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GL엔텍 (9)
[타피오카그룹 긴급회의, 자회사 상장계획 전면 재검토]
[GJ M&E, 물적분할 취소 소식에 주가 급등!]
[대연중공업, 대연위너 상장절차 철회!]
[재계, 향후 투자 계획 차질 우려……]
대기업들의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합병이 취소됐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동안 기업구조 변화로 인한 소액주주들 피해는 전혀 없다는 것이 모든 기업들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상장, 분할, 합병 계획을 취소한 기업들마다 주가가 상승했다.
-ㅋㅋㅋ 소액주주들 돈 빼먹다가 이제 못 빼먹게 되니 주가 폭등하네.
-그동안 대주주들 때문에 주가가 못 올랐다는 게 입증됨.
-이건 뭐 새끼 치는 것도 아니고, 지주사가 자회사 상장하고, 그 자회사가 또 자회사 상장하고, 그 자회사가 또 자회사~
-그동안 이런 짓거리를 태연하게 해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야, 이 개새끼들아! GL엔텍 상장 전에 법을 통과시켰어야지!!
-ㅅㅂ GL케미칼 주주들만 병신됐네ㅜㅜ
* * *
법안이 통과되자 재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거의 모든 그룹들이 향후 상장과 투자 계획을 다시 짜야 할 판이었다.
전경련 회의에서는 재계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세상천지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러면 앞으로 회사 운영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래서 한국에서 투자를 할 수 있겠나?”
“10대 재벌들이야 그동안 실컷 해먹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제 시작하는 우리 같은 기업들은 어쩌라고?”
“아니, 일은 GL그룹이 터트렸는데 왜 우리가 피해를 입어야 합니까?”
“내 회사를 내 마음대로 하지도 못한다니!”
재벌들은 하나의 기업을 진득하게 키우기보다는 문어발처럼 끝없이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걸 자신들 돈이 아닌 주주들의 돈으로 하는 걸 선호했다.
그렇게 해서 실패하면 다행(?)이지만, 성공할 경우 앞으로는 주주들과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
이는 재벌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견디기가 힘든 일이었다.
주주들이 대체 뭘 했다고 이익을 가져간단 말인가?
전경련을 이끄는 주민수 회장이 말했다.
“자자, 진정들 하세요. 법이야 이미 통과됐으니 어쩌겠습니까? 중요한 건 앞으로의 대책입니다.”
그 말에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대책을 논의했다.
그동안 재벌들을 규제하는 법은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때마다 재벌들은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냈다.
자녀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법으로 금지하자 마치 품앗이라도 하듯 서로의 자녀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퍼센트 이상인 계열사가 규제 대상이 되자 페이퍼컴퍼니에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지분율을 19.9퍼센트로 낮춰 규제를 피해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반드시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 * *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소재는 정치권의 최대 논란거리였다.
정부는 일단 GL그룹에게로 책임을 떠넘겼고, 고재익 사장은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문제가 된 부분은 바로 공매도.
공매도의 문제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개인투자자들은 분노와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심지어는 무차입 공매도를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무차입 공매도를 한 증권사들을 전부 처벌해주십시오!]
(전략)
……지금 대다수 증권사들을 보면, 가진 주식보다 빌려준 주식이 많습니다. 이게 무차입 공매도가 아니면 뭡니까?
금융위는 공매도를 재개하며 무차입 공매도 적발시 영업정지와 형사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투자자들에게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에 따라 무차입 공매도가 확인된 증권사들을 전부 영업정지하고, 경영진들을 싹 다 구속해 이 사회의 공정과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금융당국은 진땀을 흘렸다.
그동안 무차입 공매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공매도 전산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다.
대신 사후적발 시스템을 강화하고, 불법공매도 행위가 적발될 경우 강력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런데 이번 일로 공매도 관리가 엉망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하지만 한두 곳도 아니고 대다수의 증권사들이 걸려있기 때문에 징계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사실상 무차입 공매도를 허용해주는 꼴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GL엔텍 주가는 계속 오르기만 할 뿐이었다.
* * *
GL엔텍 폭등 사태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뉴스거리였다.
인터넷 언론사인 WST만이 아니라, 뉴욕 타임즈(NYT)와 월스트리트 저널(WSJ)에서도 주의 깊게 보도했다.
역시나 2008년 폭스바겐 사태와 비교하는 기사들이 쏟아졌고, 전세계 투자자들의 비웃음거리가 됐다.
한국 증시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며 글로벌 투자자금 역시 빠르게 빠져나갔다. 외국인들은 사태가 터진 후 무려 30조 원을 매도하며 셀 코리아를 주도했다.
물적분할 취소 등의 호재가 있는 일부 종목들을 제외하면 시총 상위 종목 대부분이 하락했지만, GL엔텍 상승 덕분에 지수 자체는 연일 올랐다.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다.
GL엔텍이라는 기업은 한 달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기업의 본질적 가치는 그대로인데 그저 주가만 오르는 것이다.
난 GL엔텍 주가와 거래량을 면밀히 살폈다.
주식을 사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사들인 주식을 다시 파는 게 어려울 뿐이지.
내가 사서 올린 주식은 내가 파는 순간 폭락한다. 때문에 작전 세력들은 매도할 때가 되면 온갖 헛소문을 퍼트린다.
광산에서 코발트가 발견됐다, 대기업과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물을 석유로 바꾸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등등.
그렇게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에게 비싼 값에 주식을 팔아치워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난 데이비드와 통화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제 슬슬 끝내야죠. 조만간 빠져나올 타이밍이 올 겁니다.”
지금이야 공매도 세력과 증권사들이 손잡고 버티고 있지만, 이게 얼마나 가겠는가?
조금만 위기가 생겨도 각자 살기 위해 움직이겠지.
[알겠습니다. 준비를 해야겠군요.]
* * *
KD증권 조경휘 사장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젠장!”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중 집중 타깃이 된 곳은 바로 KD증권.
KD증권은 상장 주관사로서 가장 많은 물량을 배정받았다. 따라서 개인 청약도 가장 많았고, 가장 많은 주식을 공매도로 대여해줄 수 있었다.
다른 증권사들이 빌려준 물량을 다 합쳐도 KD증권 하나에 미치지 못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개인투자자들은 KD증권 보이콧을 선언했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 잔고는 1억 원 미만이다.
수십, 수백만 원짜리 계좌들도 많다.
하지만 개미도 뭉치면 무게가 나간다.
GL엔텍 주식만이 아니라, 계좌에 있는 모든 주식과 CMA에 있는 현금까지 싹 다 빼가는 바람에 고객 잔고가 1조 원이 줄어들었다.
개인투자자협회는 아예 KD증권을 불법공매도로 처벌해 달라고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어떻게든 주식 잔고를 맞추기 위해 닥치는 대로 매수했지만, 거래물량이 워낙 적다 보니 살 때마다 폭등하는 바람에 확보한 주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
GL엔텍 유통물량 9.6퍼센트 중 컨티뉴 캐피탈이 5.5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패시브 펀드와 기관들이 헤지를 위해 사들인 물량이 3퍼센트는 될 테니, 지금 시중 물량이라고 해봐야 겨우 1퍼센트 남짓.
그런데 공매도 잔고는 1.7퍼센트 수준.
그나마도 원래 2퍼센트 넘었는데, 주가가 폭등하며 일부 헤지펀드가 다급하게 상환에 나선 덕분에 좀 줄어들었다.
이중 KD증권의 물량은 0.9퍼센트.
시중에 거래되는 주식을 전부 사들여도 될까 말까다.
이미 빌려준 주식보다 보유 주식이 적어진 것은 물론이고 내줄 주식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러다가 개인투자자가 매도를 하려는데 주식이 없다고 나오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옵션.
미래의 주가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옵션 발행자는 주가가 오르든 떨어지든 반드시 이익을 얻게 되는 구조다. 일정 밴드 안에서 움직일 때는 말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밴드를 벗어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코스피200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콜옵션은 폭등하는 데 비해 풋옵션은 폭락 중이다. 이대로 만기가 되면 손실액이 얼마가 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문제는 컨티뉴 캐피탈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다.
박현동 본부장이 보고했다.
“컨티뉴 캐피탈이 코스피200 선물 매수에 나선 것 같습니다!”
“뭐라고?”
‘옵션 만기를 앞두고 대규모 매수 포지션을 구축하려는 건가?’
조경휘 사장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컨티뉴 캐피탈이 매도에 나서면 주가는 폭락한다.
‘이번에 선물 매수로 최대한 이익을 챙기고 그 이후에 매도에 나서려는 건가?’
현재 코스피200 지수는 컨티뉴 캐피탈이 멋대로 올리고 내리는 게 가능하다.
만약 만기 전에 컨티뉴 캐피탈이 작정하고 주가를 끌어올린다면?
이틀만 상한가를 쳐도 주가는 70퍼센트가 올라가고, 사흘 상한가를 치면 120퍼센트가 올라간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만약 제대로 대비를 하지 못한다면 감당 못 할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시장에 이상 현상이 생겼을 경우 옵션 발행자는 예상치 못한 손실을 입게 된다.
특정 옵션의 손실이 커질 것으로 예상될 때 이를 헤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인이 발행한 옵션을 시장가에 다시 사들이거나, 최대한 비슷한 옵션을 매수하는 것이다.
조경휘 사장은 지시를 내렸다.
“우리가 발행한 콜옵션 매수하고, 안 되면 비슷한 옵션이라도 매수해. 주식 빌려간 기관들한테 추가 증거금과 상환을 요구하고.”
숏스퀴즈가 발생하면 주가가 폭등할지 모르지만…… 결코 KD증권 혼자 손실을 떠안을 수는 없었다.
* * *
[(속보) 선물시장 콘탱고 발생!]
[GL엔텍 급등 주의!]
[컨티뉴 캐피탈, GL엔텍에 추가 매수하나?]
컨티뉴 캐피탈이 옵션 만기를 앞두고 GL엔텍 주가를 끌어올릴 거라는 소문이 퍼지자 기관들은 닥치는 대로 콜옵션을 매수했다.
수요가 몰리며 선물시장이 급등했고, 선물가격이 현물가격보다 높은 콘탱고(Contango) 현상이 벌어졌다.
여기에 증권사들이 주식을 빌려 간 헤지펀드들에게 추가 증거금과 상환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숏스퀴즈가 발생할 우려가 커지며 GL엔텍은 급등했고, 이는 다시 선물시장을 밀어올렸다.
현재 가격이 정상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가격에라도 주식을 사야 했다. 여기에 한탕 해먹으려는 투기세력까지 몰리며 주가와 거래량이 함께 치솟았다.
기관매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가운데, GL엔텍 주가는 이제 80만 원을 넘어서며, 유성전자 시총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주가 미쳤네!
-이러다가 진짜 유성전자 넘는 거 아니냐?
-GL엔텍 100만 원 간다!
-이제 겨우 8배임. 최소 20배는 가야 함!
-코디어클로즈 때는 70배가 올랐음!
-GL엔텍은 70배 오르면 5600조인데???
-오옷! 전세계 시총 1위 한 번 찍어보자!
대체 주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모두가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는 가운데, 충격적인 뉴스가 증시를 강탈했다.
[(속보) 컨티뉴 캐피탈, GL엔텍 3000만 주 매도!]
공시가 나온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86만 원까지 올랐던 GL엔텍 주가는 바로 하한가로 떨어졌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고, 오르고 있던 만큼 낙하의 충격은 컸다.
당일 등락 폭은 무려 46퍼센트.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공포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