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GL엔텍 (6)
[(속보) 지성용 경제부총리, 금융시장 불안 예의주시하고 있어]
[이덕수 거래소장,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
[상황에 따라 보호예수 조기에 해제할 수도 있어……]
비상경제대책 회의 이후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를 본 동호 선배는 깜짝 놀랐다.
“이거 뭐야? 보호예수를 해제하면 어떡해?”
만약 정말로 보호예수를 풀면, 매물이 쏟아지며 주가는 폭락할 것이다.
“못 할 걸요.”
“그럼 이 기사는 뭔데?”
“언제든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줌으로써 매수 심리를 안정시키려는 속셈이죠.”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기는 힘드니, 말로 위협하는 고육책이다.
만약 컨티뉴 캐피탈이 겁을 먹고 주식을 내던지면 더 좋겠지. 당연하게도 이런 수작에 넘어갈 이유는 없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는지 장이 열리자 GL엔텍 주가는 20퍼센트가량 하락했다.
“이러다가 정말로 해제하면?”
“절대 못 한다니까요.”
“어째서?”
“생각해봐요. 가뜩이나 오영환 대통령은 GL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먹은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재벌을 위해 원칙마저 깨트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 그래서 니가 죄 없는 우리 대통령님을 모함한 거였구나!”
“…….”
정말로 오영환 찍었나?
* * *
[(WST 단독) 한국 정부 GL엔텍 주가 폭등에 시장개입 시사]
(전략)
……대주주 보호예수는 상장시 안전판 역할을 한다. 만약 보호예수가 없으면 상장한 다음 대주주가 주식을 전량 팔아치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이 경우 공모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는 만큼,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록허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보호예수를 해제한다면 한국 증시의 신뢰도는 크게 하락할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이다.정부가 특정 재벌그룹을 위해 규칙을 바꾸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오히려 이런 루머로 인해 GL엔텍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매우 좋은 기회다. 이번 기회에 더 많이 매수하겠다.”
말뿐만이 아니었는지 기사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시가 떴다.
[(속보) 컨티뉴 캐피탈, GL엔텍 주식 0.5퍼센트 400만 주 추가 취득 공시!]
공시가 나가자 35만 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다시 반등해 45만 원으로 올라갔다.
정부의 의도는 구두개입을 통해 GL엔텍 주가만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이 추가 매수에 나서며 주가는 오히려 올랐고, 코스닥에 상장을 준비 중이던 중소기업들에게로 불똥이 튀었다.
“보호예수를 멋대로 풀면 대체 투자자들이 뭘 믿고 투자하라는 건가?”
“대주주가 상장 이후 마음대로 주식을 팔 수 있다면 누가 공모에 참여하겠나?”
“대기업 하나 살리려다가 중소기업들 다 죽는다!”
혼란이 커지자 공치현 예탁결제원장이 나서서 해명했다.
“보호예수를 푸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한 일이고, 논의된 적도 없는 사안입니다.언론들은 억측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발표에 GL엔텍 주가는 또다시 10퍼센트가량 상승해 55만 원을 넘었다.
* * *
입장이 곤란한 것은 대통령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국민당 임창식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기업들의 자율 규제로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율 규제를 제대로 실행하기도 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새한국당은 임창식 대표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입법을 통해 규제했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이는 남궁석 의원이 만든 법안을 폐기하고 자율 규제를 내세운 임창식 대표가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임창식 대표는 당장 쓸모도 없는 자율 규제안을 폐기하고 국민들과 투자자들에게 사죄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책임 소재를 분산시켜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줄이려는 의도도 깔려있었다.
어쨌거나 그 말대로 남궁석 의원이 만든 규제 법안만 처리했어도 지금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법안을 내팽개친 것도 모자라, 남궁석 의원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새한국당은 그 점을 집요하게 거론하며 공격했고, 효과가 있었는지 임창식 대표에게 대중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꼴 보고도 자율 규제한다고 하는 임창식은 대가리가 있는 거냐, 없는 거냐?
-ㅋㅋ 자율 규제는 뭔 놈의 자율 규제?
-너도 오영환처럼 재벌들 돈 먹었냐?
-오영환이나 임창식이나 그놈이 그놈임!
-그냥 나가 뒈져라, 새꺄!
-이런 놈이 대통령 되면 나라 망한다
-ㄹㅇㅋㅋ 이거 하나만 봐도 대통령 되면 얼마나 뻘짓할지 눈에 보인다.
-이런 놈 대통령으로 뽑았으면 손목을 자르고 싶었을 듯~
-응, 대선 나와 봐, 병신아~ 안 찍으면 그만이야~
-경선부터 아예 확실히 떨어트려야 함!
이전까지 임창식 대표는 침착하고 신중하다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그 이미지가 이제는 줏대 없고 우유부단한 것으로 바뀌었다.
임창식 대표는 분통을 터트렸다.
“아니, 자율 규제했을 때 다들 좋다고 했잖아!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데?”
자율 규제를 한다고 했을 때 분명 새한국당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잘못인 것처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박성주 최고위원이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자율 규제를 패기하고 입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궁석 의원의 법안을 상정하자고?”
“예. 안 그러면 새한국당에서 먼저 법안을 상정할 겁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
그 법안을 폐기한 것은 다름 아닌 그다. 남궁석 의원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것도.
‘그런데 이제는 그 법안을 지지해줘야 한다는 건가?’
임창식 대표는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혔다.
“자율 규제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안이었을 뿐입니다. 이번 일을 통해 자율 규제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국회가 나서서 조속히 관련법을 입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새한국당은 이번에는 말을 바꿨다며 비난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임창식 대표는 법적 규제에 반대한다고 했고, 법적 규제를 주장한 남궁석 의원을 해당 행위라며 징계위원회에 회부시켰습니다. 이는 우리국민당이 공당이 아닌, 임창식 대표의 사당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자인한 꼴입니다. 기업들을 속이고 국민들을 속인 임창식 대표는 책임지고 당장 의원직에서 사퇴하시기 바랍니다.”
오영환 대통령과 임창식 대표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반면, 남궁석 의원의 인지도는 크게 상승해 이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그가 이전에 했던 일들은 새삼스레 이슈가 됐다.
-GL엔텍 상장을 막기 위해 GL케미칼 주주들과 함께 시위한 건 남궁석 의원뿐이다!
-청와대고 국회고 다들 놀고 있을 때, 남궁석 의원만이 규제를 하겠다고 나섰다!
-원래 교수였는데 학생들 기숙사를 짓게 하기 위해 선거에 출마했다가 국회의원이 됐다고 합니다!
-이거 보고 임창식 대표 지지 철회하고 남궁석 의원 밀기로 했습니다.
-남궁석 의원이 제출한 규제 법안이나 통과시켜라~
-어떤 놈이든 반대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1000만 개미투자자들의 힘을 보여줍시다!
* * *
교수였던 남궁석이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 느낀 것은 막강한 권력이었다.
국회의원의 숫자는 단 300명.
어떻게 보면 국회의원 한 명이 약 17만 명의 국민을 대변하는 셈이다.
교수일 때 아무리 말해도 되지 않던 기숙사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실감하며 이 힘으로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하자, 국회의원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무슨 더닝 크루거 효과도 아니고.’
국회의원 혼자 힘으로는 입법은커녕 법안 상정조차 불가능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이 갈렸고, 정당에 따라 무조건 반대하거나 무조건 찬성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미루가 말한 GL엔텍 상장 문제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주식시장은 복마전이나 다름없었다.
대기업의 갑질과 대주주의 횡령배임은 이제 기삿거리도 아니었다.
재벌그룹들은 자녀들이 만든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기업이 좀 성장할 만하면 물적분할해 상장시켰다.
상장 직후 임원들은 스톡옵션을 매도해 차익을 챙기는 방식으로 개인 주머니를 불렸다.
이는 소액주주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범죄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이 모든 일이 합법적으로 이뤄졌다.
언론도 정치권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궁석은 총대를 메고 나섰다.
재벌그룹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치권뿐이었다.
그는 물적분할한 자회사 상장을 막아야 한다고, 그게 힘들다면 적어도 기존 주주들에게 보상을 줘야 한다고 소리쳤다.
결과는 실패였다.
새한국당은 아예 발을 뺐고, 우리국민당은 별 소용도 없는 자율 규제를 택했다.
그리고 GL엔텍은 상장했다.
컨티뉴 캐피탈은 약 10조 원을 챙겨 갔고, GL그룹 총수 일가는 거액의 투자금을 확보했고, 상장을 주관한 증권사와 청약에 참여한 기관들 모두 이익을 얻었다.
피해를 본 건 오직 GL케미칼 소액주주들뿐.
기업의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이건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공매도를 한 컨티뉴 캐피탈일까, 상장을 강행한 GL그룹일까?
아니면…….
‘법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정치인들 때문인가?’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GL엔텍이 상장한 이후에도 그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입법을 주장했다.
그래야 다음 소라도 잃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당은 이미 재벌그룹들이 만들어온 자율 규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가 만든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도 해보지 못하고 폐기됐다.
그리고 그는 징계위원회가 열릴 테니 소명을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건 아니지만, 왠지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자율 규제안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임창식 대표는 자율 규제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겠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일에 모두가 만족하는 방법이란 없다.
지금 당장은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몇 년 뒤에 분명 문제가 터질 것이다.
‘어차피 그때쯤이면 누구 책임인지 모를 테니 상관없으려나?’
하지만 그의 예상은 틀렸다.
몇 년은커녕 불과 한 달 만에 문제가 터졌으니까.
GL엔텍 주식은 미친 듯이 폭등하고 있고, 코스피 전체가 요동을 쳤다.
올라오는 기사들을 본 남궁석은 경악했다.
“이, 이게 뭐야?”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동안 계속 의문이었다.
‘어째서 한미루는 나에게 이걸 알린 거지?’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만약 그가 물적분할 후 상장을 막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GL그룹은 GL엔텍 상장을 미뤘을 것이다.
만약 그가 주식 현물배당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GL케미칼과 기관들은 보호예수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벌어졌다.
‘서, 설마 처음부터 이럴 목적으로 나에게 접근한 거였나?’
어떻게 보면 그는 지금까지 컨티뉴 캐피탈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 거나 다름없었다!
남궁석은 떨리는 손으로 한미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 않아 전화가 연결됐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잘 지내셨습니까?]
남궁석 의원은 인사를 건너뛰고 물었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예? 뭐하는 짓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그는 소리치듯 말했다.
“GL엔텍 말입니다!”
[아아, 그거요? 보시는 대로입니다.]
한미루의 목소리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평온했다.
“절 속인 겁니까?”
[속이다니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제가 의원님께 드린 얘기 중 거짓이 있었나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미루는 분명 진실을 말했다. 다만 그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의원님께서 GL엔텍 상장만 막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입니다.]
“뭐, 뭐라고?”
한미루는 짐짓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GL엔텍 상장을 막았어야죠. 그러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안 그렇습니까?]
“…….”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더 할 말 없으신 것 같으니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자, 잠깐! 야! 끊지 마, 임마!”
뭐라 할 사이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분노한 남궁석 의원은 핸드폰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이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