리고 자신이 자주 간다는 펍으로 데려갔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반지하 펍에는 젊은 남녀들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30대 남성 바텐더는 반갑게 말했다.
“헤이, 트리시.”
“안녕, 토미.”
“오늘 어땠어?”
“똑같죠.”
“늘 마시던 걸로?”
트리시는 손가락을 두 개 펼쳐 보였고, 바텐더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토마스 메이너스입니다. 그냥 토미라고 불러주면 돼요.”
“반갑습니다. 한미루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편하게 인사를 나누는 건 미국인들의 특징.
우리는 맥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난 펍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좋은데요.”
“그렇죠? 제가 뉴욕에서 좋아하는 곳 중 하나예요. 퇴근 후에 바로 집에 들어가기 싫으면, 들러서 한잔하기도 해요.”
“예전에 봤던 시트콤에 나온 곳과 비슷한 분위기네요. 뉴욕의 젊은 남녀가 모여서 매번 이런 펍에서 모여서 웃고 떠드는 내용이었는데. 주인공은 작가고, 친구는 IT회사에 다니고.”
트리스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어! 저 그 시트콤 엄청 좋아하는데. 미루도 봤어요?”
“그럼요. 주인공이 결혼하고 끝났잖아요. 그래도 마지막에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다행이에요.”
내 말에 그녀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끝나다니요? 그거 지금 시즌6 방영 중일 텐데.”
“아…….”
그럼 아직 누구랑 결혼하는지 안 나왔겠구나.
난 자연스럽게 말했다.
“아, 맞다. 다른 드라마랑 헷갈렸나 보네요.”
“풋, 뭐예요? 미루 생각에는 주인공이 셜리와 예나 중 누구랑 결혼할 것 같아요?”
“…….”
응, 둘 다 아니야.
정작 주인공은 시즌9에 나온 여자와 결혼한다.
“그런데 예나가 누구였죠?”
설마 선정이 딸은 아닐 테고.
“예카테리나요. 거기 친구들이 다들 예나라고 부르잖아요.”
“아아, 그랬었죠.”
우리는 맥주잔을 부딪쳤다.
“오늘 일은 어땠어요? 취재는 잘했어요?”
트리시는 지쳤다는 듯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아니요. 제보 들어온 거 검토하느라 하루 종일 모니터만 눈이 빠져라 들여다봤어요.”
WST는 지역 밀착형 인터넷 언론사에서, 이제는 전국구 경제 언론사로 거듭났다. 덕분에 미국 전역에서 각종 제보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기삿거리는 좀 있어요?”
“대부분 쓸데없는 내용이에요.”
수많은 제보 중 쓸모 있는 제보를 걸러내는 것도 기자의 역할이지.
“어떤 내용인데요?”
“뭐, 옆집 여자가 앉은 자리에서 피자 세 판을 먹어 치우는 걸 보니 외계인이 분명하다거나, 뒷산에서 UFO를 봤다거나, 독감 백신을 맞으면 몸에 베리칩이 삽입된다거나,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거나…….”
진짜 별 제보가 다 들어오는구나.
“뒷산 UFO는 취재해볼 만하지 않나요?”
“그것 말고도 많아요.”
트리시는 술을 마시며 계속 얘기했다.
“낚시 갔다가 유령선을 봤다거나, 뒷집 고양이가 새끼를 여섯 마리 낳았다거나, 자기 아들이 천재라거나, 수족관 문어가 슈퍼볼 우승팀을 정확하게 맞췄다거나, 유명 남자 배우가 과거 게이 포르노를 찍었다거나, 페이스노트가 증오를 부추긴다거나…….”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어! 잠깐만요. 방금 뭐라고 했어요?”
트리시는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보았다.
“예? 게이 포르노요? 서, 설마 그런 거에 관심 있어요?”
“아니아니.”
그냥 포르노라면 모를까 게이 포르노에 관심이 있을 리가.
대체 뭔 쓸데없는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그거 말고 마지막에요.”
“페이스노트요?”
“예. 그거.”
트리시는 기억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익명으로 들어온 제보였어요. 뭐라더라? 페이스노트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분노와 증오를 유발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각종 범죄나, 전쟁과 학살을 부추겼다는 내용이었는데.”
“…….”
이게 왜 여기서 나와?
그녀가 말한 내용은 1회차 때 있었던 페이스노트 내부고발이었다.
익명의 내부고발자는 WSJ의 유명 기자 제인 가니터에게 제보했고, WSJ는 대대적인 탐사보도를 실시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걸 WST에 제보한 건가?
난 대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최근 1년 사이 트리시 오코너는 유명 기업들의 부실과 비리를 지적하는 특종을 다수 터트렸다.
만약 기업 비리를 제보하는 사람이라면, 그녀만큼 믿을 만한 기자를 찾기도 힘들지 않을까?
“허…….”
난 트리시를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연결된다고?
업어 키운 보람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