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새로운 투자 (7)
난 고민하는 회장님께 해결책을 제시해줬다.
“그룹을 분할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뭐?”
“화안에너지는 둘째에게, 나머지는 첫째에게 물려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는 화안에너지가 너무 크지 않나?”
“어차피 허민웅 부사장이 아니었다면 화안그룹은 토머스 모터스 사태 때 수소 에너지에서 발을 뺐을 겁니다. 그걸 이만큼 살린 건 허민웅 부사장이죠.”
허성훈 회장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마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면 호통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룹 분할은 민감한 문제다.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나? 알겠지만 화안그룹의 지주회사는 화안이네. 화안을 가지면 전체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지.”
허성훈 회장이 보유한 재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주회사 화안.
상속은 금액만 비슷하면 상관없다.
그래서 후계자에게는 지주회사와 핵심 계열사 지분을 물려주고, 다른 자식들에게는 비핵심계열사의 주식, 부동산, 현금 등을 물려준다.
결국 지주회사 화안을 물려받는 사람이 화안그룹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오로지 회장의 마음에 달려있다.
화안에너지만 따로 물려주기 위해서는 지주회사 화안이 보유한 화안에너지 지분을 팔아야 하는데, 허민웅은 그걸 살 돈이 없다.
그나마 주가가 오르기 전에 매도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너무 많이 오르기도 했고.
난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지주회사를 인적분할하면 되지 않나요? 그렇게 하면 자식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일도 없을 겁니다.”
“허…….”
허성훈 회장은 속이 타는지 소주를 입이 털어 넣었다.
아까부터 느꼈는데 술 마시는 모습이 화끈하다.
“그럼 쪼개지 않고, 한 명에게 물려준다면?”
“후계자를 정할 때 고려해야 할 건 첫째냐 둘째냐, 누가 더 그룹에 큰 기여를 했느냐가 아닙니다.”
“그럼 뭔가?”
“오직 주주의 이익이죠. 화안에너지 주주들은 허민웅 부사장을 좋아합니다. 만약 내보내려 한다면 엄청난 반발이 일어날 겁니다.”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원래 화안에너지를 물려줄 생각으로 맡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업이 갑자기 기존 주력 사업마저 뛰어넘었다.
한마디로 쪼개서 주기에는 너무 커졌다랄까?
난 고민하는 그에게 말했다.
“당장 급한 일은 아니니 조금 더 지켜보시고 결정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얼마나 말인가?”
“3년이면 충분할 겁니다.”
지금 결정을 내린다면 허민홍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허민웅은 그룹에서 쫓겨난다. 그러니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한다.
허성훈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이나 하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허민웅이 알아서 하겠지.
우리는 소주잔을 부딪쳤다.
* * *
난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일어났다.
“으으.”
거실로 나오니 선우가 있었다.
“어제 누구랑 그렇게 많이 마셨어?”
“허성훈 회장이랑.”
내 말에 선우는 깜짝 놀랐다.
“뭐!? 설마 재판장에서 폭행했냐고 물어보는 검사한테 주먹질하는 시늉하면서 ‘그저 아구창 몇 번 돌렸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가 실형 나오신 그분?”
“응. 바로 그분.”
그래서 다른 회장들이 횡령배임으로 교도소 들어가실 때 혼자 당당하게 폭행으로 들어가셨다. 언제나 그렇듯 국가에 기여한 공로와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을 고려해 2심에서 바로 집행유예로 나오셨지만.
“아니, 그분은 왜?”
“요즘 그룹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고민이 많으신 모양이야. 상담 좀 해드렸지.”
“그걸 왜 너한테 상담해?”
“그러게 말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점심을 시켜 먹었다.
메뉴는 해장국.
속이 안 좋아서 난 대충 국물만 떠서 먹었다.
뭔 나이도 많은 회장님이 그렇게 술을 잘 마시는지 모르겠다.
난 선우에게 말했다.
“회사 설립은 잘 되고 있어?”
“열심히 하는 중이야.”
선우는 결국 게임사를 차렸다.
이름은 SW게임즈.
투자금은 당연히 컨티뉴 캐피탈이 댔다.
따로 미국에 독립법인을 만들어 그 법인의 소유주를 선우로 하고, 그 법인이 SW게임즈에 투자해 지분 100퍼센트를 소유하는 방식이다.
선우는 최근 한국 게임계 동향에 대해 말해주었다.
“확률조작 사태 이후 P2W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며, P2E 게임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야. 일명 쌀먹 게임이지.”
“게임하면서 돈 버는 건 예전부터 있지 않았나?”
P2E란 Play to Earn.
온라인게임에서 비싼 아이템들을 현금으로 거래하는 건 초창기부터 존재했다. 브러더후드M의 재화인 크라운 역시 사실상 현금이나 다름없고.
“그렇긴 한데, 요즘은 이걸 암호화폐랑 결합시키는 추세야.”
이 방식이 좀 재밌다.
게임을 하며 벌어들이는 재화를 게임사가 발행한 암호화폐로 교환해주고, 그 암호화폐를 거래소에서 다시 현금화하는 것이다.
“이건 뭐 파칭코도 아니고.”
파칭코는 엄밀히 말하면 도박이 아닌 게임이다.
구슬을 모아봐야 받을 수 있는 것은 경품. 다만 가게 바로 옆에 그 경품을 돈으로 바꿔주는 전당포가 있을 뿐이다.
이걸 P2E 게임에 도입해보면, 게임은 파칭고, 구슬은 암호화폐, 거래소는 전당포인 셈이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대박인 게, 게임을 팔아서도 돈을 버는데, 암호화폐를 팔아서도 돈을 벌 수 있거든.”
“그럼 게임사가 갑자기 코인을 대량으로 팔아치우면 가치가 떡락할 거 아니야?”
“그런 위험이 있지. 그래서 어떤 게임사는 코인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며 블록체인 거래, 디파이, NFT 같은 것들을 결합하는 중이야.”
“…….”
정말이지 그럴듯한 말은 다 갖다 붙였다.
그래도 효과가 큰지 주가는 폭등 중이라고 한다.
“설마 너도 쌀먹 게임 만드려는 건 아니지?”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뭔 소리야?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초대형 MMORPG를 만들어야지.”
“흘륭한 생각이야.”
이는 선우의 꿈이자 목표였다.
이걸 이루기 위해 LD스튜디오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거고.
회귀하기 직전.
위챈트는 선우가 제작하다 중단했던 VR MMORPG 판게아를 세상에 내놓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판게아의 성공 덕분에 위챈트는 중국 시총 1위, 전세계 시총 2위로 올라섰다.
1위야 당연히 그 기반 기술을 마련한 스노우 크래시고.
“돈은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지원해줄 테니, 만들고 싶은 게임 마음껏 만들어.”
“몇천억이 들어도?”
“몇조가 들어도 상관없어.”
돈 벌어서 뭐하나? 친구 게임 만드는 거나 지원해줘야지.
그동안은 LD스튜디오에서 온갖 제약을 받으며 게임을 만들었겠지만, 이제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랬는데 제대로 못 만들면…… 뭐, 그거야 본인 잘못이지.
“그나저나 이제 사무실도 구해야 하는데.”
난 딱 잘라 말했다.
“강남으로 해.”
“판교가 아니라?”
“출퇴근하려면 강남이 더 가깝잖아.”
“강남은 임대료가 비싼데.”
“그건 걱정 마. 안 그래도 마침 아는 사람이 건물 하나 판다고 해서 이따 만나볼 생각이니까.”
“누군데?”
“재타이거.”
“……응?”
* * *
강남 유성타운.
난 A동 46층 회장실에서 유재호 회장을 만났다.
“남궁석 의원은 결국 경선 출마를 선언했군요.”
남궁석 의원은 대권 도전은 정치권의 커다란 이슈였다.
임창식 대표는 웃으며 축하해줬지만 속은 타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거의 대통령이 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예상치 못하게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으니.
우리국민당 비주류 의원들은 속속들이 남궁석 의원의 지지를 선언하며 캠프에 합류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만큼, 경선에서 임창식 대표를 꺾기만 하면 대통령까지는 하이패스나 다름없다.
“지켜보면서 좀 놀랐습니다. 처음 남궁석 의원을 대통령으로 밀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얼마 전 임창식 대표를 제치고 차기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더군요.”
“정말 다행이지 않나요?”
“재벌들은 싫어하는 모양이지만요.”
그야 남궁석 의원이 재벌들의 꼼수를 차단하기 위해 아예 상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으니까.
여론 때문에 큰소리를 못 내고 있지만, 하다못해 시총 수백억도 안 되는 기업의 오너들까지도 반발하는 중이다.
뭐,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가는 법이지.
우리는 본격적인 일 얘기를 나눴다.
“데이터센터 건설과 관련 업체 인수는 계속해서 계획대로 진행 중입니다.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할 새로운 반도체도 개발 중에 있구요.”
한국은 모두가 인정하는 반도체 강국.
그러나 완제품은 강한 반면 소재, 부품, 장비는 약하고, 메모리는 강한 반면 비메모리는 약하고, 제조는 강한 반면 설계는 약하다.
이러한 문제점은 유성전자 역시 잘 알고 있다.
동우정밀을 인수해 장비 쪽에 투자를 강화했고, 메모리 반도체 설계업체들을 인수해 키우는 중이다.
“앞으로 대세는 맞춤형 칩 설계입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룬 빅테크 기업들은 자체 칩을 설계해 쓰는 시대로 간다.
여기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내는 건 엔플.
1회차 때 엔플은 NP세미를 중심으로 자체 칩셋을 개발했다. 그리고 자사의 디바이스에 탑재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뒤집어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회사를 유성전자가 인수했다.
엔플만큼의 성능은 아니더라도 괜찮은 칩을 설계해 내놓는다면, 향후 업계 판도를 뒤바꿀 수 있지 않을까?
“권혁준 부회장이 그러더군요. 그 기업들을 인수한 덕분에 유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개발 능력이 1년 반은 앞당겨졌을 거라고.”
1년 반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첨단산업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약진이다.
내가 해준 조언이면 100조 원 이상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렇게 내가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주는 거겠지.
“루나백스 기억합니까?”
“그럼요.”
1년 전쯤 난 유성바이오가 루나백스 치료제 개발에 투자해줄 것을 부탁했다.
“어떻게 되고 있나요?”
“소아 림프종 치료제 임상시험에 들어갔습니다.”
신약을 개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100개가 임상시험에 들어가도 그중 실제 3상까지 통과해 시판되는 건 하나가 안 되니까.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분위기가 꽤 좋은 것 같습니다.”
“록허트 대표한테 얘기해줘야겠는데요.”
“미리 얘기했는데 실패하면 낙담하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는 예상하겠죠. 일단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도 기뻐할 겁니다.”
어차피 결과적으로는 잘될 테니까.
난 데이비드를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투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말은 제가 해야겠군요. 이번에 아름이에게 투자를 제안했다고 들었습니다.”
“예.”
“정말 다행입니다. 재능이 많은 아이인데, 미루 씨를 만난 덕분에 기회를 얻었네요. 아름이라면 분명 잘할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난 슬쩍 오늘 찾아온 목적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유성타운 건물 한 채를 매각한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유재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생각보다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서요. 어차피 계열사도 빠져나간 상태라 D동을 매각할 생각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완공된 유성타운 건물은 총 네 개 동으로 이뤄져 있다. 현재 유성물산 소유로 다른 계열사들에게 임대하는 중.
유성물산은 그중 한 동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1회차 때도 매각하긴 하는데, 그때보다 시기가 좀 빨라졌다.
“저희한테 파시죠.”
내 말에 그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부동산 투자에는 별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요.”
“실거주 목적입니다. 친구가 게임사를 만드는데 일할 곳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그러자 이번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친구 때문에 건물을 사겠다는 겁니까?”
“물론 그냥 친구는 아닙니다.”
“그럼요?”
“친한 친구죠.”
“…….”
겸사겸사 한국지사도 같이 쓸 생각이다.
지금 사무실은 월세. 한국에서 계속 사업하려면 근거지 정도는 있어야 한다. 직원도 새로 뽑고, 부서도 나눠야 하니, 건물은 크면 클수록 좋다.
“정말로 구매할 생각입니까?”
“가격만 맞으면요. 혹시 지인 할인 되나요?”
유재호 회장은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습니까?”
“…….”
혹시 고향이 용산인가?
핸드폰 파는 회사 오너다운 좋은 멘트였다.
난 1회차 때 봤던 유성타운 건물 매각가를 떠올렸다.
“공개입찰하면 7500억 정도 나올 것 같은데. 저희가 인수하면 건물관리와 경비는 지금처럼 유성물산과 와이원에 맡길 테니, 그거 감안해서 좀 깎아주세요. 컨소시엄 구성이니 뭐니 할 것 없이 현찰 쿨거래로 진행하겠습니다.”
1회차 때, 홍당무마켓 매너온도 97도까지 찍은 내가 하는 말이니 충분히 믿어도 좋다.
사람이 어떻게 매번 주식만 하고 사나?
강남에 건물 한 채 정도는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