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GL엔텍 (10)
GL엔텍 주식이 폭락하자, 코스피 지수가 하락하고, 지수가 하락하자 코스피200도 함께 하락했고, 프로그램매물이 쏟아졌다.
선물시장에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고, 코스피200 선물과 옵션, 주가지수 관련 파생상품 거래가 5분간 중단됐다.
전날 하한가로 마감한 GL엔텍 주식은 다음날 장이 열리자 또다시 하한가로 떨어졌다. 86만 원까지 올랐던 주식은 단 이틀 만에 34만 7천 원으로 떨어졌다.
수급만으로 올랐던 만큼 수급이 풀리니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이전까지는 못 사서 안달이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못 팔아서 안달이었다.
공급은 수요가 없었다.
그저 치솟았던 주가가 원래 자리로 돌아갈 뿐이지만, 시장에서는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GL엔텍이 700퍼센트 이상 폭등하는 동안에도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 취소 등 호재가 있었던 몇몇 종목들을 제외하면 다른 주식들은 계속 하락세였다.
그런데 GL엔텍이 폭락하기 시작하자 그 주식들마저 같이 폭락했다.
-뭐야? 컨티뉴 캐피탈 털고 나간 거야?
-페이크 보소~ 선물 매수하는 줄 알고 다 같이 달려들었는데 알고 보니 매도였음 ㄷㄷㄷ
-미친ㅋㅋ 이건 뭐 개미털기도 아니고, 기관털기였네.
-고점에 파신 분들 축하드립니다~^^
-아악! 85일 때 팔걸. 하한가 걸려서 팔지도 못하네 ㅜㅜ
-컨티뉴 캐피탈이 물량 터니 이제 다 끝났네~
-10조 투자해서 대체 얼마를 번 거야?
-한 15조 벌지 않았을까?
-GL케미칼 공매도해서 10조 벌고, GL엔텍 매수해서 또 15조 벌고. 국장에서 돈 벌기가 이렇게 쉬움~
-주가 조만간 10만 원으로 돌아갈 듯.
-증권주들 다 같이 작살나네ㅎㅎ 다 뒤져라~
-멀쩡한 곳은 유성증권, 화안증권, DA증권뿐이네.
* * *
[(뉴스트리거 단독) 컨티뉴 캐피탈, GL엔텍 매매로 17조 원 이상 챙겨]
(전략)
……이처럼 GL케미칼과 GL엔텍의 잇단 투자 성공으로 컨티뉴 캐피탈이 벌어들인 수익은 최소 25조 원 이상으로 전망된다.
외환위기 당시 먹튀 논란을 일으켰던 룬스타가 7년에 걸쳐 번 돈이 4조 원이었는데, 컨티뉴 캐피탈은 고작 두세 달 사이 그 몇 배의 돈을 챙겨갔다.
(중략)
이번 일은 컨티뉴 캐피탈의 악의적인 주식 매집 때문에 일어났다.
하지만 그 원인을 제공을 한 건 주주들과 이익을 공유하지 않으려면 GL그룹의 이기적인 행태였다.
GL케미칼과 GL엔텍의 소액주주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는 사이 GL그룹은 별다른 손해를 입지 않았다.
그저 고재익 사장이 한 차례 머리를 숙인 것이 전부였다.
대기업을 위한 경제 구조와 재벌 중심의 의사결정 과정이 이런 대참사를 불러왔다.
정치권은 이번 일에 대해 경영자의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언제든 제2, 제3의 컨티뉴 캐피탈이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 * *
최근 몇 달 동안 벌어진 일은 여러 가지로 충격적이었다.
한국 증시 역사를 통틀어도 이번처럼 특정 세력에 의해 통째로 휘둘린 사례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리고 이 정도의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사례 역시 없었다.
컨티뉴 캐피탈이 GL엔텍 매수에 투자한 돈은 9조 6천억 원.
처음 4천만 주를 매수하는 데 8조 원을 썼고, 이후 400만 주를 추가 매수하는 데 1조 6천억 원을 추가로 썼다.
평단가는 대략 22만 원.
이 중 3000만 주를 80만 원 선에 팔았으니, 이것만으로도 24조 원. 투자한 돈을 제하고도 10조를 넘게 벌어들였다.
게다가 여전히 1400만 주를 보유 중이다.
주가가 올랐다 떨어지는 사이 컨티뉴 캐피탈이 이 정도 돈을 챙겼다는 것은 누군가는 손실을 입었다는 뜻이다.
뒤늦게 옵션과 현물 매수에 나섰던 기관들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다.
박현동 본부장에게 손실액을 보고 받은 조경휘 사장은 잠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라고?”
“2조 원 정도입니다. 향후 추가 하락을 감안하면 5천억 원 정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
작년 KD증권의 영업이익은 1조 8천억 원.
그런데 그 이상의 금액을 한순간에 날려 먹은 것이다!
조경휘 사장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듯 쓰러졌다.
“사장님!”
* * *
GL엔텍 주가는 폭락 후에도 20만 원대에 머물렀다.
이 가격에도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덕분에 팔지 못해 남은 1400만 주를 손실 없이 매도할 수 있었다.
금융비용을 제하면 수익은 대략 17조 5천억 원.
컨티뉴 캐피탈은 한정그룹 사태 이후 다시 한번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난 허민웅의 전화를 받았다.
[헤이, 브라더. 아주 제대로 벌었네. 기사 보니 일할 맛이 안 나더라.]
“언제부터 열심히 일 했다구요?”
[이거 왜 이래? 형 요즘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어. 임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하는 중이지.]
“그런데 왜 일할 맛이 안 나요?”
[너 우리 그룹이 작년 한 해 얼마 벌었는지 알아?]
“3조쯤 됐나요?”
[맞아. 전 계열사가 뼈 빠지게 일해서 3조 벌었어. 처음으로 영업이익 3조 넘었다고 축포까지 터트렸지.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은 GL케미칼과 GL엔텍에 투자해 고작 한두 달 만에 대체 얼마를 번 거야? 이러니 일할 맛이 나겠어?]
이렇게 들으니 얼마나 큰 성공을 거뒀는지가 실감이 좀 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내가 돈을 버는 사이 누군가는 잃었다.
공매도를 했던 헤지펀드들은 증거금을 내지 못해 파산했고, 결제를 이행하지 못한 중소증권사 몇 곳이 문을 닫았다.
이래서 투자는 항상 신중해야 하는 거다.
[많이 벌었으니 술 한 잔 사. 오늘 어때?]
“다음에요.”
[왜? 약속 있어?]
“약속은 없지만, 만날 사람이 좀 있어서요.”
* * *
난 24시간 영업하는 순댓국집 안으로 들어갔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손님은 거의 없었다. 구석 자리에는 정장을 입은 한 중년 남자가 순댓국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난 그 맞은편에 털썩 앉아 주문했다.
“여기 순댓국 하나 주세요.”
그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얼굴에 잠시 놀라는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기는 무슨 일이지? 설마 돈 벌었다고 자랑하러 온 건 아닐 테고.”
별로 반기는 것 같지는 않다.
이전과는 말투도 좀 달라졌다.
“그냥 근처 지나가다가 배고파서요.”
남궁석 의원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혼자 소주를 마셨다.
잠시 후, 순댓국이 나왔다. 그냥 멀뚱히 앉아있기 좀 그래서 시킨 건데, 막상 먹기 시작하니 술술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큰 투자를 하고 있으면 피가 마르는 것 같아서 말이지.
이렇게 마음 편하게 밥 먹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배고 고파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맛있었다.
괜히 그가 즐겨 찾는 게 아닌 모양이다.
난 손을 들었다.
“여기 깍두기 좀 더 주시고, 소주 한 병 주세요.”
난 소주를 따서 마셨다.
뜨끈한 국밥을 안주 삼아 시원한 소주를 한 잔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다.
수백조 원을 벌어도 국밥은 못 끊지.
남궁석 의원은 기가 막힌다는 듯 나를 보았다.
“맛있게도 먹는군.”
“여기 맛집이네요.”
“모든 걸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이건 1회차 때는 없었던 일이다.
GL케미칼 공매도를 했을 때만 해도 일이 여기까지 진행될 거라고는 나도 생각지 못했다. 때문에 투자를 하는 내내 줄타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소주를 마시며 말했다.
“의원님께서 만드신 규제 법안이 통과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남궁석 의원은 나를 쏘아보았다.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통과가 됐어야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기 때문에 통과된 거죠. 그렇지 않았다면 재벌을 규제하는 법안이 통과됐겠습니까?”
“…….”
그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내 말을 부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법이 만들어지면 그 법을 피할 우회로부터 찾는 게 재벌들이죠. 물적분할이 안 되면 법인을 신설한 다음 현물출자를 하면 되고, 계열사 상장이 안 되면 적당한 기업을 하나 인수해 키우거나 해외 상장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후속 입법을 서두르셔야 합니다. 상법을 개정해 이사의 책임 범위를 기존 ‘회사의 이익’에서 ‘주주의 이익’으로 확장하고, 미국과 동일한 수준의 투자자 보호 제도와 소액주주 집단소송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재벌들은 그동안 미국처럼 법인세와 상속세를 내리고, 미국처럼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막상 미국처럼 기업을 처벌하거나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을 도입하자고 하면, 기업들 다 망한다고 게거품을 물고 반대한다.
놀랍게도 이미 그런 법이 있는 미국 기업들은 멀쩡히 잘만 영업하고 있는데 말이지.
남궁석 의원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나보고 하라는 건가?”
“그럼 누가 하겠습니까?”
“허…….”
“아니면 재벌들이 의원님이 만든 법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걸 지켜만 보실 건가요? 그럼 제가 또 이런 일을 벌이지 말라는 법이 없을 텐데.”
“…….”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
잘못된 일을 보면 참지를 못하고, 반드시 고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냥 가만히 있으면 편할 텐데 말이지.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정치에 뛰어드는 일 없이 교수로서 마음 편하게 살고 있었겠지.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때쯤 되면 여론도 가라앉았을 테고, 재벌과 언론도 기를 쓰고 막으려 들 테니까요. 아마 국회의원 한 명의 힘으로는 힘들 겁니다.”
“잘 아는군. 그럼 어쩌라는 건가?”
“하지만 대통령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였는지 남궁석 의원은 잔을 든 손을 멈칫했다.
그러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지금 나보고 대선에 출마하라는 건가”
“언론 보니 벌써 얘기가 나오고 있던데요. 주위 사람들이 권유하지 않았나요?”
“…….”
남궁석 의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교수로 돌아갈 수 없듯, 이제 와서 일개 의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는 규제안을 놓고 임창식 대표와 대립했고, 결국 이겼다.
이미 정치인으로 몸집이 커진 만큼 그가 가만히 있고 싶다고 해도 주위 사람들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좋든 싫든 이미 새한국당과 우리국민당 친임계 의원들은 그에 대한 견제에 들어갔다. 반대로 우리국민당 비주류 의원들은 그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만약 의원님께서 대권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임창식 대표가 대통령이 될 텐데요.”
“…….”
원래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그는 대통령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하기야 당선되기 전까지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겠지.
그저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짓고 싶었을 뿐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을 한 건 임창식 대표가 나라를 시원하게 말아먹는 걸 본 다음.
그러나 이번에는 나로 인해 달라졌다.
임창식이 우유부단하고 기회주의적이고, 일이 잘못돼도 책임지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아마 그 모습을 보며 ‘내가 해도 쟤보다는 잘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대통령이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때와 운이 맞아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갖춰져도 본인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권력에 대한 강한 욕망이 필요하다.
그게 악의든 선의든 말이다.
뭐, 여기까지 얘기했으면 충분하겠지.
난 할 만큼 했으니 선택은 그의 몫이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남궁석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일의 목적이 뭐였나?”
어째서 이번 일에 그를 끌어들인 건지, 어째서 여기 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지 궁금한 모양이다.
그는 이번 일로 전국민에게 큰 호감을 얻었다. 이는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엄청난 정치적 자산이다.
이전이었다면 대통령은 꿈도 못 꿨을 테지만, 이번 일로 가능해졌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를 대권주자로 만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그가 굳이 그 사실을 알 필요는 없겠지.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은 누구에게도 빚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마음껏 해낼 수 있을 테니까.
난 웃으며 말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였죠. 그거 말고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잠시 동안 나를 쳐다보던 남궁석 의원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군.”
난 내가 먹은 것만 결제하고 순댓국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