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GL엔텍 (2)
GL엔텍 상장은 대박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사람들은 GL엔텍 주가가 어디까지 올라갈지 궁금해했다.
증권사들은 앞다퉈서 GL엔텍 매수 추천 리포트를 쏟아냈다. 매수 리포트를 내지 않은 건 유성증권, 화안증권, DA증권뿐이었다.
GL엔텍 상장 성공으로 기업들의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 규제에 대한 정치권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전경련은 정치권을 압박했다.
“원래 GL케미칼 시총은 70조였다. 그런데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상장하니, 그 두 배가 넘는 160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물적분할과 자회사 상장이 기업의 투자를 증진하고, 증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만약 이를 규제한다면 기업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큰 피해가 될 수 있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남궁석 의원을 저격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남궁석 의원은 여전히 법적 규제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입법 동력은 현저히 약해졌다.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재벌그룹들은 그럴듯한 자율 규제안을 내밀었다.
이런저런 내용이 많았지만, 주주보호 대책이라고는 청약 물량 일부를 빼서 모회사 주주들에게 ‘자회사 신주인수권’을 부여하겠다는 게 전부였다.
남궁석 의원이 주장했던 ‘물적분할시 반대하는 주주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물적분할 후 상장 금지’, ‘계열사 상장시 모회사 주주들에게 주식 현물 배당’ 등은 전부 빠졌다.
하지만 이미 여론이 가라앉은 만큼 임창식 대표는 이 자율 규제안을 받아들었다.
“기업들이 자율 규제를 준수해나갈 수 있도록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이를 어길 시 페널티를 부과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정치권의 최대 이슈였던 문제가 넘어가는 듯했고, 임창식 대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이걸로 잘 마무리됐군.’
법적 규제가 아닌 자율 규제 카드는 신의 한 수나 다름없었다.
차기 대권주자는 뭘 해도 공격받는 위치다.
규제냐 아니냐 중 하나를 택했다면, 그에 따른 공격이 쏟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O냐 X냐의 게임에서 세모를 택함으로써 슬기롭게 난관을 돌파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기업활동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으니, 향후 대선가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남궁석 의원인가?’
그는 자율 규제를 당론으로 정한 뒤 우리국민당 의원들에게 따르라고 주문했다. 모든 의원들이 그의 말을 따랐으나, 남궁석 의원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LD스튜디오 확률 조작 사태를 언급하며, 자율 규제 무용론을 주장했다.
당론을 따르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당대표와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때문에 새한국당 의원들에게 자당 국회의원 하나 제대로 관리 못 하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임창식 대표 입장에서는 상당히 체면이 상하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이번 일은 남궁석 의원 때문에 시작된 거나 다름없었다.
‘더 이상 돌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이번 기회에 확실히 손을 봐야겠군.’
우리국민당에서는 남궁석 의원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 * *
[GL엔텍, 15거래일 상승. 주가 25만 원 코앞]
[공모주 대박! 어디까지 오르나?]
[GL엔텍 상승 덕에 코스피 훈풍]
주가 과열 얘기도 나왔으나, 몇몇 애널리스트들은 GL엔텍이 DATL 시총을 넘어설 거라 전망했다.
유명 애널리스트들과 투자전문가들은 경제방송에 나와 열심히 떠들었다.
“현재 세계 최대 배터리 회사는 중국의 DATL로 시총은 1조 3천억 위안, 대략 250조 원입니다. DATL은 LFP가 주력이지만, GL엔텍은 기술력이 더 높은 NCM배터리가 주력입니다. 지금도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GL엔텍의 점유율이 더 높습니다. 대세가 NCM배터리로 기울고 있는 만큼, GL엔텍은 수년 안에 DATL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설 겁니다.”
-진짜 주가 띄우려고 별 개소리를 다한다.
-DATL은 시장점유율이 50퍼센트가 더 높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내수시장과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때문에 DATL은 다른 배터리 회사에 비해 30퍼센트 이상 높은 가치를 평가받습니다.
-고마워요, 스피드웨건!
-그럼 GL엔텍이 왜 저렇게 오르는 거야?
-저 가격이 말이 됨? 국내 배터리 2위인 유성ES랑만 비교해 봐도 PBR, PER이 거의 두 배인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ㅅㅂ! 공모가 이하로 떨어질까 봐 진작 팔았는데 ㅜㅜ
-아악! 좀만 더 들고 있을걸!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 ㅜㅜ
-여보 미안해!
* * *
비록 컨티뉴 캐피탈이 돈을 챙겨가도록 뒷문을 열어줬다는 비난을 받긴 했지만, GL엔텍 상장은 성공적이었다.
덕분에 GL케미칼 사장 고재익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걸로 무사히 끝났군.’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GL그룹은 그동안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주력사업이 없었다. 재벌답게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긴 하지만, 가전과 스마트폰에서는 유성전자에게 밀렸고, 통신에서는 LK텔레콤에 밀렸다.
그런데 이제는 배터리라는 확실한 주력사업과 캐시카우가 생긴 것이다.
GL엔텍 덕분에 GL그룹사의 시총이 100조 넘게 늘었고, 재계 서열은 LK그룹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그동안 최상위 그룹들의 변동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엄청난 일이었다.
사방에서 축하가 쏟아졌다.
고재익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가가 20만 원을 넘어서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호재가 있다고 해도 상승세가 너무 빠른데.’
그리고 또 며칠 만에 25만 원으로 오르며 시총은 200조 원을 돌파했다.
주가는 이미 증권사 목표가를 넘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퉈서 목표가를 올리던 증권사들조차도 더 이상은 올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누가 봐도 주가는 이미 적정 가격을 벗어났다.
주가 고평가 우려로 인해 공매도가 쏟아졌다. 그럼 주가가 떨어지거나, 거래량이 줄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반대로 주가는 오르고 거래량도 늘어났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 가격에 상관없이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매집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재익은 의문을 가졌다.
‘대체 누가 저렇게 사는 거지?’
아무래도 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비서가 들어와 그에게 말했다.
“컨티뉴 캐피탈에서 전화가 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 어디라고 했나?”
“컨티뉴 캐피탈입니다. 사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연결할까요?”
‘대체 무슨 일이지?’
고재익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결하게.”
“알겠습니다.”
비서가 다시 나가자 그는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고재익 사장님. 전 한미루라고 합니다.]
“……한미루?”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동안 이름은 질리도록 들었다.
[예. 컨티뉴 캐피탈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건 알고 있네. 무슨 일로 전화한 건가?”
[먼저 GL엔텍을 성공적으로 상장하신 것에 대해 축하드립니다.]
직전까지 GL케미칼을 공격한 사람이 건넨 말인 만큼, 진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고맙네.”
그런데 이다음 이어진 말이 뜻밖이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무슨 말인가?”
[어째서 GL엔텍을 상장하셨습니까? 그건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었습니다. 사장님께서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요.]
어이가 없어졌다.
‘이게 10조 원을 번 놈이 할 소리인가?’
고재익은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걸 참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덕분에 컨티뉴 캐피탈은 거액을 챙기지 않았나?”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GL엔텍 상장은 경영자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었습니다. 전 이에 대해 두 차례나 경고해드렸습니다.]
“경고라고?”
[예. 따님 생일파티에서 한 번, 남궁석 의원을 통해서 한 번 더요.]
‘감히 내 앞에서 경고 운운하다니.’
점점 기분이 불쾌해졌다.
당장이라도 욕하고 끊고 싶었지만 그는 예의를 지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GL그룹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뭐?”
이쯤 되자 화가 나는 걸 넘어 당혹스러웠다.
그는 GL케미칼의 사장이자 GL그룹의 후계자다. 대체 누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날 협박하는 건가?”
한미루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요. 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굳이 상장을 강행해야 했다면 적어도 GL케미칼 주주들에게 주식 현물배당을 해줬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고재익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설마 장난치는 건 아닐 테고.”
[이제 곧 무슨 일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전화가 끊어졌다.
고재익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거 뭐하는 놈이야?’
너무 어이가 없어서 ‘혹시 장난전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순간, 비서가 다급하게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사장님.”
“무슨 일인가?”
“컨티뉴 캐피탈이 GL엔텍 5퍼센트를 매수했다는 공시를 띄웠습니다.”
그 말에 고재익은 깜짝 놀랐다.
“뭐라고?”
‘그럼 그동안 주식을 산 게 컨티뉴 캐피탈이라고?’
경영권을 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GL엔텍의 대주주는 80퍼센트를 보유한 GL케미칼이니까. 무슨 짓을 해도 경영권에는 조금의 타격도 줄 수 없다.
‘그럼 어째서 GL엔텍을 사들인 거지?’
순간, 고재익은 머리에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서, 설마…….”
그는 GL엔텍 상장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GL케미칼 공매도는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목적은 바로…….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 * *
상장(IPO)은 주식을 공개 매도하는 행위다.
이때는 공모 절차를 거쳐 기관과 개인들에게 주식을 판매한다. 하지만 개인은 정보가 느리고 대주주에 비해 기업 내부사정을 잘 알지 못한다.
어떤 기업이 매출과 실적을 잔뜩 부풀린 다음 상장해 대주주가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운다면, 주가 하락으로 인해 공모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때문에 투자자 보호를 위해 법으로 6개월간 보호예수를 걸어 대주주의 주식 매도를 금지한다.
그런데 GL엔텍은 향후 주식 현물배당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기간을 3년으로 늘렸다.
여기에 더해 1년 이상 보호예수를 거는 기관들에게만 청약 물량을 배정하는 식으로, 사실상 보호예수를 강제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오버행(Overhang) 이슈를 피하기 위해서다.
상장 직전 컨티뉴 캐피탈의 공격으로 인해 GL그룹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GL엔텍 공모 흥행 역시 불투명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상장 직후 주가가 공모가 이하로 떨어졌다가는 더 큰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1년 안에 기관들의 매도를 막아 물량 과잉에 대한 우려를 없앴다.
둘째는 이렇게 해도 유동성에는 별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중에 풀린 물량은 공모가 기준으로만 해도 8조 원으로, 이 정도면 웬만한 대기업 시총 이상이다.
주식을 매집하려 해도 사는 만큼 주식이 오를 테니, 이를 다 사들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10조 원을 쏟아부어도 절반 정도 사는 게 고작일 것이다.
어느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하겠는가?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미친놈이 존재했다.
[(속보) 컨티뉴 캐피탈, GL엔텍 지분 5퍼센트 취득 공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