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소셜 네트워크 (2)
내 말을 들은 사라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페이스노트를 말인가요?”
“예.”
이제까지 나는 여러 기업들을 공격해 이익을 챙겼다.
그중에는 시총 400억 달러가 넘는 토머스 모터스, 일본 반도체 1위 기업 키오노스, 세계 배터리 시장 2위 기업 GL엔텍도 있었다.
하나하나 엄청난 기업들이지만, 페이스노트는 그들과 비교해도 차원이 다른 기업이다.
페이스노트(facenote).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SNS의 이름이자, 이를 소유한 회사의 이름이다.
마이크 골든버그가 하버드 기숙사에서 학생들끼리 교류하기 위해 만든 페이스노트는, 금방 주변 대학교로 퍼져나갔고, 불과 몇 년 만에 전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진화했다.
이후 페이스노트는 이미지 공유 중심의 SNS 린스타그램과, 메신저앱인 후스앱을 인수하며, 거대 SNS 제국이 됐다.
현재 페이스노트의 가입자는 26억 명, 린스타그램 10억 명, 후스앱 20억 명으로, 이는 전세계 SNS 이용자 수 1, 2, 3위에 해당된다.
중복 가입자를 제외하더라도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매일같이 사용하는 셈이다.
과거 인터넷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듯, 이제는 SNS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현재 페이스노트의 시총은 1조 달러.
미국 시총 순위는 엔플, NS, 구블, AMZ에 이어 5위.
전세계로 범위를 넓혀 봐도 6위다. 미국 기업 외에 페이스노트보다 시총이 큰 기업은 사우디의 아람코 딱 하나뿐이니까.
매출은 약 820억 달러, 영업이익은 310억 달러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38퍼센트.
하지만…….
1조 달러라는 시총에 비한다면 좀 초라다. 그럼에도 주가가 계속 오르는 이유는 미칠 듯한 성장세 때문.
불과 3년 전만 해도 매출은 이 절반 수준이었고, 영업이익은 적자였다. 그런데 불과 3년 만에 매출은 두 배로 뛰었고 영업이익은 폭증했다.
세상을 집어삼킬 수만 있다면, 당장의 매출과 수익이 뭐 그리 중요하겠나?
난 지금 그런 기업의 주가를 떨어트리겠다고 말한 거고.
사라는 나에게 물었다.
“이유는 뭔가요?”
난 솔직하게 말했다.
“인수하고 싶은 기업이 하나 있는데, 페이스노트가 경쟁자라서요.”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웃어넘겼겠지만, 미루 씨가 말하니 농담 같지 않네요.”
“뭐, 상대가 좀 세긴 하죠.”
사라는 내가 준 자료를 들어 보였다.
“이건 검토한 다음 말씀드릴게요.”
당연하게도 내가 추천한 기업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매수하거나 인수하지는 않는다.
내가 추천한 기업 중에는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골고루 섞여 있다.
상장사에 투자하려면 주식을 사면 그만이지만, 비상장사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창업자나 기존 투자자를 만나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따로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겠지.
* * *
컨티뉴 캐피탈로 돌아온 나는 데이비드와 회의를 했다.
먼저 준비한 자료를 살펴보았다.
회사 이름은 링크랩스.
생명공학 박사 캐머런 호킨스와 컴퓨터 빈센트 스완슨 박사가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다.
직원은 43명. 이 중 31명이 연구원이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오래전부터 골든버그 CEO가 공을 들인 회사고, 현재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매각가는요?”
“400억 달러로 예상됩니다.”
난 혀를 내둘렀다.
“스타트업 치고는 엄청나네요.”
“사실 시장에서 평가하는 적정가는 150억 달러입니다.”
“그런데 페이스노트는 그 두 배를 넘게 지불하겠다는 거군요.”
“아시다시피 골든버그 CEO는 원하는 기업은 반드시 손에 넣었습니다.”
“그렇죠.”
그는 하버드 재학생 시절 페이스노트를 만들었을 정도의 천재다.
세상에 천재는 많아도 그들 모두가 거대 기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이크 골든버그는 기업 경영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일단 동업자들을 전부 내쫓았다. 이로 인해 수차례 법정소송을 해야 했지만, 결국 그는 혼자서 회사를 장악했다.
그리고 페이스노트가 상장도 하기 전부터 활발하게 인수합병을 벌였다.
그가 린스타그램을 인수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린스타그램은 창업한 지 1년 반밖에 안 되었을 때였고, 회사 직원도 고작 12명에 불과했으니까.
당시 시장에서 평가한 가치는 2~3억 달러 수준.
마이크 골든버그는 창업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거절하지 못할 큰 금액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10억 달러를 제안했다.
이걸 본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린스타그램은 초대박을 쳤다.
후스앱 인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페이스노트가 후스앱 인수에 쏟아부은 돈은 230억 달러.
린스타그램 인수대금보다 23배가 비싸고, 구블이 제안한 100억 달러보다도 두 배가 높은 액수였다.
이때는 진짜 모두가 마이크 골든버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역시나 대박.
타톡을 주로 쓰는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외국을 나가면 후스앱 없이는 소통이 안 될 정도다.
그리고 이제 그가 노리고 있는 기업이 바로 링크랩스.
페이스노트는 SNS의 대명사지만, VR의 절대 강자이기도 하다.
빅테크 기업들 중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기술력 역시 가장 뛰어나다. 6년 전에는 VR 기기 개발 업체인 발할라를 인수해, 꾸준히 제품을 출시했다.
현재 VR 기기의 주류는 HMD(Head Mounted Display).
말 그대로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기기다.
양쪽 눈에 서로 다른 각도의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2차원 영상을 3차원으로 인지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HMD 기술은 꽤 많이 발전해, 관련 게임들도 여럿 나왔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무게, 화질, 멀미 등등.
그저 3D 영상을 보여줄 뿐, VR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상현실이라고 느끼게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때문에 이 외에도 다양한 VR 기술이 개발 중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BCI(Brain-Computer Interface).
뇌파를 활용해 컴퓨터에 신호를 보낼 수도 있고, 반대로 컴퓨터의 신호를 뇌가 읽어들일 수도 있다.
여기까지 들으면 무슨 SF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기술 같지만, 당장 현실에서 쓰이고 있고, 이미 관련 제품들도 여럿 나왔다.
전신마비 장애인이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휠체어나, 컴퓨터에 글자를 입력하는 장치 등등.
링크랩스는 이러한 BCI 기술 연구에 있어서 가장 앞서 있는 회사로 평가받았다.
그래서 페이스노트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거고.
진작 인수했으면 좋았겠지만, 이전까지는 투자도 받지 않았다. 팔지 않는 기업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정말로 링크랩스를 인수하실 생각입니까?”
“예.”
“상대가 페이스노트라면 승산이 없습니다.”
스노우 크래시 시총을 1000억 달러로 잡고, 기타 다른 자산들을 더하면 2000억 달러.
이 정도면 한국에서 재벌 놀이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다르다.
페이스노트 시총에 비한다면, 우리의 자산은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저쪽은 거대한 제국인 반면, 이쪽은 이제 겨우 작은 왕국을 세웠다랄까?
애초에 자본 규모에서 상대가 안 되는 만큼, 맞붙어서 인수전을 벌인다면 우리가 질 수밖에 없다.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일단 페이스노트를 공매도하죠.”
데이비드는 나에게 물었다.
“진심입니까?”
“예.”
“이유는요?”
“분풀이랄까요?”
“……예?”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고, 일단 주가가 너무 고평가되어 있어요. 그리고 조만간 악재가 터질 가능성이 커요.”
“어떤 악재입니까?”
“페이스노트, 린스타그램, 후스앱 모두 공짜로 이용할 수 있죠. 그렇다면 페이스노트의 매출은 어디서 나올까요?”
데이비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광고입니다.”
“그냥 광고가 아닌 개인별 맞춤 광고죠.”
TV를 틀면 수많은 광고가 쏟아진다.
그 많은 광고 중 실소비자에게 연결되는 광고는 얼마나 될까? 예를 들어 나에게 생리대 광고나 화장품 광고는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페이스노트는 다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죠. 만약 이용하는 상품이 공짜라면 당신이 바로 상품이라고.”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스 고딘이 한 말이로군요.”
“그래요? 누군가요?”
“마케팅 관련한 책을 쓴 미국 작가입니다.”
“그렇군요.”
소비자는 구블 검색엔진, 에이튜브, 페이스노트 등을 얼마든지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빅테크 기업들의 상품은 바로 그 소비자다.
소비자가 시청하는 영상, ‘좋아요’를 누른 글, 검색한 키워드 등은 상품이 돼서 광고주들에게 팔린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회사가 바로 페이스노트다.
페이스노트는 앱을 사용할 때뿐 아니라, 고객의 인터넷 사용 이력을 추적해서 맞춤형 광고를 띄워준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자동차와 차량용품 광고를, 연예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콘서트 티켓이나 연예인이 입은 옷과 사용하는 화장품 광고를.
개개인을 정확하게 타겟팅해 필요한 광고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광고주들은 페이스노트를 선호한다.
하지만…….
“엔플은 최근 개인정보의 중요성과 고객 보호 정책을 내세우고 있어요. 얼마 전, 앱마켓 약관을 변경하기도 했죠. 아마 더 이상 페이스노트에 유저 트래킹을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페이스노트는 그동안 별다른 승인 절차 없이 유저들의 활동 기록을 수집해 광고에 활용해왔다.
하지만 승인 절차가 새로 생긴다면, 유저들은 앱을 실행할 때 이를 허용하냐 안 하냐를 묻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이 거절을 누를 것이다.
반론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군요.”
“어, 정말요?”
“예. 현재 엔플 매출의 70퍼센트는 엔폰을 비롯한 하드웨어 기기 판매로 나오고, 전세계에 10억 대가 넘는 활성화 기기들이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엔플은 서비스와 광고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중이니, 굳이 경쟁 상대인 페이스노트에게 자사 기기 이용자들의 정보를 넘겨줄 필요가 없을 겁니다.”
“…….”
솔직히 좀 놀랍다.
나야 회귀를 해서 아는 거지만, 이 사람은 이걸 분석해서 알아내다니. 이런 분석력은 타고나는 건가?
난 마치 분석으로 알아낸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페이스노트 측에서는 플랫폼의 횡포라며 반발하겠지만, 엔플이 무조건 차단이 아니라, 고객들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하면 방법이 없을 거예요. 오히려 이용자에게 묻지도 않고 정보를 수집한 게 이상한 일이었죠.”
엔플 입장에서는 고객 정보 보호라는 명분과 자사 유저의 독점적 데이터 확보라는 실리를 챙길 수 있다.
반면, 페이스노트는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
“엔플이 먼저 제재에 나서면 구블도 움직일 테고…… 페이스노트 광고 매출에 엄청난 타격이 되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사실 이것 말고도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대략 이 시기쯤 페이스노트에서 익명의 내부고발이 터진다.
당시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좀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잘하면 페이스노트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나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진 만큼, 1회차 때와 마찬가지로 내부고발이 일어날 거라고 확신하기가 힘들다.
어쨌거나 내부고발자가 제보한 자료는 하루 이틀 일한다고 수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외부자가 몰래 빼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랜 기간 페이스노트 내부에서 근무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이니, 내부고발자는 지금 분명히 페이스노트 안에 있을 것이다.
어떻게 접촉할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데이비드가 물었다.
“공매도를 한다면 어느 정도 규모로 생각하십니까?”
“지금 우리 자산이 얼마죠?”
“420억 달러입니다.”
“그거 전부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