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GL엔텍 (8)
동호 선배와 김범석은 폭등하는 GL엔텍 주가를 보며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설마 시총 80조 원짜리 기업이 이 정도로 오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엄청난 일을 벌이는 중이다.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이런 나라의 증시를 멋대로 조작하는 중이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뭔 짓을 벌이고 있는 건지 나도 가끔 신기하다.
동호 선배는 혀를 내둘렀다.
“우리 이러다가 증시 조작으로 전원 체포되는 거 아니야?”
“설마요. 여기가 무슨 독재국가도 아니고.”
한국 사모펀드였으면 진작 압수수색에 검찰 조사 얻어맞고 폐업했을지 모르지만, 컨티뉴 캐피탈이 미국 사모펀드.
우리를 체포해봐야 본사가 미국에 있는 만큼 아무 소용없다.
“그럼 뭐 일본은 독재국가라서 사마라 회장을 체포했어?”
“…….”
거기야 일본이니까. 그것이 일본이니까…….
태연하게 말했지만, 나 역시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1회차 때는 없었던 일이다 보니,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신경이 곤두서있다.
요즘은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중이다. 한두 시간씩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다. 괜히 주식하면 수명 깎인다고 하는 게 아니다.
이래서 사람은 주식 투자를 멀리하고 영끌해서 부동산을 사야 하는 것이다.
김범석도 한마디했다.
“친구 하나가 헤지펀드에서 일하는데, GL엔텍 주식 공매도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고 합니다. 조만간 회사 망할 것 같다고 하네요.”
난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저런. 그래서 공매도는 신중해야 하는 건데.”
사실 증권사들이 개인투자자의 공매도를 제한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1만 원짜리 주식을 매수했을 경우 손실의 최대액은 1만 원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1만 원짜리 주식을 공매도했는데 주가가 10만 원으로 오른다면? 손실은 9만 원이다.
만약 100만 원으로 오르면 손실은 99만 원. 투자금 대비 9900퍼센트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공매도의 손실은 무한대다. 때문에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기관들에게만 공매도를 허용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기관들도 속수무책이다.
GL엔텍 주식을 공매도한 한 헤지펀드들은 사실상 파산 상태였다.
또 문제가 되는 건 주식을 빌려준 증권사들.
사실상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보유한 주식보다 빌려준 주식이 더 많은 사실상 무차입 공매도 상태였다.
이 문제를 지적받자 증권사들은 보호예수에 걸린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니 무차입 공매도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러자 분노한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빼가기 시작했다.
공매도 세력이 대출자라면, 증권사는 은행, 그리고 개인투자자는 예금주다.
대출자가 파산하면 은행이 빚을 떠안을 판이라, 은행은 상환기한을 연장하고 담보도 받지 않으며 간신히 파산을 막아놨다.
그런데 예금주들이 은행을 옮기는 뱅크런이 일어났다.
만약 돈을 내주지 못하는 순간 은행까지 문을 닫아야 한다.
일부 증권사들은 개인투자자들에게 주식을 내주기 위해서라도 닥치는 대로 주식을 사들이는 중이다.
동호 선배가 물었다.
“이거 언제까지 할 생각이야?”
“글쎄요.”
마음 같아서는 영원히 하고 싶다.
내 마음대로 증시를 올렸다 떨어트렸다 하는 기회가 흔하게 오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주가가 영원히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회가 오면 팔고 나가야겠지.
* * *
난 성윤아를 만났다.
그녀는 자랑하듯 말했다.
“저희 계좌 개설 엄청 늘었어요.”
“얼마나요?”
“15만 개요. 1차 목표는 30만 개예요.”
“…….”
공매도 전산화를 발표하기 전 미리 스마트폰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클릭 몇 번으로 쉽게 주식을 옮길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덕분이기도 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가입 이벤트도 활발하게 벌이며 고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DA증권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IB부문이 강세인 반면, 개인금융은 약세였다.
그래서 개인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그동안 지점을 늘리며 공격적으로 영업을 해왔는데…… 프리머스 사태로 인해 잠깐 주춤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매도 전산화에 앞장서며 대박이 터진 것이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니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역시 미루 씨 말 듣기를 잘했네요. 엄마도 고맙다고 전해달래요.”
“고마우면 오늘 저녁은 윤아 씨가 사는 거예요?”
내 말에 그녀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돈을 벌어놓고 저한테 사라는 말이 나와요?”
“그게 제 돈인가요?”
“그럼 누구 돈이에요?”
“다 회삿돈이죠.”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진짜. 있는 사람이 더한다더니. 알았어요. 제가 살게요.”
난 그녀를 따라 예약해놓은 식당으로 향했다.
널찍한 실내에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여기 유명한가 보네요.”
성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호주의 유명 쉐프인 데이빗 거드너가 운영하는 록스 레스토랑이에요. 이번에 한국에 처음으로 지점을 낸 거라 예약도 엄청 힘들었어요. 세 달 치 예약이 꽉 차있대요.”
“그래요?”
처음 들어봤다.
호주를 갈 일이 있어야 말이지.
일찌감치 예약을 한 그녀 덕분에 우리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주문한 요리가 나오자 우리는 가볍게 와인잔을 부딪혔다.
“남궁석 의원 법안은 통과되겠던데요.”
“진작 했어야 하는 일이죠.”
처음 법안을 내놨을 때만 해도 남궁석 의원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GL케미칼 폭락과 GL엔텍 폭등 사태를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은 뉴스만 틀면 하루 종일 GL엔텍과 증시 얘기만 나오는 중이다.
남궁석 의원이 만든 법안을 통과시키기만 했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법안 통과에 힘이 실렸다.
누구든 반대했다가는 정치생명이 끝장나지 않을까?
“이거 통과되면 재벌들은 난리 날 것 같은데.”
“그렇겠죠.”
특히 승계와 상속을 앞둔 그룹들은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애초에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계열사 하나씩 쪼개서 나눠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그럴 거면 애초에 상장시키지 말고 가족회사로 운영하든가.
“그러고 보니 남궁석 의원 엄청 유명해졌던데. 어떻게 보면 다 미루 씨 덕분 아니에요?”
내가 남궁석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건 유재호 회장밖에는 모른다.
난 짐짓 모른 척 말했다.
“그런가요?”
굳이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오영환 대통령의 지지율은 원래 바닥이었고, 정권 교체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대선 레이스가 시작도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대임(어차피 대통령은 임창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임창식 대세론은 확고했다.
그런데 이번에 임창식 대표가 자율 규제라는 삽질을 하는 바람에 여당의 집중 공격을 얻어맞았고,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렸다.
반면 남궁석 의원의 인지도는 치솟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정치인이 외면했을 때 그 혼자 나서서 싸웠으니까.
수많은 반대와 어려움에도 법안을 꿋꿋하게 밀어붙인 그의 모습에 국민들은 박수를 쳤다.
결과적으로 GL케미칼 폭락과 GL엔텍 폭등 사태가 연달아 터지며, 남궁석 의원이 옳고 임창식 대표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전까지는 대선주자로 거론조차 안 됐지만, 이제는 당내 경선의 유력주자로 급부상했다.
“속으로 미루 씨에게 고마워하지 않을까요?”
“그럴 리가요.”
난 와인을 마시며 남궁석 의원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지금쯤이면 내 욕을 실컷 하고 있지 않을까?
* * *
남궁석 의원이 처음 물적분할과 계열사 상장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아무도 통과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동의해주는 의원들이 없어서 발의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여야 할 것 없이 대중의 인기를 얻고 싶은 의원들은 재빨리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결국 해당 법안이 상정됐다.
물적분할시 반대하는 주주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물적분할 후 상장시 주총에서 소액주주들 3분의 2 이상 동의, 계열사 상장시 반대하는 주주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기존 주주들에게 주식 현물배당 등등.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지키는 법이란, 그 이익을 빼먹고 있던 재벌들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법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기업의 성공 비법은 간단했다.
바로 주주들 돈으로 신사업에 투자해서 실패하면 그건 주주들의 손실로 넘기고, 성공하면 오너의 이익으로 취하는 것이다.
마치 단세포 동물이 세포분열로 번식해 나가듯, 끝없이 기업을 쪼개고 자회사를 상장시켜 덩치를 불려왔다.
그런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을 밖으로 빼내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이익은 오직 기업과 주주들이 몫이 된다.
이전이었다면 재계와 언론이 나서서 기업활동을 저해한다, 외국기업들과 역차별이다, 기업들이 해외로 다 떠날 수 있다, 투자와 고용을 안 하겠다, 그럼 나라 망한다 등의 주장을 펼치며 법안 저지에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GL엔텍으로 인해 증시 전체가 초토화되고 있는 상황.
이번 일을 통해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이 주주들에게 얼마나 피해를 끼치는지가 전국민에게 알려졌다.
물적분할과 계열사 상장을 준비 중이던 대기업들은 은근슬쩍 공시와 기사를 삭제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누구든 말 한마디 잘못했다는 끝장날지도 모른다. 때문에 누구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 재벌의 스피커 역할을 하던 언론 역시 침묵했다.
남궁석 의원은 잔뜩 지친 표정으로 국회에서 말했다.
“이미 늦었지만 앞으로라도 소액주주들이 대주주와 경영진에 의해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 * *
[(속보)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 규제 법’ 국회 통과]
[여야, 제2의 GL엔텍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
[임창식 대표가 주도한 업계 자율 규제, 실행도 못해 보고 폐기!]
[전경련, 별다른 입장 없어……]
남궁석 의원이 발의한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 규제법’은 여야 국회의원의 압도적인 찬성 속에 가결됐다.
이 소식은 증시와 재계에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타피오카그룹은 타피오카의 자회사인 타피오카게임즈를 상장하고, 타피오카게임즈는 다시 자회사인 카멜스튜디오를 상장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또한 타피오카엔터테인먼트, 타피오카드라이빙, 타피오카라이프 등을 줄줄이 상장하고, 다시 그 밑의 자회사들을 상장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상장할 자회사와 손자회사는 열 곳이 넘었다.
그런데 이 계획이 전부 취소되자 지주사인 타피오카의 주가는 25퍼센트 치솟았다. 상장 이후 최대 상승폭이었다.
GJ그룹은 오너 일가 지분이 65퍼센트인 GJ코코넛을 상장해 승계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또한 GJ M&E 주총에서 드라마 제작사인 타이거 스튜디오를 물적분할해서 새로운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었다.
이 계획들이 취소되자 GJ와 GJ M&E 주가는 각각 8퍼센트, 13퍼센트 상승했다.
원동그룹은 상장사인 원동산업과 비상장사인 원동홀딩스를 합병할 계획이었다.
합병비율이 소액주주 비율이 높은 원동산업은 낮게, 총수 일가가 71퍼센트를 보유한 원동홀딩스는 높게 책정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합병 발표 이후 원동산업 주가는 23퍼센트 하락했다.
소액주주들의 반대에도 원동그룹은 기업가치를 공정하게 심사했다며 합병을 강행하겠다고 밀어붙였지만, 법이 통과되자 합병비율을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원동산업 주가는 상한가로 치솟았다.
LK그룹은 올해에만 5개 자회사를 상장할 예정이었는데, 이 계획이 취소되자 LK와 LK 케미칼이 각각 12퍼센트, 9퍼센트 상승했다.
대연위너 상장을 취소한 대연차 주가는 6퍼센트가 상승했고, 대연오일 상장을 취소한 대중공업 주가는 9퍼센트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