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GL엔텍 (5)
조경휘 사장은 침착하게 말했다.
“그것보다, 개인투자자들 주식을 공매도에 활용하지 않겠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사실 핵심은 전산화가 아닌 그 부분이다.
어차피 전산화는 최소 수개월이 걸릴 일이다. 그러니 개인 주식의 공매도 활용은 당장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했을 때야 별 상관없었지만, 공매도를 전산화하면 어차피 알려질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선제적으로 발표한 건데, 뭐가 잘못됐습니까?]
“아,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지금 하냐고?’
개인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기들 주식을 공매도에 활용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모든 증권사가 다 같이 하고 있을 때는 불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몇몇 증권사들이 안 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계속 하는 증권사들은 욕을 먹게 될 것이다.
아니, 욕만 먹고 끝나면 다행이다.
진짜 문제는…….
[공매도 전산화 문제는 당장 결정을 내리시긴 힘들 테니 충분히 상의해보시고 연락 주세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자, 잠깐.”
뭐라 하기도 전에 통화가 끊어졌다.
그 순간, 박현동 본부장이 다급하게 뛰어와서 보고했다.
“큰일 났습니다. 왜 멋대로 자신들의 주식을 멋대로 공매도에 활용하고 있냐는 고객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다른 증권사로 계좌를 옮기겠다고 합니다!”
“……뭐?”
다른 주식이야 어떻게 되든 별 상관없다.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GL엔텍 주식은 아니다.
이미 공매도로 빌려준 만큼, 이 주식은 절대 옮기도록 허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니 주식을 공매도에 활용하고 있으니 옮기지 말라고 한다면…… 과연 개인투자자들이 이해해줄까?
* * *
GL엔텍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공매도 세력들은 안도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유성증권, 화안증권, DA증권이 공매도 전산화를 발표하자, 상황이 반전됐다.
기사를 본 개인투자자들은 두 가지 사실에 깜짝 놀랐다.
첫째는 개인 계좌에 있는 주식이 공매도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공매도가 아직도 전산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뭐야? 공매도를 수기로 하고 있었다고?
-21세기에 이게 말이 됨?
-뭔 디지털 강국에서 채팅으로 거래를 하고 있어? 미친놈들인가?
-그보다 내가 산 주식이 멋대로 공매도로 활용될 수 있다고? 난 동의한 적 없는데.
-진짜네. 약관 살펴보니 공매도 대여가 가능할 수 있도록 되어 있음. 한 15페이지쯤에 깨알 같이 적혀 있음.
-응? 그동안 내 주식 빌려다가 내 주식 가격을 떨어트리고 있었다고???
-ㅅㅂ ㅋㅋㅋ
-야, 이 개새끼들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번에도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이 새끼들 지금까지 하던 대 로 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고?
-개인 계좌에 있는 주식을 유성증권, DA증권, 화안증권으로 옮깁시다! 이것만이 우리 주식을 지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옳소! 전부 옮기자!
-당장 DA증권 계좌 새로 개설한다!
개인투자자들은 증권사를 옮기는 집단행동을 시사했다.
주식을 다른 증권사로 옮긴다는 것은 공매도가 가능했던 주식이 불가능한 주식으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얼마나 많은 개인들이 실제 행동으로 옮길지, 수급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불확실했다.
문제는 이게 시장의 심리를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수량이 더욱 부족해질 수도 있다는 소식에 시장은 재빨리 반응했다.
공매도 세력들은 일부라도 현물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수에 나섰고, 주가가 치솟을 기미를 보이자 단기차익을 노린 투자자들도 달라붙었다.
그러자 정말로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10퍼센트 넘게 하락하던 GL엔텍 주식은 장 마감 10분 정도를 앞두고 매수세가 몰리며, 순식간에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이제 GL엔텍 주가는 422,500원.
시총은 338조 원으로 늘어났다.
* * *
GL엔텍 공매도 수량은 약 1600만 주, 금액은 대략 2조 원이다.
그런데 주가 급등으로 인해 공매도 세력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투자금을 다 날린 것은 물론이고 평가손실액은 4조에 달했다.
투자한 돈의 두 배를 증거금으로 내야 할 상황. 이대로라면 공매도한 기관들이 줄줄이 파산하게 생겼다.
KD증권 조경휘 사장은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숏스퀴즈가 일어나는 것만은 막아야 해!’
숏스퀴즈(Short Squeeze)란 숏커버로 인해 주가가 치솟는 현상을 의미한다.
만약 공매도 세력들이 일제히 숏커버에 나선다면 주가는 100만 원까지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부 파산이다.
만약 주식을 빌려간 기관이 갚지 못하고 파산하면 어떻게 될까? 그대로 끝나는 걸까?
그럴 리가 있나.
그때는 주식을 대여해준 증권사가 책임지고 물어줘야 한다.
1주를 빌렸으면 무조건 1주로 갚아야 한다.
1만 원짜리 주식을 10만 원으로 갚겠다고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다행히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GL엔텍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주식이 앞으로 11개월 동안은 보호예수로 묶여 있다는 것.
어쨌거나 증권사들이 현물을 들고 있는 만큼, 주가가 상승해도 헤지가 가능하다.
증권사들은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지 않고, 상환기한도 보호예수가 풀리는 이후로 연장해주겠다고 밝히며, 일단 공매도 기관들의 파산을 막았다.
문제는 증권사들이 보유한 주식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유성증권, 화안증권, DA증권은 진작 개인투자자 주식 대여를 금지했기 때문에 GL엔텍 주식을 빌려준 일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증권사들은 아니었다.
대주주와 기관들이 보유한 주식은 전부 보호예수로 묶여 있다. 따라서 현재 GL엔텍 공매도에 쓰인 주식은 전부 개인들 주식이었다.
그런데 공매도 전산화 발표로 인해 개인들 주식이 공매도로 활용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개인들은 폭발했고, 실제로 집단행동에 나섰다.
[개인투자자들 증권사 이전!]
[소액주주들 모인 카페, 공매도 대여 금지를 선언한 유성증권, 화안증권, DA증권으로 증권사 옮기기 독려!]
[개인투자자협회, 증권사들 공매도 대여에 대해 사과하라!]
개인투자자들 불만이 들끓자 임광수 금융위원장까지 진화에 나섰다.
“공매도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은 메신저가 기록으로 남는 만큼 무차입 공매도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정 세력의 악의적인 루머에 휘둘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 발언은 개인투자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지랄한다. 지난번에 골드만삭스가 무차입 공매도했다가 걸렸는데, 없긴 뭐가 없어?
-니들 말대로 헤지펀드가 증권사에 100주 빌려달라고 하고 공매도를 했고, 이게 기록으로 남았다 치자. 그럼 그 증권사가 100주를 가지고 있다는 건 어떻게 증명할 건데?
-ㅋㅋㅋ 이번에도 증권사들이 남의 주식 멋대로 빌려주다가 걸린 거 아니야?
-그동안 개인들 주식 가지고 장사하다가 못 하게 되니 속상한가 봄 ㅎㅎ
-전산화 안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왜? 이제까지 주먹구구식으로 하려다가 걸리니까 쫄림?
-날로 먹을 때가 좋았지.
-이 새끼들 이러는 거 보면, 효과가 있는 모양입니다! 당장 옮깁시다!
-응, 내 주식 공매도에 더 활용해봐, 병신아~ 증권사 옮기면 그만이야~
개인들이 증권사를 옮기는 바람에 증권사들은 빌려준 주식보다 적은 수량을 보유하게 됐다.
사실상 무차입 공매도를 지원해준 셈이 된 증권사들은 당황했다.
KD증권 역시 GL엔텍 주식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증권사들은 충분한 물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11개월 동안 묶여있을 뿐.
주식을 팔거나 빼가겠다는 개인들에게 11개월만 믿고 기다려달라고 하면 기다려줄 리가 있겠는가?
까딱 잘못해서 주식을 내주지 못한다면, 집단소송을 당할 판이다.
다급해진 증권사들은 일단 매수에 나섰다.
조경휘 사장은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가격에 사야 한다고?’
GL엔텍의 펀더멘털을 생각했을 때 지금 가격은 말도 안 된다. 얼마 못 가 폭락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울며 겨자먹기로 사는 수밖에 없었다.
GL엔텍 주가는 20퍼센트 가까이 상승해 50만 원으로 올랐다.
시총은 400조 원으로 치솟으며,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퍼센트로 늘어났다
* * *
증시에서 특정 종목이 상한가를 치거나, 열 배씩 오르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종목이 코스피 시총 2위 기업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GL엔텍 주가 상승은 코스피마저 밀어 올렸고, 코스피200 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물시장과 선물시장을 막론하고, 한 종목 때문에 움직이는 기형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장 마감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는 대통령 주재로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열렸다.
각 부처 장관들과 함께 금감원, 금융위, 거래소 수장들이 모여들었고,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안건은 당연히 GL엔텍 주가 폭등 문제 때문이다.
임광수 금융위원장이 말했다.
“일단 모건 스탠리에 연락해 MSCI 지수 편입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금융사들에게도 주가 이상을 설명하고 각종 지수와 ETF 편입을 미뤄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오영환 대통령이 물었다.
“코스피200에서 제외하는 건 어떻습니까?”
코스피200의 구성종목은 정해진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경된다. 특정 종목이 거래정지, 상장폐지, 합병될 경우를 대비해 언제든 대체할 수 있도록 예비 종목이 준비되어 있다.
장진행 금감원장이 말했다.
“원칙적으로는 옵션만기일 이후에나 가능합니다. 만약 별다른 사유 없이 종목을 교체했다가는 투자자들에게 국제소송을 당할 위험이 큽니다.”
거래정지나 상장폐지가 됐다면 모를까, 멀쩡히 잘 거래되는 종목을 빼고 다른 종목을 집어넣는다면 그로 인해 손실을 보게 될 투자자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게다가 정부 마음대로 종목을 갈아치워 손실을 이익으로, 이익을 손실로 바꾼다면, 시장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보호예수를 풀면 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원인은 수급이 꼬였기 때문.
이를 푸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보호예수를 해제하는 거다. 보호예수만 풀려도 90.4퍼센트나 되는 물량이 시장에 쏟아질 테고, 그럼 자연히 주가는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도 투자자들에게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보호예수는 법으로 정해진 규칙이었다.
애초에 이를 어기지 못하도록 주식을 예탁결제원에서 보관한다. 상황에 따라 이걸 마음대로 푼다면 누가 한국 증시에 믿고 투자하겠는가?
때문에 코디어클로즈 사태 때도 보호예수를 풀지 못했다.
“공매도 전산화는 뭡니까? 가뜩이나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저런 내용을 갑자기 발표하면 어떡합니까?”
이덕수 거래소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해당 증권사들에게 문의해봤는데, 당장 하겠다는 건 아니고, 시장에 충격이 없도록 유관기관과 협력해서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왜 지금 발표하냐는 겁니다.”
그야 당연히 컨티뉴 캐피탈과 손잡았기 때문이겠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중단하라고 하고 싶지만, 어차피 발표가 나온 이상 소용없다. 오히려 공매도 전산화를 취소하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비난만 커질 것이다.
회의를 시작한 지 두 시간이 넘었지만, 이렇다 할 만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오영환 대통령은 답답해서 울화통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엄밀히 따지면 이건 그와 아무 관련 없는 일이고, 그가 책임질 일도 아니다.
그런데…….
웬 기레기 새끼들이 이상한 기사를 쓰는 바람에 대통령이 GL그룹에 뇌물을 받고 물적분할을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여러 차례 해명을 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처조카 최시덕이 근무하고 있는 크레딧원 코리아는 GL엔텍 공모에 참여했고 200억 정도의 물량을 배정받았다.
그 주식은 주가 폭등으로 인해 네 배 가까이 올랐다.
어차피 보호예수로 팔지를 못하니 당장 이익을 본 건 아니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이대로 계속 GL엔텍 주가가 폭등하면, 주가조작으로 한몫 챙기려 한다고 욕먹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뭔가 조치를 취하면, 이번에는 역시 GL엔텍에게 뇌물을 받았으니 수습에 나선 거라고 욕먹을 것이다.
한마디로 뭘 해도 욕먹게 생긴 상황.
오영환 대통령은 버럭 소리쳤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저 안 된다, 안 된다 말만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닙니까, 대책을! 뭐라도 대책을 말해 보세요!”
“…….”
“…….”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