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GL엔텍 (4)
다음 날.
장이 열리자마자 GL엔텍은 상한가로 직행했다.
주가는 325,000원을 찍고, 시총은 260조 원으로 늘어났다.
이로써 수년 안에 GL엔텍이 DATL을 넘을 거라고 주장한 KD증권 리포트는 틀렸음이 밝혀졌다.
GL엔텍이 DATL을 뛰어넘기까지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으니까.
[GL엔텍 상한가! DATL 제치고 세계 1위 배터리 회사 등극]
[GL엔텍 상승 덕에 코스피 2퍼센트 상승]
[전문가들 투자 신중해야……]
수백억짜리 회사도 아니고, 200조 원짜리 기업이 상한가를 쳤다.
덕분에 시총은 단숨에 60조 원이 늘어났고, 다른 기업들 주가는 큰 변동이 없음에도 코스피마저 크게 상승했다.
-ㄷㄷㄷ 공모 받고 첫날 못 팔아서 깜빡 잊고 있었는데 이거 뭐냐? 1000만 원에 100주 받아서 현재 2250만 원 범
-난 첫날 걍 내던졌는데 ㅜㅜ
-ㅅㅂ 난 공모가 이하에 팔았음. 아악!
-이게 대체 뭔 일이야? 저게 오를 이유가 있어?
-물량이 별로 없다잖아. 컨티뉴 캐피탈이 유통 물량 절반을 쓸어갔음.
-나머지는 어디 있는데?
-보호예수로 묶여 있음ㅋㅋ 팔고 싶어도 못 팜ㅋㅋㅋ
-이러다가 내일도 상한가 치는 거 아닐까?
-내일도 상한가면 대충 340조네.
-ㅎㅎ 이러다가 유성전자 시총 넘겠는데?
-이건 뭐 코스피 판 코디어클로즈 사태인가?
-돈 놓고 돈 먹는 도박판이 따로 없네.
-마! 이게 바로 K증시다!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 그때 살걸 후회 말고, 지금 사자!
-지금 사면 후회할 것 같은데.
* * *
GL엔텍은 공모 당시부터 고평가 논란에 시달렸다.
상장 이후 공모가 이하로 주가가 떨어지지는 않을지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상장 한 달이 지난 현재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주가가 공모가에 비해 세 배 넘게 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 가격이 정상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스피 시총 2위 기업이 상한가를 치는 초유의 사태에 증권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그 이유는 펀데멘탈로 인해 주가가 오르는 게 아닌, 단지 수급으로 인해 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수급이 해결될 경우 폭락한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GL엔텍 주가 상승은 현물시장은 물론 선물시장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중이다. 폭락시에는 오를 때보다 더 큰 충격이 시장을 덮칠 것이다.
때문에 증권사들은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특히 상장을 주관한 KD증권사는 타 증권사들에 비해 가장 많은 GL엔텍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조경휘 사장이 물었다.
“패시브 펀드들이 추가로 매수에 나설 가능성은?”
박현동 본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현재 주가에서 더 사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진 주식을 팔지도 못할 겁니다.”
만약 올랐다고 팔았는데, 더 오른다면 감당이 안 될 것이다.
“공매도 세력들은?”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확신만 있다면 서둘러 숏커버에 나서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상환에 나선다면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요.”
“그렇겠지.”
“문제는 컨티뉴 캐피탈입니다.”
이놈들이야말로 수급을 꼬이게 만든 원흉이다.
“록허트 대표가 앞으로 3퍼센트는 더 사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할까?”
컨티뉴 캐피탈이 이번 일에 쏟아부은 투자금은 약 8조 원.
웬만한 사모펀드라도 허리가 휘청일 정도의 금액이지만, 컨티뉴 캐피탈 입장에는 별 부담이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GL케미칼 공매도로 번 돈일 테니.
어떻게 보면 자기 돈 한 푼 쓰지 않고 주식을 사들인 셈이다.
“그거야 그냥 한 말이겠죠. 여기서 3퍼센트를 더 사려면 30조를 부어도 안 될 겁니다.”
조경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하긴, 굳이 더 살 필요도 없겠지.’
문제는 언제든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걸 노리고 그런 말을 한 걸 테고.’
박현동 본부장이 말했다.
“아무리 수급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주가가 계속 오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얼마 못 가 하락할 겁니다.”
조경휘 사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으로서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 * *
GL엔텍의 공매도가 가장 많이 이뤄진 것은 15~20만 원 사이였다.
주가가 30만 원까지 오르자 대부분의 공매도 세력들은 50퍼센트 이상 손실을 입었고, 일부는 손실이 100퍼센트가 넘어 추가증거금을 내라는 마진콜을 받았다.
지금 포지션을 청산하기에는 손실이 감당이 안 됐다. 때문에 다들 버티기에 들어갔다.
이는 JKH파트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 토종 사모펀드인 이곳은 그동안 공매도로 인해 큰 수익을 냈다. 특히 컨티뉴 캐피탈이 주도한 LD스튜디오와 GL케미칼에 따라서 투자해 대박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번에 GL엔텍의 주가가 고평가된 것을 보고 또다시 공매도를 쏟아냈다.
그런데…….
갑자기 주가가 급등하며 투자금을 전부 날리게 될 상황에 처했다.
권동주 대표는 깜짝 놀랐다.
‘아니, 여기서 컨티뉴 캐피탈이 왜 나와?’
직전까지 GL케미칼을 신나게 공매도하다가, 갑자기 GL엔텍을 미친 듯이 매수하다니. 종잡을 수 없는 행보다.
그는 놀란 와중에서 침착하게 생각했다.
‘수급에 문제를 일으켜 가격을 끌어올릴 생각인가?’
다행히 한국 증시는 기관들의 공매도 상환기한이 따로 없다. 거래비용과 증거금만 낸다면 얼마든지 기한을 연장하며 버틸 수 있다.
‘기다리면 주가는 제자리로 돌아올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돼.’
또다시 장이 열렸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GL엔텍에 집중됐다.
GL엔텍 주가가 또 상한가를 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으나…… 장 초반 3퍼센트 상승하던 주가는 이내 10퍼센트 넘게 하락해 30만 원 이하로 떨어졌다.
역시나 가격 부담이 너무 컸던 탓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주가를 올리지 못해 안달 나 있던 애널리스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주가 하락을 열심히 부채질했다.
[(속보) GL엔텍 11퍼센트 폭락!]
[GL엔텍 어디까지 떨어지나?]
[향후 추가 하락 위험 커! 매수 주의!]
효과가 있었는지 낙폭은 점차 커졌고, 권동주 대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굳이 서둘러 매수할 필요는 없겠군.’
* * *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내 말에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기관 보호예수만 풀려도 주가가 어느 정도 떨어질 테니까.”
공매도 세력 입장에서는 미래의 주가가 정해져 있는 만큼 당장 숏커버를 할 필요가 없다.
결국 주가를 끌어올리려면 컨티뉴 캐피탈이 더 사야 하는데, 그건 그거 나름대로 부담이 크다.
“그래서 강제로 숏커버를 일으킬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알아요.”
“아니, 미리 좀 알려주면 안 돼?”
“안 돼요.”
“왜?”
“그럼 재미없잖아요.”
“…….”
난 오랜만에 시드에게 전화했다.
“그때 얘기한 건 잘 되고 있어?”
[예.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인데요. 기존 프로그램을 손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이건 시드가 천재인 것도 있지만, 정말로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 쉬운 일을 이제까지 안 하고 있었던 한국이 신기한 거지.
[미국에는 언제 와요?]
“이번 일 끝나면 갈 거야.”
[알았어요.]
* * *
[(뉴스트리거 단독) 유성증권, 화안증권, DA증권 공매도 전산화 발표!]
(전략) 세 증권사는 미국의 유명 클라우드 회사 스노우 크래시와 협업해서 공매도를 전산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개인투자자들이 매수한 주식에 대해서는, 따로 약정을 맺는 경우를 제외하면 절대 공매도에 활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증권사들이 암묵적으로 개인투자자의 주식을 공매도에 활용해왔다는 걸 시인하는 셈이다.
사실 공매도 제도는 개인투자자들에게 매우 민감한 문제다.
필요 여부를 떠나 기관과 외국인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락장에서 기관과 외국인은 공매도를 쏟아낼 수 있는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지켜만 봐야 했다.
이는 한국 증시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은 그동안 꾸준히 공매도 제도를 아예 폐지하거나, 개인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금융당국은 여러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중략)
……이러한 불투명성으로 인해 혹시 증권사들이 멋대로 개인투자자들의 주식을 공매도에 이용하지는 않는지, 무차입 공매도가 이뤄지지는 않는지 하는 의심이 있었다.
이러한 의심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매도를 주식거래와 마찬가지로 전산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공매도 전산화 요구는 꾸준히 있었지만, 금융위는 물론 증권사들까지도 각종 핑계를 대며 개인투자자들의 요구를 묵살해 왔다.
거래 지연, 입력 오류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열심히 모니터링하는 걸로 충분하다, 형사처벌을 강화하겠다 등등.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금융당국과 증권사들의 주장이었지만, 스노우 크래시의 말은 전혀 달랐다.
스노우 크래시 홍보담당자는 공매도 시스템 구축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거의 모든 나라가 공매도를 전산화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믿기지 않게도 아직까지도 수기로 공매도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종 주문 실수가 발생하고, 무차입 공매도를 하더라도 적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스노우 크래시가 만든 프로그램은 한국예탁결제원의 중개시스템에 전문 형태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차거래를 빠르고 정확하게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기술적으로 매우 쉬운 일이다.”
DA증권 안호중 사장은 공매도 전산화에 나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DA증권은 유성증권, 화안증권과 함께 국내 최초로 대차거래의 모든 과정을 전산화해 거래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주문 실수를 원천차단할 수 있고, 그동안 메신저나 이메일로 이뤄지던 과정을 클릭 몇 번으로 진행할 수 있어 더욱 빠른 거래가 가능해집니다. 또한 거래가 투명하게 공개됨으로써 투자자들의 불안과 의심을 걷어낼 수 있고,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도 가능해집니다. 공매도는 증시에 필요한 제도임에도 그동안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을 제한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저희 세 증권사들이 먼저 업무협약을 맺어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거래를 실시하고, 이후 다른 증권사들과도 협력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 *
기사를 본 KD증권 조경휘 사장은 경악했다.
“이 미친놈들이 뭐 하는 짓이야!?”
대체 왜 이 시점에서 공매도 문제를 거론한단 말인가?
이게 우연일 리 없다.
“서, 설마 컨티뉴 캐피탈과 손잡은 건가?”
이건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하필 공매도 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회사도 스노우 크래시다.
DA증권과 화안증권이야 중소 증권사인 만큼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유성증권까지 껴있다는 게 문제다.
조경휘 사장은 재빨리 유성증권 정남철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슨 말씀이신가요?]
“왜 갑자기 공매도 전산화를 발표한 겁니까?”
[아! 일전에 저희 회사가 1000원 배당을 1000주로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사실상 무차입 공매도를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이후 계속 문제 해결을 고민하다가, 공매도 전산화만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 아, 아니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당시 공매도 전산화 요구가 빗발쳤으나, 유성증권은 앞으로 조심하겠다는 말로 대충 무마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핑계를 대며 전산화를 한다고?’
[마침 조 사장님께 연락드리려고 했었는데 잘됐네요. KD증권도 전산화에 동참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다른 증권사들과도 얘기 중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