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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39화 (234/529)

239화. GL케미칼 (7)

한때 증권사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이렇게 사장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될 줄이야.

역시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렇다고 긴장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긴장하는 건 증권사 사장들. 대체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 자리에 불렀나 궁금해하는 표정이다.

난 바로 본론을 꺼냈다.

“먼저 드릴 말씀은 공매도에 대한 겁니다.”

공매도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무차입 공매도고, 다른 하나는 차입 공매도다.

무차입 공매도는 없는 주식을 일단 팔 수 있지만, 차입 공매도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주식을 빌린 다음 팔아야 한다.

무차입 공매도의 경우 워낙 위험성과 부작용이 크다 보니,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차입 공매도만 허용한다.

그렇다면 공매도는 어떻게 이뤄질까?

주식을 매수하려면 HTS를 통해 한국거래소 서버에 접속한 다음, 누군가 팔려고 등록해 놓은 주식을 사면 된다.

따라서 공매도 역시 마치 주식을 거래하듯 이러한 시스템으로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전화, 이메일, 메신저 등으로 이뤄진다.

‘유성전자 100주 빌릴 수 있죠?’라고 물어보고 OK하면, 대충 빌렸다 치고 일단 매도하는 것이다.

사실상 거래장부를 수기로 작성하는 것이다.

21세기에 이게 말이 되나 싶지만 진짜다.

그렇다면 주식을 빌린 다음 파는 건지, 아니면 먼저 판 다음 나중에 주식을 빌려와 채워 넣은 건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다가 가끔 문제가 터지기도 한다.

과거 유성증권이 우리사주에 1000원을 배당해야 하는데, 1000주를 배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무려 110조 원의 없는 주식이 시장에 생겨났고, 일부 직원들은 이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팔아서 돈을 챙겼다.

공매도가 전산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빌리지도 않은 주식을 얼마든지 팔아치울 수 있다.

그럼 어째서 공매도는 주식거래처럼 전산화를 하지 않는 걸까?

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헤지를 목적으로 공매도를 할 때는 수백 개의 종목을 동시에 매도하는데, 일시적으로 서버에 과부하가 걸릴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알겠지만 그냥 개소리다.

요즘 같은 디지털화 시대에 안 될 리가 있나? 이미 거의 모든 나라들이 공매도를 전산화했고, 이걸 안 한 나라는 한국과 대만 정도다.

당연하게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그래야 장사하기 편하니까.

전산화를 하면 반드시 먼저 주식을 확보해야만 공매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기로 하면, 먼저 공매도를 한 다음 나중에 적당히 주식을 빌려와 수량만 맞추면 된다.

빌려주는 곳이나 빌리는 곳이나 매우 편리한 방식이다

“최근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공매도 세력이 주가하락을 부추겨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사이, 개인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보고 있으니까요.”

내 말에 증권사 사장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최근 공매도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세력이 바로 컨티뉴 캐피탈이니까.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던 허민웅이 말했다.

“공매도가 문제라는 거야?”

난 고개를 저었다.

“공매도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고객 계좌에 들어있는 주식들을 빌려주는 건 문제가 좀 있습니다.”

공매도는 일반 주식거래에 비해 수수료가 높아 이익이 크다.

그런데 주식을 빌려주기 위해서는 주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증권사는 최대한 주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때문에 보통 개인들이 계좌를 개설할 때 은근슬쩍 약관에 대여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집어넣는다.

이렇게 하면 필요에 따라 고객 계좌에 있는 주식을 빼서 쓸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개인투자자들은 자신의 주식이 공매도에 쓰인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그야 계좌 내역에 들어가 보면 여전히 주식이 있는 걸로 나오고 매매도 잘되니까.

“이번 기회에 따로 대차 계약을 맺지 않은 개인투자자의 주식은 절대 대여해주지 않는다고 하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성윤아가 말했다.

“그럼 다 싫다고 할 텐데요.”

“그렇겠죠.”

자기 주식 떨어트리는데 쓰기 위해 빌려달라고 하면, 좋다고 빌려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따라서 내 얘기는 개인투자자들 주식은 공매도에 쓰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로 다들 GL엔텍 공모에 참여하실 텐데, 가능한 적은 수량만 하시는 게 좋습니다.”

무려 시총 80조 원짜리 기업이 상장하는 일이다. 기관이라면 무조건 공모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허민웅은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공모가가 좀 높다는 의견이 많지. 요즘 GL그룹 이미지도 안 좋고.”

여기까지는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얘기였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얘기다.

“셋째로 당분간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옵션 발행은 하지 않는 걸 추천드립니다. 기존에 발행한 옵션에 대해서는 반대되는 옵션을 매수하거나 기초자산을 사들이는 식으로 반드시 헤지를 해놓으시기 바랍니다.”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지금이야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일이다.

“오늘 제 얘기를 따르고 안 따르고는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 *

온갖 논란 속에서 GL엔텍이 증시에 상장했다.

보통 신규 종목이 상장할 경우 관계자들이 거래소에 직접 나와 북을 치고 축포를 터트리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과정은 생략됐다.

시총 80조 원짜리 기업이 새로 들어왔지만, 그저 코스피 시총만 늘었을 뿐 지수는 그대로였다.

공모가는 10만 원.

시초가 133000원으로 출발한 직후 20퍼센트 더 상승해 16만 원을 찍었다. 하지만 오후장 들어 점차 하락해 12만 원에 머물렀다.

그래도 공모가보다 무려 20퍼센트 오른 가격이다.

그리고 우려했던 일은 현실이 됐다.

기관, 외국인, 연기금 할 것 없이 다들 대형주를 매도하고, GL엔텍 주식 매수에 나섰다. GL엔텍이 오른 반면 상위 100개 종목 대부분은 하락했다.

예상대로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기업은 GL케미칼.

GL엔텍이 축포를 터트리는 동안에도 GL케미칼 주식은 더욱 하락해 43만 원까지 내려갔다. 한때 70조 원을 넘었던 시총은 이제 30조 원까지 쪼그라들었다.

-ㅋㅋㅋ 컨티뉴 캐피탈이 자회사 상장하면 주가 폭락할 거라고 그렇게 경고하고 공매도를 쏟아냈는데 기어이 상장했네.

-공매도 세력만 좋은 일 시켜줌.

-이쯤 되면 GL그룹이 컨티뉴 캐피탈과 손잡고 일부러 주가 폭락시킨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ㄹㅇㅋㅋ 돈 챙겨서 나가라고 친절하게 뒷문 열어줌.

-컨티뉴 캐피탈이 10조 원 벌었다는 얘기가 있던데.

-주주들은 안 챙겨줘도 공매도 세력은 끔찍하게 챙겨주는 고재익 사장님 ㅜㅜ

-ㅈㄴ 끔찍하다 ㅜㅜ

-공매도하는 투기꾼들보다 GL 새끼들이 더 나쁨.

-주주들 피 빨아먹고 얼마나 잘되는지 보자.

-GL케미칼에 투자했다가 7천만 원 손실 보고, 빡쳐서 집에 있는 GL전자 TV랑 냉장고 다 때려 부쉈다. 앞으로 내가 GL 제품 쓰면 사람새끼가 아니라 개새끼다.

-ㅋㅋㅋ 미친. 죄 없는 가전은 왜 박살 내?

-이제 -7500만 원이네 ㅎㅎ

-ㅅㅂ 오늘 GL티플에서 LK텔레콤으로 바꿨다.

-나도 GL야구단 유니폼 찢어버림~

* * *

[(뉴스트리거 단독) GL엔텍 상장 당일 GL케미칼 주주들은 피눈물 흘려. 쪼개기 상장에 대한 정치권 대책은?]

(전략) 대통령이 재벌그룹의 부정청탁을 받고 국민연금의 물적분할을 승인해줬다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새한국당은 이번 일에 대해 철저하게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야당인 우리한국당 임창식 대표는 기업들의 자율 규제안을 꺼내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유일하게 주주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건 남궁석 의원(우리국민당)뿐이다.

남궁석 의원은 이번 상장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

“보호예수 기간을 3년으로 늘린 것은 주식 현물배당을 피하기 위한 꼼수나 다름없다. 이번에 GL케미칼이 내놓은 주주보호 대책을 보면 알 수 있듯 자율 규제는 허상에 가깝다. GL엔텍 상장은 끝났지만, 지금도 열 개가 넘는 기업들이 상장을 대기 중이다. 더 늦기 전에 빨리 규제안을 만드는 것만이 대주주의 횡포로 인한 주주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 *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GL그룹은 GL엔텍 상장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를 GL그룹의 승리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 일의 승자는 당연히 컨티뉴 캐피탈이었다.

재계에서는 한정그룹 사태 때에 이어 또다시 한미루의 이름이 거론됐다.

“또 한미루야?”

“한정그룹을 해체시킨 것도 모자라 GL그룹까지 공격하다니.”

“대체 재벌과 무슨 원한이 있는 거지?”

이번 일로 인해 피해를 본 건 GL그룹만이 아니다.

공개적인 공매도를 선언해 원래대로라면 조용히 상장하고 끝날 일을 키웠고, 이로 인해 자회사 상장이 모회사 주가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

컨티뉴 캐피탈은 한 번의 투자로 약 1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겨간 반면, 물적분할이나 계열사 상장을 준비하던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그다음 상장을 대기 중이었던 곳은 대연차그룹의 계열사인 대연위너.

GL케미칼 주가가 나락으로 가는 걸 본 대연차 소액주주들은 대연위너 상장시 집단소송에 나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단 대연차그룹은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상장을 미뤘다.

대연위너의 대연차 지분율은 51퍼센트, 그리고 장희수 회장의 삼남 장유선이 지분이 38퍼센트, 다른 형제들이 11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만약 상장이 무산된다면 장유선은 자신의 몫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장유선은 그날 본 한미루를 떠올리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 새끼만 아니었어도!”

상황은 다른 대기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LK그룹, 대연중공업그룹, 타피오카그룹, GJ그룹 등에서는 일제히 상장 절차를 미루고, 재검토에 들어갔다.

* * *

난 데이비드의 전화를 받았다.

[결국 GL엔텍이 상장했군요.]

“고마운 일이죠.”

공매도는 들어가는 것보다 빠져나오는 게 중요하다.

애초에 내가 팔아서 주가를 끌어내렸다. 그런데 포지션 청산을 위해서는 그동안 팔아치운 만큼 다시 사들여야 한다. 이때는 주가가 치솟을 위험이 크다.

공매도 포지션 청산을 위해 다시 주식을 사는 걸 숏커버(Short Cover)라 하는데, 이걸 잘못하면 이익은커녕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다.

만약 GL엔텍 상장이 미뤄지기라도 했다면 빠져나올 타이밍을 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정대로 상장을 해준 덕분에 기관들이 대규모로 GL케미칼을 팔고 GL엔텍을 사들였고, 덕분에 우리는 손쉽게 주식을 매수해 털고 나올 수 있었다.

이번 투자에 쏟아부은 돈은 10조 원.

전부 100만 원에 공매도한 건 아니고, 주가를 끌어내리며 계속 매도한 만큼 수익률은 10조 원에 약간 못 미치는 9조 6천억 원.

말 그대로 돈이 복사가 된 셈이다.

보통 이런 경우 공매도 세력이 욕먹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컨티뉴 캐피탈보다 GL그룹이 더 욕을 먹고 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지.

역시나 우리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표정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어도 싱글벙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돈을 번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끝난 게 아니라니요?]

“GL엔텍 상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니까요.”

데이비드는 놀란 듯 물었다.

[시작이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난 데이비드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내 얘기를 다 들은 데이비드는 깜짝 놀랐다.

[설마 처음부터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셨던 겁니까?]

“처음부터는 아니었고, 중간에 생각난 거예요. 어때요? 가능할 것 같아요?”

그는 잠시 생각한 다음 대답했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진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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