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새로운 투자 (5)
[(WST 단독) 넥스트로젠 수소트럭 480마일 주행 성공]
(전략) 투자자들에게는 수소트럭과 관련한 악몽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작년에 벌어졌던 토머스 모터스 사태다.
브레드 버튼의 사기 행각이 드러난 이후 수소차에 대한 회의론이 크게 제기됐다. 하지만 넥스트로젠은 이번 시험주행에 성공함으로써 이러한 의구심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톰슨 데일리 CEO는 인터뷰에서 밝혔다.
“토머스 모터스는 언덕에서 차를 굴렸지만, 넥스트로젠의 HY07은 실제 도로의 다양한 상황에서 주행시험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HY07은 두 개의 수소전지를 탑재해, 최대 490마력을 발휘할 수 있고, 1회 충전에 최대 500마일을 주행할 수 있다. 또한 전기차와는 다르게 단 15분이면 80퍼센트 충전이 가능하다.”
그는 넥스트로젠의 강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완성차 회사가 아닌 수소차 플랫폼 회사다. 자동차회사들과는 경쟁이 아닌 협업 관계로 기존 자동차회사들의 공장을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생산량을 빠르게 늘릴 수 있다. 우리의 플랫폼을 활용해 어떤 트럭을 만들지는 각 제조사의 역량에 달려있다.”
* * *
[넥스트로젠, GM과 포드와 1만 대 규모 계약 체결]
[사우디 국부펀드, 공장증설에 3년 간 5억 달러 추가 투자]
[AMZ, 월마트, 페덱스 등 물류기업들, 6000대 선주문]
이 기사는 시장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수소경제 관련해 여러 전망들이 나왔으나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다. 대체로 기업들도 향후 5년 정도를 예상하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넥스트로젠의 성공으로 그 시기가 크게 앞당겨진 것이다.
수소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이중 가장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은 화안에너지.
넥스트로젠의 생산계획이 발표되자, 화안에너지는 상한가까지 치솟았다.
토머스 모터스 사태 이후 상당수 기업들이 수소 시장에서 발을 뺐다. 여론이 워낙 안 좋다 보니 대규모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화안에너지는 미국 전역에 수소충전소를 건설하는 한편, 석유화학 공장들과 연계해 부생수소를 채집하고 운송하는 유통망까지 구축해놓았다.
이게 가능했던 건 토머스 모터스 사태가 터지기 직전 주식을 전량 매각해 1조 5천억 원이 넘는 수익을 냈기 때문.
빚을 내거나 유상증자를 하는 것도 아니고, 투자해 번 돈으로 하겠다고 하니, 주주들은 일단 지켜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그렇게 해놓은 투자가 이번에 대박이 터졌다.
주주들은 두 팔 벌려 환호했다.
-오오! 허민웅!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
-그저 빛빛!
-앞으로도 미눙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건강 챙기시고, 오래오래 경영해서 주가 10배까지 올려주세요.
-화안에너지는 제 연금입니다.
-갑자기 수소에너지만 떼서 물적분할한다 이 지랄만 안 하면 됨.
* * *
화안그룹의 한국 재계 순위는 원래 7위였다. 그런데 수소경제의 선두두자로 평가받으며 한 단계 뛰어올라 이제 6위가 됐다.
화안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화안솔루션.
태양광 패널은 물론이고 석유화학과 첨단소재, 백화점 사업까지 자회사로 두고 있다.
수소에너지는 기존 친환경에너지와 경쟁관계가 아닌 보완관계다.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만든 에너지를 수소로 변환시켜 저장할 수 있는 만큼, 넥스트로젠의 발표 이후 화안솔루션 역시 상승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분위기는 침울했다.
이유는 화안에너지와 시총이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원래 화안솔루션과 화안에너지는 시총이 두 배 넘게 차이 났다. 하지만 토머스 모터스 사태 이후 점차 좁혀지기 시작하더니 이번에 뒤집힌 것이다.
주주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똑같이 에너지하는 형제 기업인데 어떻게 주가가 이렇게 차이나냐?
-비슷한 건 줄 알고 샀는데 망했네 ㅜㅜ
-대체 수소 사업을 왜 화안에너지로 넘긴 거야?
-토머스 모터스 때 말아먹은 거 보고 눈치챘어야 했음.
-마이다스의 손 허민웅. 마이너스의 손 허민홍.
-‘너’가 아니라 ‘다’여야 했다. ‘홍’이 아니라 ‘웅’이어야 했다…….
-허민웅이 솔루션을 맡았으면 주가 따블이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둘이 바꿔주면 안 되나?
-이제 화안그룹 주력은 화안에너지 아닌가?
* * *
동호 선배는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며 감탄했다.
“이야! 넥스트로젠 대박이네. 시총 500억 달러까지 갈 거라는 얘기도 있던데, 괜히 러시 펀드에 팔아치운 거 아니야?”
“덕분에 사우디 투자를 받았잖아요.”
어차피 러시 펀드의 절반은 우리 거고.
현재 친환경차의 대세는 전기차.
하지만 수소차는 상용차에서 분명한 강점이 있다. 리튬과 코발트 등 배터리 원료 가격이 오르는 점을 생각한다면 경제성 역시 뛰어나다.
차량만 만들어진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수소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다행히 그 문제는 화안에너지가 나서서 열심히 하는 중.
“화안에너지 상한가네. 좀 사놓을 걸 그랬나?”
안 그래도 허민웅이 아까 신나서 전화하더라.
수소인프라라는 게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규모의 경제를 구축할 때까지는 계속해서 돈이 들어간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람들이 수소경제의 가능성을 믿기 시작했다는 것.
이전까지만 해도 돈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산업이었다면, 이제는 돈이 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향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투자자들은 기꺼이 기다려줄 수 있겠지.
“우리 부지사장님은 어디 갔어요?”
“엔터 회사들 돌아다니는 중이야.”
음악 작업 때문은 아니고 투자 상담 때문. 돈도 생겼겠다 괜찮다 싶은 비상장 엔터주들을 매집 중이다.
점심때쯤 소속사를 들렀다 온 김범석이 뒤늦게 출근했다.
품에는 과자가 한 아름 안겨 있었다.
동호 선배는 놀라 물었다.
“그게 다 뭐야? 편의점이라도 차리게?”
“팬들이 회사로 보내준 거야.”
“아니. 누가 너한테 이런 걸 보내? 넌 습자지처럼 넓고 얕은 팬층을 지니고 있는 거 아니었어?”
김범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팬 말고 지유 팬들이 보내준 거야. 우리 가수 1등 시켜줘서 감사하다고.”
“아…….”
며칠 전 지유는 신곡을 공개했다.
제목은 ‘꿈을 찾는 소녀’.
노래를 만든 사람은 김범석. 피처링도 김범석. 음원은 나오자마자 망고 등 각종차트 1위로 올라섰다.
“이거 다 먹으면 당뇨 걸리겠는데.”
말하면서도 이미 과자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었다.
마침 배고팠는데 잘됐다.
사이좋게 둘러앉아 과자를 먹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한미루 씨 맞습니까?]
“예. 누구신가요?”
[화안솔루션의 허민홍이라고 합니다.]
화안그룹 허성훈 회장의 장남이자, 허민웅의 형. 나와는 딱히 본 적이 없다.
“무슨 일이신가요?”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만날 수 있겠습니까?]
마침 여유롭다.
“그러시죠.”
* * *
난 호텔 카페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큰 키에 회색 정장, 베이지색 버버리 코트를 걸쳤다.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넘겼고, 금테 안경을 꼈다.
허민웅과 전체적인 얼굴형은 닮았지만, 좀 더 차분하고 부드러운 모습이다.
“반갑습니다. 허민홍입니다.”
“안녕하세요. 한미루입니다.”
우리는 인사를 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군요. 이번에 투자에 큰 성공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재벌그룹을 공격해 털어먹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난 두 번이나 성공했다.
첫째가 한정그룹, 둘째가 GL그룹. 그나마 GL그룹은 회사 자체는 멀쩡하지만, 한정그룹은 공중분해 돼버렸다.
참고로 한정그룹은 그의 처가다.
“민웅이랑 친하다고 들었습니다. 토머스 모터스의 부실을 알려주셨다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알려줬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어째서 제가 아니라 민웅이에게 먼저 알린 겁니까?”
난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때 미국에 온 게 허민웅 씨였으니까요. 만약 허민홍 씨가 왔다면 허민홍 씨를 만나 설득했을 겁니다.”
당시에는 나도 상황이 급했다. 한시라도 빨리 쿨라우드를 인수해야 하는 데다가 CFD 거래로 비용은 계속 나가고 있었다.
때문에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토머스 모터스를 폭락시켜야 했다.
내 입장에서 주가만 폭락시킬 수 있다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없었다.
허민홍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제가 미국으로 갈 걸 그랬군요.”
원래대로라면 그래야 했다.
하지만 그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한 성격. 리스크를 질 만한 행동은 최대한 피하는 편이겠지.
“오늘 만나자고 한 건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요?”
“컨티뉴 캐피탈은 허민웅을 지지하는 겁니까?”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허성훈 회장님의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네요.”
“…….”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난 앞으로의 일을 대충 알고 있다.
임원들에게 호통치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수십 년은 끄떡없을 것 같지만, 사실 허성훈 회장의 건강 상태는 그리 좋지 못하다.
이유는 가족력 때문.
창업주인 허성태 회장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젊은 나이에 유언장도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리고 이러한 심혈관질환은 아들인 허성훈 회장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예방법은 과로를 피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
그런데 회장직을 수행하며 그러기가 쉽지 않다.
드라마에 나오는 회장님들을 보면 매일같이 골프 치고 놀러 다니는 것 같지만, 실제 회장의 업무량은 일반 직원과 비할 바가 아니다.
작은 결정 하나에도 수백, 수천억이 왔다 갔다 하니 스트레스도 장난이 아니고.
건강에 각별히 유의한다 해도, 슬슬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당장 은퇴하지는 않겠지만, 슬슬 후계자에게 힘을 실어주려 하겠지.
난 허민홍을 쳐다보며 말했다.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희는 화안그룹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누가 후계자가 되든 저희가 신경 쓰거나 개입할 문제는 아니죠.”
그러나 화안에너지는 넥스트로젠과 손을 잡고 있고, 넥스트로젠의 뒤에는 컨티뉴 캐피탈이 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결국 컨티뉴 캐피탈이 허민웅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도 조언을 하나 드리자면, 화안에너지를 손에 넣을 생각은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허민홍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화안에너지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입니다. 그리고 최대주주는 화안이죠.”
화안이 보유한 화안에너지 지분율은 28.2퍼센트. 여기에 허민홍이 가진 5.3퍼센트를 더하면 33.5퍼센트가 된다.
여기에 다른 계열사 지분까지 합치면 40퍼센트가 넘고.
허민웅은 개인자산을 다 털어 화안에너지를 매입했지만, 그래 봐야 본인 지분율은 6.5퍼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은 반대할 텐데요.”
따지고 보면 허민웅은 화안에너지 사장도 아니고, 부사장이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화안에너지라고 하면 허민웅부터 떠올린다. 이는 그가 회장 아들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주가를 올린 1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내쫓으려 한다면 소액주주들이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화안에너지를 포기한다는 건 그룹의 절반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 게다가 계열사들끼리 연계성이 큰 편이라 계열 분리도 쉽지 않다.
난 허민홍을 보며 생각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음주운전과 폭행 등 온갖 사고를 다 치고 다닌 허민웅과는 달리,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찍 한정그룹 장녀 주혜진과 결혼했고 충실하게 회사 일만 했다.
본인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그가 그룹 후계자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로 원래대로라면 화안그룹은 별 잡음 없이 허민홍의 품에 안긴다.
그런데 이번에는 까딱 잘못했다가는 동생에게 그룹을 빼앗기게 생겼다.
내 이익을 위해 한 행동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이야.
이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